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그래, 저분이 말씀하신 대로 이것도 인연이고 또한 어찌 보면 내 실수로 인해 저분이 놓친 것이 아니더냐?’
“하면 제가 돕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시주께서 말입니까?”
“예, 이것은 저의 과오도 있는 듯하니 그냥 지나치기엔 제가 송구하여…….”
멀찍이 하늘을 바라보던 중이 송운의 말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시주께서 도와주신다면, 어쩌면 조금 더 빨리 색마를 잡을 순 있겠으나……. 워낙 무공이 출중하여 위험할 터인데.’
하나 그는 곧 추격전을 벌였던 낮에 자신의 장력을 날린 송운의 엄청난 무공을 떠올렸다.
‘과연 쉽게 날릴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가 결심을 내렸는지 이내 합장을 해오며 말했다.
“아미타불. 시주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빈승은 감사할 따름이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시주.”
* * *
“빈승은 소림(少林)의 백오(白悟)라 합니다. 올해로 스물다섯이지요. 시주께서는 어찌 되십니까?”
백오의 자기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송운은 자신의 두 귀를 한번 의심했다.
‘백오?’
송운은 다시 한번 그의 법명을 곱씹고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름을 무척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금은 소림의 가장 촉망받는 기재이자, 소신승(小神僧)이라 불리는 젊은 초고수로서, 훗날에는 천하십대고수 반열에 올라 소림사를 드높이는 가장 큰 기둥이 되는 어마어마한 인물이다.
송운은 속으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립 정도로 보았건만 무려 다섯 살이나 어리지 않은가?
‘허허. 어쩐지 젊은 승려가 무공이 대단하더라니, 미래의 천하십대고수인 신승이라니!’
그리고 너무 자신이 연배를 높게 본 것 같아 조금 미안해지는 마음도 들면서 그런 대단한 사람과 참으로 어이없는 인연을 맺었구나 싶었다. 전생이었다면 한번 보기도 힘든 얼굴이 아닌가? 하나 언제까지 놀라고만 있을 순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송운도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평여현에 위치한 송가의 장남 송운이라 합니다. 올해 약관에 들어섰지요.”
송운이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하면 송 소협이라고 부르면 되겠군요. 아미타불.”
“소협이라기보다는…… 그저 공자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의(義)를 드높이기 위해 스스로 색마 추적에 몸을 담근 협객에게 소협이라는 말 보다 어울리는 명칭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아미타불.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지요.”
늘어진 귓불과 환하게 웃는 얼굴상 덕일까?
마치 동상으로만 보아오던 부처님이 현신(現身)한 것만 같은 모습을 보이는 백오였다.
“크흠…… 제 실수도 엄연히 있는 일일진데,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하여튼 그 색마 놈을 잡아야 하는데 혹여 무슨 비책이라도 있으신지요?”
송운이 물었다.
그러자, 이전과 같은 미소를 다시 한번 보인 백오가 고개를 주억이며 답했다.
“있지요, 비책.”
두 사람의 눈이 함께 빛을 토했다.
第十章. 색마 퇴치
자신만만한 백오를 따라간 곳은 바로 다름 아닌 어느 한 기방 앞이었다.
여인들의 분내와 알싸한 각종 주향(酒香), 그리고 사내들의 음심(淫心)으로 가득한 그곳은 송운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허어. 이, 이곳은 기방이 아닙니까? 저는 이런 곳은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약혼녀도 있는 몸인지라…….”
“아미타불.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의 굴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여인들을 끼고 놀자는 말이 아닙니다. 색마는 분명 이곳에 다시 올 겁니다. 아직까지 이 주변을 벗어나서 출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고, 여인들의 정기를 빨아 살아가는 놈이니 이곳만큼 적절한 장소는 없을 겝니다.”
“하오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송운을 보며 안심하라는 듯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소승도 엄연한 불자(佛子)의 몸. 아무리 악인을 잡으려 한다고 하나 어찌 기방을 함부로 드나들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람 좋게 웃으며 말하는 백오의 모습에 그제야 마음이 놓인 송운은 다시 묻는다.
“하면 스님께선 어찌 잡으실 생각이십니까?”
“우선 밖에서 숨어 진을 칠 것입니다. 그러다 놈이 오면 덮치면 되는 겁니다.”
“……?”
송운은 순간 그의 말을 의심했다.
잘못들은 듯했으나 그의 눈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당당하다.
‘허허, 이건 비책이라기보다는 ……. 단순히 무식한 방법 같은데.’
하나 어쩌겠는가?
마땅히 떠오르는 방도는 이것뿐이거늘.
그렇게 송운은 백오의 뒤를 따랐다.
* * *
그렇게 백오의 말대로 기방 앞에 자릴 잡은 지 벌써 사 주야가 흘렀다. 자리를 비운 사이 놈이 왔다 갈까 걱정이 되어 잠도 먹는 것도 번갈아 가며 둘이 밤낮을 지새웠으나 색마의 꽁무니는커녕 쥐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질 않았다.
‘정말로 나타나긴 하는 것일까?’
이젠 슬슬 걱정이 되는 것인지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송운이 말을 꺼냈다.
“스님, 정말로 이곳에 나타날까요?”
“으음……. 아무래도 놈이 제가 올 줄 알고 이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간 듯합니다.”
송운은 순간 허탈함에 기운이 빠졌지만, 마음을 다시 잡았다.
