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천중도법.
하늘과도 같은 무거움을 담아 육체의 힘과 융합하여 상대방을 제압한다.
우곤의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힘을 이용한다면 합의 효과는 더더욱 커진다.
거기에 그 끝인 육성(六成)까지 다다른다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힘을 얻게 될 터.
우곤과 참으로 잘 어울리는 무공이다.
“와선쾌포전은 서사 형님을 위한 것입니다.”
‘활이라…….’
서사는 정확한 그의 판단에 감탄했다.
송운의 말대로 자신은 근접 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줍은 많은 성격 탓에 대오가 가장 약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실제로는 서사가 육체적으로 가장 약했다.
그랬기에 애초에 몸을 쓰는 것보다야 머리를 쓰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다. 하여 암기 위주로 싸우던 서사에겐 더할 나위 없는 무공이었다.
활을 이용하여 멀리서 그들의 뒤를 받쳐준다면 환상의 궁합이 될 터다.
해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활이었다.
빠르고, 가볍게 날아간 화살은 적의 숨통을 한 번에 끊어놓지는 못하더라도 정신없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적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어 놓기에, 그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것 또한 육성에 이른다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절영환신술. 이건 대오 형님의 것입니다.”
짧은 목을 움츠리고 있던 대오가 그의 말에 깜짝 놀라며 송운을 향했다.
천조회 중 가장 겁이 많은 대오다.
전생에 그런 그의 성정이 재능으로 이어졌고, 몸을 숨기는 데 익숙해진 대오였기에 절영환신술은 그에게 꼭 맞는 옷처럼 들어맞을 것이다.
육성을 이루게 된다면 아예 그 그림자마저 지워버리며 상대로 하여금 본체가 아닌 헛것을 보게 만들어 버리는 은신술이었다.
전생에도 아무도 이를 끝까지 익힌 이가 없었으나, 그에 이미 탁월한 재능을 지닌 대오라면 아마, 아니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창천쾌검. 이것은 조총이 네 것이다.”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조총은 그의 말에 눈을 빛내며 송운을 바라본다.
창천쾌검.
이름과도 같이 맑게 갠 푸르른 하늘만큼 맑고 청아하며, 빠른 검으로 대적한다.
귀가 밝은 조총으로선 상대방의 움직임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자신의 작은 체격을 자격지심으로 여겨왔다면 이제는 그것을 무공으로 승화시켜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날랜 몸동작으로 적보다 먼저 움직이고 더 빠르게 상대를 제압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그에게 잘 맞는 무공이 될 것이다.
그 마음을 조총도 느꼈는지 입가에 환한 미소가 어린다.
마지막으로 적돈.
여전히 비대한 몸집으로 사방을 향해 둘러보고 있던 그에게 송운의 시선이 향한다.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릴 무공일지도…….’
송운의 입가에 미소가 피며 그를 호명(呼名)했다.
“막내, 적돈아. 속웅분쇄각은 네 것이다.”
몸집을 떠나서도 천조회 중 가장 빠른 발을 가진 적돈은, 그만큼 다리에 남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 송운의 눈을 가장 사로잡았던 것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비곗덩어리로 보일 터나, 그 속엔 잘게 나누어진 근육들이 존재한다.
송운은 그것을 똑똑히 느꼈다.
다리가 튼튼한 덕분에 그 육중한 몸을 버티며 빠르게 달릴 수 있을 터.
그처럼 곰처럼 강한 힘이나, 빠른 속도까지 실리게 된다면 상대방을 산산조각 내어 부숴버릴 것이다.
송운은 각자 한 권씩 받아든 그들을 향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바쁘신 와중에 언제 이러한 것들을…….”
그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서사가 송운에게 물어온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것들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주리라 마음먹고 있었기에 칠 주야 내에 간신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준비한 지는 꽤나 오래되었습니다. 이것들만 모두 익히더라도 어디 가서 이전처럼 힘이 없어 고생할 일은 덜 할 겁니다.”
“주군…….”
모두가 감격한 표정으로 송운을 바라보았다.
‘늘 주군께는 받기만 하는구나. 믿음도, 이러한 무공서 까지도.’
천조회의 마음속에 짙은 불씨가 지펴졌다.
더욱 강해지리라.
이미 당할 만큼 당했다.
앞으로 남은 것은 강해지는 것뿐.
주군에게 더 이상 짐 덩이가 아니라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일 년 뒤엔 그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 만큼 강해져 돌아오리라!
우곤이 먼저 송운에게 주군에 대한 예를 취하자, 뒤따라 네 명도 연달아 나섰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주군. 절대 실망하지 않도록 강해져서 돌아올 테니 그동안 꼭 몸 건강히 지내셔야 합니다.”
그 모습에 송운 또한 고개를 숙였다.
“형님들도, 동생들도 모두 몸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렇게 작별 인사를 마친 채, 점점 멀어져 가는 천조회의 등 뒤로 아쉬움을 마음속으로 삼키며 송운은 작은 미소를 남겼다.
이별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기에.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모든 준비가 일사천리(一瀉千里)로 끝이 났다.
천조회도 양조광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떠나갔다.
이젠 남은 것은 송운 본인 하나였다.
‘드디어 내일인가……. 이곳을 떠나는 것이.’
송운은 마을의 가장 높은 산 위에 올라있었다.
마지막으로 송주촌의 모습을 눈에 담아두기 위해서였다. 밤하늘 높게 뜬 환한 보름달로 인해 더욱 그의 눈에 마을이 잘 보였다.
