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26화 (26/275)

제26화

第一章. 신공절학

다음 날 아침.

“누, 누구냐!”

관아 내 정찰을 돌던 백홍지(柏弘志)는 관아 가장 안쪽에 위치한 내부의 안뜰 저 멀리서 보이는 이상한 것에 놀라 경계하며 다가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공 같은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람의 머리와 같은 형태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머리가 잘린 시체 세 구인 줄 알았건만, 죽은 듯 축 처져 있던 고개가 들리면서 그를 향해 쳐다본 것이다.

“으아악!”

쿵.

백홍지가 그에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자 순간, 그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현령이 소릴 질러댔다.

“뭐, 뭘 그리 멀뚱하니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냐? 쿨럭. 어서, 어서 이곳에서 날 끌어올리지 않고!”

정신을 차리라고 외친 것이나 그 덕에 백홍지는 더더욱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았다.

‘귀, 귀신. 아니 시체가 말을 하다니!’

밤사이 맞고 또 맞은 데다 땅굴에 묻혀 있어서였을까?

여대길의 여기저기 부어오른 얼굴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안색이 퍼런 것이 목소리가 죄다 갈라져 소리를 질러도 지르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피가 덕지덕지 묻어나 사람의 몰골도 아닌데다, 간신히 머리만 빼꼼히 내밀고 있으니 처음에는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인가 했다.

하나 눈칫밥으로 살아온 이십 년 관아 정찰 인생이다. 그는 이내 빠르게 정신을 차린 후 저 아래 박혀있는 이가 자신의 최고상관인 현령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나리!”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구해진 그 셋은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조구유는 손목이 아작이 난 상태라, 곧바로 의원을 부르기에 급급했다.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요? 기녀들 말로는 웬 젊은 침입자가 난장판을 만들었다고 하던…….”

“아니다!”

“아닐세!”

“아니오!”

치료를 받으며 골골대며 엄살이란 엄살은 다 피우던 세 명은 조사를 위해 나온 관인의 말에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외쳤다.

“네놈이 지금 우리를 농락하려 드는 것이냐?”

“감히 나 장우량이 한낱 어린놈에게 당했다는 얘기라도 된단 말이냐!”

“내가 보았을 땐, 아무리 보아도 나이를 꽤 먹은 남자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펄펄 뛰며 똑같이 증언하니, 보지도 않은 조사관이 아니라고 우기기도 난처했다.

‘만일, 이 일을 크게 벌인다면 그놈이 우리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셋은 동시에 온몸의 털이 꼿꼿이 서며 한기가 느껴지는 현상을 경험해야 했다.

“현령 어른. 그 대체 무슨 소립니까? 내가 보았을 때는 필히 여자였소.”

빠악-!

“내가 보았을 땐 분명 머리만 시커먼 나이 든 노인네였대도?”

거기다 서로서로 향해 핏대를 세우며 반박하는 통에, 제대로 된 조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고는 멀리 도망갔다. 이미 우리가 찾을 수 없을 만큼 발이 빨라 잡을 수 없을 터. 조사는 이만하고, 여기서 묻어두도록 하거라. 이런 일이 밖으로 누설된다면 잘못했다간 현령인 나의 위신이 바로 서지 못할 것이 아니냐? 그것도 관아 내에서 어떤 괴한에게 당했다라니! 게다가 이곳으로 들어올 때까지 아무도 몰랐지 않느냐? 어찌 그리 경계를 허술히 한단 말이냐! 내 마음 같아선 네놈들의 모가지를 당장 자르고 싶으나 조건을 하나 달 터이니 지키지 않는 자는 참형에 처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 일에 대해선 일언반구(一言半句) 해야 할 것이야.”

“혹여라도 새어나갔을 시에는 내 친히 그놈의 멱을 따 줄 테다!”

자신들을 향해 쏘아붙이는 조구유의 흉흉한 눈빛과 말투에 더 이상 입을 떼려 하지 않았다. 그의 소문은 익히 들어 유명할 만큼 손속이 잔혹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당사자들 모두가 그렇게까지 잡아떼는 통에 더 이상의 조사는 없었다.

아니, 이루어질 수 없었다.

당한 본인들이 꺼내지도 말라는데 아랫것들이 힘이 무에 있단 말인가? 목숨 귀한 줄 잘 아는 이들이다. 그저 하라는 대로 하며 살 뿐.

그렇게 하룻밤 관아 내부를 뒤집었던 사건은 조용히 일단락되어갔다.

* * *

그렇게 관아에선 한창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을 때 즈음, 송운은 집으로 돌아와 무공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엔 시간이 꽤 경과되어 송하에게 수련 시간에 늦었다며 한 소리 들어야 했다. 물론 젖살이 채 빠지지도 않은 얼굴로 화가 난 표정을 지어봤자 그에게는 그저 귀여운 여동생일 뿐이었지만…….

송운은 수련 도중 벌벌 떨고 있을 녀석들 생각에 웃음이 피식피식 흘러나왔다.

그런 송운이 조금은 이상해 보였는지 송하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며 묻는다.

“우응? 뭐야, 오빠 왜 혼자 웃어?”

“하하. 아니다. 아니야. 수련에 집중하자. 하야.”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통쾌했다.

