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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42화 (42/275)

제42화

쌔애액-!

색마가 먼저 품 안에 있던 여러 개의 륜(輪)을 송운을 향해 던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송운이 그것을 피하는 동안 색마는 홀로 남은 백오에게 덤벼들었고, 순식간에 그 공간은 난장판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곤 색마가 제법 날래게 주먹으로 그에게 달려들었으나, 역시나 백오는 쉽게 한 방을 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콰앙-!

애꿎은 벽만이 그의 주먹에 동그랗게 파여 버린다.

‘저 고운 외모에 저 정도 내력이라니! 저것은 분명 수많은 여인의 정기를 빼앗은 결과물이렸다. 단 한 방에 저 정도의 구멍이 생기다니……. 하긴 저 정도는 되니 소신승이 그리 힘겹게 쫓았던 것이겠지.’

그 같은 생각이 들자 송운도 슬슬 화가 밀려온다.

무공은 이제 막 초절정에 들어선 듯한데 그에 반하여 쌓여있는 내력이 너무 많다.

그만큼 희생된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터.

‘하나, 내력이야 많다 해봤자 언젠가는 다 소모될 테지.’

이미 치열하게 서로 손속이 오가는 백오와 색마 사이에 쉽사리 끼는 건 어려울 듯하여 우선 뒤에서 그 둘의 동선을 파악하기로 했다.

‘무공이 뛰어난 것도 있으나 무엇보다 피하는 솜씨가 수준급이로구나. 소신승의 공격을 반은 피하고 있으니…….’

한데 그때였다.

백오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를 틈타 그의 뒤를 노린 것이다. 그걸 본 송운이 내력을 모은 발을 놈의 배에 날려버린 것이다.

“커거걱…… 쿨럭!”

그 한 방이 제대로 맞아 들어갔는지 색마가 명치를 부여잡았다. 이미 그 충격에 피를 토하고 괴로워하며 뒹굴었으나 송운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놈의 등을 한 번 더 내려찍으려 하자 백오가 말렸다.

“이만하면 되었습니다. 송 소협. 우리의 목적은 놈을 잡는 것이지 살생이 아닙니다. 빈승도 마음 같아선 살려두고 싶지 않으나 관아로 넘기는 것이 우선일 듯합니다.”

아까와는 다르게 이제야 노기가 가라앉은 듯한 차분한 음성의 백오의 말에 송운이 이에 동했다.

“알겠습니다. 스님.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그러곤 옆에서 기절해버린 색마를 포승줄로 꽁꽁 묶은 뒤 송운이 둘러메었고, 죽이지 않는 대신 단전을 파기한 후 그를 관아에 넘기고 나서야 일은 마무리되었다.

몇 달간 지속되었던 색마의 만행이 끝이 나는 순간이었다.

第十一章. 집 도착

“송 소협. 그간 빈승을 돕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확실히 무위가 대단하시더이다.”

합장을 해오며 고개를 숙이는 백오에게 송운은 손사래 쳤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어찌 그런 과분한 말씀을 하십니까? 얼마 되지 않는 실력이나마 도움이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하면 송 소협께서는 어디로 가실 예정이십니까?”

“저는 본디 향하던 집으로 가려 합니다. 말씀드렸던 기간보다 시간이 한참 지나 아마 부모님께서 걱정하고 계실 겁니다. 서둘러 가보아야지요.”

“그렇습니까? 하하. 이리 헤어지게 되니 조금 아쉽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아미타불. 옳으신 말씀입니다. 혹여 나중에 소림의 도움이 필요하시거든 찾아오십시오. 그럼 고향까지 가는 길 무탈하시길 빌겠습니다. 아미타불.”

“스님께서도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백오와 헤어짐을 고한 송운은 다시 본래의 고향으로 향한 발걸음이 빨라졌다.

‘한시라도 일찍 도착하고 싶구나.’

우여곡절 끝에 고향에 도착한 송운은 감회가 새로웠다. 생각해 보면 그리 오랜 시간도 아니거늘 마치 처음 회귀했던 그 날처럼 말이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송운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소나무 향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서둘러 가자.’

똑똑-

“누구십니까?”

“아저씨. 저 운이입니다.”

“운이 공자님 말씀입니까? 아이구! 어서 들어오시지요!”

그는 서둘러 문을 열고 집안을 향해 소리쳤다.

“주인어른! 운이 공자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 * *

집으로 들어가자 가족들 모두가 그를 맞이하러 나왔다.

하나같이 모두가 기쁜 표정이었다.

“정말 고생했다. 장하구나. 내 아들.”

생각 외로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다름 아닌 아버지 송악이었다. 덤덤했으나 그에게 건네진 아버지의 그 한마디는 그간의 힘겨움을 모두 잊게 해줄 만큼 따뜻했다.

이어서 어머니가 미소 지으며 그저 말없이 송운을 안아주었다.

‘어머니의 품은 늘 포근하고 따스하구나.’

그 뒤로 송후와 송하가 그를 반긴다.

“오빠! 잘 다녀왔어? 어디 아픈 덴 없는 거지?”

“역시 형님이 최고십니다.”

여전히 조잘대며 그에게 달려드는 송하와 조용히 자신을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송후까지.

그 무엇이 이보다 행복할까?

송운은 뿌듯함과 행복함에 환하게 미소 지었다.

