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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35화 (35/275)

제35화

처음엔 학사복을 걸치려 했던 송운은 차마 그 몰골을 한 옷을 입을 수 없었기에 가장 깔끔한 무복을 선택한 것이었고, 평서란 역시 자신의 무복 중 그나마 가장 단아하며 아름다워 보이는 무복을 선택한 것이다.

“하하……. 이거 참. 누가 보면 둘이 짜 맞추기라도 한 줄 알겠소.”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차라리 북경을 구경하시려거든 이편이 더 나을 듯합니다. 그럼 소저를 따라오시지요.”

평서란을 따라 처음으로 간 곳은 바로 자금성 오문 앞이었다.

첫날 왔을 땐 멀찍이서 지나쳤기에 제대로 보지 못하였으나, 지금 다시 보니 그 위용(偉容)은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다.

황금색으로 칠해진 기와들은 이곳이 바로 천자가 계시는 곳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할 만큼 번쩍였고,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에게서 마저 위엄이 흘러나오는 곳.

“이곳이 바로 이 명나라의 천자께서 계시는 곳이지요. 북경에 왔다면 가장 먼저 찾아와야 할 곳이 아니겠습니까?”

역시나 황궁에 몸담고 있는 아버지 때문인지, 그녀 또한 황궁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언젠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궁과 백성을 지킬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검이 될 것입니다.”

본디 황궁에 여인이 들어가려면 황제의 비가 되거나 궁녀가 되어야 하지만 유일하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무인이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선 당당함과 굳센 의지가 묻어 나왔다.

“꼭 그렇게 되길 빌겠소.”

“감사합니다. 어차피 이곳은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시지요.”

다음으로 온 곳은 저잣거리였다.

역시나 인구수가 가장 많은 수도답게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큰 장이 열리고 있었다.

“자, 싸요 쌉니다! 구경들하고 가세요!”

“값비싼 고급 비단입니다. 거기 아가씨 들러서 옷감 보고 가시는 것이 어떠하십니까요?”

“남만에서 구해온 새 깃털로 만들어진 장신구부터 다양한 희귀 장신구가 많습니다. 많아요!”

여기저기에서 구경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구호들과 사람들의 흥정하는 목소리가 그의 귀를 괴롭혔다.

한데 도통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송운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오늘은 이상하게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경직된 채로 신기하게 이곳저곳 둘러보는 그의 모습이 귀여웠던 것인지 평서란의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내려앉는다.

‘오 년 전에도 그러했듯이 의외로 귀여운 면이 있구나.’

그런 그녀에게 이번엔 송운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장터가 매우 활발하구려.”

“아무래도 수도에서도 가장 크게 열리는 저잣거리다 보니 사람들도 그만큼 많이 몰리는 것이겠지요. 간혹 서역의 신비한 물건들도 보일 정도이니 말입니다. 송 소협께서는 북경이 처음이라고 하셨죠?”

“그렇소. 어릴 적부터 평여현에 태어나 이 정도로 멀리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당연한 이치 아니겠소?”

‘물론 이번 생에서는…… 이지만.’

송운은 차마 붙이지 못한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살짝 찔리는 감이 없잖아 있었으나, 사실을 그대로 말해준다면 미친놈으로 오해받기 딱 좋을 터다.

대체 어느 누가 회귀를 믿는단 말인가?

게다가 북경에 온 것은 전, 현생 통틀어 처음이니 반쯤은 사실이 맞는 셈이다.

그런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평서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겠네요. 후후. 기왕 북경에 오신 것 마음껏 구경하다 가세요. 자고로 사람은 큰 곳에서 넓은 시야를 가져야 크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여 평 소저가 있어 참으로 다행이오. 나 혼자였다면 이 넓은 도시에서 길을 몰라 헤매고 다녔을 테니 말이오.”

화악-

진심이 담긴 듯한 그의 말에 평서란은 얼굴이 붉어져 옴을 느꼈는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성급히 말을 이어 나갔다.

“저, 저쪽에 가면 먹을거리를 파는 객잔이 있어요. 점심은 거기에 가서 먹으면 될 것 같네요. 제가 평소에 자주 다녀서 잘 아는 곳이 있거든요.”

그러곤 서둘러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닌가?

송운은 그녀가 왜 급작스럽게 서두르는지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따라가야만 했다. 집으로부터 꽤나 떨어진 곳까지 나왔기에 평서란이 없다면 길을 잃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평 소저가 왜 저러는 거지?’

라는 의문만을 가진 채.

第六章. 거인(擧人)이 되다

송운이 평가에 도착한 지도 어느덧 칠 주야가 흘렀다.

제집이 아니면 조금이라도 불편할 법하거늘 그런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하루하루가 편안하고 즐거웠다. 평가에 딸린 식솔들도 모두 친절하게 잘 대해주었고, 자신이 묵고 있는 거처 또한 주변이 생각보다 조용하여 공부하기에도 매우 좋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중앙 연무장을 제외하면 그다지 큰 소음도 없으니…….’

처음 이곳에 오기 전에는 무관의 집안이라 늘 시끄러울 거라 예상했건만 생각 외로 큰 연무장 주변을 제외하고는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임은 틀림없었다.

