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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61화 (61/275)

제61화

송운의 말에도 한참을 망설이던 양조광은 이내 더 이상 끌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고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전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벌이고 있는 사업을 제대로 키우고자 합니다. 그래야 공자님의 뒤를 든든히 받쳐줄 수 있는 기둥이 될 수 있겠지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송운도 그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 집을 나갈 생각입니다. 지금 이곳은 너무 크게 노출이 된 상태인데다, 집을 복구하는 데도 시간이 꽤나 걸릴 겁니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버텨왔으나, 더는 미룰 시간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음……. 천조회에 이어서 이젠 조광이인가.’

일은 터질 때 한 번에 터진다고 했던가?

양조광까지 떠난다면 한동안 그는 혼자가 될 터다.

잠시 망설이는 듯한 송운의 모습에 양조광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스승님께도 이미 허락을 구했습니다.”

양조광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양조광이 원하는 것은 송운도 원하는 바였고, 더욱이 아버지의 허락까지 받았다는 그를 말릴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잠시간의 부재가 있을 테지만, 그로 인해 더욱 세력은 탄탄해질 것이다.

적의 규모에 비해 현재 자신은 너무도 나약했다.

본인 자신도 그러하다는 걸 이번에 뼈저리게 느끼질 않았던가?

천의선천기공을 손에 넣고, 전생보다 더한 무위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을 상대하면서 큰 상처를 입어야 했다.

‘부족해.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힘을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 지킬 수 있어.’

아마도 이번에 마주친 검은 무복의 사내와 화마는 흑야에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들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정말 엄청난 집단이다.

이번에 평목단에게 들은 바로는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 드높은 황궁 안에서도 그들은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평가나 황궁마저도 힘들어하는 거대한 존재가 아닌가?

그들을 짓뭉개버릴 만큼 강한.

아니, 세상 그 무엇과 부딪혀도 지지 않을 만큼의 힘!

그것이 작금, 송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마음도, 세력도 굳건히 다질 필요성이 있는 게 당연했다. 되레 이렇게 먼저 나서서 도우려 하는 양조광이 송운은 너무도 고마웠다.

“걱정하시지 않도록 간간이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 서신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네가 이렇게 도와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다만, 기왕 길을 떠나는 데 한 가지 더 부탁해도 될까?”

“무엇입니까?”

“안휘성, 회원현에 회원장가라고 있을 거야. 내 친구가 있는 곳인데 그곳도 좀 같이 살펴봐 줘. 문제가 생기거든 도와줘도 좋고. 아마 훗날 우리에게도 도움이 많이 될 거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출발은 더 늦을 필요 없이 오늘 밤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난 참입니다.”

양조광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런 그의 믿음직한 모습에 송운은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더는, 혼자가 아니다.’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이들이 있기에,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리가 잡히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시 뵐 그 날까지 부디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셔야 합니다. 그럼 이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송운은 굳게 다짐했다.

더욱 강해지리라고.

그리해서 반드시 소중한 이들 모두를 자신의 손으로 지키겠노라고.

송운의 두 주먹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 * *

하루 사이,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다.

‘후우……. 정신이 없구나.’

일이 터지기 무섭게 천조회와 양조광이 자신의 곁을 잠시 떠나 있겠다며 허락을 구했다.

하나, 그 모두가 한 차례 더 도약하기 위함인 것을 알기에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었다.

그 이별은 또 다른 무언가를 가져올 터다.

그런 송운에게 송하가 다가왔다.

“오빠!”

“응?”

“무슨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하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다. 하하. 무슨 일이냐?”

송하는 자신의 얼굴을 요리조리 쳐다보더니 말을 꺼냈다.

“아빠가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바깥에서 밥 먹자고 큰오빠 찾아 오라셨어. 얼른 가자아. 나 배고파!”

“녀석. 그래 알았다. 가자.”

송운은 배가 고픈지 잔뜩 입이 삐져나온 귀여운 송하의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다 문득 회귀한 첫날이 떠올랐는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그날도 하야가 날 데리고 밥 먹으러 가자며 깨웠었지.’

새삼스레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가장 첫 기억이었다.

‘그때는 마냥 꿈이라고만 생각했거늘…….’

그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새삼 흘러간 시간을 떠올리며 자꾸 웃고만 있는 송운을 송하가 손을 잡고 이끈다.

“그래그래, 가족들이 기다리겠구나.”

송하의 손에 이끌려 온 객잔 안에는 의외의 사람들 덕분에 순간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왜 이리 늦게 오는 것이냐? 덕분에 뱃가죽이 등가죽과 들러붙는지 알았다.”

웃으며 말하는 평목단과 여전히 고운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평서란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 이것저것 정리해 둘 것이 조금 있어서……. 한데 어제 북경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셨습니까?”

“그 말은 서둘러 가버리라는 소리로 들리는구나. 허어. 이거 예비 사위가 저러니 서럽구먼.”

“죄송합니다.”

