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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46화 (46/275)

제46화

‘이상하구나. 아무리 벽 전체를 둘러보아도 마기 따위는 느껴지질 않아. 후우……. 분명 마교와 관련이 된 것은 맞는 듯한데……. 일이 어렵게 되겠어. 우선은 집 내부도 조금씩 살펴보아야겠다.’

* * *

며칠간 이곳저곳 샅샅이 뒤졌던 송운은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큰돈까지 썼던 하오문에서도 알아 온 정보는 딱히 그들의 준동은 없다고 하였다. 그쪽은 완벽히 허탕을 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집 안 내부에도 마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조사를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허어.’

막막함에 한숨만 내쉬고 있던 송운의 눈에 바깥으로부터 소란스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누구지?’

최근 며칠 동안 이 집안에 들어왔던 외부인은 자신을 제외하고선 아무도 없었다. 한데 송운이 머문 이후 처음으로 외부인들이 찾아온 것이다.

송운이 급히 장명도에게 물었다.

“명도야. 밖에 저 사람들은 누구야?”

한데, 고개를 들어 본 장명도의 표정이 그리 곱지 못하다.

“본래 거래를 트던 상단이 급작스레 망하는 바람에 아버지께서 새로운 상단과 거래를 트셨는데, 생각보다 자주 왔다 갔다 거리는 모양이야. 뭔가 좋은 물건은 직접 전해줘야 한다던가? 그런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말이지. 그것만 그러면 그나마 다행인데 쓸데없이 남의 집 무공서도 가끔 물어보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거든. 부모님께서는 좋은 사람들이라며 별 상관하지 않으시는데 왠지 난 저 사람들이 집에 올 때마다 뭔가 묘하게 기분이 나빠져서. 내가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거라 하시는데도 영……. 왔다 갔다만 하면 며칠은 기분이 안 좋아.”

송운은 순간 그의 말에 몇 가지 무언가 이상한 게 짚였다.

“잠깐. 회원 장가의 무공서 위치를 묻는 걸 들었다고?”

“응. 나도 언뜻 지나가다 들은 거라 확실하진 않지만…….”

그의 말을 들은 송운은 의문이 생겼다.

일반 상단이라고 치기엔 무언가 수상한 점이 많았다. 보통 상단은 한번 거래를 트기 시작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주 왕래하지 않는다. 다른 해야 할 일도 넘쳐나는데 굳이 들락거려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어째서 거래를 하는 상단에서 남의 집 무공을 알려고 한단 말인가? 게다가 급작스레 본래 거래를 텄던 상단이 망한 것도 수상하구나. 아무래도 놈들의 뒤를 쫓을 필요성이 생긴 것 같구나.’

송운의 두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 * *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놈들의 동태를 살펴보던 송운은 그들이 집을 떠남과 동시에 조용히 기척을 죽이고선 상단이라는 사람들을 뒤쫓았다.

‘겉으로만 봐서는 일반 상단인 것 같긴 한데…….’

하나 되레 무언가를 감추려 하는 놈일수록 평범해 보이려고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걸 잘 알기에 송운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한참을 뒤쫓아 갔을까?

이제는 제법 회원현으로부터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내가 괜히 과민반응을 한 것이었나.’

그때까지도 딱히 원하는 정보는 없는 듯하여 송운이 막 돌아서려던 참이었다.

놈들이 하는 말을 듣기 위해 청각에 온 신경을 쏟아부은 그의 귀에 드디어 무언가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시작의 단계에 불과하니…… 흑야…… 지시다. 녀석들의 경계심을 극도로 낮추기 전까지는 함부로 행동해선 안 된다. 하니…… 잘 하거라.”

그리고 결정적인 단어가 그의 귓가에 박혔다.

‘흑야? 무공서를 빼돌려?’

흑야라는 이름은 분명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송운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흑야, 흑야라……. 그래! 그때 평가에서도 분명 흑야와 관련된 놈들이었다.’

송운의 두 눈이 번뜩였다.

‘놈들을 놓쳐선 안 된다.’

* * *

“멈추거라.”

그들의 맨 앞에 서 있던 문일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사내 때문이었다.

이제 막 약관이나 되었을까 싶은 녀석이 자신들의 앞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웬 놈이지? 이 주변엔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별것 아니라 여긴 그는 말을 이었다.

“뭐 하는 놈이…….”

서걱-

하나 그는 말하던 바를 다 뱉지 못하고 처참하게 피를 뿜으며 머리가 잘려 나가야만 했다.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송운이 칼을 빼 들었기 때문이다.

“극악무도한 놈들을 잡으러 온 염라대왕이라 하면 알아들을까?”

그 말을 시작으로 그곳에 서 있던 모든 이들이 순식간에 도륙(屠戮)당해나갔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두 명이 발악하려 달려들었으나, 송운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고 모두 제명을 달리했다.

털썩-

‘무공실력은 영 형편없군.’

그 사내는 바로 송운이었다.

송운은 그들 중 도망가던 단 한 명만을 살려두었다.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살려둬야 무엇이든 단서를 더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 했던가?

그는 얼마 가지 못해 송운과 다시 맞닥뜨려야 했다.

“네놈들이 무슨 짓거릴 하고 다닌 건지 말만 해주면 조용히 보내주마.”

“저, 저리 가거라! 나, 난 아무것도 모른…… 크악!”

