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송운은 그런 그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하하. 정말 조광이 넌 못 이기겠어. 그래. 오랜만에 둘이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이내 그 둘은 양조광이 펼쳐 든 책의 글귀를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미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수련하는 것이 몸에 밴 두 동생 덕에 송운은 간만의 단잠을 뿌리치고 침상에서 일어나야 했다.
“오빠 빨리 빨리!”
“하야,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 않느냐? 형님. 저 녀석 오늘 저잣거리에 광대 패가 온다고 저리 난리입니다.”
한마디 하는 송후를 보며 송하가 입을 쭈삣 내밀더니 송운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 그의 옷깃을 잡아 이끈다.
그런 송하가 싫진 않았는지 송운이 송하의 손을 잡아주며 말한다.
“알겠다. 알겠어. 하야. 천천히 가자꾸나. 넘어질라.”
“헤헷, 오빠들이랑 함께다아!”
송하의 애교에 두 오빠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간다.
저잣거리에 도착한 세 남매는 가장자리에 있는 노점부터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아 덕분에 가장 신난 것은 송하였다.
“와아! 이건 뭐예요?”
“이건 이번에 새로 들어온…….”
노점상들의 눈에도 눈을 반짝이며 물어오는 송하의 모습은 역시나 귀여운 것인지 웃으며 차분히 설명해준다.
“운이 오빠! 후야 오빠! 이거 봐봐.”
그러곤 한참을 둘러보던 송하의 외침에 둘이 그쪽으로 발걸음을 하자 눈앞에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장신구였다. 색색이 그 자태를 뽐내는 장신구들은 날 어서 데려가라는 듯이 진열되어있었다.
‘그저 어린아이로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이리 많이 컸구나. 그래도 아직은 무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허허.’
그런 송운은 진열된 것을 쭉 둘러보더니 송하에게 물었다.
“벌써 우리 하야가 장신구에 눈을 떴나 보구나. 하하. 그래. 어디 마음에 드는 게 있는 것이냐?”
“우웅……. 이것?”
그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던 송하가 마침내 하나를 집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새빨간 구슬을 담고 있는 머리 장신구였다.
“그래? 그것 말고는 더 없느냐?”
“응. 이거 하나면 돼.”
“하면 이것으로 하나 주시오.”
“예 예, 공자님. 아가씨께서 참으로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허허! 동전 열다섯 냥입니다.”
“와아! 오빠 최고! 고마워 오빠. 예쁘게 찰게.”
그렇게 산 머리 장신구를 해주니 새하얀 얼굴에 검은 머리가 유독 더 돋보이는 송하였다. 아직은 어려 젖살이 다 빠지질 않아 귀여운 인상을 하고 있지만 후에 시간이 흐르면 어머니들 닮아 참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될 터.
“예쁘구나. 우리 하야.”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마음에 들어 하는 송하를 바라보며 두 오빠가 칭찬을 하니 조금 부끄러워졌는지 얼굴을 붉힌다.
“헤헤. 그, 그런가?”
그렇게 송하에게 선물한 송운은 옆에서 묵묵히 따라다니며 은근히 즐거워하는 송후를 보며 생각했다.
‘녀석. 표현을 잘하지 못해서 그렇지 참으로 귀여운 동생이지. 어디 보자 후에게도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은데 마땅한 게 무엇이 있으려나.’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송운은 눈이 번뜩였다.
‘옳거니.’
어느덧 시선이 고정된 송운이 송후를 부른다.
“후야.”
“예, 형님. 말씀하십시요.”
“잠시 이리 좀 와 보거라.”
송운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송하도 함께 불러 어느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세 남매가 도착한 곳은 바로 붓을 파는 곳이었다.
“붓을 사시려고요?”
“내가 아니다. 너에게도 선물을 하나 하고 싶어서 그런다. 하야 것만 사주기엔 네가 마음에 걸려서……. 혹시 다른 것 갖고 싶던 것은 없느냐?”
그런 송운의 말에 송후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
“이 형이 아우를 생각해서 선물하고 싶은 것인데, 거절할 셈이냐?”
“으음……. 정히 그러하시면…….”
잠시 머뭇거리는 듯 보이던 송후가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싫진 않은가 보구나.’
원체 글을 좋아하는 둘째다.
처음에는 책을 사주려 했으나, 집에는 이미 많으니 책 보다야 좋은 붓 하나 사주는 것이 좋겠다 싶어 온 것이다.
역시나 반응은 좋았다.
그렇게 두 동생에게 모두 선물을 한 송운은 뿌듯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전생에는 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라 하나하나 동생들과 하는 모든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저리 기뻐하니 참으로 좋구나. 허허. 진즉 이리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고 보니 평 소저에게도 받기만 하였구나.’
문득 동생들의 선물을 사주다 보니 평서란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 송하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대 패다!”
* * *
송하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 끝에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광대패가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자아 날이면 날마다 오는 광대 패가 아닙니다요. 모두 구경하고 가세요!”
크게 외치는 사내의 목소리에 구경꾼들이 점점 몰려든다.
그 웅성거림에 송하의 발길도 점점 빨라져 간다.
“오빠 우리도 얼른 가자!”
그렇게 송하가 서두른 덕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몰리기 전 앞자리를 차지한 세 남매가 한참 구경에 집중하고 있을 그때, 앞에 있던 광대 패 한 명이 송하를 향해 손짓했다.
“거기 예쁜 빨간색 장신구 찬 꼬마 아가씨. 이리 나와 보시겠어요? 잘 해내면 선물을 드립니다.”
맨 앞줄에서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바라보던 송하가 마침 눈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송하는 먼저 송운을 향해 쳐다본다.
“나 나가도 돼?”
