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평 의숙부님. 저야 그리 해주신다면 감사하지요. 제가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그의 호쾌한 결정에 평목단이 기쁨의 웃음을 지었다.
“하하! 역시 화끈한 모습이 참 마음에 드는구나. 내 빠른 시일 내로 준비하마.”
그리고 겉으론 티를 내지 않았으나 기뻐하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송 소협을 조금은 더 볼 수 있겠구나.’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그다.
어차피 지금이 아니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약혼식을 올리겠지만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인도 그의 합격을 함께 축하해 줄 자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는 평서란이었다.
* * *
이 주야 후, 평가에서는 커다란 연회가 열렸다.
연회 같은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평가였기에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모두 호기심을 가질 만큼 큰 관심거리였다.
그리고 그 연회는 평가답게 주변 사람들도 모두 올 수 있도록 하였다. 축하하는 자리에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좋다고 여긴 그의 말도 있었지만, 워낙에 민심이 좋을 만큼 평목단이 사람들을 챙겼기 때문도 있었다.
그 덕분인지 연회는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평 어르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허허.”
“오, 달관이 자네 왔구만. 바쁜데 와줘서 고맙네. 이 어찌 내가 축하받을 일이겠는가? 다 내 사위가 열심히 노력하여 일군 덕 아니겠는가! 으하하!”
“그렇지요, 암요! 축하드립니다. 송 공자님. 우리 평 아가씨를 대체 어느 분이 데려가실까 걱정하였는데, 이리 좋은 남편감을 만나 가시게 된다니 이놈이 눈물이 납니다요.”
“아, 아저씨!”
원체 거리낌 없이 어릴 적부터 평서란을 봐왔던 이들이 은근슬쩍 그녀를 놀리자 평서란이 당황하며 말렸으나, 이미 때는 늦은 듯했다.
티 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으나 슬쩍 웃음을 참는 듯한 송운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저씨도 정말…….’
하지만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평서란도 마냥 싫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역시 참으로 믿음직한 사내다. 성실함과 믿음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아버지께서도 늘 말씀하셨지 않은가?’
게다가 과묵한 듯하면서도 인사성이 바르고 사람이 모난 곳이 없고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안다. 함께 지내면서 은연중에 비치는 사람의 본성은 숨기려 해도 숨겨지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행이다. 이런 사내를 만나서.’
그런 평서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운은 정신없이 모르는 이들의 축하 인사를 받느라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지는 것 같았다.
하나 그조차도 어제 갔었던 그 자리를 생각하면 낫다 싶을 정도였으니…….
‘어젠 정말 지루했지.’
어제 있었던 자리는 예부상서에서 합격자들을 위하여 초청해 열린 연회였다. 하나 워낙에 격식을 차리는 자리인 데다가 대다수가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이야길 주고받는 통에 혼자가 된 듯한 느낌에 절차만 치르고 금세 자리를 빠져나온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곳은 평 소저도 있고…….’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꽤나 오래 머물면서 안면을 익힌 식솔들도 있었기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완전히 가족과는 같을 수 없으나 이런 평가와 함께라면 결혼을 해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소식을 받았을 가족들도 기뻐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참으로 행복하구나.’
第七章. 야습(夜襲)
그날 밤.
모두가 잠이 든 야심한 시각.
연회가 끝이 나고 시끌시끌하던 하루가 그렇게 마무리되어 가는 듯했다.
무언가 수상한 기척이 들려오기 전까진 말이다.
휘릭-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자그마한 소리는 오랜만에 편히 잠에 빠진 송운의 육감을 강하게 자극시켰다.
‘으음……. 무슨 소리지?’
그 소리에 잠에서 깬 송운이 더욱 자세히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사사삭-
여러 번 기왓장을 밟는 소리가 미세하게 그의 귓가를 울린다.
그러곤 주변의 고요했던 공기가 빠르게 요동친다.
언뜻 밖을 내다보니, 못해도 축초(丑初)를 넘기지 못한 시간이다.
한데 대체 누가 이 시간에 담을 넘는단 말인가?
분명 초대받은 손님은 아닐 터.
‘이 늦은 시간에 손님이 멀쩡한 대문을 두고 갑작스레 남의 집 담장을 넘을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든 송운은 급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예상이 맞기라도 한다는 듯 이제 막 담을 마지막으로 넘어오던 검은 복면을 쓰고 온몸을 검은 옷으로 뒤덮은 녀석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 그들의 눈빛에 어린 당혹감도 잠시.
그의 모습을 보고 이내 안정감을 찾았다.
‘어린 애송이가 잘도 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챘군.’
반면 송운도 누구냐고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을 듯했다. 그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다짜고짜 그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검을 들고 달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지. 이 세상에 복면 쓴 놈치고 착한 놈은 없다 했던가.’
남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감춰야 하는 이들.
그것이 더구나 야심한 밤에 움직인다면 그보다 확실한 답이 무에 있을까?
도둑이 아니라면 살수.
