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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69화 (69/275)

제69화

일전의 그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무위를 선보였다.

평서란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가 죽인 잔지괴왕은 십대 마왕 중에서도 가장 말단에 속하였다곤 하나, 그 위력은 평서란 또한 부딪혀봤기에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데, 그런 적을 이렇게 쉽게 제압할 줄이야!

풍기는 분위기도, 무위도.

더는 예전의 송운이 아니었다.

폐관수련에 들어간 지 벌써 꽤나 시간이 흐른 지금.

갑작스레 나타난 그의 모습에 그녀는 그가 드디어 깨달음을 얻고 앞으로 한 번 더 전진했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해지셨군요.”

“내 분명, 떠나기 전 그리 약조하지 않았소? 강해져서 오겠다고.”

평서란과 송운의 눈이 마주쳤다.

* * *

그들이 싸우고 난 후, 멀쩡했던 대지는 모두 초토화가 되었다.

그만큼 대전이 치열했다는 흔적이기도 했다.

게다가 목숨을 잃거나 다친 이도 꽤 있었다.

속이 꽤나 쓰리긴 했으나, 비록 일부지만 마교를 상대로 이 정도라면 그대로 잘 버틴 축에 속했다.

그 대가로 적의 머리 하나를 잘라내지 않았던가?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뒷마무리 좀 부탁드릴게요.”

뒤를 맡긴 평서란이 송운에게로 향했다. 빤히 바라보고 있자 송운이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크흠. 산책이나 할 겸 좀 걷는 게 어떻겠소?”

“좋지요. 따라오세요.”

평서란이 이끄는 대로 가자 객잔이 보였다.

정세객잔(靜世客棧).

일전에 익히 송운도 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둘이 이야길 나누기엔 이곳도 나쁘진 않지.’

집에서도 꽤나 거리가 있는 이곳은, 사람이 많아 시끌벅적한 북경 내에서도 이름처럼 유난히 조용한 곳이었다.

“회포는 나중에 풀도록 하지. 라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살짝 장난기를 머금은 미소로 자신의 말투 그대로 따라 하는 평서란이 예뻐 보였는지, 송운의 얼굴에도 미소가 일었다.

“하하. 내가 그리 말했었소? 음. 좋소. 궁금한 게 무엇이오?”

송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평서란이 물어왔다.

“어떻게 그곳까지 알고 오신 거예요?”

“사실은……. 폐관수련을 깨고 나온 것은 어제였소.”

“그럼 왜 진작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흠. 그러하던 차에, 그대와 평 의숙부께서 모두 집에 없는 걸 알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어머니께 들었소. 하여 그대를 찾아 나선 것이지.”

“아…….”

그의 말에 수긍을 하고 있던 평서란의 귓가에 송운의 달콤한 한마디가 울려 퍼졌다.

“보고 싶었소.”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어버린 평서란을 향해 송운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 와중에도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더군. 하나 깨달음을 얻었다고만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닌지라, 시간이 조금 더 걸리었소. 늦어서 미안하오.”

이전에 비해 송운이 는 건 실력만이 아니었다.

두근두근.

얼굴에 기왓장을 수십 개는 깔아둔 것인지, 평서란의 마음을 쿵쾅거리게 만들 만큼 부끄러운 말도 서슴없이 날려 온 것이다.

그에 말없이 얼굴을 붉히며 따라놓은 술잔만 만지작거리는 평서란의 모습에 송운은 조금 양심에 찔리는 게 느껴졌다.

반은 맞았으나, 반은 다른 마음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학문뿐만이 아니라 병법에도 능한 송악이다.

‘그런 아버지께서 직접 마왕 추격전에 지휘를 맡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뛰어온 것도 있지만……. 뭐 이러면 어떠하고 저러면 어떠한가? 평 소저가 보고 싶어서 달려온 것도 있으니……. 좋은 게 좋은 게지. 허허.’

하나 스스로 내뱉고도 조금 민망했는지, 아니면 들이켠 술로 인해 발개진 것인지 모르게 송운의 얼굴도 새빨갛게 변했다.

그렇게 둘 사이의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고, 밤 또한 함께 저물고 있었다.

* * *

평서란과의 단둘이 시간을 보낸 후 집까지 배웅해준 송운은 오랜만에 돌아온 방 침상에 드러누웠다.

익숙한 방안의 풍경은 송운으로 하여금 안락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대체 얼마 만에 누워보는 침상이더냐?’

그 푹신함은 폐관수련장의 차가운 땅바닥에서 몸을 누이고 잤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평안했고, 포근했다.

‘이젠 역시 땅바닥에 그냥 드러누워 잠을 자기엔 너무 뻐근하단 말이지.’

송운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은은한 달빛에 몸을 맡겼다.

살짝 달아오른 취기에 달빛까지 그를 감싸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런 그의 행복함을 깨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마교의 존재였다.

‘흑야도 흑야이나, 마교도 그만큼이나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집단이다. 황궁도 무림도 그 어느 쪽도 그들과 적대관계에 있다. 한데 이리 갑작스럽게 흑야도 아니고 마교의 마왕들이 겁도 없이 북경 근처에서 멋대로 날뛰고 있다라…….’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마교대전을 준비하고 있을 그들에게 있어서 지금은 전력을 아껴야 할 시기일 터.