“나가보고 싶다면 나가봐도 돼.”
그렇게 오빠에게 허락을 받은 송하가 앞으로 나서자 구경꾼들의 그녀에게 시선이 쏠린다.
“자, 이 아저씨가 하는 대로 잘 보고 따라만 하면 됩니다.”
그 말을 마치자 다른 광대들이 무언가 동그란 판을 들고나왔다.
그건 바로 과녁 맞히기.
뾰족한 화살촉처럼 생긴 것을 들고나오더니 이내 선을 긋고선 그 앞에서 과녁을 향해 던졌다.
쌔애액-
퍽-
동그란 원이 점점 작아지도록 그려진 판의 정 중앙에 들어간 것이다.
짝짝짝-!
사람들의 박수가 쏟아진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자자, 여러분 꼬마 아가씨에게 힘을 북돋아 줄 박수와 환호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겐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것이다.
“휘이익! 힘내라 꼬마야!”
짝짝짝-!
그렇게 구경꾼들의 환호에 송하가 잠시 머뭇머뭇하는 듯하더니 이내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한다.
한껏 몸을 푼 송하가 이내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본 것을 그대로 따라 던진다.
그리고 빠르게 날아간 화살촉은 전번에 던졌던 광대의 화살촉을 가르며 정확히 정중앙에 꽂혔다.
구경꾼들의 동공이 커지면서 환호성이 더 커져 나갔다.
“오오오! 대단하다!”
“이, 이야, 여러분 모두 박수 쳐줍시다!”
환호하는 사람들 곁으로 홀로 황당해 하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조금 전 시범을 보인 광대였다.
‘허어? 저걸 설마 저렇게 잘 꽂을 줄이야! 내 광대 인생 삼십 년 만에 처음이로구나. 내 승부욕을 자극시키다니. 좋아 그렇다면…….’
워낙 어린아이라 그저 흥을 돋우기 위해 불러낸 것인데, 상상 이상으로 잘 해낸 것이다. 광대는 한참 동안 어리바리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자신의 본분을 깨닫고 환호를 유도해낸다.
‘허허. 저 정도야 우리 송하에겐 손쉽지. 물론 평범한 어린아이라면 하지 못했겠지만…….’
송운도 그 모습을 보며 내심 흐뭇했는지 박수를 보냈다.
승부욕에 불타오른 광대는 두 번째 과녁판을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휘이익-
그러자 빠르게 동료 광대들이 준비해나간다.
이번 것은 역시 한 단계 수준을 더 높인 것에 걸맞게 하나 더 늘어나기까지 한 과녁은 더 멀리 놓여졌다.
“자아, 두 번째 과녁입니다! 만일 이 꼬마 아가씨가 이번 것도 다 맞추게 된다면 제가 더 큰 선물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과녁에 사람들이 조금씩 웅성거린다.
“저 꼬마 아이가 저 정도까지 한다고?”
“에이……. 설마. 해도 가장자리나 맞지 않겠어? 거,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사람들은 과연 저 여자아이가 할 수 있을지 긴가민가하면서도 응원을 하기 시작한다.
말을 마치곤 선 앞에선 그는 양손에 땀이 슬슬 차오른다.
‘에이, 설마. 두 번째 과녁까지 전부 맞힐까……. 후욱후욱! 자 집중하자. 달평아.’
어느새 마음을 진정시킨 그는 연달아 두 개를 동시에 던졌다.
쌔애액-
퍽- 퍽-
이번에도 역시 그는 과녁 정 중앙에 맞히었다.
송하도 다시 그 선 앞에 섰다.
그러곤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똑같이 연달아 던졌고, 이번에도 역시나 먼저 던져진 화살촉을 가르며 정확히 정중앙에 꽂혔다.
“우와아아아! 꼬마 아가씨 멋있네!”
‘허……. 이것까진 너무 쉬웠던 것인가? 그래 거리가 조금 늘어난 것과 숫자가 늘어난 것뿐이니. 그럼 정말 마지막이다.’
“그럼 마지막 관문입니다! 이번 관문까지 모두 통과하면 가장 큰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기대해보겠습니다!”
그렇게 소리 지른 광대는 장엄한 표정으로 세 번째 신호를 보냈다.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송하는 자신이 정확히 맞춘 것에 기뻐하며 깡충깡충 뛰면서 송운과 송후에게 손을 흔든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관문.
아까보다 확연히 차이가 나는 거리감에 비해 과녁은 단 하나였다.
“자, 이 세 개를 동시에 던져서 저 과녁 정중앙에 모두 맞추는 겁니다.”
그러곤 또다시 아까의 그 자리로 돌아가 그가 멋지게 세 개를 동시에 던졌다.
쌔애액-
퍼퍼퍽-
“오오! 역시 대단하구나!”
연달아 두 번씩이나 송하에게 시선을 빼앗긴 광대는 이번 건 정말 못하겠지 하며 자신만만하게 송하를 쳐다보았다.
꿀꺽-
모두가 손에 땀을 쥔 채 말 한마디 없이 고요한 긴장감이 맴도는 광장.
송하의 손에 들린 화살촉으로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화살촉이 던져진다.
쌔애액-
퍼퍽-
“…….”
잠깐의 정적.
그러나 이내 구경꾼들 모두 송하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송하도 나름 심혈을 기울여 던진 듯했으나, 아쉽게도(?) 두 개만 정 중앙에 꽂혔고 하나는 옆으로 빗나갔기 때문이다.
송하는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송운의 곁으로 돌아갔으나 먼저 선보인 광대는 아닌 듯했다.
‘아니, 대체 어떤 아이이기에 내가 오 년간 연마한 이 비기(秘技)를 이 정도까지 따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서운 아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