“하나. 남은 기회는 단 두 번이다. 그사이 말하지 않으면 네놈도 저기 저놈들처럼 똑같이 되겠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그의 다리를 향해 발로 내려찍은 송운의 모습에 무서울 법도 했으나 이내 놈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웃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저 두려움에 실성한 것인가 여겼으나 아니었다.

“크크큭…….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은 한낱 쓰레기 목숨인지라 네놈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더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입 안에 머물고 있던 독을 깨물고선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송운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젠장……. 이번에도 독단인가?’

쿵-

송운은 답답한 마음에 애꿎은 나무를 향해 손을 내리치자 그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팼다.

하나 완전히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흑야의 연결고리였던 놈들의 맥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싹을 자른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것인가? 흑야라……. 대체 뭐 하는 놈들이기에 이리도 곳곳에 숨어들어 있단 말인가?’

송운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왜인진 몰라도 엄청난 악연으로 다가올 것 같은 기분이 그의 감을 스쳐 갔기 때문이었다.

* * *

곧바로 회원장가로 돌아온 송운은 장명도에게 흑야라는 이름은 빼놓은 채 이 사실을 알렸다.

그 역시 이 사실을 알자 크게 분노했다.

감히 자신의 집안의 무공서를 탐한 자들이었다. 무인으로서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

게다가 누군지도 모르는 놈들이 자신의 가족을 노린다는 건 필히 꺼림칙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장명도는 이를 꽉 깨물었다.

“어쩐지 기분 나쁜 놈들이라 했더니……. 그나저나 대체 왜 우리 집안의 무공을 탐하려 했던 거지?”

송운의 이야길 듣고 난 후 급속도로 표정이 굳어진 장명도가 송운에게 되물었다.

“그것까진 나도 잘 모르겠어. 그게 내가 알아낸 전부야.”

“확실한 건 앞으로 또다시 오게 될 줄은 아무도 모른다는 거군.”

“그만큼 준비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거겠지.”

“아무튼, 정말 고맙다. 운이 네 덕분에 집안에 큰 화는 면한 것 같다. 뭘 어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냐. 단지 난 지금 당장의 앞일만 처리한 것뿐. 앞으로의 일은 네가 나서서 막아야 해.”

장명도의 말도 맞았다.

하나 당장의 위험을 피해갔다고 해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위험까지 피해간 것은 아닐 터.

송운이 다시 한번 그에게 말했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 늘 조심해야 한다. 괜히 너희 집안 무공서를 빼앗으려 한 것은 아닐 테니까.”

‘흑야와 관련도 있는 것 같고…….’

송운은 차마 뒷말은 하지 못한 채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말해주었다가는 되레 더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법이니…….

떠나겠다는 자신의 말에 더 있다 가라는 그의 말이 있었으나, 다음에 다시 또 오겠다는 약조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당장 그가 할 일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급한 불은 끈 셈이로구나. 애초에 싹을 잘라낸 셈이니……. 앞으론 회원장가도 어느 정도 대책을 세울 터.’

이제 진짜 남은 것은 곧 있을 집안의 화재 사건과 갑작스러운 평가의 멸문에 대한 방비였다.

‘어쩌면 지금 남은 시간이 촉박할지도 모르겠구나. 바쁜 나날들이 되겠어. 서둘러야겠다.’

* * *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 송운은 여러모로 머리를 굴렸다.

‘분명 이 년 뒤 평가의 멸문과 집안의 화재는 같은 해에 이루어진다.’

하면 이를 혼자의 힘으로 막을 수 있을까?

송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가하다.’

하나만 막는 것도 벅찰 것이다.

그렇다면 최후의 보루는 단 하나뿐인 듯했다.

‘이제 때도 되었겠다……. 그들을 만나러 가볼까?’

송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第十四章. 천중오제(天中五弟)

하남성, 천중산(天中山)의 가장 높은 분지 위로 다섯 청년이 모였다. 높다고 하여도, 천중산 자체가 애초부터 산세가 험하지 않고 지형이 낮다 보니 엄청난 고산(高山)지대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 다섯 청년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결코 낮은 산의 높이만큼이나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무거웠다.

또한 비장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뜨이는 칠척장신에, 흑의 무복을 입은 거인(巨人)이 등에 들쳐 매고 있던 대도(大刀)를 거칠게 뽑아 들며 외쳤다.

“지금 이곳! 천중산에서……!”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천중산 전체가 잘게 울음을 토했다.

후웅-!

허공을 거칠게 베어내는 대도에서는 그야말로 힘찬 기상이 뿜어져 나온다.

“나 우곤(宇坤)을 비롯한 우리 다섯은 비록 난 시각은 다르나, 갈 때는 하나가 되기로 맹세한 의형제로서, 평생의 운명을 함께할 것을 선언한다.”

사내, 우곤의 눈이 반짝 빛난다.

“그 첫걸음으로, 이곳 천중산에 소호채(沼湖砦)라는 뿌리를 내릴 것이니, 이는 우리 천중오제(天中五弟)의 위대한 큰 걸음이 될 것이다. 크하하하!”

우곤이 크게 웃자, 다시 한번 산이 쩌렁쩌렁 떨려왔다.

그때까지, 반쯤은 멍한 눈으로, 혹은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 찬 눈으로, 또는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네 사내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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