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흘러가는 흐름에 당황한 그는 더 이상 재미를 두었다간 자신의 모가지가 떨어져 나갈 거라는 생각이 그를 끝없이 덮쳐왔다.
‘이익, 이놈이 감히 나 광탑귀마를 농락하려 들어? 내가 저런 애송이 따위에게 파적마권을 쓸 줄이야! 크으.’
그의 몸이 들끓는 분노로 인해 부들부들 떨려온다.
처음엔 단순히 어린아이일 뿐이니, 전력을 다해 싸울 필요성이 없다고 여겼다. 하여 본 무공인 파적마권을 뒤로 한 채 싸워나갔으나, 자신의 오판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윽고 광탑귀마의 주먹 꽉 쥔 두 손이 점점 사람의 것이 아닌 것처럼 검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아도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지옥 악귀의 것처럼 보이는 그 손이 송운의 시야에 잡혔다.
‘드디어 내보이는 것인가?’
또 한 번 이는 공포가 송운을 뒤덮었다.
그는 자신의 무공을 모르나, 송운은 알고 있다.
한번 휘둘릴 때마다 사람의 목숨이 몇 개씩 처참하게 사라져갔던 악공(惡功)이다. 마치 악귀를 보는 듯했던 그 손짓과 사람들의 괴성은 지금도 생생하게 그의 머릿속과 눈, 귀에 전해져 온다.
그때의 피에 물든 생사(生死)의 전장 속에서 검붉게 타오르던 죽음의 손짓을 어찌 잊으랴?
‘하면 이제부터가 진정한 싸움이 되겠구나.’
꿀꺽.
송운은 조금씩 우세해지던 기세에 풀어지려던 마음을 다시 단단히 붙잡았다. 광탑귀마가 본 무공을 펼친 이상, 지금처럼 쉽지만은 않을 게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송운이 서서히 남은 선천지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싸우는 동안 싸움에 정신 팔린 그를 유인해 내어 마을과는 제법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왔기에, 주변에 해를 입을 만한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제부터가 진짜다.’
여태껏 삼분지 일도 되지 않는 양으로 싸웠다면 이제는 죽기 살기로 자신의 모든 내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대로 하기로 마음먹은 녀석을 이기는 건 쉽지 않을 터.
아니, 죽이긴커녕 자신이 목숨을 잃고 그 뒤로 무고한 사람들도 모두 죽어 나갈 것이다.
게다가 송주촌 또한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지 않은가?
더 나아가 무림 전체를 언젠간 피로 물들일 놈이다.
그렇게 되면 그토록 소중히 아끼는 가족들까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
더이상 무고한 피를 놈의 손에 묻히게 할 순 없다.
영 수가 없다면 동귀어진(同歸於盡)이라도 펼쳐야 한다.
송운은 이를 질끈 깨물었다.
혹여 죽더라도…….
‘나 하나로 끝나야 한다.’
번뜩-!
“죽어라, 이놈!”
그러곤 이내 맹랑히 찌르며 들어오는 광탑귀마의 시선과 마주한 채 송운도 함께 몸을 날렸다.
파아앗-!
* * *
송운은 본격적으로 달려드는 광탑귀마의 손놀림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파파파팍-!
퍼버벅-!
‘역시 광탑귀마로구나!’
지금의 것이 맹수들의 싸움이라면, 아까의 전투는 초식동물들의 싸움에 불가했다.
점점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광탑귀마는 재빠르면서도 난폭해진다.
하나 그렇다 하여 송운도 그걸 곧이곧대로 맞아줄 생각은 없었다.
‘전력을 다해주마.’
그 순간, 광탑귀마의 검붉은 주먹이 송운의 명치를 노리며 달려들었고, 다행히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피했으나 계협(季脅)을 스쳐 지나가면서 화끈한 통증이 스며들었다.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자상을 입은 것처럼 피가 옷을 적시며 흘러나왔다.
“크윽!”
마치 불에 덴 듯 화끈거리는 그 느낌에 송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에 어깨를 쭉 펴며 기세등등해진 그가 소리를 지르며 그 틈을 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클클. 애송이 녀석. 뛰어봤자 내 손안이로구나!”
그런 송운의 가슴팍까지 파고든 그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려 했으나,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그것을 즐길 새도 없이 송운이 그의 복부를 향해 선천지기를 끌어모은 무릎으로 차올린 것이다.
빠각-
“끄, 끄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땅으로 곤두박질친 그를 향해 송운이 비릿한 웃음을 내비쳤다.
“이 정도 수도 두질 못하면서 누가 누구의 손안에 있단 말이오?”
“네…… 네 이노오옴!”
그 웃음이 마치 비웃음으로 들렸는지, 광탑귀마의 눈이 이내 시뻘게 지면서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한낱 애송이에게 자신이 맞았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도 않았을뿐더러 그의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이다.
이성의 끈을 놓은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광마(狂魔)에 휩싸인 짐승일 뿐.
그에 반면 송운은 이성을 차린 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무아지경에 빠져 점점 더 촘촘한 그물처럼 그를 가두어 나갔다.
마치 성좌처럼 하나의 큰 틀을 만들어내며 한가운데 광탑귀마를 두고 송운은 점점 더 격하게 부는 바람처럼 거세게 달려들었다가도 때로는 고고한 학처럼 부드럽게 그를 몰아갔다.
