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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66화 (66/275)

제66화

황제의 최측근으로 들어간 송악은 평목단의 여러 가지 업무를 돕기로 했고, 그렇게 들어간 것이 여름이 오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정신없이 일해 온 것이다.

덕분에 황궁의 일에 적응하는 속도는 매우 빨랐지만, 심신이 조금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여전하더군. 황실이란 곳은.”

황제의 부름을 받았기에,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곳이지만 여전히 이곳은 권력의 폭풍 속이었다.

지금은 그나마 황권이 완벽히 안정되면서 자릴 잡아 예전만큼은 못하였으나, 서로를 물어뜯고 밟아 오르려는 이들은 그대로 존재했다.

이를 보기 싫어하는 송악은 몇십 주야 동안 누구보다 가장 먼저 입실했고, 누구보다 가장 늦게 퇴실했다.

이 소식을 들은 현 황제의 배려 덕분에 평목단이 일을 보는 곳에서 조용히 일 처리를 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것도 딱 그뿐이었다. 그나마 오랜 친우인 평목단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터다.

황실에 드나드는 이상 다른 신료(臣僚)들을 완벽하게 마주치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온갖 아양 딸린 말과 뒷이야기, 다양한 술자리들까지.

송악은 그 모습들에 진저리가 났는지 또다시 머리가 띵해져 왔다.

‘그나마 윤허(允許)해 주시니 다행이구나.’

해서 정신없이 달려온 탓도 있고, 몸이 조금 허해짐을 느낀 송악은 황제께 휴가를 조금 달라 상서(上書)를 올렸고, 그를 윤허 받아 이리 잠시나마 휴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조금이라도 덜 마주칠 수 있으니 말이에요. 처음으로 받은 휴가이니, 오늘은 푹 쉬다 가세요.”

“그보다, 요즘 후야와 하야는 어찌 지내오?”

“후야는 학문에 심취해 정신이 없어요. 후후. 하야는 북경 구경이 이젠 시들해졌는지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무공 연마한다고 가가보다 더 얼굴을 보기 힘들 지경이구요.”

“다행이구려. 어쨌든 자라온 곳에서 벗어나 다른 환경에 빨리 적응 하는 것 같으니 말이오.”

“아직은 어린아이들이 아닙니까? 어른보다 더 빠른 적응력을 지닌 것이 아이들이지요.”

태어나서 줄곧 평여현에서 자라온 아이들이다.

적응하고 있다는 말이 그를 안심시킨다.

이내 말을 마친 송악의 시선이 송운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운이 녀석은 잘 지낼지 궁금하구려.”

“말 그대로 폐관수련에 들어갔으니……. 소식을 따로 보내올 수는 없겠죠. 그래도 잘하고 있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요?”

“잘 알다시피, 그 아이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오. 다만…….”

아들이 보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녀도 그와 같은 마음이었기에 예령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곧, 씩씩하게 잘 다녀왔다며 인사할 날이 오지 않겠어요? 운이는 너무 걱정 마시고 가가의 몸 건강 상태부터 챙기시도록 해요. 예전보다 너무 잠이 줄어드셔서 걱정입니다.”

걱정이 가득 배인 예령의 목소리에 송악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야겠소. 좀 쉬어야겠구려. 내일부터는 또다시 황궁에 나가야 할 터니.”

* * *

“하앗!”

부웅.

하늘거리는 검푸른 무복을 휘날리며 개인 수련장에서 열심히 무공 수련에 전념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 여인은, 평서란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수련했는지 그녀의 고운 미간 사이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턱선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거슬렸는지 소매로 땀을 닦아내던 평서란은 높은 하늘을 향바라보았다.

송운이 폐관수련에 들어간 후, 다행스럽게도 흑야의 출몰은 없었다. 그렇게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계절은 여름밖에 되지 않았다.

점점 강도를 높여가는 수련에 하늘 높이 뜬 뜨거운 여름 햇살은 밤낮없이 수련하는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당금, 그런 그녀를 버티게 하는 힘은 오로지 하나.

송운이 바로 곁에 있음이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은 그나마 그녀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고,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을 송운의 생각에 더더욱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슬며시 걸린다.

‘그에게 뒤처질 수는 없지.’

점점 더 그녀의 손이 빨라지고 그로 인해 덩달아 검 또한 신이 나서 춤을 춘다.

쌔애액!

휘잉.

또 한 번,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그녀의 손짓에 주변엔 바람이 인다. 그로 인해 푸르른 무성함을 자랑하던 나무가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어지는 고요한 평화로움 속에서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 * *

잔잔히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덧 그 뜨겁던 여름도 끝나갈 무렵. 한동안 잠잠하던 북경 주변에 백성들 사이로 흉흉한 소문이 감돌기 시작했다.

“자네 요즘 장사는 잘되어가나?”

“잘 되긴! 예끼 이 사람아. 누굴 지금 놀리는가? 요즘 들리는 소문 못 들었는가? 이리 귀가 어두워서야……. 쯧. 무시무시한 마왕이라 불리는 마귀가 판을 치고 다닌다는 말, 말일세. 그 때문에 요즘 북경으로 들어오는 물자가 줄었단 말이네. 상단을 꾸려 들어와야 하는데 들어올 수가 없으니……. 굶어 죽을 판일세. 끄응.”

“무…… 무, 머시기란 곳에서 쫓고 있다고 하던데?”

