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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73화 (73/275)

제73화

가만히 백능의 말을 듣고 있던 제갈염이 한참을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좌우로 틀었다.

“송구한 말씀이오나……. 그것은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이 마교뿐만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음? 그건 무슨 뜻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백능이 묻자, 큰 한숨을 내쉰 제갈염이 말을 이어나갔다.

“후우……. 마교를 비롯한 해남파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어젯밤 돌아온 정찰 조장에게 들려온 말이니 확실할 겁니다.”

제갈염의 말을 끝까지 들은 백능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내려앉는다.

‘일이 제법 복잡하게 돌아가겠구나.’

마교가 세 외에서 악당을 자처한다면, 해남파는 중원 내에서 뿌리박고 있는 또 다른 악의 근원지였다.

비록 당금에 달해선 그 기세가 미미하다고는 하나, 그들 또한 결코 우습게 볼 세력이 아니었다.

“음……. 군사 자네의 말대로라면 그들을 한꺼번에 움직일 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로군. 골치 아프게 되었구먼.”

“아마도 그러하겠지요.”

‘늙어 빠진 호랑이처럼 꽁무니를 뺀 채, 조용히 지내던 해남파마저도 움직인다라……. 그것도 이 먼 북경에?’

향기롭고 먹음직스러운 꽃은 벌떼를 끌어당기는 법.

백능의 오랜 무림에서의 경험이 만들어낸 예리한 감이 그를 부추긴다.

“우리도 서둘러 움직여야겠구먼. 시간이 없네. 오룡일봉(五龍一鳳)을 모으게.”

“……?!”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제갈염이 놀란 듯 눈이 크게 떠졌다.

자신의 귀가 순간 잘못되지 않았다면 분명 오룡일봉을 부르라 한 게 맞을 것이다.

“하오나, 맹주님. 아직 그들은…….”

“이제 제법 나이가 차질 않았던가? 허허. 그보다 총군사가 그리 놀라는 건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구먼. 말 그대로일세. 그들도 뭔가 슬슬 이렇다 할 만한 명성을 쌓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제 장강의 뒷물은 빠져줄 때가 되었지. 나도 이젠 나이가 나이인지라 힘이 드네, 총군사. 좋은 경험이 될 걸세. 특히나…… 그 아이라면.”

그저 사람 좋게 웃기만 하던 백능의 눈이 예리한 매의 눈처럼 변한다.

평소 유순한 성격을 지닌 그나, 한 번 고집한 것은 절대로 꺾지 않는 사람이었다.

애꿎은 나이 타령을 하고 있으나, 결코 그의 기세는 예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하나, 이미 수십 년을 그의 곁에 있으면서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더 반박할 수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질 게 뻔했고, 뻔한 걸 가지고 입씨름을 할 만큼 시간의 여유는 없는 듯했다.

제갈염은 그저 한숨지으며 답했다.

“하아……. 제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맹주님.”

* * *

탁.

송운은 눈앞에 펼쳐놓았던 책을 덮었다.

지금은 아무리 읽어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올 것 같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전생에서는 알지 못했던 일이다.

그렇다고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것조차 아무것도 없으니 더욱 답답할 노릇이었다.

“후우…….”

송운은 크게 한숨을 한 번 내뱉은 뒤, 사방으로 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급작스럽게 마교인들이 북경 근처까지 발을 들여놓았다. 이는 그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아무리 마교가 울던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하나, 그것도 옛날의 이야기다.

작금, 마교의 성세(聲勢)는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남은 세력마저 온전치 못할 것이란 것은 그들도 알고 있을 터.

‘혹여…… 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인가?’

송운이 알기로 마교대전이 앞으로 몇 년 남지 않았다.

그걸 대비하고자 한다면 지금처럼 얌전히 숨을 죽인 채, 힘을 기르는 것이 옳다.

그사이 엄청난 힘을 비축하게 될 녀석들이다.

송운은 또다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끔찍한 기억에 송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지.’

자신들의 세상인 마냥 마인들이 날뛰었고, 그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수많은, 너무도 아까운 많은 생명이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죽어 나갔다. 무인들 사이에 최고라 불리는 구주칠대무신들과 무림맹조차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그 당시는 대 환란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전생에서 보았던 마교대전 당시 그들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송운이기에 더욱 답답함이 차오른다.

‘드디어 천마가 돌아버린 것인가?’

이미 화마가 찾아오는 시점부터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틀어져 버린 마당에, 오랫동안 몸을 사리던 천마가 답답함에 미쳐 뛰쳐나왔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나 이내 송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아닐 터다.’

천마라는 놈은 마공을 익힌 이답지 않게 그 누구보다 이성적인 인물이라 들었다.

‘철저하고 이해타산이 빠르다.’

득이 되지 않으면 절대 먼저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이 천마였다.

무작정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멍청한 이가 아니란 말이다. 비록 쫓겨난 이들의 수장이라 한들, 하나의 거대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아닌가?

적어도 생각이 있다면 아무런 이유 없이 위험을 알면서 일부러 뛰어들진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미친 건 맞는 것 같지만…….’

