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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49화 (49/275)

제49화

송운의 담담하기만 한 말투에,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서사의 말문이 막혔다.

대신하여 튀어나온 것은 또 다른 불만이다.

“천하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정보 집단이라…… 강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군. 강호 전체에는 이미 다른 세력이 파고들 수 없는 넓은 시야를 가진 조직이 둘 존재하지. 그 중의 첫째가 구대 문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개방이요. 세상의 모든 검은 눈을 품은 하오문이다. 이미 꽉 찬 시장에, 우리가 들어설 자리나 있을 것 같나?”

사서의 말은 맞다.

정보란 곳이 모이는 장소를 하나의 시장으로 본다면, 이미 강호의 정보 시장은 꽉 찬 상태였다. 하나 이들은 간단한 방법 몇 가지로 그를 해낸다. 잠시, 먼 미래에 펼쳐질 그들의 첫 업적(業績)이라 불릴 만한 사건을 떠올린 송운이 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거기에 대해선 내게 비책이 있소.”

“비책이라…….”

굳이 들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겠다는 듯, 서사의 고개가 내저어졌다.

“본래 겉 포장이 화려할수록 속 알맹이는 허술한 법이지.”

“그만.”

의심 가득한, 서사의 말을 듣고만 있던 우곤이 팔을 내뻗으며 말했다.

“난, 사실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대형!?”

놀란 서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쳤다.

그가 이렇게까지 굳이 비꼬며, 허점을 짚는 말을 흘린 이유가 무엇이던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대형이 혹여나 이런 말을 내뱉을까 싶어서였다.

아무리 마음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이라 한들, 이 정도까지 허술함을 보이는 일이라면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을 터니 말이다.

한데 실패했다.

“천하 전체를 뒤덮는 눈과 귀를 가진 거대한 정보 집단이라니…… 멋지잖아?”

“대형, 단순히 멋있다는 일만으로 생각할 게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불가능에 가까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불가능은 아니지. 그렇다면 더욱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군. 안 그런가, 서사?”

“…….”

이미 설득은 통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어린 소년처럼, 반짝 빛나고 있는 우곤의 두 눈을 확인한 서사의 말문이 막혔다.

대신해서 서사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른 의형제들이었다.

아무리 막무가내인 우곤이라지만, 다른 형제들 모두가 반대하고 나선다면 결국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위험한 산적질 보다는 나을 것 같아.”

대오가 시선을 회피하며 조용히 말한다.

“저도 대형의 말에 크게 동감합니다!”

조총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먹을 것 주는 사람…… 좋아.”

조금 아쉬움이 남았는지, 빈 그릇에 남은 음식 찌꺼기마저 손끝으로 찍어 먹고 있던 적돈이 답했다.

‘끝났다.’

정말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형제들의 반응에 서사의 얼굴에 암담함이 어렸다.

“대형, 제발 다시 한번만 재고해주시오. 대체 저자의 무엇을 보고 믿는단 말씀이십니까?”

처음 만난 인연이다.

심지어 그가 정말 평가의 대공자인 송운이 맞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의문점투성이인 그를, 대체 우곤은 어찌 이리 쉽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내 눈.”

“예?”

“너도 알잖냐. 사람 보는 내 눈 하나만큼은 제법인 것. 저 친구, 잘은 모르지만, 너희들과 비슷한 느낌이 있어.”

살짝, 웃고 있는 송운을 마주하며 입가로 큰 웃음을 그려 보인 우곤이 말한다.

마음이 반 이상 넘어갔다.

완벽히 그 사실을 깨달은 서사가 고개를 푹 꺾으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소?”

어느덧, 송운을 향하는 말투에는 작게나마 공대가 배어있었다.

“물론이오.”

“고맙소.”

그를 바라보며 다른 형제들, 특히 대형이 인정한 자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서사의 복잡한 마음을 읽은 송운의 입가로 다시금 웃음이 번졌다.

‘정말 누구 하나 밉지 않은 자들이로군.’

역시, 그들을 찾기를 잘했다.

다시금 송운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 * *

그로 말미암아 시간을 얻은 서사는 곧바로 천중산 인근에 있는 빈민가를 찾아갔다.

사서의 복장은 허름하고 낡은 옷이었다.

그들은 본디 출신부터가 빈민가에서 자라온 탓에 가장 익숙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어릴 적부터 보고 자라고 배워온 모든 것이 그 속에 담겨있으니, 그런 만큼 빈민가의 아이들을 구슬리고 그들을 이용해 정보를 습득하는 데도 능숙했다.

서사는 먼저 두 눈을 빛내며 빈민가를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그러던 도중 서사의 유독 눈에 띄는 아이들 둘을 발견했다. 각각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였다.

‘좋아. 딱 이로구나. 여자와 남자는 천성적으로 보는 눈이 다르니 모든 적어도 그 정도의 차이점까지 동시에 볼 수 있겠어.’

하나 그는 바로 다가가기보다야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가갔다.

무작정 다가간다면 낯선 얼굴을 알아보기 때문에 어쩌면 쉽게 도망갈 터.

서사는 품 안에 들고 온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얘들아, 이리 와 보거라. 이 아저씨와 재밌는 놀이 할까? 아저씨가 물어보는 걸 잘 대답해 주면 이 당과를 그 자리에서 바로 너희들에게 선물로 주마.”

그와 동시에 멍하던 아이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먹을 것.

