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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29화 (29/275)

제29화

이미 강산이 두 번은 변하고도 남을 시간.

그 끔찍한 지옥과도 같던 세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자신을 쫓을 자는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을 미친놈처럼 웃기만 했다.

“크, 크하하하하!”

푸드드드득-!

찌찍찍!

그런 그의 비릿한 웃음소리는 온 동굴 속에 울려 퍼졌고, 얌전히 잠들어 있던 쥐들과 박쥐들이 그 소리에 놀라 도망친다.

‘쫓던 놈들도 사라졌겠다. 참으로 오랜만에 제대로 회포 한 번 풀 수 있겠구나. 그러곤 네놈들에게 복수도 해야겠지? 기다리거라 세상아. 이 광탑귀마 귀적삼이 네놈들을 심판해 줄 터이니! 으하하하하하!’

그는 붉게 물든 눈을 번들번들하게 빛내며, 광소를 크게 터트리면서 동굴을 빠져나갔다.

귀적삼이 떠난 후, 동굴에 남은 건 타다만 잿더미 하나뿐이었다.

第三章. 전력을 다하다

“운 공자님. 정말 진심으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또 죄송합니다. 이 깊은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오는 내내 송운은 양조광에게 저 말만 몇십 번을 듣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 동문의 일이 아니었나? 오히려 더 도움이 되질 못 해 미안한 쪽은 나야. 너무 그러지 마.”

재차 말을 하는 그를 보며, 송운은 섭섭함도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저리 감사와 사과만 계속하니 되레 자신이 미안해질 판이었다.

같이 길을 떠나며 들려준 양조광의 얘기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은 덕에 돈을 들이지 않고 학문을 익힐 수는 있었다.

하나, 그 외의 것들은 대부분 그가 해결해야 했다.

아니 사실 송악이 도와준다고 하였으나 그 이상 은혜를 입는 것은 불가하다고 양조광이 극구 사양한 것이다.

하여 근근이 시간이 날 때마다 잡다한 일들로 벌어둔 돈들은 모두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긴 채 노환이 든 어머니의 약에 쓰느라, 모은 돈이라곤 단 몇 푼이 전부였던 것이다.

‘참으로 효성이 깊은 아이로다. 나와는 비견(比肩)할 수조차 없구나.’

송운은 그의 효성에 감탄하였다.

그리하면서 단 한 번도 자신에게 힘든 내색한 적이 없는 아이가 아니던가?

그저 씁쓸한 웃음만이 입에 맴돌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부모님께 잘하자.’

그렇게 걸은 지 한참 지났을까?

송운의 눈앞에 작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와 가는군요.”

그렇게 말하는 양조광의 말투 속에는 조금 들뜨기도 하면서 걱정도 한가득 어려 있었다.

“저기 보이는 마을이야?”

“예,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야 합니다.”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자, 양조광의 발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아무래도 홀로 집에 계신 어머니가 걱정되는 마음 때문일 터.

조금 더, 더 가까워질수록 그 걸음이 빨라진다.

하여 더불어 송운도 발걸음에 속도를 붙인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번째 걸음이 땅에 닿기도 전에 걷는 속도가 빨라지는 양조광의 발길을 따라가 보니 마을 내에서도 가장 허름해 보이는 집이 보였다.

“어머니!”

양조광이 어머니를 외치며 달려간다.

삐걱-

그에 오래되어 제대로 닫히지도 못한 문이 녹슨 쇠의 마찰음을 거칠게 내며 열렸고, 곧이어 반 백발의 여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모진 세월의 그림자가 그득 드리워져 있었다.

얼굴 가득 깊게 파인 주름들과 퀭한 눈 밑, 그리고 메마른 입술은 더욱더 여인이 힘들어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콜록 콜록……. 조, 조광이냐……?”

힘이 없이 늘어지는 목소리였으나, 자신의 아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고 있었다.

“예, 예. 어머니. 저 조광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어서 제가 가서 의원을 불러오겠습니다.”

“괘, 괜찮……. 콜록!”

양조광은 괜찮다며 만류하는 어머니를 성급히 방안으로 모신 뒤, 송운에게로 향했다.

여인은 마른기침을 내뱉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운 공자님. 도착하자마자 죄송합니다. 누추하오나 방 안에 들어가 계시면 금방 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뒤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송운은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조광이 숨을 헐떡이며 의원을 데리고 집에 도착했다.

같이 온 의원은 나이가 제법 있어 보였는데, 예전부터 어머니를 돌봐주신 의원이라고 했다.

흰 수염을 곱게 기른 그는 옷매무새가 단정한 것이, 조금 멀리 있음에도 약방에 가면 맡아 볼 수 있는 향들이 그의 주변을 은은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내 진료해 본 결과 그저 노환이 깊어진 것이야. 원체 심신이 약하니, 노환에도 견디기 힘든 게지. 하나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네 효성 덕인지, 그래도 요즘은 기침도 덜하시니.”

그러곤 이내 약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적어주며 그것을 양조광의 손에 꼬옥 쥐여주며 말했다.

“안정이 제일 중요하다. 노환에는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지. 알아들었느냐? 안정 또 안정이 최고이니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송운도 확실히 노환 같아 보여 고개를 주억였다.

‘대충 살펴보니, 어디에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의원 말이 맞는 듯하구나.’

