소설리스트

학사전생-74화 (74/275)

제74화

‘허허……. 그래. 한 번 마음 먹은 것을 내 고집을 곧이곧대로 물려받았을 터인데 물러날 리가 있겠느냐. 이참에 네가 익혀온 실력을 맘껏 세상에 토해내어 보거라.’

송악은 그런 아들의 모습을 응원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 * *

황제의 명이 떨어진 지 몇 주야 지나지 않아, 군대는 빠르게 편성되었다.

이미 평소에도 평목단을 중심으로 황궁 내에서 훈련이 매일 반복되고 있었고, 모자란 병력은 바로 앞 하북성과 산동성에서 끌어왔기에 군대를 모으는 데 있어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총군사로는 당연히 송악이 맡았고, 우도독인 평목단이 중앙 지휘부로 나섰으며 평서란이 후방을 송운이 맨 앞 선발대를 맡아 섰다.

지난번의 일도 일이지만 일찍이 황제가 평서란의 어릴 적부터 봐온 무위를 탐내왔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송운은 아직 정식으로 무관이나 문관으로 등재된 것은 아니나 송악은 물론이오, 무위의 정점에 서 있는 평목단마저 그를 지목하였기에 윤허(允許)한 것이다.

‘이로써 모든 준비가 끝이 난 것인가?’

송운은 한데 모인 군사(軍士)들을 바라보았다.

수천 명의 군사가 각기 그들의 병장기를 들고 위풍당당(威風堂堂)하게 서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맨 앞 선두에 선 창병들을 시작으로 기마병들과 순수 검을 들고 싸우는 이들까지!

모두의 얼굴에는 마교를 토벌하러 간다는 데 있어서 긴장감이 돌기보다는 자랑스러움이 한껏 배어있었고, 그것은 아마 평목단이 가진 힘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믿고 따르는 것이리라.

그 모습에 송운의 온몸에 묘한 전율이 일었다.

‘소오태산에 한바탕 큰 혈풍(血風)이 불겠구나.’

그때, 평목단의 커다란 목소리가 그들이 있는 곳에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모두 출발한다. 전군, 전진하라!”

“와아아!”

마교 토벌의 깃발이 올랐다.

第十五章. 후기지수

다그닥 다그닥.

북경 서쪽을 향해 수많은 병력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이곳.

그들 중 가장 맨 앞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인 선발대 사이로 송운의 얼굴이 비쳤다.

“무림맹 측에서 보내기로 한 이들은 어찌 보이질 않습니다.”

송운은 보이지 않는 무림맹의 모습에 궁금증이 일었는지, 앞서나가던 이에게 물었다.

“아, 부 대주. 소오태산으로 향하는 중앙 길목에서 저희 행렬과 합세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 곧 도착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곧 온다는 말이렷다.’

송운은 오랜만에 무림 측 사람들을 보겠다는 생각에 조금 들떠있었다. 전생에선 강호를 떠돌며 많은 무인을 봐왔으나, 회귀한 이후로는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란 매와 장인어른이 전부인가?’

하나, 둘도 결국은 황실의 무인들이다.

무림에서 살아나가는 이들은 아니란 소리다.

신기하게도 마을에서도 단 한 번도 무림인들은커녕, 추정되는 이들조차 보지 못했다.

어쩌면 조금은 그립기도 하던 세상이었다.

홀로 서야 했기에 힘들긴 했으나, 그만큼 애정도 있는 기억들이었다.

‘게다가 전생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무림맹 측의 사람들이니…….’

마교 토벌도 토벌이지만 그들을 본다는 생각은 송운의 가슴을 부풀게 만들기 충분했다.

* * *

한편, 그 시각.

무림맹이 파견한 이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체 뭣 하러 황궁의 군사들과 합세하라는 거야? 우리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제일 앞서나가던 한 푸른 무복을 입은 이가 투덜거렸다.

“어른들께서 어련히 생각이 있으셔서 보내신 것 아니겠느냐. 적을 만나기도 전에 투덜거리는 데 진을 다 뺄셈이냐?”

하얀 무복을 차려입은 이가 파란 무복을 향해 일침을 놓자, 이내 토라졌다는 듯 고개를 획 돌린다.

“하여튼 형님은 너무 단호해서 탈이오.”

“어찌 되었건, 황제의 검으로 칭호 받는 평 도독이 이번 토벌에 함께 나섰다. 그의 명성은 익히 너도 들어 알고 있지 않느냐?”

“그거야 알고 있지만…….”

“그렇다면 조용히 가자꾸나.”

“쳇. 알았소.”

결국 한마디 더 들은 그는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느 시대에나 후기지수는 존재했고, 이들이 바로 그 현 무림맹의 새로이 떠오르는 별이라 칭송받는 오룡일봉이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어린 나이로 그 실력을 인정받은 만큼, 무림맹이 새로운 저력으로 그들을 함께 내보낸 것이다.

혀를 차며 앞을 보면 그의 눈에 이내 대군의 행렬이 들어왔다. 한눈에 알아보지 못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저들이로군.’

“황군이 보이는구나. 우리도 합세한다.”

그들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 * *

송운은 주변으로부터 적지 않은 내기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꽤나 많은 숫자이나, 사파나 마교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걸 보아 아마도 무림맹 측 이들이 가까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온 것인가?’

그때, 송운이 있는 대열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처음 뵙겠소이다. 이번에 무림맹에서 파견 나온 곽철우(郭鐵牛)라 하오.”

