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동안 모두가 함께 성장해 가고 있었다.
“하앗!”
송운은 두 동생이 수련하는 모습을 보며 흡족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둘 다 그사이 많이 늘었구나.’
그 둘은 무공에 있어서 확연히 장점을 달리했다.
송후는 무공에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 특유의 집중력과 인내력으로 줄곧 잘 따라오면서 그중에서도 권 각 술에 능했다. 반듯한 자세에 제법 묵직한 힘이 실려 한 번 맞는 것만으로도 큰 충격을 가할 정도였다.
반면 송하는 어릴 적부터 보여준 대로 무공에 재능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속도에 있어선 그 또래 아이들 중에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날랜 덕에 그것이 장점이 되어 속도만큼은 송운도 놀랄 만큼 뛰어났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두 형제가 학문에 소홀한 것도 아니었다. 송운 본인도 그러하지만 송후도 조만간 치러질 원시를 보러 갈 테니 말이다.
송운은 푸르게 빛나고 있는 아침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평화롭게 새들이 날아다니고 지저귀며 그런 아래 가족들은 서로를 챙기며 행복해한다.
그것이 바로 과거 송운이 그토록 원하던 이상적인 생활이 아니던가?
혼자가 아닌 가족의 품.
힘들면 기댈 곳이 있고 행복을 나눌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곳. 그렇기에 더더욱 2년 앞으로 다가온 화재 사건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내 가족의 행복을 깨려 하는 자가 있다면 그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송운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주먹은 단단한 바위보다도 더 견고해 보였다.
그러곤 그가 두 동생을 향해 입을 연다.
“벌써 아침 식사 시간이구나. 오늘은 이만하고 가자꾸나.”
“응! 오빠!”
“예, 형님.”
* * *
“운아.”
“예, 아버지.”
오랜만에 아들과 아버지 단둘이 차를 들고 있던 도중 송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가 벌써 올해로 약관이구나.”
호록-
차를 들이켜던 송운은 아버지의 말속에서 무언가 느껴졌는지 고개를 들어 송악을 쳐다보았다.
“너희 둘 나이도 꽤 찼으니 슬슬 네 혼인을 추진하려고 한다.”
혼인.
벌써 그럴 만큼 시간이 흘렀던가?
송운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약혼녀, 평서란을 기억해냈다.
오 년 전 단아한 듯하면서도 당찼던 소녀.
차가울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농(弄)도 먼저 건네줄 정도로 여유까지 지닌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그려졌다.
더군다나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까이 대화를 나눈 여인이었다.
한데 그걸 어찌 잊을까?
어느새 본인도 모르게 송운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는지 그걸 본 송악의 얼굴에도 슬며시 미소가 피었다. 하나 언제 그랬느냔 듯 이내 그 미소를 지우고선 말을 이어 나간다.
“우선 그리하려면 너도 무언가 좀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 북경에서 꽤나 명망(名望) 있는 가문이니 그리해야 그쪽 가문에서도 어깨를 펼 터.”
그 말인즉, 향시(鄕試)를 보라는 말이다.
송운은 그에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년에 치러질 향시를 준비 중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더더욱 잘 되었구나.”
향시.
이 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거사라는 학위가 주어진다.
그때부터가 진짜 과거 시험이라고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향시는 삼 년 전에 볼 수 있었다.
하나 원시를 치른 지 일 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미룬 것뿐. 그동안 학문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꾸준히 닦아왔기 때문에 걱정은 그다지 되지 않는 송운이다.
“이번에도 원시 때처럼 한 번에 붙어오겠습니다. 아버지.”
든든한 아들의 대답에 더욱 흡족해하던 송악이 한마디 더 거들었다.
“큼. 하나 운아. 사람은 항상 자만해서는 아니 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였어.”
“네. 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
“한데 운아.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말이다. 향시를 치르기 전에 북경에 한 번 들르는 것은 어떠하냐?”
나긋한 송악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던 송운의 눈빛에 의문이 서렸다.
“예?”
“향시에 합격하고 나면 회시를 치르기 전에 곧바로 식을 올릴 예정인데 그 전에 서란이와도 좀 친해져야 하지 않겠느냐? 또한 본디 사내는 넓게 보아야 많이 익히는 것이니라.”
송운은 송악의 말에 잠시 당황하는 듯하였으나 이내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북경이라…….’
어차피 시험을 보는 곳이 북경이기에 가긴 가야 한다. 다만 아직 시간이 남긴 했으나 그사이에 혹여 화재 사건이 터진다거나 무슨 일이 터질까 그것이 걱정되는 것이다.
하나, 아버지의 말씀도 일리가 있다.
아무리 약혼 사이라곤 하나, 둘이 알 시간이 너무 적지 않았던가?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중요한 일.
‘그동안 큰일은 없겠지. 하야와 후도 있고…….’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송운이 이내 고개를 다시 주억인다.
“네. 하면 그리하겠습니다.”
