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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48화 (48/275)

제48화

“우선 음식부터 시키지요.”

천중산 아랫마을에 있는 객잔 중 하나에 들어선 송운이 말했다.

“마음껏 시켜도 돼요?”

객잔을 가득 메운 음식 냄새에, 커다란 코를 벌름거린 적돈이 묻는다.

“미안하지만, 가진 바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일단 배를 채우는 정도로 만족해주시면 감사할 따름이지요.”

송운의 답에, 적돈의 얼굴에 작은 실망이 어렸다.

“예끼, 이놈. 우리가 아무리 산적 때라지만, 얼마 없는 가진 바를 몽땅 털어서야 되겠느냐. 그저 적당히 털어먹고 가면 될 일이다. 험험.”

헛기침을 흘린 우곤의 시선이 송운의 눈치를 살핀다.

말은 그리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신세를 지고 있다는 사실만은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완전히 가진 바가 밑바닥은 아닙니다. 드시고 싶은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지간히는 털려 드릴 수 있으니, 우선 말씀해보시지요.”

송운이 함께 장난으로 화답하자, 입가로 큰 미소를 그린 우곤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거, 뭘 좀 아는 친구로군. 우리와 같은 대인의 풍모가 보여. 어떤가, 자네 역시 우리와 함께 천중육제(天中六弟)가 되지 않겠나? 내 자네 같은 이라면 망설임 없이 환영이라네.”

“……우리가 산적인 것만 말하지 않겠다면야…….”

“큰형님의 말이라면 저도 찬성입니다!”

“밥 주는 사람, 좋아.”

“……얼간이들.”

한숨을 내쉬는 서사를 제외한 네 사람이 모두 우곤의 의견에 동의하고 나선다.

잠시, 이런 이들과 함께 종횡하는 강호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한 송운이었지만, 이는 그야말로 지나가는 마음일 뿐이었다.

‘내게는 이제 강호보다 중요한 가족이 있지 않은가?’

이들을 찾은 것 역시, 그러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일의 하나다.

전생에 낭만이라는 말에 취하여 강호를 주유하던 시절을 잠시 떠올렸던 송운의 고개가 작게 내저어진다.

그 모습을, 음식 시키느라 정신 나간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서사의 입술이 천천히 달싹였다.

“어디 사시는 뉘신지 모르겠지만,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어 혀와 주머니에 꿀을 발라놓고 우리를 꾀고 계실까?”

가는 눈매를, 더욱 좁게 좁힌 서사의 시선이 송운을 찌르기라도 할 듯 매섭게 쏘아진다.

“조총아, 서사 녀석 뭐라는 거냐?”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저 추론하건대, 뭐 하는 놈이냐? 가진 것 다 대놓고 꺼져라!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대형.”

“과연…… 녀석도 사내가 되는 건가.”

“…….”

기껏 다잡은 분위기가, 한껏 풀어헤쳐지는 것을 느낀 서사의 뒷목이 뻐근하게 굳어진다.

얼굴마저 붉게 달아오른 그를 보며, 어딘지 모르게 안쓰럽다 느낀 송운이 빠르게 답했다.

“아,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송운이라고 합니다.”

“이 몸은 천중오제의 대형 우곤이다!”

“……대오.”

“대형의 기개를 알아본 대협(大俠)의 존함이 무언가 하였더니, 송 대협이셨구려! 이 몸은 오제 중 사제(四弟)인 조총이라고 하외다!”

“밥이다!”

짧은 사이, 주문한 음식이 식탁 위로 올라왔다.

찰싹.

음식을 향해 냉큼 손을 내뻗는 적돈의 손등을 가볍게 내리친 우곤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먹을 것밖에 모르는 녀석은 막내, 적돈이라고 한다.”

“……이제 먹어도 돼?”

손등을 얻어맞자, 눈치만 보고 있던 적돈이 조심스레 물었다.

“드시지요.”

대신 화답한 것은 송운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음식에 손을 얹은 적돈은 그야말로 아귀(餓鬼)와 같이 음식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조금은 놀란 눈동자라 바라본 송운의 입가로 당황한 웃음이 번졌다.

‘제갈세가가 천중오제를 초대하여 대접을 하다, 적돈을 감당하지 못해 내쫓았다 하더라니 그 말이 농담이 아니었겠구나.’

마치 한 여름 태양 앞에 눈이 녹듯 사라지는 음식들을 보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송운이었다.

“……서사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며, 입을 다물고 있던 서사가 가장 마지막으로 답하며 말을 이었다.

“송운, 송운이라…… 평여의 송가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이는 질문이라기보다는, 사서의 습관 중 하나였다.

생각을 하면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읊조리게 된다.

덕분에 미래에도, 제법 간계가 뛰어나면서도 전면에 나서 계책을 꾸미는 일에서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서사였다.

“그 평여의 송가가 바로 제 집입니다.”

송운이 웃으며, 그 혼잣말에 담담히 답했다.

사서의 미간이 순식간에 내 천(川)자를 그렸다.

“나를 바보로 아는 건가? 평여의 송가라면 인근에서 유명한 학사 가문이거늘…….”

서사의 시선이 단숨에 송운의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를 빠르게 훑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무공을 익혔다.’

