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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65화 (65/275)

제65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송후와 송하, 평목단과 평서란까지.

“조심히 다녀오거라. 그동안 집안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넌 수련에만 집중하면 된다. 알겠느냐?”

“아버지…….”

그리고 뒤에 서 있던 예령이 말없이 다가와 그를 안아주었다.

“잘 다녀오렴. 언제든, 우리가 곁에서 널 응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다오.”

진심이 가득한 어머니의 품은, 나이를 먹었음에도 매우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 느낌은 마치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송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언제 돌아오는 거야?”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고 있었으나, 말똥히 자신을 바라보는 송하의 그 커다란 눈망울에는 슬쩍 눈물이 고여 있다.

그런 동생이 이제는 제법 커버린 탓에 예전처럼 번쩍 안아 들지는 못했으나, 고갤 숙여 그녀의 눈높이에 맞추며 머릴 쓰다듬어주었다.

“아직은 확실하게 대답을 해 줄 수가 없구나. 하나,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마.”

“약속한 거야?”

“그래그래. 그러니 그동안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둘째 오빠 말씀 잘 듣고 있어야 한다. 올 때 맛있는 당과를 사 오마.”

그런 송운의 말에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는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펴자 그 뒤에 서 있던 송후가 보였다.

“후야. 형이 없는 동안 집안을 잘 부탁한다.”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형님.”

송후는 더 이상 자신의 한마디 말에도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던, 어릴 때의 그 아이가 아니었다.

자신만큼은 아니더라도 훌쩍 자란 키에 듬직한 어깨를 보니,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잘 자라주어 고맙구나.’

송운은 그렇게 가족들과의 작별 인사가 끝난 후, 평목단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평 의숙부님.”

단 한마디만 꺼냈을 뿐이었지만, 더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돌아왔을 땐, 스스로의 벽을 깨부수고 새로운 하늘을 향해 힘찬 날갯짓을 하는 네 모습을 보고 싶구나. 너라면 잘 해낼 게다.”

어깨를 툭툭 쳐주며 자연스럽게 옆으로 물러난 그의 옆에는 평서란이 서 있었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다녀오세요.”

“그럼, 돌아올 때까지 모두 몸 건강히 계세요. 다녀오겠습니다.”

힘차게 외친 송운은 송악과 예령이 있는 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나서야 뒤돌아섰다.

새로운 도약의 첫걸음이었다.

* * *

송운은 곧바로 평가 안쪽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폐관수련장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엄격히 그 출입이 제한되는 곳으로 일전에 평가에서 머물 때에도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은밀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 송운이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건 평목단이 그의 얘기를 듣고 흔쾌히 허락해준 덕이었다.

며칠 전.

“마땅히 갈 곳은 있는 게냐?”

“있는 건 아니고……. 며칠간 갈 만한 장소를 찾아보려 합니다.”

그의 말을 들은 평목단이 턱을 쓰다듬더니, 먼저 말을 꺼내었다.

“흐음, 그렇다면 우리 집안의 폐관수련장을 쓰도록 하거라.”

“집안에 그런 곳이 있었습니까?”

“그럼, 무관의 집안에 그 정도의 것도 없겠느냐? 본디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면 내주지 않는 것이나, 내 미래의 사위이니 못 내줄 건 또 무에 있겠느냐? 으하하!”

처음엔 그 이야길 듣고 놀랐으나, 그의 말대로 무가의 집안이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되니 더욱 좋구나.’

비록 세상과 단절하며 지낼 터지만, 가족과 거리가 매우 가깝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한층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었다.

구구궁.

송운은 설치된 진법으로 인해 스스로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는 문을 보며 굳은 의지를 불태웠다.

‘이 문을 나갈 땐 반드시 지금보다 더 강해져서 나가야 한다.’

송운의 두 눈이 강한 의지로 번뜩였다.

* * *

화르륵!

“후우.”

송운은 조금씩 그 빛을 잃어가는 등불에 또다시 기름을 채웠다.

폐관수련장 내부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는 구조였기에, 그 흔한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다.

해서 등불을 켜야지만 주변의 모습이 온전히 그의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굳이 세지 않는 이상 밤과 낮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알지 못하는 곳이 바로 이 안이었다.

‘대략 칠 주야 정도 흘렀나?’

본격적으로 폐관수련을 시작한 송운은 하루하루를 전부 천의선천기공과

질풍신공에 투자했으나 자신의 마음만큼 쉽사리 벽을 내어주려 하지 않았다.

송운은 다시 마음을 잡고 기수식을 취했고, 이내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그만의 세상이 펼쳐진다.

“타핫!”

송운의 기합 소리가 수련장 내부의 가장 끝 지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며 퍼진다.

하나, 그 소리가 미처 돌아오기도 전에 없던 것에서 송운으로 인해 생겨난 점들은 곧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고 그의 몸짓과 의지에 따라 허공을 갈랐다가도 다시 합쳐나가며 빠르게 발을 내뻗는다.

‘무에서 유. 그리고 새로운 유.’

