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파바밧-!
“쥐새끼 같은 놈들. 뛰어봤자 벼룩이다. 쫓아라! 놓쳐선 절대 안 된다!”
“예!”
* * *
쥐새끼마냥 도망가는 둘을 쫓던 복면인들의 우두머리인 강필기(康必琦)는 헛웃음이 찼다.
“큭.”
둘이 눈빛을 마주치더니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방향으로 도망간 것이다.
꽤나 넓고 높은 수풀 사이로 숨자 잠시 당황했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사사삭.
조심스레 움직이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소리의 끝을 따라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동굴이 있는 방향이었다. 아마도 궁지에 몰리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아무 곳이나 보이는 대로 들어간 것일 터.
‘기껏해야 도망간다는 곳이 막다른 곳이구나. 멍청한 놈들. 오합지졸(烏合之卒)을 모아놓은 무리라더니 그 말이 딱 이로군.’
그가 며칠 동안 이 일대를 수색해 본 바로는 그 동굴에는 들어가는 길도 나오는 길도 오로지 하나.
결국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가 된 것이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셈인 건가. 쯧.’
장필기는 안쓰러운 듯 속으로 혀를 찼다.
어차피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복면인들은 그가 말없이 손동작으로 동굴을 가리키자 그와 함께 일제히 달려들었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그의 뇌리를 스쳤으나, 기우에 불과할 것이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동굴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더 생각해 볼 틈도 없이 마치 그들이 들어오길 기다렸다는 듯 무서운 속도로 천둥과도 같은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입구 쪽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콰과광!
깜짝 놀란 강필기는 순간적으로 내부를 빠르게 훑었으나, 이내 아무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속았다.
그들의 작전에 완벽하게 말려 들어간 것이다.
‘이 무슨……!’
당황한 복면인들은 사방을 둘러보더니 자신들의 위기를 느꼈는지 소리 질렀다.
“대주! 이, 입구가 막혔습니다! 콜록 콜록.”
하나, 당황하긴 강필기도 매한가지.
게다가 사방이 흙먼지로 뒤덮이면서 그들의 시야와 호흡까지 방해해왔다.
“나도 안다. 크윽…….”
흐릿한 시야 사이로 입구를 바라보았으나, 이미 완벽하게 막혀버린 상황.
혹여나 하는 마음에 무너진 돌덩어리들을 향해 내기를 감싼 주먹으로 내리쳐 봤으나 애꿎은 주먹만 아려올 뿐, 소용없는 짓이었다.
결국 망연자실(茫然自失)한 표정으로 이 어이없는 상황을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어이없게도 빼도 박도 못하는 밀실 속에 갇힌 것이다.
곤수유분투(困獸猶奮鬪).
쫓기는 동물은 반드시 반격해 온다.
그 말이 문득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강필기는 어쩌면 임무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상관의 손에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온몸의 털을 쭈뼛 서게 만들었다.
‘젠장……!’
* * *
“쿨럭 쿨럭!”
“콜록 콜록. 괜찮습니까, 형님들?”
등 뒤에서 무너져 내리는 동굴 입구를 뒤로한 채 미친 듯 뛰쳐나온 둘이었다.
그 여파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우곤과 서사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다가오는 이가 있었으니.
사라졌던 이들 중 한 명인 넷째 조총이었다.
툭툭.
우곤은 온몸에 잔뜩 뒤집어쓴 먼지를 털어내며 죽을 듯한 얼굴을 하고선 조총을 향해 투덜거렸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우리까지 갇힐 뻔했구나. 끄응. 아이고오, 내 허리야.”
평소 같았으면 뭐라 하지 않았을 서사도 이번만큼은 뒤지지 않겠다는 듯 그의 말끝을 이어나간다.
“이참에 우리도 죽이려던 참인가? 손발이 이래 안 맞아서야. 쳇, 어린놈들 놔두고 다 늙은 우리가 이게 뭔 고생입니까? 형님.”
그런 두 형님의 모습에 가만히 있던 조총이 손가락으로 동굴을 향했다.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해낸 방도가 이리 완벽하게 성공했으니 다행입니다. 저 정도로 단단히 막혔으니 절대 나오지 못할 거 아닙니까?”
조총의 말처럼 우곤은 입구가 꽉 막혀버린 동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마도 그 순간 적들의 기습을 눈치챈 서사가 빠르게 머릴 굴려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정말 꼼짝없이 다섯 모두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참으로 아깝구나. 끄응.”
그런 우곤의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조총이 맞받아쳤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만일의 때에 대비해서 힘들게 모아둔 비장의 수였는데……. 이리 허망하게 갈 줄은 몰랐습니다요.”
조총의 말대로 준비해뒀던 폭은 관아에서 엄히 금기시키는 물건이었다.
하나 힘이 약하면 머리라도 잘 굴려야 하는 법.
몰래 숨겨두기도 할 겸, 언젠가는 쓰일 거라는 서사의 말에 비상시에 사용하기 위해 설치해 둔 것이었거늘…….
한데, 얼마 가지도 못하고 이리 다 써버렸으니 아까워할 법도 했다.
“둘은 어찌 그리 늘 손발이 척척 잘 맞으시오? 그래도 덕분에 우리가 살았으니, 너무 아쉬워 맙시다. 형님. 어쨌든 놈들은 이제 저 내부에서 살아서는 못 나올 듯하니.”