잠시나마 그의 독무 무공에 다시 우세해지는 듯 보였으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권 각 술의 화려한 춤사위 아래 온몸을 두들겨 맞던 그에게 송운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마지막 한 방.
빠각-!
그의 경부(頸部)를 향해 송운의 발이 정확히 꽂혀 들어간 것이다.
털썩-
“끄, 끄르륵……. 네…… 이노…… 커헉……!”
광탑귀마는 온몸이 피로 물든 채, 피를 연거푸 토해내며 쓰러졌다.
한때 화려하게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의 마지막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초라하고 비참했다.
“허억, 허억…….”
그 앞에 송운도 더 이상 서 있을 기력 따윈 없었는지 거친 숨을 토해내며 털썩 주저앉았다.
第四章. 세월
조용하고 한적했던 시골 마을.
그곳에서 벌어진 한밤의 무자비한 살인극은 송운이 광탑귀마를 이기면서 마무리 지어지는 듯했다.
누가, 왜, 어떻게 된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아니 그럴 거라고 여겼다.
한데 은연중 누군가 광탑귀마의 정체를 알아챘고 소문이 나면서 그들 사이에선 그 광탑귀마를 쓰러트린 이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나 단지 쓰러뜨렸다는 것을 빼고는 도대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당사자인 송운이 입을 닫고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마을 안에는 그렇게 흉흉한 소문이 떠돌아다니며 궁금증만 점점 증폭되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 * *
집으로 돌아온 송운은 그 사건 이후로 자신의 무공에 대해 꽤나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광탑귀마를 이겼어.’
전생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 벌어진 것이다.
비록 그의 무공이 극에 이르지 않은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일 테지만…….
열일곱의 나이에 광탑귀마란 마인을 제쳤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임은 분명하다.
‘내 무공이 뛰어나서인가?’
송운은 스스로 자문(自問)했다.
아니다.
분명 이기긴 했다.
하나, 그 자문엔 좀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놈이 조금만 덜 방심했고 극마에 이른 상황이었다면……. 내가 죽었겠지.’
송운은 그때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의 온몸에서 느껴지던 마기는 그를 충분히 긴장하고도 남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결코 자신의 무공이 뛰어났던 것만은 아니었다.
송운은 잠시간 끓어오르는 그 마음을 뒤로한 채 이윽고 다시 고쳐먹었다.
지금껏 해왔던 수많은 싸움 중 가장 치열했다.
한데 놈은 아직 천하십대고수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말인즉.
‘저만한 놈들은 작금의 무림에 차고 넘친다는 말일 테지.’
그 일이 있은 지 약 달포가 다 되어가건만 마치 어제의 일인 것처럼 그 느낌이 온몸에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광탑귀마의 경지만 해도 만만치 않은 상대임은 분명했다. 무림에서 결국 실력과 운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하나 그 종이 한 장이 생과 사를 가르는 것이다.
이번 싸움도 분명 놈이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그 싸움에서 죽임을 당한 건 광탑귀마가 아닌 본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안주해선 안 된다. 아직 멀었어.’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송운은 순간 나태해지려 했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자신감과 자만심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자만심에 물들면 본인이 광탑귀마가 되지 않을 거란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이미 숱하게 겪어 보지 않았던가?
방심이라는 놈은 뛰어난 고수도 죽음으로 몰아가는 덫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더 열심히 수련하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송운은 또다시 한번 속으로 되뇄다.
다음 날 아침.
가족들 모두가 모인 아침 식사 자리.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모였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가가. 역시 밥은 가족 모두 함께 먹을 때가 더 맛있지요? 호호.”
예령이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밥을 퍼준다.
한 상 다리 부러질 만큼 놓인 음식은 송운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묵묵히 밥을 들던 송악이 입을 뗐다.
“다녀오느라 고생했구나. 어디 다치거나 아픈 곳은 없는 것이냐?”
“예. 아버지. 조심히 잘 다녀왔습니다.”
“그래,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오늘 네 어머니가 특별히 널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 많으니 많이 먹거라.”
“예. 맛있게 먹겠습니다.”
“오빠 많이 많이 먹어!”
“하하. 그래 하야 너도 많이 먹으렴.”
그렇게 오랜만의 가족들끼리 함께하는 식사 자리가 화목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 * *
세월은 언제나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간다고 했던가?
어느덧 계절과 옷차림이 여러 번 바뀔 무렵.
송운은 약관의 청년이 되었고 그사이 훨씬 더 자라 칠 척을 조금 넘는 키와 떡 벌어진 어깨에 잘 잡힌 근육들까지 모든 것이 누가 보아도 건장한 청년의 모습을 띠었다.
일반적인 학사들의 여린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무공은 일취월장하여 초절정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그동안 모아 온 천의선천기공은 차곡차곡 쌓여가 눈덩이 불어나듯 불어나 그 기반까지 탄탄해진 상태였다.
게다가 송운뿐만 아니라 송후와 송하의 성장도 만만치 않았다.
둘은 나이가 어린 탓에 아직 내공은 부족하나 그 실력만큼은 일류고수와 엇비슷하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