동생들은 위의 형제를 보고 배운다고 했던가?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좋은 형, 오빠가 되리라 다짐한다.

가족들 모두가 모인 식사 자리.

간만에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려니 시끌벅적한 것이 정말 집에 돌아왔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향시 이야기는 벌써 서신으로 전해 들었다. 비록 장원은 아니더라도 방안만 해도 대단한 것이니, 이 아비는 네가 너무 상심하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다른 아버지였다면 더 높은 일등의 자리를 바랄 텐데, 송악은 그런 게 없다. 되레 자신의 아들이 기가 죽을까 격려하고 기를 북돋아 준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송운 역시 미소 지으며 답했다.

“예. 아버지. 걱정 마세요.”

“그래. 운이 너라면 잘하리라 믿는다. 한데 그 허리춤에 있는 검은 못 보던 것인데 어디서 난 것이냐?”

“아, 예. 이번에 평 소저께서 제게 준 것입니다. 선물이라고…….”

순간 평서란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송운의 귓불이 살짝 빨개졌으나 다행인지 아무도 이를 눈치챈 사람은 없는 듯했다.

“허허. 서란이가 그랬단 말이냐? 둘이 잘 지낸 것 같아 참 다행이구나.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향시도 붙었으니 후년쯤에 약혼식을 진행하려 한다.”

송악의 말에 송운이 잠시 돌렸던 고개를 틀었다.

‘후년이라……. 그래도 조만간 다시 평 소저를 볼 수 있겠구나.’

그리 머지않은 시간이건만 어쩐지 멀게 느껴지는 송운이다.

곧바로 송운이 고개를 주억이자 송악도 안심이 되었는지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다음 시험인 회시(會試)야 또 삼 년을 기다려야 하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때, 송하가 눈을 반짝이며 송운을 불렀다.

“오빠, 오빠!”

“응?”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무엇이냐? 말해 보거라.”

말해보라는 송운의 말에도 무언가 부끄러운 듯 양 검지를 마주치더니 한참 후에 입을 뗐다.

“있지……. 내일은 우리랑 같이 놀아주면 안 될까?”

그런 송하의 말에 송운도 귀를 기울였다.

‘하기야, 동생들도 오랜만에 만났으니 오래간만에 다 같이 마을 구경이나 나가볼까?’

그렇게 생각하는 도중 송하가 자신의 얼굴만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거리는데 그런 송하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송운이 잠시 뜸을 들이는 척을 하자 가만히 있던 예령이 한마디 거들었다.

“호호. 운아 하야만 목 빠지게 기다린 것이 아니란다. 후야도…….”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송후가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급하게 예령을 부른다.

“어, 어머니!”

“얘도 참. 아직도 형과 함께 하는 것을 이리 부끄러워해서야. 어떠하니 운아?”

“하하. 예. 물론입니다. 하면 오랜만에 동생들과 마을 구경 좀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래그래. 그러도록 하렴.”

“헤헤.”

마지막으로 송하의 귀여운 웃음까지.

송가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 * *

그렇게 가족들과의 식사가 끝난 송운은 곧바로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양조광을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시험을 보러 가던 길에도 몇 번이고 그가 눈에 밟혔기에 가족들 다음으로 가장 먼저 찾아가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조금 걸어 나가자 조그마한 집 한 채가 보인다.

그가 머무는 거처는 그다지 크지는 않았으나, 사내 혼자 머물기엔 충분한 그런 곳이었다.

‘집으로 들어왔으면 좋으련만…….’

전에도 몇 번 와보긴 했으나, 마음에 걸리는 건 여전했다. 매번 송운이 집 안으로 들어와 머무는 것이 어떻겠냐며 물었으나 그는 웃으며 자기는 이곳이 더 좋다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송운은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조용히 인기척을 내었다.

“흠흠. 안에 계십니까?”

“예. 한데 누구…….”

조심스레 문을 열던 양조광의 얼굴에 반가운 화색이 돌았다.

“운 공자님?”

“응, 그래. 나 돌아왔어.”

“이거 미리 기별을 주셨으면 뭐라도 준비했을 텐데……. 아, 우선 안으로 어서 들어오세요. 벌써 밤공기가 제법 찹니다.”

예상대로 양조광은 그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방금 전까지도 책을 읽고 있었는지 책이 펼쳐져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방안으로 합격하셨다고요. 정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전히 미소를 짓는 선한 인상의 양조광은 그의 소식을 마치 자신의 합격인 마냥 축하해 준다.

‘역시 친구란 좋은 것인가?’

남이라면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바쁠 터인데, 그는 그저 그렇게 늘 같은 자리에서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다. 송운은 오랜만에 보는 그의 얼굴과 축하에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또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양조광의 학문 실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의 미소에 가슴이 한편이 아려온다.

‘나보다 학문 실력은 더 뛰어난 친구다. 조광이가 시험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구나. 필시 함께 시험을 보았다면 장원은 그의 몫이 분명하거늘…….’

송운은 그런 생각을 하며 가능하면 그의 누명을 벗겨주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니 그저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양조광은 그런 송운을 바라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운 공자님. 하나 결코 여기서 안주(安住)하시면 안 됩니다. 모든 끝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그와 함께 옆 책상 위에 펼쳐진 채로 놓여있던 책을 꺼내 든다.

‘정말 나보다 훨씬 학문을 사랑하는 친구로구나. 저리 한시도 책을 놓지 않으니…….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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