마을 가득히 배어있는 소나무 향이, 은은하게 그의 온몸을 감싼다.
송운이 두 손을 가득 쥐었다.
* * *
“빠진 것 없이 잘 챙겼는가?”
“예, 주인어른. 이제 마차에 오르시지요.”
생각보다 짐이 많다.
필요 없다고 여기거나 굳이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 싶은 것들은 나눠주기까지 했으나 오랜 시간 살아온 터전이니 그 양이 제법 될 수밖에.
마지막으로 확인을 끝낸 송악이 준비된 마차에 몸을 싣자 마부가 말들을 향해 채찍질을 한다.
촤악-!
이히힝-!
이윽고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뒤를 짐을 잔뜩 실은 마차들과 사람들이 따른다.
“악 가가. 정든 곳을 떠나려니 발걸음이 잘 떨어지질 않네요. 북경은 새로운 곳이겠죠?”
예령은, 걱정 반 설렘 반이 뒤섞인 마음으로 창문 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모습에 송악이 걱정 말라는 듯 말없이 예령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야 있겠소? 분명 우리 가족에게도 좋은 일만 있을 터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구려.”
“후음!”
“가, 가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예령은 슬쩍 얼굴이 붉어지며 손을 떼려 했으나, 송악이 더욱 힘을 주어 빠지지 않게 꽉 잡았다.
그 모습에 송하가 둘 사이에 떡 하니 들어앉았고, 곧 온 가족이 웃음을 터뜨렸다.
‘시작이 좋구나.’
第九章. 폐관수련
“와아! 사람 엄청 많아!”
“후후. 그래, 역시 북경이라 그런지 사람이 매우 많구나.”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평여현과는 달리 어마어마한 인파에 송하는 신이 났는지 바깥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그건 송후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눈이 빛나고 있었다.
“워워, 주인어른. 도착했습니다.”
지친 말들을 달래며, 마부가 집에 당도했음을 알려왔다. 북경에 들어오고 나서도 한참을 달리던 마차가 도착한 곳은 어느 제법 큰 집 앞이었다.
송하가 가장 먼저 마차에서 내려 마당을 뛰어다녔다.
타다닥.
“하야. 조심하거라. 그러다 넘어질라.”
송운은 이미 지난번 북경에 머물면서 익혔던 지리였기에,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확실히 이곳이라면 평가와도 황궁과도 제법 가깝겠구나.’
아마도 평목단이 꽤나 신경을 썼을 것이다.
그때, 그의 눈앞에 평목단이 보였다.
“왔는가? 악이. 꽤나 먼 거리였을 터인데 고생했네.”
“어째 딱 맞추어 나와주었구만. 황궁 일로 충분히 바빴을 텐데 고마우이.”
“아닐세. 집은 마음에 드는가?”
“마음에 들다마다. 허허. 과할 정도일세. 평여현에 있던 집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군.”
그런 둘을 뒤로한 채, 송운이 잠시 사방을 둘러보자 평목단이 먼저 알아채고선 짓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 녀석. 오자마자 서란이부터 찾는 게냐? 오늘 일이 있어서 오지 못했다. 아마 내일쯤 볼 수 있을 게다.”
“아, 아닙니다. 평 의숙부님.”
마음을 들켜버린 송운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으나, 여전히 평목단은 다 안다는 듯 씩 웃고 있었다.
“황제께서 오늘은 바쁠 테니 내일부터 궁으로 나오라 하셨네.”
“그러한가? 다행일세. 그렇지 않아도 오늘 당장부터 부르시진 않을지 걱정하던 차였네.”
“하하, 설마 그 정도로 벌써부터 굴려 먹으려 하시겠는가? 아무튼 나는 일단 궁으로 들어가 보아야 하니 저녁에 다시 오도록 하지.”
“그래, 그러도록 하게. 바쁜 몸이 아닌가?”
“자네도 곧 바빠질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말게. 으하하! 이거 황궁을 같이 드나들 친우가 있으니 마음이 든든해 지는구만.”
* * *
평목단이 돌아간 후, 짐을 옮기는 일은 짐을 쌌을 때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었고, 깜깜한 밤이 되고 나서야 정리가 대충 끝이 났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
“아마, 약혼식은 돌아오는 가을쯤에야 하게 될 것 같구나. 이사를 왔다고는 하나 완전히 북경에 자리 잡은 것도 아닐뿐더러, 나 또한 황궁의 일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테니.”
“예. 아버지.”
조금 기운 없는 송운의 대답에 아쉬운 것이라 여겼는지, 송악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쉬워하지 말거라. 어차피 약혼식 치르고 나면 곧 결혼식도 올릴 테고, 그때부턴 평생을 보고 살 사이가 될 것 아니냐.”
“호호. 악 가가도 참. 애 체하겠어요.”
“크흠. 내가 뭘 말이오?”
그렇게 부모님의 대화가 오고 갈 때 즈음, 송운은 또 다른 고심에 빠져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역시 그것이 우선인가?’
“오빠. 밥 안 먹어?”
“아, 먹어야지.”
다른 가족들의 밥에 비해 영 진전이 없이 쌓여있는 송운의 밥그릇을 보며 송하가 묻자 그제야 숟가락에 속도가 붙는다.
하나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 * *
송운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새롭게 마련된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방은 좀 더 컸으나, 내부의 구조만큼은 똑같이 해 달라 일렀기에 어색함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