“그래. 이미 평가에는 연락을 취해두었으니 따로 머물 곳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부담 갖지 말고 많은 것을 담고 오거라.”
第五章. 북경
송운은 아버지와의 대화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북경으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어차피 떠날 길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출발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겼고 그에 송악도 동의했기 때문이다.
‘대충 짐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송운이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짐을 쭉 훑어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현생으로 돌아온 이후 집을 떠난 길은 모두 누군가와 함께했기 때문일까?
본디 전생에도 혼자 이곳저곳을 떠도는 걸 즐기는 편이었기에 오랜만에 집을 나선 여정은 의외로 새로운 설렘을 가져다주는 듯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홀로 여행이구나.’
가족들을 두고 가는 건 마음이 조금 놓이지 않았으나 어차피 향시를 치러야 했기에 떠날 길이었다. 게다가 이젠 제법 동생들도 무위가 어느 정도 올랐기에 걱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 것이다.
“운아. 정말 혼자서도 괜찮겠니?”
그런 송운의 모습을 되레 걱정스레 지켜보던 예령이 말을 꺼냈다.
“예.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익히 이전에도 조광이와 단둘이 타지에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제 걱정은 접어두세요.”
송운이 미소를 지으며 그런 예령을 달랜다.
어찌 걱정되지 않을까?
자식을 둔 어머니라면 당연한 마음일 터.
하나, 송운은 이미 무공 수준이 어지간한 성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되레 호위무사가 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평가는 북경에서 제일가는 무가다.
가는 길만 무사히 잘 도착하면 딱히 위험이라 할 것도 없다.
“하면 짐이라도 두둑이 챙겨가는 것은 어떻겠니?”
“자고로 먼 길을 떠날수록 손발은 가벼운 것이 좋다 합니다. 어머니. 가는 길 내동 서신 하겠습니다.”
그런 자신의 말에 예령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서신 말고는 연락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예령을 송운이 안아 주었다.
예령의 키도 여인치고 작은 편이 아니었건만 어느새 아들이 훌쩍 자라 그 품이 제법 든든하다.
“어릴 땐 늘 내 품에 안기던 것이 언제 이리 컸을까…….”
마치 어미 새가 아기 새가 처음으로 날개를 펼치는 것을 걱정하듯 바라보는 예령의 마음에 송운은 되레 가슴을 굳게 폈다.
“부인. 슬슬 운이는 가야 하지 않겠소? 그만 보내줍시다. 다시 돌아올 아이를 붙잡고 있는 것도 운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 아니오.”
그를 지켜보던 송악이 예령의 가녀린 어깨를 조심스레 감싸 안았다.
“그래. 내가 너무 주책없었구나. 우리 큰아들. 조심히 다녀오너라. 이 어미는 널 믿고 언제나 사랑한단다.”
“예, 어머니. 아버지. 건강히 지내고 계세요. 그리고 후야 너도 곧 있을 원시 잘 치르길 바라마. 하야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있어야 한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론 자랑스레 쳐다보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송운은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간만에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구경하고…… 일석삼조로겠구나.’
송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배어나고 있었다.
현생에서의 최초로 세상과 단둘이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 * *
하남에서 하북, 하북에서 북경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하북 안쪽에 위치한 것이 북경이기에 다른 성에서 오는 것보다야 훨씬 빠르다고 볼 수 있다.
아직 향시는 한참이나 남아 있으니 천천히 구경하면서 가도 될 정도의 거리다.
송운은 일부러 큰 도시보다는 작은 마을 위주로 길을 택했다. 그편이 새벽에 무공 수련을 할 만한 곳도 찾기 쉬웠고, 사람들로 많이 북적거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것이 굳이 지난번 정주로 갔던 길을 버려두고 택한 이유였다.
“꺄르륵!”
“얘들아 저기로 모여랏!”
들르는 마을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활기참이 그를 맞이한다.
‘이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그래도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한 게로구나.’
주변 자연 풍경을 자연스레 구경하며 무공 수련과 학문을 병행(竝行)하는 생활을 하며 여행에 익숙해져 갔다. 물론 중간마다 집으로 서신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을까?
어느새 고안(固安)을 거쳐 북경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확연히 다른 도시들과는 차이를 보이는 수도 북경.
정주나 남창(南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그만큼 사람들로 붐비었다.
‘허……! 괜히 수도가 아니로구나.’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넘치는 사람들과 상가들.
그리고 곳곳에 세워진 객잔들은 여행하기 좋아하던 송운도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이었기에 더욱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그리고 이 커다란 도시의 중심(中心)엔 황제가 살고 있는 자금성(紫禁城)이 빛나고 있었다.
‘정주도 꽤나 큰 곳이라 여겼거늘…….’
그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곳.
정말로 발 디딜 곳 하나 쉬이 보이질 않을 정도의 인파는 그를 저절로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송운은 평가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선은 목적지에 당도했으니 구경을 하더라도 그다음이 맞는 것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