‘그래. 스님께선 이것보다 더한 시간을 보내며 색마를 쫓았을 터다. 한데 어찌 내가 여기서 포기하겠는가.’
“하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다른 방안은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후우……. 아직 마지막 남은 최후의 보루가 있습니다. 우선은 자리를 옮겨야 할 듯싶습니다. 송 소협.”
그렇게 둘은 곧장 자리를 옮겼다.
‘이번엔 객잔 앞이로구나.’
진을 치고 있던 기루로부터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입니다. 송 소협. 이곳에서 며칠을 다시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근처가 여인들도 많이 돌아다니는 곳이니 분명 그 얼굴로 불쌍한 척을 하며 도움을 달라는 식으로 여인을 꼬드길 겝니다. 외형이 참으로 미색(美色)하게 변하여 웬만한 여인들은 그 꼬드김에 넘어갈 것이 뻔합니다.”
확실히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주변에 여인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 보이긴 했다.
“이렇게 하면 색마가 나타날까요? 혹여 이곳을 떠났다면…….”
“그렇게까지 멀리 가진 않았을 겝니다. 하니 걱정 말고 저를 믿으시지요. 송 소협.”
송운은 지난 기방 앞 이후로 조금 신뢰성이 떨어졌으나, 방도는 이것뿐이라 하니 별말 없이 기다려보는 것밖에 없는 듯했다.
‘그래. 어차피 나는 그놈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하자는 대로 하는 수밖에…….’
그렇게 또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 기다림에 백오 역시 지치는 건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혼자가 아닌 둘이라는 것.
해가 지고 뜨기를 몇 번을 반복했을까?
‘이번에도 역시 허탕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갑자기 백오가 송운을 흔들었다.
“음?”
“쉿. 발걸음 소릴 낮추시고 빈승을 따라오시지요.”
그의 말에 송운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놈이 왔구나!’
고개를 돌린 송운의 눈앞에 색마가 보인다.
색마와 그 둘의 거리가 제법 있었으나 놈이 하는 말은 또렷하게 들려왔다.
“하아, 하아……. 저 좀 살려…… 주시오. 부탁을…… 으윽.”
‘여태 저런 식으로 불쌍한 척을 하며 죄 없는 여인들을 꾀어냈구나.’
백오의 예상대로 놈은 그날 보았던 그 차림 그대로 쓰러지는 척하며 지나가던 여인을 붙잡고 있었다.
분명 저대로 놓아둔다면 저 여인은 그를 도우려 할 것이고 목숨을 잃을 터.
그 사실을 안 이상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백오가 조용히 읊었다.
“송 소협, 갑시다.”
그의 말을 끝으로 송운과 백오가 동시에 녀석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꺄악!”
‘이런 젠장!’
그 모습에 놀란 여인은 놀라 소리를 치며 도망갔고, 색마 역시 위험을 감지하고 뛰기 시작했다.
“네 이놈! 내 이번엔 반드시 잡고 말 것이야!”
한밤중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 * *
‘경공을 저런 데에 쓰다니. 허.’
송운은 그때도 보았던 색마의 경공술에 혀를 내둘렀다. 어찌나 그 발이 빠른지, 다시 보아도 정말 감탄할 만했다.
하나 상대는 한 명.
악을 쓰고 달리며 놈을 쫓았고, 마침내 놈이 막다른 곳으로 몰렸다. 양옆, 뒤가 막힌 곳이라 더 이상 도망갈 곳은 없어 보였다.
자세히 그를 보니, 확실히 사내가 분명했다.
골격부터가 뚜렷한 사내의 그것으로 목에는 무언가 튀어나온 것까지.
‘그땐 언뜻 보아 여인인 줄로만 알았거늘……. 확연히 여인과는 체격부터가 다르구나. 어찌 내 저런 놈을 여인으로 착각했단 말인가? 허어.’
“드디어 그 사악한 꼬리가 잡혔구나. 어찌 그리 간악무도(奸惡無道)한 사술을 배워 여인들의 목숨을 앗아간단 말이냐! 네놈이 그러고도 사람이더냐?”
백오의 차분하던 음성은 어느새 화가 났는지 그를 향해 노기를 뿜는다.
그 모습을 본 색마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가득 베인다.
“살려줘 제발……. 이번 한 번만 놓아주면 절대 나쁜 짓 하지 않을게. 응?”
어느새 두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걸 보니 하루 이틀 해온 게 아닌 모양이다.
하나 백오는 전혀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놈! 이미 내 손을 그렇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놓고 와서 한다는 말이 그것뿐이더냐? 네 손에 생을 마감하고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여인들의 원한이 귓가에 맴돌거늘!”
색마의 말에 마침내 그의 노기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는지 아까 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다.
푸드득-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새들이 놀라 달아나고 머리가 윙윙 울릴 정도였으니, 송운은 그의 생소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스님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던가?’
함께 보낸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부처님 같던 백오가 악인 앞에 서자 이리 무서운 모습으로 변할 줄이야.
‘전생에서 들려오던 신승도 악인 앞에서는 지옥의 나찰(羅刹)보다 더 무서운 인물이었다 하더니 과연 그 소문이 괜한 말이 아니었구나.’
송운이 그에 감탄하고 있을 무렵 색마는 어찌 도망갈지 궁리하느라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칫, 역시 중에게 이 정도는 약했나? 그렇다면야…… 하는 수 없지.’
결국 순순히 도주하는 것을 포기한 녀석이 내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색마의 주변으로 사악한 기운이 가득 피어오른다.
“나도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