그 아이들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것들이었다.

‘걸려들었구나.’

아이들은 순수하다.

그리고 특히 먹을 것에 약한 빈민가 아이들에게 놀이와 먹을 것을 동시에 건네준다면 모르는 사람은 금세 친근하게 변한다.

먹는 것이 이 아이들에겐 곧 생존이기 때문이다.

서사는 이를 잘 이용했다.

“너희들 송주촌에 있는 송가라고 들어봤느냐?”

“네.”

“네.”

“그럼 송가의 가장 큰아들인 송운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네.”

“네!”

이번에도 역시 두 아이 모두 동시에 답한다.

“자 좋아. 이렇게 같은 대답을 하면 이 당과는 모두 너희 것이 될 게다. 그렇게 해서 아는 걸 모두 이 아저씨에게 들려주는 게 놀이의 법칙이지. 만약 둘이 대답하는 게 틀리면 놀이는 실패가 되는 거야. 그러면 당과를 얻을 수 없겠지? 자, 시작하마. 송운이 공부를 잘 하느냐?”

“저요!”

“내가 먼저 손들었어!”

“자자, 어차피 둘 다 대답해야 하는 거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하니 싸우지들 말고 천천히 말하면 되는 게지. 알겠지?”

서사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분히 다시 설명을 해주었고, 이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둘이 동시에 손을 번쩍 들더니 이내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말한다.

“송 공자님은 공부를 잘해요.”

“송 공자님은 과거에 합격했어요.”

말의 표현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뜻만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서사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 이제 이것은 너희 것이다. 다음은 송운이 약혼식을 한다는 게 맞느냐?”

“네!”

“어여쁜 언니랑 결혼한댔어요.”

두 아이의 반응이 일치한다.

‘이번에도 역시 통과로구나. 좋아. 이렇게 하면 대외적으로 알 수 있는 정보는 대강 알 수 있겠어.’

그렇게 한참을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서사는 만족할 만큼의 정보를 얻어내었다.

그리고 그런 그는 곧 고민에 빠졌다.

그가 고민에 빠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어찌 된 사람이 이리 흠잡을 곳 하나가 없단 말이야?’

아무리 잘난 사람도 결국 한두 개의 단점 정도는 보이기 마련이다.

‘무언가 흉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가장 먼저 뒤에서 흉보는 것은 당연한 사람의 심리이거늘…….’

한데 송운이라는 이는 아무리 단순히 아이들에게 정보를 얻었다고는 하나 길가에서 저잣거리에서 주워듣는 것이 삶인 아이들이 아닌가? 더구나 순진하기 때문에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무의식중에 머리로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입에선 모두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하아……. 하기야 직접 내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았을 때도 의심이 가기보다는 신뢰가 먼저 가는 사람이 아니었더냐?’

그렇게 하루를 꼬박 질문하는 데 허비한 서사는 한걸음 물러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꼬르륵-

‘마침 배가 고프다는 신호까지 울리는구나.’

* * *

그렇게 며칠 동안 고민만 하다 고민에 빠져 죽을 것같이 답답하던 서사는 결국 직접 송운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래. 서사야 어차피 이렇게 해서는 평생 답이 나오질 않을 것이다. 사람은 직접 부딪혀보아야 아는 것이지. 가서 직접 본인에게 물어보자.’

한데 막상 간다고 해도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면?

‘그러면 그때는 연이 아닌 것이다 생각하고 돌아가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송운의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보시오. 혹시 송운 공자라고 계십니까?”

“계십니다만은……. 누구십니까?”

“천중오제의 서사라고 하면 아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렇게 잠깐을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드디어 그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앞을 본 서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고맙……. 으응?”

“기다리게 해서 송구합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서사 형님.”

송운이 자신을 직접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송운의 방 안.

‘허……. 학문에 뜻을 둔 학사 집안 이라더니 아이들 말이 확실히 맞긴 맞았구나.’

그의 방 안은 소소한 책상과 책꽂이 사이로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책들. 그리고 딱 송운이 혼자 누울 법한 침상이 전부였다.

그렇게 방 안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송운이 차를 들고 들어왔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송운이 미소 지으며 물어오자, 서사가 되레 다시 물었다.

“…….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묻겠소이다. 그대는 정녕 우리와 함께하고 싶은 것이오? 그런 것이라면 어찌하여 그런 것이오? 내 그 질문의 답을 들어야 속이 시원하겠소이다! 공자도 알다시피 우리는 빈민가 태생에 가진 것 하나 없소. 더구나 그것도 모자라 산적질 하겠다는 것 따위에나 결의를 맺던 우리들이란 말이오! 한데 그런 놈들을 구제(救濟)하여 공자의 평판이라도 올리고 싶었던 것이오? 그런 것이냔 말이오!”

없이 자란 탓에 있는 것들에 대한 자격지심(自激之心)이었을까?

처음엔 차분하던 서사의 음성이 점차 흥분으로 인해 고조되어 얼굴까지 빨개졌다.

잠시간의 조용한 적막이 흘렀고, 그제야 서사는 자신의 흥분감을 가라앉히고 사태의 중요성을 파악했을 무렵.

송운의 차분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유현덕이 와룡의 명성을 믿고 그를 삼고초려(三顧草廬) 하였다 하지요. 하나 이후 직접 두 눈으로 그를 본 뒤에는 믿는 게 아니라 확신했을 겁니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면, 아무것도 못 믿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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