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나이가 있어서인지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은 송운은 그에게 직접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 이런 걸 다 챙겨주시니, 감사합니다. 큰 공자님.”
“아닙니다. 평소엔 고 총관님이 더 많이 챙겨주시는걸요. 별건 아니지만, 고뿔에 잘 드는 약입니다. 쭈욱 들이켜세요.”
“그럼…….”
꿀꺽.
송운은 몹시 좋아하는 고 총관의 모습에 살짝 양심에 찔리기도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스스로 위안 삼았다.
‘으음……. 앞으론 자주 좀 챙겨드려야겠구나. 효능을 알아보기 위해 드리는 것도 있거늘, 이 정도로 이렇게 좋아하실 줄이야.’
이미 그 효능이 증명된 데다 좋은 약재로 달인 것이라 문제는 없었다. 다만 송운이 궁금한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약효가 타인에게도 나타나는지, 효과가 얼마나 빠른지 바로 알아보기 위함에 드린 것이기도 한데 저렇게 좋아하니 찔릴 법도 했다.
“……?!”
한데 그 순간, 다 들이켠 고 총관의 몸에서 조금씩 기의 반응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반응이 그에게서도 느껴졌는지 표정이 급변했다.
혹시나 송운은 첫 번째 약을 준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놀라서 서둘러 기를 확인해 보았으나 다행히도 그건 두 번째 약이었다.
“허어, 이거 효과가 몹시 빠르군요. 벌써 고뿔이 다 나은 기분입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하하.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시지요.”
그렇게 고 총관을 시작으로 집안 식솔들에게 몇 번 더 재차 효능을 확인한 송운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이제 이 약에 대한 확신은 생겼는데, 이것 또한 결국은 처음 기본 자금이 필요하구나. 이를 대체 어디서 구해야 한단 말이냐.’
계속해서 고민하는 송운을 향해 양조광이 먼저 조언해왔다.
“스승님께 조금 빌려보심은 어떠하겠습니까? 어차피 효능은 확실하시다고 하셨으니, 기본적인 자금만 마련이 된다면 곧 돈은 불어날 테고 그럼 이자까지 쳐서 드린다고 해도 충분히 갚을 수 있지 않을는지요.”
“으음……. 물론 그렇기야 한데…….”
그의 말을 듣자 하니 그것도 나쁘진 않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비록 아버지의 손을 빌리지 않고자 하였으나, 역시나 완전한 자립은 아직은 힘들다는 것을 잘 아는 송운이었다.
‘어차피 더 많은 자금을 모으기 위한 돈이니 그리 많이 들어가지도 않을 터. 그래, 내가 열심히 벌어서 갚아드리면 되지 않겠는가? 아버지를 한번 설득해보자.’
송운은 밤새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했다.
무턱대고 자금을 빌려 달라고 하기엔 아무리 자식이라도 제법 큰 돈이었기에 무언가 아버지를 충분히 납득시킬 법한 것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솔직하게 장사를 하겠다고 말씀드리는 편이 더 나을까?’
장사를 한다고 한다면 말릴 수도 있을 테지만 숨긴다고 숨겨질 일이 아니라면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올바른 일일 터.
한참의 고민 끝에 마음의 결정을 내린 송운은 높이 떠 있던 달이 기울어 갈 때쯤에서야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사초(巳初).
가족들이 모두 모인 아침 식사 자리.
오늘도 어김없이 어머니 예령이 차려놓은 음식은 맛있는 냄새로 식구들의 배고픈 배를 괴롭혔다.
“잘 먹겠습니다!”
송악이 먼저 한 숟갈을 뜨자 송하의 활기찬 목소리로 외친다. 그 모습에 모두가 웃음 짓는다.
‘녀석, 귀엽기는.’
역시나 집안의 분위기를 가장 띄워주는 막내딸다운 행동이었다.
그 순간.
밤새 고민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송운의 얼굴을 그새 눈치챘는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예령이 그의 안부를 물어온다.
“한데, 운아. 표정이 썩 밝지 않구나. 요즘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니?”
송운이 그에 뜨끔했는지 잠시 머뭇거렸으나, 굳이 어머니에게까지 걱정을 끼칠 필요는 없다 싶어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런 건 아니고……. 지난 밤사이 좀 뒤척였더니 피곤한 모양입니다.”
“무리하지 말려무나. 언제나 네 건강이 최우선이란다. 알겠지?”
“예. 너무 걱정 마세요. 어머니. 잠을 잘 못 자서인지 오늘따라 밥이 더 맛있습니다. 하하.”
한참 동안 화목한 아침 식사가 끝이 나고, 송운은 조심스레 서재로 가는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그러자 서재 안까지 따라오는 그의 모습을 의아하게 여겼는지 송악이 먼저 입을 뗐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게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진중한 모습에 송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말해 보거라.”
“다름이 아니고, 자금을 조금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송악은 시녀가 가져다준 적당히 잘 우려진 차를 따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쪼로록-
“자금을 말이냐? 어디에 쓰려고?”
“그것이…….”
생각과는 다르게 차분한 그의 음성에 오히려 송운의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한참을 송운이 말이 없자, 송악이 다시 말을 꺼내었다.