의원이 돌아간 뒤, 양조광은 집안일에 익숙한 듯 빠르게 손님 맞을 준비를 마친 뒤 송운을 대접했다.

초라한 밥상이었으나, 그마저도 작금 양조광의 형편에는 힘겨울 터다.

그의 입장에선 최선을 다해 마련한 것일 텐데도 얼굴에 미안한 표정을 가득 지으며 말한다.

“딱히 드릴 게 없어서……. 우선 배부터 좀 채우고 계시지요. 저는 어머니 탕약 먼저 달여야겠습니다.”

“나는 괜찮으니 마치고 돌아와서 같이 먹도록 하자.”

효심 지극히 어머니를 모시는 양조광의 모습을 보니 집에 계실 부모님 생각이 간절해진다.

‘언젠가 우리 부모님도 노환이 오실 테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찡해져 온다.

무릇 공자 왈, 효자의 어버이 섬김은 살아서는 공경을 다 하고, 봉양함에는 즐거움을 다하고, 병드신 때에는 근심을 다 하고, 돌아가셨을 때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 지낼 땐 엄숙함을 다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 말이 절절히 가슴 깊숙이 전해져 오는 순간이었다.

‘역시 곁에 계실 때 잘하는 것이 최고겠지.’

다시 한번 마음에 효를 깊게 새기는 송운이었다.

* * *

어느새 양조광의 고향에 온 지 하루가 흘렀다.

다행히도 그의 어머니도 많이 안정된 모습이었다.

역시나 아들이 곁에 있어서일까?

첫날 보았던 얼굴보다 표정이 한층 밝아져 보인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송운은 잠시 마을을 둘러보겠다며 집을 나섰다.

“운 공자님, 조심해서 다녀오시지요. 저녁 시간엔 맞추어 돌아오세요. 맛있는 걸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하하.”

그리고 더불어 양조광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아 보였다. 늘 걱정하던 어머니의 곁에 함께 있기 때문이리라.

‘표정이 좋아 보여 다행이다. 역시 잠시 자리를 피해 주는 것도 좋은 선택일 테지?’

그 모습에 송운의 입가엔 미소가 피어오른다.

어찌 되었건 자신과 깊은 인연을 가진 이가 아니던가?

그런 그의 얼굴이 펴지니 덩달아 기분이 좋은 것이다.

‘본디 상부상조(相扶相助)하며 사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가벼워진 마음으로 문밖을 나서니, 마을은 꽤나 운치 있었다.

길 곳곳에 아름드리 꽃들이 피어오르고 푸르스름한 봄 내음을 풍기는 한적한 시골 마을. 송주촌도 나름 조용한 마을이라고 생각했으나, 이곳은 더욱더 조용했다.

밤이 되면 불을 켜는 집이 하나도 없어 온통 깜깜해지는 곳. 아무래도 오래전 황궁의 군사들의 눈을 피해 숨어든 곳이다 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좁은 길옆으로 난 논, 밭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어 평온하고도 조용한 이곳은 시끄럽던 그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있었다.

‘집에서도 그리 먼 곳에 있는 곳이 아니니 한 번씩 조광이를 따라 와보는 것도 괜찮겠어.’

송운은 그 풍경에 취해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마을 전체를 돌아보는 데 하루를 보내었다.

유유자적하며 오래간만에 홀로 밖을 나도니 전생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많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때도 물론 싫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의 시간이 훨씬 더 좋은 건 부정할 수가 없구나.’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집집마다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꼬르륵-

때마침 송운의 뱃속에서도 밥을 달라며 신호를 보내온다.

‘이런, 배에서 아주 요란한 소리가 나는구나. 이만 들어가야겠다. 몸 편찮으신 분도 계시거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집에 돌아오니 양조광의 집에도 밥 짓는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역시나 딱 맞춰 온 것이라 생각하던 그는 방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어머니. 며칠 더 있다가 갈 참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 말미를 얻어서 온 겁니다. 스승님께서도 허락하신 일이고요.”

“그, 그래도 괜찮겠느냐? 정말 그분들을 만난 건 천운인 게야. 늘 잘해 드리…… 콜록 콜록!”

“어머니! 여기 물드세요. 기침이 좀 나아지실 겁니다.”

문 틈새로 새어 나오는 대화는 송운의 가슴마저도 훈훈하게 데울 만큼 따뜻한 분위기였다. 자신 역시도 부모님이 계시고 그 소중함을 알기에 가슴 속 깊이 와 닿을 수 있는 것들이리라.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이란 황해의 물 깊이보다도 깊구나. 아니, 애초에 어찌 부모의 그 마음을 그러한 것들에 견주겠는가? 헤아릴 수 없는 것이거늘…….’

그날 밤.

일찌감치 자리에 누운 송운에게 갑작스럽게 엄청난 기운이 마을로 들이닥침이 느껴졌다.

분명 그것은 짙은 마기의 기운이었다.

‘대체 이런 마기가 어찌 시골 마을에……?’

감지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오감을 자극시키는 낮은 비명 소리와 함께 혈향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꺄아악!”

“커허억…….”

순식간에 들이닥친 그것은 점점 더 커지는 비명 소리와 코를 찔러 들어오는 비릿한 혈향은 그의 본능을 일깨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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