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第一章. 양조광
어느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천조회가 창조된 지 약 이틀이 흘렀다. 하나 아직 그들이 머물 거처를 따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천중산 중턱에 만들어둔 거처에 머무는 상황이었다.
그들을 거두기로 한 이상 최소한의 그들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천조회라는 모임의 성격상 겉으로 드러나는 곳엔 어차피 데리고 나올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해도 천중산에 그대로 두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까지고 그들을 거기에 머물게 할 수는 없다.’
그런 만큼이나 송운이 작금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금(資金). 무엇을 만들든 운영을 하든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자금력이다.
한데, 작금의 송운에게는 몇 안 되는 없는 것이 있었으니 자금이 바로 그중 하나였다.
최소한의 여유 자금이라도 마련이 된다면 좋으련만, 그것조차 적은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었다.
‘이를 대체 어찌한다…….’
송운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 자금을 모으려면 대체 어찌해야 할지 영 감이 잡히질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번의 만년설삼처럼 전생에 흉년(凶年)이라도 들었다면 미리 싼 값에 곡물이라도 사 두어 다음 해에 비싼 값에 팔 수 있었을 터다.
하나 아쉽게도 요근래 몇 년간 하남성에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순순히 송운의 자력(自力)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후우…….”
송운은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당금의 송운에게 있는 것이라곤 인맥과 전생의 기억.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은 글과 무공.
마지막으로 조그맣게나마 배워둔 의술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자고로 사내가 칼을 뽑았다면 무라도 썰어봐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그만둘 송운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젠 자신에게 거두어야 할 객식구가 생겼고,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일이다. 어찌 이만한 벽에 부딪혔다고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그만둔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을 믿고 따르기로 한 그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해야만 했다.
송운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잘 생각해보자. 분명 무언가 돌파구가 있을 것이다.’
두둥실 검은 하늘에 사방을 비추며 밝게 뜬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휘잉-
겨울을 맞아 차갑게 변한 바람이 그의 귓가를 스쳤으나, 오히려 정신을 말짱하게 해주는 데 도움이 돼 주었다.
무언가 정리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 * *
“운이 오빠?”
“…….”
“오. 빠!”
“음? 아아, 미안하구나. 생각할 것이 있어서…….”
멍하니 서 있던 송운이 그제야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틀자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송하가 보였다. 새벽 수련 시간 내내 가르치다 말고 멍해 보이던 송운에게 몇 번이고 말을 걸었지만, 대답이 없자 답답한 마음에 크게 소리친 것이다.
“오빠 요즘 통 멍해 보인단 말이야.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면, 서란 언니라도 생각하고 있는 거야?”
올해 열세 살이 된 송하는 점점 그 미모가 차오르고 있었다. 키도 제법 커 이젠 송운의 가슴팍에 머리끝이 닿을 정도였다.
다만 얼굴에 아직은 젖살이 다 빠지지 않아 귀여운 모습이 남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어엿한 숙녀가 되리라.
점점 당차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잠시 미소 짓던 송운이 입을 열었다.
“하하. 이런, 미안하구나.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구나.”
“치……. 말 안 해주기는. 큰오빠는 너무 비밀이 많아.”
약간 토라진 듯 보이는 송하의 뒤로 송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 형님. 괜찮습니다. 힘드시면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어느새 주변으로 다가온 송후가 그 둘의 사이에 슬며시 서 있었다.
“그래 고맙다. 그럼 좀 있다 아침 식사 때 보자꾸나.”
“흐웅……. 알겠어.”
송운은 걱정하면서도 아쉬운 듯 뒤돌아서 가는 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안함이 슬금슬금 고개를 드는 건 사실이었다.
송하의 말이 맞았다.
최근 들어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고민에 집중하느라 다른 곳에는 도통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고민이 이어졌기에 남들이 보면 멍해 보인다며 착각할 만했다.
‘빨리 방도를 찾아야 할 텐데…….’
방으로 돌아온 송운은 아침까지 아직 남은 시간 동안 내공심법을 돌리기 시작했다.
계속된 고민으로 머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한 데다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면 굳이 수련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돌리던 그였다. 게다가 전날도 잠을 설쳤기에, 피곤함을 잊고자 함이었다.
곧 송운의 주변에 있던 기들이 그를 중심으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그 고요 속에 평온함은 그를 한층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한 번의 주천이 끝났을 때, 문득 송운의 뇌리를 빠르게 지나가는 생각이 그의 양 손뼉을 마주치게 했다.