그렇게 수만 가지 드는 생각에 머리가 띵해질 때 즈음, 문득 떠오른 하나가 송운의 뇌리를 빠르게 스쳤다.

흑야.

‘설마……. 이번에도 흑야와 연관된 것인가?’

어쩌면 흑야가 개입된 것이라면 이 상황이 이해가 될 법도 했다.

‘어찌 되었건, 주시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어.’

* * *

머릿속이 복잡해진 송운은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나왔을까?

그러던 차 문득 평서란이 떠올랐다.

‘평 소저는 뭘 하고 있을는지…….’

약혼식 이후로 얼굴을 도통 비추지 않는 그녀였다. 궁금해지기도 하고 보고 싶어진 마음에 평가로 향했다.

그녀를 본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는지 그의 발걸음은 매우 경쾌해 보였고, 그렇게 그녀의 집이 보여 갈 때쯤.

멀리서 문 앞에 막 들어가는 평서란의 모습이 보였다.

“란 매?”

“송 소……. 운 가가.”

새로운 호칭이 자연스러운 송운에 비해, 아직 평서란은 입에 붙지 않았는지 어설픈 말투로 그를 불렀다. 그의 모습에 반가웠는지 환한 미소를 띠며 송운을 향해 다가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송운의 입가에 미소가 인다.

“여기까진 무슨 일이세요?”

“흠. 그대가 있는 곳인데, 꼭 무슨 일이 있어서 와야 하는 것이오?”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들어 너무도 뻔뻔해진 송운의 모습에 쑥스러운 듯 고개를 슬며시 숙이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어딜 다녀오는 길이오?”

어딘지 모르게 미세하게 평서란의 평소 복장과는 조금 달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 황궁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우선 들어오세요. 차라도 한잔하면서 얘기해요.”

‘역시.’

평서란의 권유에 고개를 끄덕인 송운은 그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평서란의 방 안.

쪼르륵.

금세 차를 내온 평서란이 직접 우려낸 차를 따라냈다.

“음, 향이 참으로 좋구려.”

“그렇죠? 마음에 드시면 가져가셔도 좋아요.”

“아니오. 괜찮소. 차도 얻어 마실 겸, 란 매도 볼 겸 이리 찾아오면 되는 것 아니겠소?”

“그런가요?”

송운은 문득 지난번 약혼식 때 양조광이 전해 준 차가 떠올랐다.

‘아, 그렇지. 다음에 올 때 가져와야겠구나.’

그때, 차를 다 따라내었는지 아까 전 송운의 말에 답해왔다.

“이번에 황제께 새로운 명이 떨어졌어요.”

“황제께서 말이오?”

차를 마시던 송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일명 마교 토벌이요. 저를 비롯해서 아버지와 아버님께서도 함께 출전하기로 하셨어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요.”

“결국 황제께서 대대적인 토벌을 명하신 게로군.”

뜨거운 듯 차를 호호 불며 마시고 있던 평서란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곳도 아닌 북경까지 들어온 이상, 황실에서도 그들을 마냥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시겠지요.”

“맞는 말이오. 그렇지 않아도 나도 고민하던 차였는데……. 모두가 나선다니 나 또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겠구려. 나도 함께 가도록 하겠소.”

나라가 흔들리면 백성이 위험해지고, 백성이 위험해지면 집안도 위험해지는 것이다.

이런 날을 위해 지금껏 힘을 길러오지 않았던가?

송운은 굳은 의지가 담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알아본 것일까?

평서란이 미소 지었다.

‘역시 운 가가시구나.’

가족이 전장 터로 나아간다는데 가만히 손만 빨며 앉아 있을 그가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마교가 누군지 모르냐며 위험하다며 안 된다 했겠지만, 송운의 실력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던 그녀가 아닌가?

오히려 그가 함께해준다는 말에 든든한 마음까지 드는 평서란이었다.

“그래 주신다면 거절은 하지 않을게요. 송…… 운 가가께서 함께 해주시면 더욱 든든할 것 같네요. 후후.”

평서란과 이야기를 마친 송운은 집으로 돌아와 송악에게도 같은 말을 꺼내었다.

“아버지, 이번 출전 저도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안 된다. 상대는 흉악한 마인들이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역시.’

단박에 허락을 받아낼 거란 생각은 송운도 하지 않았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런 때를 위해 그동안 열심히 수련해왔지 않습니까? 온 가족이 있는 북경입니다. 마교를 막지 못한다면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이 모두 위험해질 겁니다. 믿어주십시오. 아버지.”

송악은 그런 아들의 눈을 보지 않으려 눈까지 질끈 감았으나, 끈질기게 송운은 그의 빈틈을 차고 들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하였던가? 허어…….’

“후우……. 그래. 네 의지가 정 그렇다면야……. 황제 폐하께 상소를 넣어보마. 하나, 혹여라도 위험하게 되거든 반드시 몸을 사려야 한다. 알겠느냐?”

“예, 아버지. 걱정 끼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송악은 계속 반대하는 견해이었으나, 이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의지도 워낙 강한데다 평목단 또한 인정할 정도의 무위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어왔던 것도 한몫 거들었다.

자신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야 아들의 모습이 생기가 흘러넘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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