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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67화 (67/275)

제67화

하나, 놀랍게도 그게 제일 멀쩡한 상태였다.

붉은 피로 대지를 적신 그 중심에는 대다수 내장이 꺼내진 채로 사지가 잘려 있고, 눈이 뽑혀 나간 채 죽어 있었다. 그 뒤로는 주인을 잃어버린 가축들조차 뼛조각만을 남긴 채 사방팔방 널려 있다.

그 위로 널린 시체들을 까마귀들이 잔뜩 몰려들고 있어 그 기괴함을 더했다.

“우웨엑-!”

그 처참한 광경에 비위가 약한 몇 명이 헛구역질을 해댔다.

‘……이미 놓친 건가.’

꽈악.

평서란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가 턱을 타고 흘러내렸으나, 그런 건 그녀에게 아랑곳하지 않아 보였다.

‘빠르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정보가 잘못되었다.

이 마을과 소식이 들려온 장소는 꽤나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하여 그 발걸음이 더욱 늦어진 것이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평서란은 처참한 광경에 알 수 없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고 올랐으나, 이성을 잃어선 안 되었다.

분노는 이성을 잃게 만들고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지금 무리를 이끌고 있는 건 자신이다.

머리가 무너지면 그 몸은 유지를 할 수 없게 된다.

우선은 그들을 찾아내는 것이 먼저다.

평서란은 속으로 깊은 심호흡을 내뱉었다.

“후우…….”

‘강해.’

적은 무려 마교 내에서도 강하다고 칭송받는 십대 마왕 중 한 명이다. 극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초절정고수와 맞먹는, 아니 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을 터.

게다가 마인들은 똑같은 고수더라도 그들 특유의 무공 때문에 급이 다르다.

결코 쉽게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움직임이 잽싼 데다 엄청난 무공까지 가진 적이다. 모든 무위를 쏟아내야만 간신히 이겨볼 수 있을 것이다.

꿀꺽.

긴장감이 그녀의 온몸을 타고 돌았다.

‘이길 수 있을까?’

얼마 전, 송운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평서란 역시 깨달음을 얻어 그동안 막혀 있던 벽을 깨부수고 한 단계 더 앞으로 진전했다. 그랬기에 평목단이 그녀를 믿고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부족해.’

그 역시 대단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것만으론 무언가 부족한 감이 컸다.

하나, 이겨야 한다.

이길 수 없는 상황도 이길 수 있도록 해야만 했다.

평서란의 복잡한 머릿속에서 문득 송운이 떠올랐다.

‘그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니 차라리 지금 송 소협이 곁에 있어 줬더라면…….’

송운의 부드러운 미소와 잔잔한 목소리, 그 커다란 품이 오늘따라 너무도 그리웠다.

보고 싶었다.

폐관수련에 들어가기 전 했던 입맞춤의 달콤함이 잊히지 않는다.

휙휙.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하나 이내 고개를 내저은 평서란은 추적조를 향해 외쳤다.

“우선 시신부터 거둔 후, 철수합니다.”

그러곤 또 한 명에게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쳤다.

‘어서 돌아와요. 내가 있는 이곳으로…….’

* * *

평서란은 시신을 모두 수습한 뒤, 곧장 추적조와 함께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서남쪽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췄어요. 그동안 추적해본 결과 그들의 이동 경로는 조만간 조금 더 위쪽인 서쪽으로 움직일 것 같아요.”

“으음……. 그렇구나.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구나. 고생했다, 서란아. 악이 자네의 의견은 어떠한가?”

평목단은 뒤에서 듣고만 있던 송악을 향해 물었다.

이번 작전의 주요 군사(軍師)의 직책을 맡은 송악이기에, 그의 의견도 분명 중요했다.

“아무래도 몇 주야간 추적한 본인들이 가장 잘 아는 법이지. 그렇게까지 머리가 좋은 놈은 아니니 동선은 아마 서란이의 말대로일 것이네. 그곳으로 병력을 움직이도록 하지.”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마인 토벌이 시작된 것이다.

第十一章. 송운의 재출두

높고 푸르른 가을 하늘 아래.

소오태산(小五台山)의 낮고 널따란 산자락에 좁은 거리를 서로 뒤에 둔 채, 수십 명의 마인과 황궁의 무인들이 마주쳤다.

갑자기 들이닥친 황궁 무인들로 인해, 마인들이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는지 서로 농까지 주고받으며 웃기 시작한다.

잔지괴왕의 큰 목소리가 멀리 울려 퍼져나갔다.

“크하하하! 고작 저런 애송이 놈들로 나 잔지괴왕 님의 길을 막고자 하는 것이냐?”

“그러게 말입니다. 이것은 잔지괴왕 님을 너무 우습게 본 것 아니겠습니까?”

“뭐라? 날 우습게 봐?!”

쾅!

순간 자신의 왼쪽에 서 있던 수하가 한 말을 듣더니 그 말 한마디에 열이 뻗쳐올랐는지 잔지괴왕이 잔뜩 콧김을 내뿜으며 그 거대한 발을 땅을 향해 내리찍었다. 그러자 그 주변의 땅은 말할 것도 없이 가라앉았고 그 여파로 흙먼지가 자욱하니 일어났다.

‘저놈이 잔지괴왕…….’

평서란도 익히 말로만 들어왔던 놈을 보니 입이 떡 벌어질 법했다.

그 외관은 잔혹한 손속만큼이나 괴상하게 생긴 놈이었다. 새파란 피부에 거대한 몸집은 마치 한 마리의 짐승과도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놈의 눈이 커다래진다.

“응? 한데 저 앞에 저거. 내 눈이 X신이 아니라면, 저 앞에 서 있는 건 계집년이 아니냐?”