“혹, 무림맹(武林盟)말인가? 날고 긴다 하는 무림인들 머리? 쳇, 그놈들이 잡았으면 진즉 잡았겠지! 그들조차도 그 위력에 아직까지 잡지 못하고 전전긍긍(戰戰兢兢)한다 하더구먼.”

“곧 천자께서도 무언가 조치를 취하시지 않겠는가? 아무튼 몸조심하세. 그 마귀들은 사악한 술수까지 쓴다고 하던데…….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나갈지 누가 아는가? 결국 손해를 보고 목숨을 잃는 건 우리같이 힘없는 자들이니. 허.”

가장 최약체인 만큼, 소문에 민감한 그들이었기에 알게 모르게 퍼진 괴소문은 빠르게 북경 전체로 퍼져나갔고, 그 소문을 접한 사람들은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 * *

“좀 늦었네. 무슨 일인가?”

한 상서를 보며 평소와는 달리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평목단이 송악을 맞이했다.

“무엇이기에 자네가 그리도 심각하게 보고 있는가? 큰일이라도 터진 것인가?”

“음, 정확하게 짚었네.”

평목단은 턱을 쓸어내리며 자신이 보던 상서를 송악에게 넘겼다.

글을 읽어나가던 송악의 눈에도 곧 당황스러움이 어렸다.

“이건……?”

“자네가 본 그대로일세. 좋지 않은 소식이야. 그동안 잠자코 있나 했더니, 마교가 한바탕 날뛰려는 모양일세.”

“으음…….”

그 상서에는 최근 무림맹이 쫓고 있던 마교의 십대 마왕 중 한 명인 잔지괴왕(殘肢怪王)이 모습을 드러내 그 아래 마두들을 이끌고 사방팔방 날뛰고 있다는 소문이 담겨있었다.

“마교라면…….”

송악의 표정이 일순간 구겨졌다.

그 또한 그들이 어떠한 자인지는 잘은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결코 해가 되면 해가 되었지, 득이 될 놈들이 아니었다.

“사악한 괴물들이지. 사람을 죽이는 걸 망설이지 않고 오히려 그걸 가지고 서로 얼마나 잔인하게 죽였는지 내기를 할 만큼 간악(奸惡)한 무리일세. 놈들은 무림뿐만 아니라 황궁과도 역시 오래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지.”

“……확실히 좋지 못한 소식임은 분명하군.”

“맞네. 마교를 직접 토벌하라는 황명이 떨어졌네.”

“서둘러 관군을 편성(編成)해야겠군.”

평목단의 말 대로였다.

적어도 무림인들은 일반인들에게까진 되도록 손을 뻗지 않는다. 그것이 무림계에서 오래도록 지켜 져온 규율(規律)이었다.

한데, 놈들은 아니다.

마교인들이 지나간 자리는 가축이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쑥대밭이 될 터다.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나서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황궁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었다.

* * *

똑똑.

“아버지, 저 서란 입니다. 무슨 일이세요?”

평서란은 수련을 하던 도중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그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평소에도 가끔 부르곤 하였기에 별 이상함 없이 찾아왔다.

한데, 분위기가 제법 심상치 않다.

“아, 송 의숙부님도 계셨네요.”

고갤 숙이며 인사를 한 평서란이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평목단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서란아, 네가 좀 도와줄 일이 생겼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나요?”

“이번에 황궁에서 맡은 사건이 하나 있다. 해서…… 추적 조장의 자리를 네가 맡아주었으면 한다. 너만 한 인재를 찾기가 어렵더구나. 해줄 수 있겠느냐?”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뒷받침을 해 준 것은 송악이었다.

“북경에 마교 측 인물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입수되었다. 마교의 인물인 잔지괴왕과 그 밑을 따르는 마두들을 추적해야 하는데 네가 추적조의 선두에 서주었으면 하는구나.”

평서란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일었다.

잔지괴왕!

무인으로서 어찌 그 별호를 모를까?

그 별호에서부터 드러나듯 십대 마왕 중에서도 유독 손속이 잔인하기로 유명한 마인이다. 거기다 살인을 하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가족이 보는 앞에서 여인을 간음했고, 사지를 잘라가며 죽어가는 모습을 즐겨본다고 한다.

그런 잔악한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니?

“놈이 향하는 위치만 찾아내면 그 뒤는 우리가 봐주도록 하마. 부탁한다.”

“네. 그럼, 찾는 대로 다시 찾아올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평서란의 입가가 살짝 메말라 왔다.

* * *

북경, 서남쪽에 위치한 곳.

총 열 명으로 구성된 추적조가 조심스럽게 무언가 흔적을 쫓고 있었다. 최근 이 부근에서 마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빠르게 달려온 것이다.

그들이 지나갔다는 흔적조차도 거의 존재하지 않아 상당히 애를 먹어야 했다.

몇 시진을 찾아 헤맸을까?

그들 중 한 명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평 부장님. 이쪽입니다.”

휘잉.

그와 동시에 강한 혈향이 바람을 타고 멀리서부터 그들의 코끝을 자극한다.

더불어 그 특유의 진득하고 더러운 느낌의 마기가 그녀의 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혈향을 따라 도착한 곳은 한 마을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처참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미 마을은 초토화된 상태.

옷이 찢겨 발긴 채로 죽어있는 여인들부터,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목이 잘려 나간 시체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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