짝!
‘그래. 맞아 혹시 그 방법이 성공만 한다면……. 이건 정말 엄청난 장사수완이 되겠구나! 잊어버리기 전에 써두어야겠다. 당장 실행으로 옮겨야겠어.’
곧바로 책상에 앉은 송운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빠르게 붓으로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 * *
가족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온 송운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흠칫했다.
단순히 양조광이 서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늘은 그가 오기로 되어있던 날이기에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다만 책상 위에 그대로 놓인 자신의 계획서에 그의 시선이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셨습니까? 운 공자님.”
공손히 인사해오는 그의 모습에 아차 싶은 순간이었다. 평소와 똑같은 인사 같은데도 묘하게 기분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말이다.
‘허허……. 이런. 그대로 두고 나갔다는 걸 깜박했구나.’
사실 보았다고 해도 상관은 없으나, 아직 미완성의 것이라 조금 난감한 것일 뿐이니 말이다.
“평소보다 일찍 왔구나.”
“예, 어쩌다 보니…….”
꿀꺽.
침 넘기는 소리까지 다 들릴 만큼 둘 사이에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송운이 아닌 양조광이었다.
약간은 굳은 듯한 그의 표정에 송운은 긴장감까지 맴돌았다. 괜스레 자신이 잘못한 것만 같은 기분에 송운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해있었다.
“일부러 보고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송구합니다.”
“아, 괜찮아. 딱히 숨기려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송운은 약간 뻘쭘한 표정으로 답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송 공자님이 생각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송운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인다.
‘역시 궁금해할 법하지. 전부를 다 말해주기엔 아직은 섣부르겠지만.’
양조광은 말없이 송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마도 그의 성정상 재촉하기보다야 먼저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후우……. 어차피 이리된 것 너에겐 말해도 되겠지.”
한숨을 내뱉은 송운이 곧이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우리 송씨 가문의 평화가 지속되기를 원해. 물론 지금도 좋지만,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이. 한데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작금의 세상이니까.”
“그렇겠지요.”
그의 말에 동조한다는 듯 양조광도 답했다.
겉으론 고요한 듯 보이지만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온갖 음모와 시샘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가문만 해도 그 폭풍의 중심에 서 있다 결국 멸문하지 않았던가?
비록 지금은 관직에서도 물러나 있는 송가지만, 조금이라도 황실과 연관이 되어있다면 그 위험은 비켜나가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지금은 이 일대의 유지로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이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누군가 음해하려 할 수도 있을 테고. 게다가 한 손으로 백 손, 천 손을 감당할 정도로 내가 큰 인물이라면 좋겠지만 나는 그럴 만큼의 인물이 되질 못 한다는 걸 잘 알아. 하기에 사람을 모아 가문을 지킬 울타리를 몰래 만들고 있었던 거야.”
송운의 말을 다 듣고 난 양조광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러하시면 스승님의 도움을 받으시는 건 어떠하실는지요?”
송운이 양조광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것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뭔가……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내 스스로 하고 싶었으니까. 집안의 장남으로서 그런 것까지 일일이 도움을 받는다면 결국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 될 테니까.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고, 이젠 내가 성인이 되었으니 내 손으로 직접 하고 싶어.”
사뭇 진지해진 송운의 말이 끝나자 굳은 얼굴로 내내 듣고 있던 양조광의 얼굴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그러곤 이내 평소의 그처럼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정말로 예전의 공자님이 아니시군요. 많이 변하셨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시는 모습이 옆에서 지켜보는 저로서는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군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예전의 양조광은 늘 걱정이었다.
어릴 때 자신이 기억하던 송운은 늘 공부를 멀리하며 밖으로 나돌 궁리만 하던 아이였다.
물론 둘째인 송후도 있었으나, 아무래도 장자(長子)인 송운이 조금이라도 변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늘 그의 마음에 존재했다.
역모죄를 덮어씌워 쫓기듯 도망쳐온 자신과 어머니를 받아준 은인이자 스승님인 송악의 가문이 늘 잘 되기를 간절히 빌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런 그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분명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혹여 일시적인 현상일까 싶어 말없이 지켜보았다.
하나 그의 변화는 진실이고 진심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송씨 가문에 바치기로 다짐했던 양조광이었기에 더욱더 기쁜 마음이 컸다.
하나뿐인 친구이자 자신이 모시게 될 송운의 변한 모습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저 학문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닌 저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그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까지 참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