하나 단순히 도둑이라면 담을 넘다 걸리는 순간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간다. 그렇다면 답은 더 명확해진다.
송운이 이를 꽉 깨물었다.
‘우선 한 놈.’
파앙-!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던 송운이 자신의 뒤를 향해 날아오던 검의 옆 날을 발로 차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냈다. 하나 그 정도는 우습다는 듯 곧바로 다시 검을 쥔 채 여러 명이 옆으로 퍼지며 송운을 빙 둘러싼다.
그 사이 송운이 그들의 전력을 빠르게 읽어냈다.
‘하나, 둘, 셋…… 총 일곱. 생각보다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난 놈들이로구나. 제법 훈련이 잘되어 있어.’
검을 쥔 모습이나, 쓰는 실력이 단순히 뒷골목에서 노는 정도의 놈들이 아니란 소리다.
그렇게 놀라는 것도 잠시.
이내 숨 돌릴 틈도 없이 일제히 검을 찔러 들어온다.
몇 번에 이은 공격은 생각보다 날카로워 송운을 당황시켰다.
하나 그것도 일순간뿐이었다.
이내 놈들의 무위를 파악하는 걸 끝낸 송운이 그들 틈 사이로 끼어들었다.
‘저런 애송이 따위에게……!’
하나 복면 쓴 사내가 생각을 끝낼 새도 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크허억!”
“컥…….”
서걱-
하나둘씩 송운의 발차기로 인해 나가떨어졌고, 세 번째 복면인이 나가떨어지는 순간 그가 떨어뜨린 검을 받아든 송운이 거침없이 그들을 베어나갔다.
순식간에 남은 세 명의 머리가 붉은 꽃잎을 떨구며 흩날렸고 마지막 한 녀석을 베기 전 송운이 녀석에게 물었다.
“어디서 온 놈들이냐? 소속만 밝힌다면 목숨만은…….”
하나 송운은 그 말을 다 끝낼 수 없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독단을 깨문 것이다.
‘후우……. 독단이라니. 역시나 입을 쉽게 열지 않는구나.’
복면을 쓴 자들이 쉽사리 자신들의 소속을 밝힐 거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지만 귀찮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한 놈이 굳이 아니었어도 모두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한데 그 순간.
카아앙-!
옆 벽 너머로 무언가 엄청난 것들끼리 격돌하는 굉음과 함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뭐지, 이 어마어마한 기운은?’
* * *
방금 전 싸웠던 녀석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거대한 내력의 격돌이었다. 송운은 생각하기보다 먼저 급하게 반대 측 벽으로 뛰어갔다.
“이게 대체 무슨…….”
그런 그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가관이었다.
웬 복면인 한 명과 평목단의 검이 격돌 중이었기 때문이다. 캄캄한 밤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폭풍의 구름이 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듯, 그곳의 주변은 이미 초토화 상태였다.
‘평 의숙부님의 것도 어마어마하지만 상대편 녀석도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내력도 내력이나 눈에 보이는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그 실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작금의 송운도 어느 정도 높은 무위에 올랐다고 여겼으나 그 둘은 자신보다도 한 수 위의 실력자였다.
콰아앙-!
후우웅-
평목단과 복면인의 두 검이 마주칠 때마다 엄청난 내력이 부딪히며 주변 가득 뭉쳐있던 대기가 거대한 모래폭풍을 일으킨다.
그 파급에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쓰러지고 땅이 파인다.
그때, 그 폭풍 속으로 뛰어든 평목단이 빠르게 뒤로 빠지며 복면인을 향해 응축된 내기를 실어 검을 날리니 그 길을 따라 돌로 만들어진 바닥들이 울분을 토하듯 일어나며 마치 거대한 뱀이 스쳐 지나간 듯 상처가 남는다.
콰과과과광-!
실로 엄청난 힘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한 방을 보지 못했는지 차마 다 피하지 못한 복면인의 어깨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큭……!”
비록 완전히 피해를 입히진 못했으나, 이런 고수들의 싸움에선 그 정도만으로도 상대의 기운을 뺄 수가 있다.
‘과연 평가의 무공이로구나!’
송운이 듣기에 평가의 무공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와 이를 익히고 대성(大成)한 자는 그 내력까지 어마어마하여 천지를 뒤흔들고, 적의 백만 대군의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홀로 그 앞을 장악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것이 대대로 황제를 지켜온 평가의 저력(底力)이었다.
‘어찌 내기만으로 저 정도의 파급(波及)을 낸단 말이냐? 만약 나와 단둘이 붙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자 가슴에 섬뜩함이 몰려든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자신이 패할 것이다.
송운은 이곳이 북경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다른 곳도 아닌 대 명 제국의 수도다.
괜히 북경이 아닌 것이다.
세상은 넓고 고수들은 많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나 송운이 더 놀랄 새도 없이 그들의 싸움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었다.
한번 크게 힘을 내두른 평목단이 빠르게 검을 추스른 뒤 복면인을 향해 다시 한번 공격을 날렸으나 이번의 공격은 허공에서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