괜히 놀리려고 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송운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멀뚱히 서 있자 평서란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뭐 하세요? 얼른 앉지 않으시고요.”

“아. 그럼…….”

마지막으로 도착한 송운이 앉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 점차 주문한 음식이 줄줄이 나왔고 즐거운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

순서대로 나오는 음식들은 다채로운 색깔을 빛내고 있는 팔보채부터 시작해서 잘 익혀 나온 동파육과 강소성의 성도 남경(南京)에서 유명한 야채를 넣어 찜을 해놓은 돈채핵(燉菜核)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여 먹는 입과 보는 눈까지 즐겁게 해주었다.

한차례 어려운 일들이 폭풍처럼 쓸고 지나갔으나, 처음으로 송가와 평가가 다 같이 모인 자리인 만큼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우와, 이거 맛있다!”

“후후. 많이 먹으렴.”

그중 가장 신나 보이는 사람은 송하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객잔에 와본 탓도 있었고, 평소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음식들도 잔뜩 있었기 때문이다. 평서란은 시끌벅적한 식사 시간이 처음엔 적응이 되질 않았는지 머뭇거리더니, 금세 적응하고선 동화되어갔다.

그때, 점잖이 밥을 먹고 있던 송악의 입에서 폭탄 같은 선언이 이어졌다.

“우리 가족 모두 북경으로 이사 가기로 했다.”

“콜록, 콜록. 예, 예?”

무언가 뜸도 들이지 않고 튀어나온 말이었기에 송운은 적잖이 당황했는지 먹던 음식이 목에 걸려 캑캑거렸다.

반면 송악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덤덤해 보였다.

“말 그대로다. 나도 어렵게 내린 결단이었다. 오랜 세월을 보낸 만큼 되도록 이곳을 떠나고 싶진 않았으나 황제께서 직접 나를 궁으로 부르셨더구나. 거절할 수도 없을뿐더러 어차피 집은 이미 불에 타 복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지 않겠느냐? 이렇게 된 이상 아예 온 가족이 북경으로 가는 게 낫겠다 싶어 내린 것이다.”

송운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황제의 소환 명령에 송악이 북경으로 이사를 하자는 말보다 더 충격적이었는지 재차 물었다.

“황제께서요?”

“그래, 그리해서 약혼식도 북경으로 이사한 뒤 올리기로 했으니 그리 알거라.”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가득한 송운이 순간 평목단과 눈이 마주쳤고, 그의 눈이 웃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든 지켜주겠다는 말이, 이 뜻이셨던 건가?’

그날 흑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목단이 그에게 한 약속이 있었다.

“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너희 가족만은 꼭 지켜주마.”

그때 한 약조가 송운의 귓가에 윙윙거린다.

송운은 그제야 그때 했던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 것 같았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닌, 근처에 두고 직접 보호해주겠다는 굳은 의지였던 것이다.

‘확실히 평가와 인접한 곳에 있게 된다면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에도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

실상 이번에도 작은 우연(偶然)들이 겹쳐 가능한 것이지만 그들의 도움으로 큰 화를 면했다. 이러한 일은 앞으로 몇 번이고 더 일어날 것이 뻔했고, 그리되면 아주 듬직한 우군(友軍)으로 뒤를 받쳐줄 것이다.

아무리 황궁 내부까지 침투하려 하는 세력이 흑야라 한들, 아니 설령 침투한다 해도 지금처럼 황권이 굳건히 버텨주는 이상 천자가 머무는 북경에서는 멋대로 날뛰지는 못할 터.

‘아무래도 이래저래 멀리 떨어진 지금의 집보다야 훨씬 안전해지겠구나.’

게다가 당금의 송운은 아직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더욱 힘을 키우기 위해 자신의 곁을 잠시 떠나 있을 천조회도, 양조광도 모두 굳건해져 돌아오기 전까지 안전하게 기댈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송운도 그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새 보금자리를 구축해야만 한다.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구나.’

더 이상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 * *

컴컴한 어둠으로 뒤덮인 새벽.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도 마지막 업무를 끝내고서야 방으로 돌아온 송운은 두 눈을 감은 채 침상에 누워 정신없이 흘러간 하루를 모두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바뀔 터다.

‘내일부턴 더욱 바빠지겠군.’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고향에서 자릴 옮긴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앞으로가 정말 중요했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였던가? 어쩌면 되레 이 위기가 기회를 만들어 우릴 크게 성장시키겠구나.’

휘잉-

열어둔 창문 사이로 끝나가는 겨울의 손길이 그의 온몸을 한차례 쓸어간다.

마치 모든 걸 잊고 새로 시작하라는 듯.

곧 만물이 깨어나는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第八章. 이사

송가의 앞마당.

“그쪽이 아니라 저쪽일세!”

“아, 예예.”

쿵.

“어어, 거기 조심하시게나.”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매우 부산스러워 보이는 이곳은 이사 갈 준비에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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