설마하니 그 짧은 시간 내에 장씨 무관 관주와 흑도방의 문주까지 합세해 있을 줄이야.

거기까진 송운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범위였다.

‘덕분에 여기저기 찾아다닐 필요 없이 한 방에 여러 명을 쓸고 오긴 했지만……. 아버지가 다녀오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름 좀 나간다는 녀석 셋이 모여 있단 말인가?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더 많은 놈들이 꼬일지도 모르겠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어느새 통쾌함은 가라앉고 문득 입안이 씁쓸해짐을 느꼈다.

분명 날파리들이 꼬일 것이란 예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나 그렇게 빠르게 옹기종기 밀담을 나눌 줄이야.

만약 자신이 아무런 의심 없이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필히 가족들의 안전이 위협받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의 마음속에는 걱정이 물 밀려오듯 거대하게 덮쳐온다.

세상일이란 것이 역시 순탄치만은 않아서 거슬리는 것도 많아, 놈들이 언제 뒤통수를 치고 들어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놈들이 얘기했듯이 살수들을 보내온다면 실패할지언정 자신들이 보낸 것이라는 입증이 딱히 서지 않는 이상 발을 빼면 그만 아니던가?

‘역시 살인멸구가 제일 답이었나.’

하나 이런 후회를 해봤자 지나간 일이요, 어차피 이미 꽃이 핀 자리에는 벌레가 꼬이기 마련이다.

차라리 녀석들이 움켜쥐어 죄는 것이 더 나은 판단이리라.

이른바, 죽음의 공포로써 사람을 다스린다.

본디 가진 것이 많은 자일수록 자신의 목숨은 가장 귀히 여기는 법이다.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일 테니.

죽도록 밟혔고, 자신은 충분히 죽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게다가 황실의 줄이 닿아있다는 말로 확실히 못 박아 두었으니, 웬만해선 그놈들이 먼저 덤벼오는 일은 없을 터.

하나 만일이라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건 늘 존재하기에, 그것에 대해 대비를 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놈들이 또다시 기어오른다면…….’

그때는 아마 전쟁을 치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 *

송운은 우선 가장 자신 있는 무공을 더욱더 연마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미 한 성내에서 다섯 손가락 내에 꼽을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었으나, 그것만으론 안심할 수 없었다.

무림이란 언제 어디서 어찌 달려들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있는 것과도 같다.

더구나 이미 귀찮은 녀석들과 엉켜 들지 않았던가?

혹여라도 고수들이 여러 명이 떼로 몰려온다면 이 정도 실력으론 역부족이다.

전생보다 훨씬 빠르게 절정 고수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려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은 흐릿했던 연유가 자신의 눈앞에 명확하게 드러나질 않았던가?

‘못해도 최소, 성 내에서 노는 정도가 아니라 천하십대고수 급은 되어야 한다.’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이겨내야 한다.

영약의 효과도 톡톡히 볼 만큼 봤다.

이제부턴 정말 나 자신과의 싸움이 될 터.

또 한 번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는 송운이었다.

한데, 그렇게 새로이 시작한 수련은 그에게 생각 외의 변수를 가져왔다.

‘허, 한계를 질풍각에서 마주할 줄이야…….’

질풍각은 전생에서 그와 평생을 같이 보낸 무공이다.

아니, 지금도 그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이전 생에선 절정을 끝으로 더 나아갈 발판이 주어지지 못하고 그 한계선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회귀한 탓에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언젠가 새로운 벽에 부딪힐 것이란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이리 빠르게 올 줄이야…….

‘분명 질풍각은 뛰어난 무공이긴 하다.’

하나, 그 이상은 아니었다.

더 나아가라면 분명 나아갈 방도는 있을 테지만, 그것만으로는 송운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엔 모자란 감이 없잖아 있었다.

전생의 그를 살아가게 만들어 준 고마운 것은 맞았으나, 신공절학이라고 불릴 만큼의 것은 아닌 것이다.

‘차라리 스승님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만약 스승이 있었다면 자문(諮問)이라도 구해봤을 터지만, 그런 스승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

다 낡아빠진 무공서 하나만이 그의 유일한 스승이었다.

한데 그것조차도 지금은 그의 손에 없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송운은 또다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크나큰 한계에 부딪혔고 신공절학은 아닐지언정, 그렇다 하여 진신 무공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마치 부모를 바꾸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천의선천기공을 익혔다곤 하나, 본질의 무공은 질풍각에 있다.

포기할 수 없었다.

하여 송운은 여태껏 익혀왔던 질풍보와 질풍각. 천의선천기공.

그리고 천의선천기공을 삼성에 이르게 해준 의학지식까지 모조리 끄집어 내 기초부터 다시 둘러보기 시작했다.

‘분명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고 지나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날부터 시작된 복습은 몇날 며칠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루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학문을 닦는데 소홀한 것도 아니었다. 똑같은 일상에 잠을 줄이며 그저 무공에 조금 더 많은 노력을 담은 것뿐이었다.

* * *

여러 책이 사방으로 펼쳐진 방 안.

창밖에는 이미 어둠으로 둘러싸여 별들이 새카만 밤하늘을 가득 수놓고 있음에도 호롱불에 몸을 의지한 채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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