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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72화 (72/275)

제72화

둘이 맞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고맙소. 내 곁에 있어 주어서. 내 오래오래 행복하게 해주리다.’

* * *

북경 근처의 야산(野山).

사람들이 모두 잠든 야심한 시각,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었다.

사사삭.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노인이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놓였는지 얼굴을 가득 덮고 있던 복면을 벗어젖혀 땅에 던져버렸다.

퍽-!

천 쪼가리일 뿐인데도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만큼, 그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빌어먹을!”

그는 자신의 뒤를 따르던 마두들을 뒤로 한 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 망할 놈의 어린놈과 계집만 아니었으면 일이 좀 더 수월해졌을 것을……!”

그런 그의 분노에 주변에 있던 마두들이 한껏 몸을 움츠린다. 지금 잘못 눈에 띄었다간 괜한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 터다.

으득-!

그의 눈이 어두운 밤 아래에서 붉게 번쩍거린다.

한 번 차오른 분노는 쉽게 가시지 않는 듯했다.

십수 명의 마인을 이끄는 그의 정체는 바로 며칠 전 평서란과 대적했던 음혼마왕이었다.

‘멍청한 녀석 같으니!’

며칠이 지났음에도 그 울분이 사라지질 않았다.

비록 무식하긴 했으나, 그래도 마교 내에서 꽤나 오래 알고 지낸 막내였다. 친형제는 아니었으나 형제가 없던 그로서는 아끼는 동생이었다.

한데, 그런 잔지귀왕이 죽임을 당했다.

그것도 한낱 애송이로 보이는 녀석에게!

자신의 눈앞에서 처참히 머리통이 박살이 나며 죽었다.

더 화가 나는 건 그의 최후는커녕, 도망치기에 급급하여 시신마저도 거두어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우릴 알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고작 이립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단 한 명의 애송이에게, 범에게 겁먹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말고 도망쳐야 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잔지귀왕이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죽어야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갑갑한 마음과 분노가 한데 섞여 그의 마음속을 어지럽혀 놓는다.

‘이번 임무만 무사히 마친다면……. 두 연놈의 목부터 취할 것이다. 특히 그 애송이! 네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줄 것이야.’

지금은 시기가 좋지 못했다.

자신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천마의 명령이 내려졌고, 그 명을 수행해야만 했다.

몸을 사려야 할 시기란 뜻이다.

이미 처음에 이끌고 왔던 수의 절반에 이르는 마인을 잃었다.

생각보다 황궁 무인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던 것도 있었다.

게다가 정탐(偵探)이 끝난 지금.

곧 소 교주가 이곳으로 직접 도착할 것이다.

‘소 교주께는 대체 뭐라 말을 드린단 말이냐.’

“후우…….”

착잡한 마음에 한숨을 깊게 내쉰 음혼마왕은 이내 다시 마음을 잡는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천마께서 위험한 임무임을 알면서도 직접 행동에 나서시질 않았더냐? 그분의 명을 따라 쟁취하지 못한다면…….’

천마의 분을 사게 될 터다.

그렇다면 가차 없이 천마에게 버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십대 마왕은 그가 특별히 아껴서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철저하게 힘으로 서열이 정해지는 마교인 만큼, 그들은 그저 자신의 힘으로 기어 올라간 것뿐.

힘을 탐하려 하는 자는 많았고, 그만큼 새로운 힘을 키우고 있는 이는 많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임무는 성공만 한다면 밑바닥까지 추락한 마교에 어마어마한 힘을 실어줄 만큼의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마교가 숨을 죽이며 살아왔던 이유였다.

바로 무황비고(武皇秘庫)의 존재였다.

무황비고란 말 그대로 생전의 무황이 만들어낸 수많은 무공서가 묻혀 있는 곳이었다. 소문으로 퍼져나가던 것을 마교가 오랫동안 혈안이 되어 찾아 헤맨 무황비고가 바로 이곳, 북경에 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연유도 아마 황궁에 가장 근접해 있는 땅이기에 함부로 건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자신들에게 발견이 되었다는 건, 결국 다른 정, 사파 놈들의 귀에도 들어갔다는 것과 같다.

누구보다 먼저, 취해야 한다.

‘그 무공은 결코 버러지만도 못한 정사파 무인 놈들 따위에게 넘겨줘서는 아니 된다. 반드시 우리의 손에 들어와야 해.’

“소 교주께서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곳을 지킨다.”

“예!”

* * *

한편, 그 시각.

광동마문(廣東魔門)이라 불리는 해남파(海南派)의 무인들이 은밀하게 북경의 일대를 쑤시며 헤쳐나가고 있었다.

해남파가 있는 해남성과는 끝과 끝이라 불릴 만큼 멀고도 먼 이곳.

어찌하여 그들이 이 먼 북경에 와 있단 말인가?

그것도 쥐새끼처럼 은신술을 펼치며!

하나, 그 연유는 금방 밝혀졌다.

“……이 부근인가? 무황비고가 있는 곳이.”

낮게 읊조리는 검은 인영의 말에 누군가 빠르게 답했다.

“아무래도 그러한 듯합니다.”

자신들을 제외하고도 다른 흔적들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그만큼, 무황비고가 있는 곳과 가까워졌다는 뜻일 터.

검은 인영의 두 눈이 순간 번쩍 빛났다.