“말을 꺼내기 힘든가 보구나. 자금이라……. 혹여 장사라도 해보려고 하는 것이냐?”
송운은 순간 뜨끔했다.
이렇게까지 단번에 정곡을 찌를 줄은 몰랐기 때문일까?
‘허허, 역시 아버지신가.’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이때다 싶어 곧바로 대답했다.
“실은……. 아버지 말씀대로 장사를 좀 해보고 싶습니다. 한데, 시작하기에 앞서 조금의 여유 자본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모아둔 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요. 하여 아버지께 송구하나마 손을 조금 빌렸으면 합니다.”
“으음…….”
송악은 들던 찻잔을 손 위에 내려놓은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촌각의 시간이 반 시진처럼 느껴질 무렵, 송악의 눈이 떠졌다.
“정말로 네 스스로 해보고 싶은 것이더냐?”
“예, 반드시 배로 불려서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믿어주세요. 아버지.”
송악은 자신의 아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진심이 보고 싶었던 것일까?
오랜만에 바라본 아들의 눈.
송운의 눈빛은 그 여느 때와 달리 진지해 보였다.
‘눈이 참으로 빛이 나는구나.’
그가 본 그대로 굳건한 의지와 함께 빛나고 있었다. 그저 젊은 날의 패기로 단순히 던져보는 것은 아닌 듯해 보였다.
어릴 적부터 학문에 뜻이 없어 걱정거리를 일삼더니 언제부턴가 철이 들었는지 자신에게 스스로 했던 학문에 대한 약속도 잘 지켜나가고 있다.
게다가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려는 아들을 아비인 자신이 믿어주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그를 믿어준단 말인가?
못 믿어줄 이유는 없었다.
“널 믿어보도록 하마.”
송악의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第三章. 일 년
시간은 빠르게 흘러 사계절을 돌고 돌아 또다시 세상을 차갑게 얼어 붙이는 겨울이 다가왔다.
그동안 송운에겐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계획은 성공했고, 처음 시작은 평여현에서 시작하여 점점 멀리 퍼져나갔다.
천조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소문을 퍼뜨려 나갔다. 천조회가 워낙 입담이 좋은 탓인지 곧 현을 벗어나 돈 많은 부자들에게 퍼져나갔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너도나도 사들였기 때문이다.
가격이 만만치 않음에도 몸을 보중(保重)하는 데 혈안(血眼)이 오른 그들에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그 물량이 제한적으로 풀려나왔기 때문에 급해지는 건 소비를 하는 쪽이었다.
그 효과를 입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큰 수확은 따로 있었다.
바로 첫 번째 약의 효험 덕이었다.
‘되레 원래 의도했던 약보다 실수로 만들어진 약이 이리 불티나게 팔려나갈 줄이야……. 허허.’
송운의 귀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 수많은 남성에게 사랑과 인기를 받고 너도나도 찾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기대했던 건강 약보다 첫 번째 약을 더욱 값을 주고 사겠다는 이들까지 생겨나면서 돈이 기하급수(幾何級數)적으로 불어난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생긴 적도 있었다.
쾅쾅!
“문을 열거라!”
“어허, 귀한 약을 파시는 분께 그리 무례하게 대하면 어찌하느냐? 조심스레 대하 거라 이놈아!”
송가의 집 문밖에 소란이 일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송운이 우연히 그 모습을 보고선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이냐?”
“아, 큰 공자님. 그것이 저……. 약을 사러 왔는데 큰 공자님을 직접 뵙고자 한다고 하여…….”
“음, 나를 직접?”
“예. 그렇습니다.”
“우선 안으로 들이도록 하거라. 어찌 되었건 손님이 아니시더냐?”
그렇게 송운의 거처로 따라간 그 남자는 약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송운에게 말을 걸었다.
“커험. 이, 이곳이 정녕 남성에게 좋다는 약을 판다는 곳이오?”
“그렇습니다. 그 양은 정해져 있으나 어찌 되었건 그 약을 파는 곳은 맞습니다. 한데 저를 직접 보고자 하심의 연유가 무엇인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혹여나 약을 만드는 비법을 알려달라든지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라면 그를 정중히 돌려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알려줄 수는 없었다.
아니 알려준다고 하여도 만들 수도 없을 터.
“컴, 크흠. 그, 이 근처에 아무도 없소?”
“예, 아무도 없으니 편히 말씀하시지요.”
“그것이……. 사실은 말이요.”
그 남자의 말은 그러했다.
자신은 안휘성 동성(桐城)현에 사는 호족인데, 돈도 제법 많고 외모도 이 정도면 꽤나 준수하여 여자들이 많이 들러붙었다가도 이상하게 밤만 지나고 나면 모두 다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한데 나중에 그 이유가 알고 보니 밤일을 치를 때 도통 남성의 그것이 제대로 발휘(?)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그 정도에서 끝났다면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가 보려 했건만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 약혼하기로 한 약혼녀마저 도망을 갔다고 한다.
하여 그때부터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밖을 나가는 일마저 꺼리게 된 그에게 희소식이 들려왔으니 그것이 바로 송운의 첫 번째 약이었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 아니 사막에서 우물을 찾듯 그에겐 마지막 희망의 끈이 되어 그 이야길 듣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