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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54화 (54/275)

제54화

“이제 곧 이립에 다다를 나이인데 아직까지 그것 때문에 장가를 못 가고 있소. 제발 부탁이오. 송 공자! 내 돈은 원하는 대로 줄 터이니 내게 그 약을 대량으로 팔면 안 되겠소? 크흑!”

곰곰이 듣고 있던 송운은 사정도 제법 딱하고 자신에게 딱히 손해 볼거리가 없다고 여겨졌는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래대로라면 줄 선 자들이 늘어서 있지만 작금 여기서 약을 사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이승과 연을 끊을 것 같은 표정으로 하고 있는 이에게, 매몰차게 거절할 만큼 송운은 냉정하지 못했다.

“좋습니다. 다만 절대로 다른 곳에 가서 저에게 대량으로 사 가셨다는 말은 하시면 안 됩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런 걱정일랑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이 장모! 가문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요!”

그렇게 돌아갈 때에는 얼굴을 활짝 피고 돌아간 것이다.

‘허허, 이거 참……. 어찌 보면 실수로 만든 약이거늘.’

선천진기의 신묘한 능력에 한 번 더 감탄한 송운이었다.

* * *

업무지로 가득 쌓인 방 안엔 한 청년과 그를 보필하는 듯 보이는 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은 좀 알아보았습니까?”

“예, 소 단주님. 소문대로 약의 효능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하면 그 약을 파는 곳은 어디라고 합니까?”

“평여현에 있는 송가라 합니다.”

“예?!”

청년의 얼굴엔 놀라움이 가득 찼다.

그는 바로 다름 아닌 유가량이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소 단주로서 집안의 일을 조금씩 맡아가고 있던 도중, 새로운 소식을 들은 것이다.

최근 들어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단 한 번의 복용만으로도 몸이 건강해지며 웬만한 자잘한 병들은 단숨에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워낙 강호에는 근거 없는 소문이 잘 돌기에 자세히 알아보라 시켰거늘, 사실이었다.

한데 그 약을 파는 사람이 송가라니?

그는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송가는 분명 학사 가문인데 어찌 약에 관한 장사를 하고 있단 말인가?’

하나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상가의 기세가 점점 기울던 터다. 좋은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아버지께서 힘들게 세운 상가를 이대로 무너뜨릴 수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것이 자신들과 인연이 맞닿아 있는 송가라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다행이라면 아직 그 어떤 상단과도 거래를 하고 있지 않고 직접 판매를 하고 있다는 점일 터.

‘다른 상가가 채가기 전에 먼저 물꼬를 터놓아야 한다.’

유가량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해야겠구나.”

“예, 소 단주님.”

소문이 커지면 커질수록, 대별상가의 움직임 또한 바빠지고 있었다.

* * *

그 소문이 퍼져나갈수록 송운 또한 바빠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점점 집으로 드나드는 손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집에서 팔기엔 슬슬 무리가 오는구나.’

그 양을 제한하고 있으나, 오히려 그만큼 손님은 늘어만 가고 있는 추세였으니 점점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오고 있던 탓이다.

그뿐인가?

본디 송가는 학문을 기반으로 두고 있으니, 주위로부터 시샘으로 가득 찬 곱지 못한 시선들 또한 조금씩 고개를 들고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까진 송악에게선 별반 말이 없으나 송운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대신해서 팔아줄 수 있는 상가가 필요하겠어. 그렇다면…….’

한참을 고민하던 송운의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똑똑.

“큰 공자님. 안에 계십니까?”

“무슨 일이냐.”

“대별상가에서 방문하셨습니다. 큰 공자님을 좀 뵈었으면 한다고…….”

송운은 순간 대별상가란 말에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반가움의 기색을 보였다.

“방으로 안내해드리거라.”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인 건 송운도 아주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였다.

“이게 누군가? 가량이 아닌가!”

여전히 사람 좋은 인상을 풍기고 있는, 아니 그뿐만이 아닌 더욱 자라난 키에 이젠 제법 널찍한 어깨와 사내다워진 얼굴이 된 유가량이었다.

둘 모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시간이 그만큼 흘렀음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하하. 오랜만일세. 친구. 이게 대체 몇 년 만에 보는 얼굴인가? 자네도 말하지 않았으면 몰라보겠구만.”

“그렇지 않아도 내 조만간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리 와주니 참으로 반갑네. 아, 잠시만. 여기 차 좀 내오너라.”

자리에 앉은 둘은 방금 막 내와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들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찌 지낸 게야?”

“뭐, 나야 상가의 자식이니 상가 일을 도우며 지내왔지. 그러던 도중 자네의 소식을 들었고.”

그런 유가량의 말에 송운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거기까지 벌써 소문이 퍼졌나 보이. 그렇지 않아도 연락하려 했던 참인데 이리 먼저 찾아와주니…….”

“하하. 내가 적절한 시기에 찾아온 것 같아 다행이네. 그럼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일반적으로 거래를 트기 전 서로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벌였을 테지만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모였으니 유가량의 말대로 시간을 끌며 굳이 심력 소모를 할 필요가 없었다.

송운의 입장에서야 이미 아버지들끼리 오래된 친우인 데다 본인도 전번에 친분을 꽤나 쌓았기에, 당금 그만큼 믿을 사람은 없다고 여겨졌다.