“이번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먼저 찾아야 해. 그래야……. 그래야 우리 해남파가 중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

오랜 그들의 숙원인 중원으로의 출두.

이를 위해선 무황비고가 반드시 필요했다.

단 하나의 목표를 노리는 좋지 않은 조용한 움직임들이 북경으로 몰리고 있었다.

第十四章. 천자의 명

머리 위, 가득 황금빛 물결로 가득 둘러싸인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태화전(太和殿) 내부.

가장 높은 위치에 안착해 있는 의자에는 황금 도포를 몸에 두른 사내가 앉아 있었고 그 아래 파란빛이 감도는 옷을 입은 두 명이 그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근엄한 표정으로 내부의 공기를 짓누르는 황금 도포의 사내는 바로, 명나라 황실의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이.

당대(當代)의 현 황제였다.

“마교인들이 계속해서 북경 부근 일대를 얼씬거린다는 말씀이오?”

“예, 폐하.”

평목단이 그 물음에 답했다.

“음……. 하면 그들을 마냥 지켜볼 수는 없겠군.”

타닥타닥.

황제는 의자의 끝을 손으로 두드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많이 흐르긴 하였군.’

먼 옛날,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세상을 들쑤시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집단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마교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황실에서는 딱히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무림과 황실은 서로 각자 적당한 선을 만들어냈고, 서로의 규율을 지키며 간섭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한데 그러던 와중 마교인들이 조금씩 그 규율을 벗어나 무림인들과의 마찰은 물론이고, 황궁의 백성들까지 난도질하며 날뛰자 보다 못한 황실에서 척결(剔抉)에 나서며 중원 외곽지역으로 내보낸 이교도집단이었다.

그 뒤로 힘을 잃어버린 마교는 한동안 그들은 중원에 발을 들이밀 수 없었다.

그랬던 마교가 또다시 중원, 그것도 황제가 머무는 북경에서 얼씬거린다는 건 황제인 그로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여파로 이번에 하나의 마을이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다 하지 않았던가?

한 나라의 황제로서 백성들의 고통을 이대로 눈감고 강 건너 불 보듯 있을 수는 없는 일.

‘선왕께서 진정한 군주는 하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도 외면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셨지.’

황제는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군대를 편성하시오. 송 군사. 그리고 평 우도독(右都督). 그대들에게 마교 토벌을 명하는 바요.”

“명, 받잡겠습니다. 폐하!”

천자의 명이 떨어졌다.

* * *

무림맹 내부.

“으음. 황제께서 마교 토벌을 명하셨다 하였소이까?”

“그렇습니다. 맹주.”

길게 자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가만히 듣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현 무림맹주, 백능(白能).

새하얀 백발에서 느껴지듯 벌써 그의 나이가 이순(耳順)을 넘어서 종심에 접어들고 있었다.

하나 아직도 그의 정정한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무림맹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지지대임은 틀림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무림의 일을 직접 몸으로 겪으며 보아온 그는, 현명하며 판단이 빠르고 매사에 진중하고 침착했다.

또한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는 그 성격으로, 많은 무림인들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만드는 무림의 큰 어른이었다.

그런 백능의 넓은 미간이 순간 일렁인다.

‘마교가 또다시 준동하고 있다라…….’

그 이름만으로도 지긋지긋한 이들이다.

분명 심상치 않은 일임은 분명했다.

알 수 없는 이 께름칙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아무리 힘을 잃었다고는 하나, 본성이 악한 이들이다.

무슨 일을 벌이든 그들이 세상에 나온 이상 피를 보게 할 터.

‘그래선 안 된다. 힘없는 약한 이들만이 피를 볼 게야.’

어찌 지켜온 중원의 평화이던가?

먼저 나서서 그들의 꼬리를 잘라내야만 한다.

이내 다시 찌푸렸던 인상을 피며, 백능이 말했다.

“황실에서까지 나서는데 우리 무림맹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소? 곧 사람을 편성해 보내도록 하겠소이다.”

‘잘하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되겠구나.’

어차피 마교는 정, 사파를 가리지 않는 만인(萬人)의 공통된 적이다.

게다가 아무리 무림맹이라고 해도 황권까지 강해진 당금, 황제에게 잘 보일 필요도 어느 정도 있었기에 무림맹은 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그리 알고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황실에서 보내온 사신이 돌아가자, 백능은 곧바로 무림맹의 총군사인 제갈염(諸葛廉)을 불렀다.

똑똑.

“부르셨습니까? 맹주님.”

부드러운 인상에, 적당한 체구를 지닌 그는 무림맹에서도 높게 쳐주는 머리를 지닌 이다. 비록 가진 무위는 다른 장로들에 비해 낮았으나, 무림맹의 모든 힘은 그로부터 시작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략(政略)과 임기응변(臨機應變)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백능은 그런 그를 향한 신임(信任)이 매우 두터웠다.

이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앉은 제갈염을 향해 백능이 거두절미하며 물었다.

“군사는 어찌 생각하는가?”

“무얼 말씀이십니까?”

그에게로부터 반문(反問)이 들려오자, 백능이 껄껄 웃으며 다시 한번 묻는다.

“허허. 오늘따라 자네답지 않구먼. 무엇을 묻는 것인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누구보다 많은 귀를 가진 자네가 아닌가. 마교가 난데없이 북경에 나타났네. 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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