그러곤 또다시 이어지는 검을 놀리는 듯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날아올랐다가 때로는 느리게 공기를 짓누르며 새로운 유성을 하나 그려낸다.

‘무거우나 무겁지 않은.’

그러한 동작을 몇 번을 반복했을까?

온몸에 땀으로 범벅을 할 만큼, 질풍신공을 펼치던 송운의 손동작이 멈추었다.

“후우…….”

수련을 어느 한쪽에만 치우칠 수 없었기에 육체적인 수련과 심적인 수련을 꾸준히 반복해야 했다. 그러곤 정신을 집중한 채, 일주천을 돌리는 자세로 앉은 송운은 예전에 평목단이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조용히 곱씹었다.

‘분명 내 몸 안의 내기와 주변의 모든 것들과는 조화를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만물이 통합된 것이 대우주(大宇宙)라면 지금의 나는 소우주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그들이 말하고자 하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만물이 가지고 있는 의지.

‘세상은 나 혼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모여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나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어렴풋하게나마 조화경의 벽을 보았다. 그때의 느낌을 되살려 송운은 온몸을 주변에 맡겼고 이내 그의 눈앞에 거대한 벽이 떠오르며 환한 빛을 비춘다.

놓쳐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앞을 향해 송운이 손을 내뻗고자 했을 때.

파앗!

일순간 눈앞에 떠올랐던 공간이 출렁이며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후우……. 역시 여기까지가 지금 나의 한계로구나.’

송운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서두르지 말자, 운아. 조급할수록 잡히려던 것도 멀어지는 것이 아니더냐.’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이제 시작일 뿐.

그 안에, 조화경의 벽을 깨부순다.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할 수 있어. 다시 한번…….’

송운은 잠시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내공심법을 돌리며 눈을 감았다.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젠 흘러가는 날을 세는 것조차 포기한 지금.

일반인이었다면 홀로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이 긴 나날을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의 심적인 부분을 조금씩 갉아 먹었을 것이다.

하나 그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천의선천기공 덕분이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천의선천기공은 그의 머리를 맑게 틔게 해주었고, 그로 인하여 조금씩이나마 진전이 보이고 있었다.

“흐읍! ……후우.”

크게 심호흡을 하며 동작들을 나열해 나갔고,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계속해서 배회하고 있는 단어들을 떠올렸다.

만물의 의지.

대우주.

모든 것은 그 속 안에 담겨 있다고 하였다.

두 개의 단어를 한참 곱씹던 그에게 하나의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생각해 보면 애초부터 기라는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지 않았던가?’

내기에 대해 네 것과 내 것이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이 그것을 몸에 담아내고 모으면서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만물에 불어넣어 있는 의지는 살아가고자 하는 생명력이 아니던가?

생명력의 원천이 되는 것이 선천 지기다.

애초에 천의선천기공에 담긴 그 의미 또한 생명.

사람을 비롯해 길가에 흔히 굴러다니는 돌멩이 마저 느껴지는 그 미세한 기운들이 모두 다 생명력과 관련이 있었다.

‘모든 만물에서 나오는 원천!’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간 생각들은 곧 송운의 머리를 두드렸고, 이와 동시에 그 오묘하면서도 신비로운 힘이 송운의 온몸과 주변의 기운을 빨아 당기며 강력하게 빛을 발산한다.

‘아……!’

송운은 이제야 천의선천기공이 주는 진정한 힘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만물이 가지고 하나로 융화될 수 있는 그것.

그것은 바로 생명력의 힘이었다.

묘리를 깨닫는 순간 송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지닌 힘이 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그를 중심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안기라도 하겠다는 마냥 송운의 주변을 에워싼다.

우우웅.

그리고 너무도 굳건하여 깨지지 않을 것만 같던 벽에 조금씩 더 크게 금이 가기 시작한다.

파직, 파지직.

파앗!

송운의 감긴 두 눈의 앞에 마침내 굳건히 버티고 있던 조화경의 벽이 깨부숴지면서 환한 빛이 그를 맞이했다.

뚝.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한 방울의 눈물이 송운의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기쁨과 희열(喜悅)의 눈물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해냈어.’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이것을 온전히 그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뿐.

이것만 받아낸다면 반드시 한 발 앞으로 더 나아가리라!

꽈악.

송운의 꽉 쥔 두 손에 강하면서도 충만한 힘이 차올랐다.

第十章. 흐르는 세월

추운 겨울이 끝나고 꽃들이 한껏 자신의 몸을 과시하듯 만개했던 봄마저 끝날 무렵. 세상은 빠르게 돌고 돌아 어느덧 푸르른 여름이 오고 있었다.

“슬슬 날이 더워지겠군.”

툭. 투둑. 투두둑.

쏴아아.

그의 말이 신호라도 되는 마냥, 이내 여름을 알리는 비가 쏟아진다.

황궁에 드나들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휴가다운 휴가를 받은 송악이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요즘 황궁 일은 어떠세요?”

그 앞에 앉아 있던 예령이 그에게 묻는다.

송운이 폐관수련에 들어간 이후, 남은 이들의 일상도 빠르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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