무복 앞섶에 매화의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은 그는 약관을 조금 넘어 보이는 꽤나 준수한 얼굴에, 키는 육 척을 좀 넘는 듯한 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곽철우라…….’

송운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전생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현 화산파(華山派)의 삼대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

오룡일봉 중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이로 훗날 평서란과 동급의 무위를 인정받는 무인, 즉 칠대구주무신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 이다.

‘그렇다면…… 무림맹이 오룡일봉을 보내온 것인가?’

곽철우의 뒤로 보이는 한 명의 여인과 다섯 명의 무인이 한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굳이 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새로운 명성이 필요하다 이건가?’

아마도 무림맹주인 백능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총군사인 제갈염은 자신이 듣기로 머리가 좋은 만큼 매사에 조심스러운 자였기 때문이다.

비록 그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을지 모르나, 훗날 무림맹을 이끌어나갈 후기지수들을 이리 쉽게 내놓았을 리 없었다.

하나 그들이 결정할 일.

마교 토벌에 함께할 이들이긴 하였으나, 자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더구나 오룡일봉 중 대부분 기대에 못 미치는 이들이었으나, 두 명의 기운이 범상치 않다.

아마도 전생에서 그 실력이 확실했던 곽철우와 나머지 한 명은 남궁세가의 인물일 것이다.

“반갑습니다. 이번 작전에서 부 대주를 맡은 송운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리오.”

그때 마침 곽철우의 뒤로 누군가 불만이 가득 배인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송운을 보며 쏘아붙였다.

“흥, 나이도 얼추 비슷해 보이는데 무슨 직책이 그리 화려해?”

오기 전부터 말이 많았던 푸른 무복의 사내.

남궁세가의 장남, 남궁장후(南宮張厚)였다.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그 기세와 외모가 독특했다.

건장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곱상한 외모 때문이었다. 들렸던 소문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유약해 보이는 체격 때문에 자격지심을 느끼던 그는 일부러 더욱 근력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고, 그 결과 근육이 남달랐다.

때문에 남궁세가가 뛰어난 검술과 권법으로 유명했지만, 대다수가 검을 익히는 반면 그는 근력을 기반으로 하는 권법을 지향했다.

송운이 느꼈던 강한 기운을 가진 둘 중 한 명인 남궁장후도 훗날 정파의 든든한 기둥이 되는 남궁세가의 자랑거리인 만큼 심기도 깊고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다고 했다.

그것까진 좋았다.

다만 한 가지 그의 모습이 송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한데……. 생각보다 오만해 보이는군. 본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집안 또한 잘 나간다 이건가?’

송운의 미간에 내 천자가 슬며시 새겨졌다.

잠시 화가 날 뻔했으나, 그런 남궁장후를 곽철우가 빠르게 제지했다.

“장후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 무슨 말버릇이냐? 예를 갖추거라.”

곽철우가 한마디 거들었지만, 들은 체 만 체하며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구만, 굳이 대우까지 해줘야 해?”

그 옆에서 그의 말을 돌리듯 받아치는 이가 있었다.

“그래도 황궁에서 직접 파견 나온 이이니, 믿을 만한 사람이겠지. 설마 황제가 생각도 없이 사람을 보냈을까. 청성파의 당무옥(唐武玉)이라 하오. 뭐 어쨌거나 이리 같이 싸우게 되었으니 통성명 정도는 하는 게 맞지 싶군.”

“종남파의 양풍완(陽豊完)라 하오.”

그 뒤를 따라 그들 중 상대적으로 가장 왜소한 체격을 지닌 양풍완이 자신을 소개했다.

‘당무옥이라 했던가? 오만한 것은 남궁장후와 똑같은 것 같군. 후우……. 참자. 일일이 반응할 필요는 없다. 오랜만에 보는 무인들이라 기대했건만…….’

송운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나마 가장 나이가 많은 곽철우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아마 송운도 화가 났을 터지만, 그의 말에 획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의 모습에 더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믿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지막이 자신을 소개하는 또 한 명이 있었으니….

“하북팽가의 팽후영(彭後英)이라 합니다.”

오룡일봉의 유일한 홍일점(紅一點).

팽후영이었다.

“우선 갈 길이 바쁩니다. 출발하도록 하지요.”

* * *

송운은 다시 걷기 시작한 이후로 생각에 깊이 잠겨 있었다. 당무옥과 양풍완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그다지 송운의 시선을 끌지 않았다.

한데, 그들을 제치고 송운의 예상외로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인물이 있었다.

‘팽후영이라.’

말이 많아서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도, 딱히 무공이 뛰어나 보여서도 아니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그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우측 허리춤에 도를 찬 그녀는 평범한 도가 커 보일 만큼 작은 체구에, 아직 약관에도 이르지 못했는지 꽤나 어려 보이는 인상이었다.

‘뭐, 당연히 후기지수인 만큼이나 제법 재능은 있을 테지만…….’

이번 대 후기지수의 유일한 여인이기도 한 팽후영의 작은 체구에서 묘하게 풍겨오는 그 분위기는 어떤 의미로는 오히려 곽철우나 남궁장후보다 더 뛰어나 보인다고 해야 할까?

마치 아직 때가 아니라는 듯 숨을 죽인 채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잠룡(潛龍)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자꾸만 송운의 이목을 끌었다.

‘으음, 분명 내 기억에는 란 매를 제외하곤 딱히 이름을 드높인 여 무재는 없었다. 한데도 왜 이리 신경이 쓰인단 말인가?’

심지어는 그 이름을 듣고도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내 기억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란 소리인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