그것도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첫째로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 학사 가문의 자제치고는 너무 잘 발달한 골격. 심지어 어지간한 외공의 고수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굳은 손이라…….’

서사의 입가로 비웃음이 떠오르려는 순간이었다.

“눈썰미가 꽤나 좋으시군요. 맞습니다. 저는 무공을 익혔습니다.”

“……?”

“혼잣말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해서 답해드린 것입니다.”

“큼, 크흐흠……!”

송운의 답에, 또다시 습관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사가 얼굴을 붉힌 채 거친 헛기침을 흘렸다.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하고 계신바 모두 사실입니다. 저는 그 학사 가문으로 이름 높은 평여 송가의 첫째이며, 무공을 제법 익히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모시고까지 와서 이야기하고자 한 바는, 서로에게 남는 것 하나 없는 산적 행세를 하기보다는, 그 재능을 조금 더 다른 곳에 써보면 어떨까 하는 이유에서고요.”

담담히, 솔직한 마음을 풀어내는 송운의 목소리에는 한 치 떨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재능을 다른 곳에 써?”

그 말에, 적돈에게 모두 빼앗길세라 함께 음식을 흡입하는 대열에 합류했던 우곤이 질문을 던졌다.

“예.”

“어디에?”

다음 질문을 던진 것은 서사였다.

“천 리를 넘어 천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밝은 눈과…….”

잠시, 송운의 시선이 서사에게로 향했다.

훗날, 천리안(千里眼)이라는 별호로까지 불리게 되는 그의 시야는 별호를 뛰어넘어 천하를 뒤덮는다. 작금의 본인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아둘 수 있는 큰 귀…….”

이번에 송운의 시선이 향한 곳은 조총이었다.

자신의 작은 체격에 묘한 자격지심을 갖추고 있어, 덩치가 큰 만큼이나 목소리도 우렁차고 동작도 큰 우곤을 존경하는 그는 실상 천중오제의 누구보다도 귀가 밝았다.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처음 송운의 접근을 가장 먼저 눈치챈 이도 바로 조총이었다.

그러한 장점을, 미래에는 무공으로까지 승화하였더니 조총의 별호는 천리통(千里通)이 된다.

비약적으로 말해 천하의 모든 소리가 그의 귀를 거쳐서 전해진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다.

“누구보다도 빠른 발…….”

또다시 시선은 이동하여, 적돈에게로 향했다.

놀랍게도, 천중오제 다섯 중 가장 발이 빠른 이가 바로 그였다.

‘이를 발이라고 표현해도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비대한 덩치를 굴려 움직이는 적돈과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자는 당시 강호 전체를 뒤져도 세 명이 넘지 않았다.

심지어 그를 뒤쫓는 일이라면 천하의 누구도 불가능하였다. 거칠게 구르며 움직이는 그의 무공을 보며, 공명의 화신이라는 당시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야는 마치 구르는 마차를 보는 것 같다며 환차(環車)라는 별호를 그에게 전해주었다.

“가장 은밀한 그림자.”

대오.

천중오제의 셋째인 그는 젊은 시절부터 유독 겁이 많은 사내였다고 했다.

직접 보고 나니,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또 한 번 체감할 수 있었다.

그저 송운이 바라만 본 것만으로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며 시선을 회피한다.

생긴 것과 어울리지 않는 성정이, 그의 재능을 깨어나게 하였다.

그는 훗날 강호에 있어 누구보다도 잘 숨는 이로 유명해지게 된다.

심지어 혼자 숨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마음먹고 모습을 감추고자 하면 천중오제의 다섯 중 누구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된다.

그야말로 강호 유일무이의 신무(神霧)라는 별호에 아깝지 않은 재능이었다.

“마지막으로…… 그 모든 재능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

송운의 시선이, 돌고 돌아 다시금 우곤에게로 닿았다.

큰 덩치만큼이나, 호방한 성격만큼이나 큰마음을 가진 이가 바로 대형 우곤이다.

서로 다투기도 하고, 어딘지 맞지 않는 것만도 같은 천중오제가 함께 뭉쳐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곤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마음으로 다섯 형제를 품었고, 위기에는 누구보다도 앞장서 몸을 날려 형제들을 지켰다. 또한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

훗날, 강호는 그에게 하늘 위에 떠 천하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천조(天鳥)라는 별호와 함께 대협(大俠)이라는 칭호를 선사한다.

긴 강호 역사상, 세인들 모두가 한 입 모아 대협이라 지칭한 이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가 이룬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크게 말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천 리의 소식을 보고 들어, 누구보다도 빠르게 전할 수 있으며, 은밀하고 거대하다.

훗날 귀안회가 강호 제일의 정보 단체가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흠…….”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훑는 송운을 향해, 짧은 신음을 흘린 우곤이 자신의 턱을 짧게 쓰다듬었다.

“여러분들을 모아, 천하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정보 집단을 만들고자 합니다.”

“……광오하군.”

서사가, 짧고 간단하게 소견을 내뱉었다.

“우리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는 말인 거지?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공자의 생각만큼 우리가 그리 대단한 인물들은 아니거든.”

직후, 입가로 조소(嘲笑)를 그린 채 말을 이었다.

“아직은 아닐 수도 있소. 하나 훗날에는 대인(大人)이 될 수도 있는 노릇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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