서사는 날카로운 눈매로 꽤나 단단히 막혀버린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확실히 웬만한 장정 몇십 명이 들러붙는다고 해서 움직일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무공을 배웠다 한들 쉽사리 빠져나올 수 있는 정도의 무게가 아닐 터다.
‘뭐……. 동굴에서 나올 수 있는 입구는 저것 하나뿐이니 안에서 굶어 죽든지 자기들끼리 아귀다툼이나 하다 죽든지 하겠지.’
그렇게 한참 셋이 대화를 나눠갈 무렵, 저 멀리에서 헉헉거리며 뛰어오는 대오와 적돈의 모습이 보였다.
폭탄을 터뜨린 장본인들이었다.
“혀, 형님! 무사하셨네요. 다, 다행입니다.”
“……. 움직였더니 배고파.”
“넌 이런 상황에서도 배고프단 타령이냐? 우리의 안위는 꿈에라도 없는 겐가. 끙. 그래 내가 너에게 무엇을 바라겠느냐.”
우곤의 타박이 어김없이 이어졌고, 잠시 머리를 붙잡고 서 있던 서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주군에게 서둘러 가 보는 게 좋겠다. 물론 워낙 무위가 출중하신 분이시긴 하나…….”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순간 서사의 말에 모두가 동작을 멈췄다.
잠시 놈들을 잡았다는 생각에 웃고 떠들던 자신들이 한심해졌다.
그의 말대로 지금 자신들끼리 잡담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만약 놈들이 벌써 일을 벌였다면.’
분명 무슨 사달이 나도 났을 것이다.
본인들에게도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데, 송운이라고 하여 무사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어느새 까맣게 하늘을 물들였던 어둠이 떠오르는 햇살에 슬그머니 고개를 감추고 있었다.
그때였다.
“빌어먹을 녀석들.”
쿵!
푸드득-
화가 잔뜩 난 우곤이 온몸으로 분노를 표출해낸 것이다. 그 충격에 깊은 잠에 빠졌던 새들이 놀라 저 멀리 날아간다.
“우리가 제대로 된 힘만 있었어도…….”
좀 전까지의 모습과는 달리 안타까움과 스스로에 대한 화로 가득 차 떨리는 우곤의 목소리에 모두의 가슴 속에 절치부심(切齒腐心)이 가득 들어찼다.
그의 마음을 십분(十分) 이해할 수 있었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태어나 자라면서도, 단 한 번도 힘이 없다고 화를 내본 적은 없었다.
아무리 세상이 불공평할지라도, 그것 또한 우리의 업(業)이니 다 껴안고 노력해나가다 보면 언젠간 보상이 일 것이라 여기고 살아왔다.
한데, 이번은 아니었다.
이젠 자신들을 믿어주고, 거두어준 주군이 생겼고 그를 뒤따르고 보필해야 한다.
매번 이런 식이 되어버린다면 한낱 길가에 버려진 쓸모없는 짐 덩이와 다를 게 무에 있단 말인가?
처음 천조회가 창조되었던 그 날이 눈앞에 떠올랐다.
“우리는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때 함께 외쳤던 그 말이 우곤의 머릿속을 울렸다.
이름만 멋들어지면 무엇 하겠는가?
다짐만 하면 무엇 하겠는가?
힘이 없으니 지키고자 해도 지킬 수가 없고 돕고자 해도 도울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힘이 없기에 생긴 일이다.’
우곤은 주먹을 있는 힘껏 쥐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새빨간 핏물이 손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으나, 그조차도 느껴지지 않는지 더욱더 힘을 주었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수모를 겪지 않으리라.”
그의 분노가 사무친 말은 나머지 네 명의 형제들의 가슴에도 깊이 비수가 되어 박혀 들어왔다.
第七章. 결단(決斷)
송운의 거처.
비장한 표정을 한 천조회와 송운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뒤 본 송가는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저기 타다 만 목재들은 무슨 일이 송가를 덮쳐왔는지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이 터졌을 거라는 것은 예감했으나, 이 정도의 피해를 입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송운의 어깨춤에는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다.
‘대체…….’
그랬기에 송운의 얼굴을 보는 것이 더욱 죄스러웠다.
한참 동안 모두가 말없이 침묵을 지키며 땅만 쳐다보고 있을 때, 송운이 먼저 운을 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다섯 분 모두 큰 위험에 닥치게 했습니다.”
쿵-!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우곤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바닥에 머릴 박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주군을 제대로 보필할 만큼 힘이 없었던 저희의 탓입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주군.”
쿵, 쿵, 쿵, 쿵-!
그 모습에 재차 서사, 대오, 조총 그리고 슬쩍 눈치를 보던 적돈이 연이어 머릴 콩 하고 박는다.
“아닙니다. 고갤 드세요. 이리하시면 제가 더 죄송해집니다. 부탁이니 이러지들 마세요.”
그 모습에 놀란 송운이 성급히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천조회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겪은 위기는 우리에게 뼈아픈 과거로 남겠지만 그로 인해서 더욱더 단단해질 겁니다. 공자 왈,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음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에 있다. 라 하셨지요. 우리는 그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