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위험하다!’
자신조차도 저렇게 날뛰기 전까진 움직임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 할 만큼의 실력을 지닌 자란 소리였다.
‘설마, 초고수인가?’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며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통인지 사방팔방으로 튀는 더럽고 짙은 마기는 그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그것은 송운의 몸을 순간 경직시키게 만들었다.
언젠가 분명 마주친 적이 있는 익숙한 것이었다.
과거에 느껴보았던 그것.
바로 마공이었다.
콰앙-!
그 순간 굉음을 내며 송운이 머물던 집으로 무언가 뛰어 들어왔고, 무자비하게 뚫고 들어오던 무언가를 송운이 다급히 뛰어나가 막아섰다.
파바밧!
콰앙-!
그 무언가와 송운이 서로 부딪히면서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먼지가 수북이 내리며 멈추어 섰다.
번뜩-!
광기와 살기에 잔뜩 물든 그 시뻘건 눈은 송운과 마주침과 동시에 놀라움에 휩싸였다.
‘뭬, 뭬야? 이 녀석은?!’
* * *
귀적삼은 오랜만의 살육 맛에 눈이 돌아갈 대로 돌아가 있었다. 끈질기게 쫓아오던 구파일방의 눈이 없으니, 그 무엇도 자신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하여 막무가내로 마을을 휘저으며 살육에 도취되어 있었다.
아무런 힘 없이 픽픽 쓰러지며 괴로워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눌러두었던 광기가 폭발한 차였다.
그러던 도중 자신의 일격이 단 한 방에 막힌 것이다.
도대체 이런 시골 마을에서 대체 누가 감히 자신의 손속을 막는단 말인가?
이윽고 그의 눈에 긴장한 기색이 감돌기 시작한다.
아무리 자신이 그들의 눈과 귀를 따돌렸다고는 하나, 구파일방은 무시할 놈들이 아니었다.
자신을 무려 이십여 년이나 은거하게 만든 놈들 아니던가?
혹여나 자신을 느슨하게 만들어 둔 후, 몰래 투입시켜 놓은 고수일 수도 있다.
‘설마 이 녀석……. 구파일방에서 보낸 것인가? 내가 띄워놓은 덫에 걸리지 않고 먼저 날뛰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것이야? 허, 내가 너무 방심했구나!’
그는 놀란 기색을 감추며 자신의 앞을 막아선 이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니지. 잠깐. 아무리 보아도 구파일방의 징표 따위는 없는데? 분명, 기운은 선하나 그놈들의 기운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렇게 한참 동안 송운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훑어본 그의 입가엔 이내 비릿한 웃음이 걸린다.
자신을 막아선 녀석이 기껏해야 지학을 갓 넘긴 소년이라는 것과 구파일방의 징표 따위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크크. 어린아이가 무공을 제법 익힌 듯하구나. 하나, 무공을 익혔다 한들 아이가 얼마나 뛰어나겠느냐? 그저 운으로 내 한 수를 막은 것뿐이렷다.’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었으니, 한 수 정도야 그럴 수 있다고 치부한 것이다.
그는 혹여나 모를 구파의 끄나풀이 주변에 있을까 걱정한 것뿐이라며 스스로를 안정시키며 움츠렸던 어깨를 당당히 폈다.
“끌끌, 보아하니 어린 녀석이 제법 무공을 익힌 듯하구나. 본 좌는 광탑귀마라 한다.”
거만하게 콧대를 세우며 말하는 그의 말에 송운은 순간 깜짝 놀랐다.
자신의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뭐라? 저놈이 광탑귀마라고?’
광탑귀마가 누구던가?
먼 과거에서부터 이름을 날린 마두로써, 그 행적이 무척이나 좋질 않아 무당파와 개방이 연합하여 펼친 추적 작전에서조차 벗어나 모습을 감추었던 초고수가 아니던가!
송운은,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후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십여 년 후.
마교대전이 발발하자 광탑귀마는 마교 측의 진영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몇십 년간 정파에게 쫓긴 것이 원한이 되어 마교에 제 발로 기어들어 간 것이다.
마교 측은 가뜩이나 손이 모자라는 지경이었기에 자신들과 비슷한 마공을 쓰는 그를 받아들였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마교의 십대마왕 중 하나가 되어 탁탑귀왕(卓禢鬼魔)이란 별호까지 달았다.
그러곤 강호로 뛰쳐나와 쫓기면서 겪은 설움을 모두 토해낼 작정인지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며 많은 고수들을 찢어 죽인, 그야말로 대 마두였다.
그 당시 이제 막 무림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송운은 숨을 죽인 채로 고수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천하십대고수라 불리는 고수들조차 찢어 죽임당하는 판에 자신이 끼어들 곳이 어디 있었을까?
그때의 처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의 무림은 그야말로 대 환란(患亂)의 시대였다.
한데, 마교 대전 당시 천하십대고수를 둘이나 제 손으로 찢어 죽였던 그 탁탑귀왕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 자가 어찌하여 지금 이곳에 있단 말인가?’
송운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광탑귀마를 쳐다보고 있자니, 그때의 공포감이 다시 이는 듯한 압박감이 들었다.
그런 시대에 이름을 드높인 마왕이 바로 코앞에 서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 미래의 광탑귀마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전대부터 이름을 날리던 초고수였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터. 자세히 다시 보니 그때보다 조금 더 젊을 뿐이지, 그 시뻘건 눈과 광기에 물든 눈빛은 여전한 듯 보였다.