잔지괴왕의 부릅뜬 눈이 이제야 그녀를 발견했는지 잔뜩 표정이 찌푸려진 채로 삿대질을 해가며 물어왔고, 그 어투는 상당히 평서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네놈의 사지. 곧 내 손으로 갈가리 찢어 발겨주마.”

조용히 말을 읊조린 순간 평서란의 눈빛이 강렬히 빛나면서 허리춤에 메고 있던 검파에 손을 가져갔고, 길고 가느다란 검을 뽑아 들었다.

채앵-!

그리고 그 검 끝이 높은 하늘을 찌를 듯 번쩍 들어 올려지자, 그것이 신호였는지 황궁 무인들이 앞을 향해 달려 나간다.

“모두 싸워라!”

“와아아!”

채채챙-!

곧 수많은 쇳덩어리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마인, 황궁 무인 할 것 없이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좁은 곳에 섞여 들어간 이들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가장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간 평서란은 다른 마인들을 제치고 잔지괴왕의 앞에 멈춰 섰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우스워 보였는지 그 커다란 입을 벌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 입술 사이로 보이는 누런 이는 보는 이로 더욱 혐오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흐으음. 참으로 가소로운 계집년이로구나. 어찌 그런 호리호리한 몸으로 이 몸을 상대하겠다고 나선 것이냐? 크큭.”

‘흥분하지 말자. 괜스레 기 싸움으로 기운을 빼려는 수작이다.’

평서란은 호흡을 크게 들이마신 후, 그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상대적으로 거대한 적에 비해 그녀의 키는 작았으나, 결코 그 기세만큼은 뒤지지 않았다.

“사내놈이 말이 많구나. 시끄럽고 어서 무기를 뽑거라.”

잔지괴왕은 스스로 호흡하며 마음을 다스리던 그녀와 달리 자그마한 도발에도 쉽게 흥분했는지 씩씩거리며 그 짙고 굵은 눈썹이 위아래로 꿈틀거린다.

‘성질머리도 더럽군.’

“감히 나 잔지괴왕을 농락하려 들어? 곱게 생겨 내 특별히 아껴주려 했건만, 내 곧 네년의 혓바닥을 뽑고 짓밟아 노리개로 써주마. 오너라!”

꽈악.

평서란의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내 놈의 거대한 대검이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쐐애액-!

‘어딜!’

곧이곧대로 맞아 줄 평서란이 아니었다.

첫 일격을 재빠르게 벗어난 그녀는 이내 몸을 공중에 붕 띄운 상태로 허리를 비틀며 힘을 실어 검을 내뻗었다.

카앙-!

둔탁한 쇳덩어리의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서 제자리에서 조금 물러난 잔지괴왕과는 달리, 평서란이 뒤로 밀려났다.

‘큿, 역시 힘에선 내가 더 밀리는 건가?’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무게가 가벼운 그녀는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무게를 싣기보다는 빠름으로 승부수를 띄우려 노력했다.

하나, 눈앞의 상대는 자신의 그런 단점까지 모두 봐주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었다.

과연 무림에 소문난 이름답게, 무위가 지금껏 만나온 상대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평서란은 재빨리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는 빠르게 매의 눈으로 상대의 빈틈을 노린다.

‘적어도 힘으로 대적할 상대는 아니야. 뭔가…… 확실하게 파고들 약점이 필요해.’

그 와중에 뒤를 돌아보면서 황궁 무인들을 확인한 그녀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마두들의 무공이 조금 더 우월하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황궁의 무인들에게는 진법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이들이다.

그를 송악이 짜준 그대로 이용해 밀리지 않고 잘 막아 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뭉쳐 있는 그들은 더욱 강했고, 지금처럼만 나아간다면, 어쩌면 뒤쪽의 싸움은 그다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터다.

그렇다면.

‘내가 잔지괴왕만 잘 막는다면…… 승산이 있다.’

그 순간, 잠시 다른 생각에 빠졌던 평서란의 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두 번 모두 나가떨어지자 곧 그녀를 만만히 여겼는지 검 날에 혀를 날름거리며 잔지괴왕이 점점 평서란과의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흐흐. 고작 두 번 만에 나가떨어지기라도 한 거냐? 처음의 그 기세는 모두 어디에 팔아먹은 것이야? 그러는 와중에도 여유가 있구나. 네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때, 평서란의 눈에 놈의 옆구리가 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검을 비틀며 파고들었다.

‘지금이다!’

“하압!”

슥-

‘서, 성공인가?’

조금 느린 반응 덕에 어느 정도 성공하는 듯해 보였으나, 오산이었다. 옷깃만을 스치면서 되레 적에게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장난은 여기까지다.”

끼기기긱-!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엄청난 괴력과 내력이 실린 대검이 그녀를 향해 덮쳐왔고 검을 틀어 맞부딪힌 결과, 당장의 피해는 입지 않았으나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으득.

‘버티면 내가 진다. 빠져나가야 해.’

카가각!

순간적으로 검을 위로 비스듬히 밀쳐내면서 공중으로 뛴 그녀가 가까스로 빠져나오자 잔지괴왕의 눈빛이 변했다.

“이, 이년이!?”

설마하니 그 힘을 이겨내고 빠져나오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탓이었다.

‘단 한 번도 내 괴력을 피한 자는 없었거늘!’

그러한 것을 한낱 계집이,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 나이에 피해냈다.

으득.

잔지괴왕의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자긍심에 금이 가고 있었다.

“후우, 후우…….”

한편 평서란은 놈에게서 간신히 이 장(丈) 정도의 거리를 벌리고 나서야 깊은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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