거기에 거처 바로 옆이 연무장인 덕에 매일 새벽 수련할 장소도 따로 마련되어있으니 참으로 편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새벽마다 하던 수련을 하지 못할 걱정도 없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 송운의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 것은 바로 약혼녀, 평서란과의 관계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북경이라는 곳이 괜찮은 도시라는 것도 알게 되기도 하였고…….’

딱 한 번 본 후, 몇 년 만의 재회인지라 그저 서먹할 것이라 여겼는데 의외로 반응은 색달랐다.

둘째 날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필요한 만큼의 공부를 마치고 나면 둘이서 북경을 구경하곤 했다.

아직은 서로 말로 표현은 하지 못하나, 그 감정이 마음속으론 조금씩 봄날에 수줍게 싹트는 꽃잎처럼 가슴에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의 시작은 부모님들끼리의 약조로 이루어졌을지언정 지금은 서로의 마음이 조금씩 통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일까?

‘게다가 서로 통하는 화젯거리도 충분히 있으니…….’

평서란은 이미 무관의 자식인 만큼 무공에 관심이 많았고 송운 또한 자신의 주변에 딱히 이야길 나눌 만한 무인이 없어 답답해하던 참이었다.

그런 둘이 공통의 관심사로 갖는 것이 바로 무공.

그렇다 보니 멀어 지려 해도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것이 이 둘 사이의 관계였다.

‘이대로만 지낸다면 향시 준비에도 문제없겠구나. 역시 아버지의 말씀을 듣길 잘했어.’

송운의 입가에는 어느새 흡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 * *

‘벌써 내일이면 향시구나.’

향시는 이때부터가 진짜 과거 시험의 시작이라고 하는 만큼 지금까지의 시험과는 달리 매우 엄격한 규율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 기간은 삼 년에 한 번씩 시행되도록 정해져 있으며 가장 기후가 좋은 구월(九月) 경에 행하여진다.

‘원시도 원시였지만 향시부턴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하겠구나.’

경쟁률도 경쟁률이지만 그 시험 기간 자체도 자그마치 일주일이란 시간에 거쳐 보는 것이다 보니 심력 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다.

오죽했으면 청대 문인인 포송령(蒲松齡)은 향시를 보는 자의 모습이 일곱 번이나 변한다고 했을까?

처음은 시험장에 들어갈 때는 걸인과 같으며, 신체검사를 받을 때는 죄수와 같고, 각자 독방에 들어갔을 때는 애벌레와 같다 한다. 또한 시험이 끝나고 났을 때는 머리가 멍하여 발을 흔들거리는 모습이 병든 새와 같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안절부절 작은 소리에도 놀라는 모습은 원(猿)과도 같다 하였다.

이 정도만 들어도 얼마나 향시가 사람의 정신력을 소모하게 하는지 충분히 알 만했다.

게다가 그 긴 시간을 버틸 체력까지 뒷받침이 되어주어야 치러낼 수 있는 것이다.

송운은 갖가지 드는 잡생각을 잊어내고자 고개를 내저었다.

‘그동안 해온 만큼만 하자. 하늘은 스스로 노력한 자를 배반하지 않는 법이니.’

그렇게 보던 책을 덮고선 홀로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던 송운에게 누군가 방문을 살포시 두드렸다.

똑똑-

“누구십니까.”

“저 평서란입니다. 송 소협.”

‘이 늦은 시간에 평소저께서 무슨 일이시지?’

의문도 잠시, 송운이 문을 열자 무언가 손에 꼬옥 쥐고 서 있는 평서란을 볼 수 있었다.

“이게 무엇이오?”

“그것이…… 부적입니다.”

“부적……?”

송운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평서란이 재빨리 그의 손에 쥐여주며 말을 이었다.

“어제 장에 잠시 나갔다가 눈에 보이기에……. 무언가 일을 치를 때 지니고 있으면 효용이 있다고 합니다.”

고개를 슬쩍 숙인 그녀는 송운이 더 이상 무언가 묻기 전에 마지막 말을 남기고 빠르게 사라졌다.

“시험 잘 보고 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다음 날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한 송운은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그러곤 자신의 침상 옆 잘 싸인 보자기 위에 고이 놓여있는 빨간색의 부적을 확인하고는 어제의 일이 생각나 웃음이 피식하고 흘러나온다.

‘참으로 볼수록 귀여운 여인이로구나.’

그렇게 송운은 몸을 정갈히 한 후 전날 깨끗이 빨아서 잘 개어놓은 학사복으로 갈아입고 방문을 나섰다.

“나오셨습니까.”

“아, 한 총관님.”

“아침 식사는 하시고 출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릇 배가 차야 큰일도 하는 법이지요.”

“이거 조용히 다녀오려 했는데…….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라니요? 저희 평가와 인연을 깊게 맺으실 분 아닙니까. 모쪼록 맛있게 드시고 시험 잘 치르고 오시길 바랍니다.”

그런 그의 배려대로 적당히 배를 채운 송운은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 평서란의 모습에 조금은 아쉽기도 하였으나, 어제저녁의 인사로 대신하였다는 걸 위안 삼으며 향시를 볼 시험장으로 향했다.

‘미리 평 소저가 길을 알려준 덕분에 가는 길을 헤매는 일은 없겠구나.’

한데 향시를 보러 가는 길 도중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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