게다가 먼저 찾아가려 했던 생각까지 했으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일이 되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생각보다 빠르게 일은 진행되었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계약서까지 작성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오랜만에 본 만큼 조금 더 있다 가고 싶네만 요즘 상가 돌아가는 일이 워낙 심상치가 않으이……. 미안하네. 다음번엔 꼭 시간을 더 내서 오도록 하지. 의숙부님과 의숙모님께도 얼굴 뵙지 못하고 가서 송구하다고 좀 전해주게.”

미안한 듯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 유가량의 모습에 송운이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네. 어찌하겠는가? 지금은 일이 우선이지.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돌아가 보게. 아, 그리고 유 의숙부님께도 안부 인사 전해주게.”

“알겠네. 그럼 이만 들어가 보시게나. 괜히 나올 필요는 없네. 내 조만간 사람을 보내겠네.”

오랜만의 조우의 회포를 뒤로 한 채 서둘러 유가량이 돌아간 후에야 송운은 다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참 다행이구나. 적기에 와주어 덕분에 일이 좀 더 수월하게 풀리겠어. 으음…… 그나저나 대별상가에 별 탈이 없어야 할 터인데.’

조금의 걱정과 함께 말이다.

* * *

유가량이 다녀간 이후 송운의 생각처럼 약은 더욱더 빠르고 멀리 퍼져나갔고 들어오는 돈은 처음에 투자했던 것보다 수십 배로 뛰었다.

‘아버지께 이자까지 전부 쳐서 돈을 갚았는데도 이렇게 많이 남았구나.’

송운은 작성된 장부를 보며 흡족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었다.

아버지의 굳건한 믿음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불가했을 일이다. 남들이 천하다고 여기는 장사를 하고자 했음에도 자신을 믿어주고 학사임에도 그 어떠한 틀에 박히지 않으신 아버지가 계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송운은 그런 아버지가 너무도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아버지…….’

순간 마음에 이는 뜨거운 무언가가 온몸을 감싸며 돌았다.

다시 되돌아왔음에 너무도 감사했다.

이런 가족들 품에서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음에 또 기쁨과 행복함이 들었다.

평생을 감사하며 살아도 모자랄 만큼 분에 넘치는 행복을 품에 얻지 않았는가?

‘그러기 위해선 내가 더욱더 굳건히 해야겠지.’

마음을 더욱 단단히 굳힌 송운은 이내 양조광을 불렀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의를 하기 위함이었다.

똑똑.

“공자님. 저 조광입니다.”

“어서 와.”

양조광도 자신 못지않게 피곤함이 쌓였는지 안색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잠은 자면서 하고 있는 거지?”

“예,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이제부턴 남은 자금과 앞으로 들어올 자금들은 네게 좀 맡겼으면 하는데. 괜찮겠어?”

“당연하지요. 제가 물심양면(物心兩面)하여 도와드리겠다 약조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고맙다. 조광아. 네가 많이 도와주는 덕에 일도 잘 풀려나가는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이거…….”

송운이 조심스레 그의 앞에 내민 것은 조그마한 함이었다.

“이건 뭡니까?”

“크흠. 뭐해? 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열어봐.”

어리둥절 표정을 짓는 양조광에게 송운이 함을 어서 열어보라며 재촉했다.

끼익.

함을 열자 그 안에는 송운이 만들어낸 약과 은자 닷 냥 그리고 좋은 약재들이 함께 들어있었다.

“이건……?”

“네가 보고 있는 그대로야. 너도 계속 챙겨 먹고, 어머님께 가져다드리라고. 굳이 네가 가지 않더라도 내일 날이 밝았을 때 표국을 통해서 보내면 그 정도면 충분할 거야.”

잠시 당황한 듯 말없이 내용물을 바라만 보고 있던 양조광이 이내 입을 열었다.

“제가 공자님을 돕고자 한 건 이런 걸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 굳은 표정의 그를 바라보며 송운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나도 잘 알고 있어. 내 성의야. 늘 너한테 도움만 받는 것 같아서. 거절은 받지 않을게.”

“하오나…….”

“흐암. 피곤하다. 얼른 가지고 너도 돌아가 봐. 내일부턴 할 일이 더 많을 테니까. 뇌물이라고 생각해. 널 부려 먹기 전에 쓰는 뇌물 정도로?”

“운 공자님…….”

“어허. 자꾸 그렇게 내 성의를 거절할 거야?”

탁.

양조광도 재차 가져가라는 송운의 말처럼 더 이상 성의를 거절할 수 없었는지 그제야 함을 닫고 품에 안았다.

“휴우, 역시 공자님 고집은 못 이기겠습니다. 그럼 그 뇌물 감사히 잘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물러갈 테니 내일 뵙도록 하지요.”

송운은 그런 양조광의 모습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보냈다.

* * *

풀썩.

하루 일정을 모두 끝마친 송운이 침상에 드러누웠다.

장사를 시작한 이후 그의 일과는 더욱 바빠졌다.

새벽엔 동생들과 함께 본인 수련 겸 무공을 봐주었고 아침을 먹고 난 후에는 양조광과 함께 학문을 익혔다. 그러곤 점심을 먹고 나면 물건들이 어찌 잘 팔려나가는지 돈이 새진 않았는지 이것저것 조목조목 따져보고 남는 시간이 생기면 또다시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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