‘비록 극마(極魔)를 넘어서 최고의 마왕으로 이름을 떨치던 그때 당시만큼은 아닐지언정, 지금 내 눈앞의 광탑귀마도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일 테지.’
그 긴장감에 송운의 불끈 쥔 주먹에서는 땀이 절로 배어 나왔다.
꿀꺽-
그런 그의 상태를 알아챈 것인지 광탑귀마가 웃기 시작한다.
“클클클. 아이야 내가 두려우냐? 한데 나는 아무리 어리다곤 하나 너의 그 무공 실력이 몹시 탐이 나는구나. 키우면 제법 쓸 만하겠어. 내 세상에 나온 이후 처음으로 만난 쓸 만한 재목이로다. 하여 내 특별히 너에겐 자비를 베푸마. 내 제자가 되거라. 어떠하냐?”
하나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송운은 딱 잘라 거절했다.
“싫소.”
그런 송운의 모습에 당차 보이는 것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는지 그가 한 번 더 제안을 던진다.
“만일 네놈이 내 제자가 된다면 목숨을 살려주도록 하마. 거기에 천하의 모든 부와 영광을 쥐게 해주겠다. 이래도 싫으냐?”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요.”
“크, 크하하하하! 어린놈이 그 배포가 아주 두둑 하구나! 크게 될 놈이렷다. 내 마지막으로 물으마. 나는 인내심이 그리 좋은 인간이 아니다. 하나 네가 마음에 들어 이리 묻는 것이야. 나는 내 것에 대해선 관대한 놈이거든. 정녕 내 제자가 될 생각이 없는 것이냐? 만일 이번에도 아니라면 나는 네놈을 찢어 죽일 것이야.”
계속 웃고만 있던 그 눈빛이 싸늘해지면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살기가 광탑귀마의 몸을 감쌌다. 그 모습은 마치 살인귀와 같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하나, 이번에도 송운은 칼같이 제안을 끊어냈다.
좀 전까지도 더럽고 추악한 그의 손에서 얼마나 많은 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을지, 상상만으로도 화가 날 지경이었다.
“나는 악인의 꼬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소. 다른 이를 알아보는 게 좋을 거요. 더러운 악인의 꼬리가 될 바에야 죽음을 택할 것이니.”
비록 전생에도 송운은 정사 중도 지간의 길을 걷던 무인이었으나, 결코 옳지 않다 싶은 일은 하지 않았다.
되레 사파와 마인들과 싸워나갔던 그다.
‘그런 내가 감히 네놈 따위의 제자가 될 성싶으냐?’
그 확연한 대답에 광탑귀마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한다.
“네 이노오옴! 감히 나 광탑귀마의 제안을 거절하고도 무사히 살아남을 성싶더냐? 내 오늘 너의 뼈와 살을 발라 내장까지 모조리 들어낸 다음 너를 까마귀의 먹이로 산 중턱에 버려주마!”
* * *
분노에 휩싸이며 달려든 광탑귀마의 모습에 송운이 깜짝 놀라 몸을 피하며 그의 주먹을 흘리듯 보내며 그의 명치를 향해 내려찍었다.
“이익! 이놈이!”
아슬아슬하게 들어간 송운의 공격은 빗나가긴 했으나, 그 역시 광탑귀마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악명을 떨치던 자신이 저런 애송이의 주먹을 허용하다니? 그의 표정은 점점 붉으락푸르락 해져갔다.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대로 놈의 공격은 피하고 사혈만 내가 정확히 가격할 수 있다면야…….’
이길 수 있다.
게다가 천의선천기공과 질풍신공의 선으로 이어지는 묘리가 송운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바로 모든 무공에는 그 길에 점과 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무공이 시초 부분에 점과 후에 갈 길의 점이 미리 눈에 보이면서 선이 그어진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 먼저 피할 수만 있다면 문제없을 터.’
광탑귀마의 무공 또한 선으로 이어져 있었으나, 그것을 이어주는 끈끈함이 부족했다.
본인도 주체할 수 없는 광기에 휩싸여서일까?
본디 그 점끼리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하거늘 그것이 모자란 것이다. 그렇게 선이 흐트러지다 보니 비록 내력이 높고 무공의 경지가 높다 하여도 그 무공이 지닌 본래의 힘을 온전히 갖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자신의 질풍신공은 선천지기를 이용한 천의선천기공 탓인지 서로가 아주 끈끈하게 잘 매여 있다.
이 정도라면 상대가 초고수일지라도 충분히 싸워볼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이다.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승리한다.’
게다가 그 점들을 보면 그 움직임이 눈에 보인다.
싸움에 있어서 상대방의 수를 미리 읽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전력이 생긴다는 말과 동일하다. 흔히 두는 장기판도 결국은 내 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전략까지 같이 보아야 끝내 승리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송운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지어졌다.
“감히 날 상대하며 웃음까지 지을 여유가 있단 말이더냐? 오거라!”
그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해 보이는 광탑귀마는 이내 미친 듯이 송운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파바밧-!
먼저 그의 손아귀가 송운의 어깨를 향해 날카롭게 파고들었으나 아슬아슬하게 빗나가며 허공을 부웅 갈랐다. 이내 광탑귀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송운이 빠르게 자세를 바꾸며 치고 들어오자 그는 놀란 눈빛을 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얼마간 손속을 주고받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