하여 평가라면 자세한 부분까지는 모르더라도 뭔가 알까 싶어 평서란에게 물어보았으나, 그녀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북경까지 들어와야 할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천마가 미치지 않고서야 직속 수하인 마왕들을 한 명도 아닌 두 명씩이나 북경에 보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전생에는 없었던 일이라 짐작하는 것마저도 불가하다. 이제부터는 정말 예측불허(豫測不許)의 상황인 것이다.

스스로 알아내고, 겪어나가야 한다.

송운의 마음속 깊숙이 답답함이 차올랐다.

폐관 수련을 깨고 나오자마자 세상이 시끄럽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더 큰 난제를 쥐여주며 떠민다.

‘흑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골칫덩이라 여겼건만……. 후우. 나보고 신이라도 되는 거요? 너무 어려운 관문(關門)만을 던져주는군.’

송운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요한 밤하늘을 향해 물었다.

하나 당연하게도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송운은 복잡한 생각들을 뒤로한 채,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第十二章. 가족의 품

다음 날 새벽.

늘 일어나던 시간에 눈이 떠진 송운은 창문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동이 터오는 빛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집으로 돌아왔음을 떠올리고선 몸을 일으켰다.

‘허허, 이젠 횃불에 몸을 의지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러곤 곧 어제 들었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마 가장 널 목 빠지게 기다린 건 하야일 듯싶다. 네가 폐관 수련에 들어간 이후에도 끊임없이 홀로 새벽에 수련을 하더구나. 후후.”

송운은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작은 함을 꺼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떠나기 전 송하와 했던 약조를 잊지 않고 그녀를 위해 당과를 사 온 것이다.

아직 그가 돌아왔음을 아는 이는 예령과 송악뿐이었다. 그나마도 송악은 이번에 있었던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기에 궁에서 밤을 새우고 온다 하였으니 자신의 복귀 사실을 알려 줘야 할 사람은 단둘뿐이었다.

‘그렇다면…….’

함을 품에 챙긴 송운은 방을 나섰다.

송운이 발걸음을 내디딘 곳은 집 안 내에 딸려 있는 수련장이었다.

평목단이 특별히 송운과 송하, 송후까지 모두 고려해서 수련장까지 딸린 집으로 구한 덕분에 예전처럼 뒷마당을 쓰지 않아도 된 것이다.

“합!”

부웅-

수련장에 거의 다 와 가자 누군가 기합을 넣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목검이 휘둘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확인해 볼 필요도 없이 송하였다.

‘허허. 녀석, 어머님 말씀 그대로구나.’

수련에 푹 빠져있어서인지, 아니면 송운이 몰래 놀래 주려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다가간 탓인지 송하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송후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요즘 학문에 더욱 빠졌다더니……. 새벽 수련은 하야 혼자 하는 건가?’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하고 학문에 흥미가 많은 아이였으니, 별로 이상할 건 전혀 없었다.

송운은 송하의 뒤에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를 놀래 주려는 순간.

“오빠!”

송하가 먼저 알아채고 몸을 틀어버린 것이다.

‘어이쿠. 되레 내가 놀라게 된 꼴인가?’

“하하. 그래. 오랜만이구나. 하야.”

송운의 부드러운 미소에 송하가 그의 품에 쏙 안겼다.

“오빠, 보고 싶었어.”

품으로 파고든 송하의 키가 지난번 폐관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보았던 때보다 조금 더 자라있었다.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없었으나, 조금의 변화도 없는 건 아닌 듯했다.

‘하기야 한창 자라날 나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가?’

송운은 그런 그녀를 향해 품에 넣어둔 함을 꺼냈다.

“받거라. 선물이다.”

이게 무엇이냐는 듯 멀뚱히 쳐다보던 송하는 그제야 그때 송운이 했던 약속이 떠올랐는지 신이 나서 열어보았다.

“와아! 오빠 정말 사 왔네? 까먹었을 줄 알았는데. 헤헤.”

어릴 적부터 유독 당과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송하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송운의 마음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당연히 사와야 하지 않겠느냐? 하야와 오빠의 약속이니 말이다. 한데, 후야가 보이질 않는구나.”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고, 송하는 입에 한가득 당과를 문 채 오물거리며 답해왔다.

“우웅, 후야 오빠 요즘 바빠. 북경 애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던가? 그래서 새벽은 계속 공부하다가 학관에 다녀온 저녁에서야 나랑 대련해주는걸? 그것도 가끔이지만…….”

송운도 그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딜 가나 존재하는 텃새도 있을 터니.’

게다가 북경은 천자가 계시는 한 나라의 수도다.

더욱 뛰어난 실력을 지닌 명문가의 자제들이 넘쳐나는 건 당연한 일.

송후의 성격상 뒤처지는 걸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진 않았을 터.

송운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었기에 그를 이해했다.

“아! 그럼 오늘부턴 운이 오빠가 내 대련 상대 해주는 거야?”

그동안 홀로 하는 수련이 지루했는지 송하는 몹시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그래. 그리하도록 하자꾸나.”

그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송하가 잠시 내려두었던 목검을 냉큼 집어 들었다.

“하압!”

급작스레 달려든 송하는 그동안의 수련 결과를 한 번에 다 풀어내겠다는 듯 손속에 자비가(?) 없었다.

후웅-!

‘호오. 제법 많이 성장하였구나.’

송운이 송하의 수련을 직접 봐주지 못한 게 벌써 시간이 꽤나 흐른 당금이다. 그런 송하의 움직임은 자세는 물론이요, 더욱 경쾌하게 리듬을 타며 속도도 빨라졌다.

게다가 몸 안에서 흐르는 기들 또한 정갈하니, 그녀와 잘 동화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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