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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24화 (24/275)

제24화

한편, 그 시각 관아에서는 세 명의 밀담 아닌 밀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날 이야기가 끝난 후 곧바로 다리를 놓아 여대길과 장우량 그리고 조구유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뜻이 맞는 이가 세 명이 모였으니, 지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이라.

그 셋이 모인 방 안은 그야말로 음주가무로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었다. 방안 그득 차 있는 매혹스러운 여인네의 진한 분내와 독한 술의 향이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으나, 그조차도 그들의 후각에는 향기로워 보이는 듯했다.

“아이, 현령 어르신. 어찌 매화 것만 받으시옵니까? 제 것도 한잔 받으시지요.”

“흐흐, 그래. 어디 네 잔도 한 번 맛보자꾸나!”

형형색색의 기복을 차려입은 기녀들이 너도나도 술을 따라주느라 정신이 없을 즈음, 그들은 송가네를 안주로 삼아 씹어대기 바빴다. 그 말들은 하나같이 흉악하기 그지없어 그들의 심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 앞뒤 꽉 막힌 송악 그자를 내 반드시 아무도 모르는 산 중턱에 묻어버리겠습니다. 아니면 아예 술독에 담가 버릴까요? 현령 어르신.”

“아닐세, 그 정도로 되겠는가? 묻어버리는 걸로는 우리의 울분이 도통 풀리지 않을 것이네! 살수를 보내서 몰래 그 집안 놈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놈들이 꽤나 많지요. 게다가 제가 익히 오래전부터 길을 터놓은 녀석들이 있습니다. 그놈들이라면 최대한 은밀히, 조용히 움직여 흔적은 거의 남지 않을 겁니다.”

“만약 그러다 잡히면? 어, 어찌한단 말이냐?”

걱정스러움이 그득 배인 여대길의 말에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조구유가 답했다.

“그 점은 걱정 단단히 붙들어 매시지요. 어차피 돈에 움직이고 돈에 죽는 놈들이니, 만일 잡히더라도 입하나 뻥긋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일 처리가 끝나면 후일, 관아에서 사람을 풀어 알아보라고 한 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집단에 몰살을 당하였다. 이리 공표(公表)하시면 그 누가 감히 현령 어르신의 말에 꼬리를 달겠습니까?”

“하, 하나 위에서 눈길도 만만치 않을 텐데…….”

여대길은 아직도 그때의 그 송악의 눈빛을 잊지 못하였는지 조금은 두려운 듯 말을 더듬었다.

“그러니 더욱 조심히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소? 장 대협.”

“그렇소이다. 우리가 한 것도 아니고 살수 집단에서 벌어진 일이고, 그리된다면 모두 그쪽으로 밀어붙이면 그만 아닙니까?”

이윽고 계속된 장우량과 조구유의 여우 같은 감언이설(甘言利說)에 넘어간 것인지, 여대길은 아까와는 달리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게 침을 튀겨가며 음모를 꾸미는 데 앞장섰다.

“살수? 그딴 것도 필요 없다. 내 그놈의 송가를 모조리 불태워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네! 마을의 유지? 그딴 거 개나 줘버리라지! 개만도 못한 주제에. 카악, 퉷!”

그런 그를 바라보며 장우량과 조구유의 눈빛이 서로 오갔다.

‘크크, 그래. 이 돼지 놈아. 그렇게 네가 협조를 해야 우리가 마음 편히 죽이지 않겠느냐? 다 서로 좋자고 하는 것이니, 너는 그렇게 우릴 도와만 주면 되는 것이다.’

그때, 밖에서 급작스럽게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웬 놈…… 끄, 끄헉!”

“저놈을 잡아라!”

퍼퍽-

“커헉!”

그 소리에 당황한 여대길이 소리쳤다.

“이 좋은 날 무슨 소란이냐? 여봐라!”

기녀들도 장우량과 조구유도 뭔가 이상한 낌새에 당황하고 있을 때 즈음.

콰앙-!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면서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다.

“이거야 원. 현령 잡으러 왔더니 바퀴벌레 떼가 단체로 모여 있구만. 어쩐지 밖에서부터 수상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했더니……. 쯔쯧.”

툭툭-

자연스럽게 옷깃을 털어내며 방금 이곳을 쳐들어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태연한 그의 모습에 모두가 기겁하며 물었다.

“넌 누구냐!”

이곳은 관아 내에서도 가장 안에 있는 내부다.

즉, 누구나 함부로 제집 드나들 듯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 곳을 무식하게 뚫고 들어왔다?

게다가 보아하니 얼굴은 이제 막 지학이나 벗어났을까 싶은 앳된 얼굴의 사내아이라니!

여대길은 물론이오, 여기까지 오는데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장우량과 조구유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황당무계한 모습에 말을 잃어버린 순간 자신을 가리키는 세 명의 잇따른 삿대질에 송운이 얼굴에 묘한 웃음을 흘린다.

그 순간, 송운이 방심한 것이라 여긴 조구유가 소리치며 일어섰다.

“네 이놈!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모두 나와라!”

채앵-!

그가 외치며 일어서자 순간, 방 내부에 은밀히 숨어있던 그의 수하들이 튀어나왔다.

하나, 튀어나옴과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송운을 둘러싸며 뭉쳤으나 그를 향해 검을 내뻗기도 전에 그의 발차기에 모두 나가떨어지기 바빴다.

퍼버버버벅-!

그 모습을 본 조구유가 적사검이란 별호답게 그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초(劍鞘)에서 칼을 꺼내 들으려 하였으나, 그마저도 헛수고가 되어버린다. 송운이 그가 검파에 손을 얹자 그 손을 아예 발로 찍어 눌러 버린 것이다.

와작-

“끄악!”

조구유가 찍긴 손목을 감싸 쥐며 신음을 내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단순한 육체의 힘만이 아닌 내력까지 상당히 실렸기에 아마 손목뼈가 산산조각이 났을 터다.

하나, 놈은 무림인이다.

손목뼈 하나만으론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송운은 그를 실신 직전까지 패기 시작했다.

‘일단 한 놈.’

비록 피는 튀기지 않았으나, 성인 장정 여럿이 쓰러져 나가자 그 모습에 기겁한 기녀들이 소리를 지르며 방을 뛰쳐나갔다.

“꺄악!”

“비, 비켜요!”

송운은 뛰쳐나가는 기녀들을 슬쩍 몸을 틀어 비켜 준 후 다시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방안을 훑는다. 순식간에 술판을 벌이며 시끄럽게 떠들던 방 안은 아비규환이 되어버렸다.

이어서 송운의 입이 서서히 열린다.

“내 저 멀리서 들었는데, 뭐? 아버지를 술독에 담가? 산 중턱에 묻어버려? 이 개자식들, 너네야말로 오늘 한번 담겨보자.”

그 말을 입에 담는 송운은 입은 웃고 있었으나, 눈빛은 차가운 북해빙궁(北海氷宮)의 빙해만큼이나 싸늘했다.

* * *

“아버지? 그래, 네놈이 바로 그 송악의 아들놈이로구나. 어설픈 흑도방파 애들 좀 때려눕혔다고 아주 기고만장해졌구나! 하나 나를 그런 뒷골목 애송이들이랑 비교하면 큰코다칠 게다. 내가 바로 첩철권 장우량이다. 정식으로 무공을 익혔단 말이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장우량은 송운에게 달려들었다.

하나, 이미 절정 고수에 다다른 그다. 게다가 선천지기의 힘까지 얻은 송운에겐 털끝만큼의 해도 끼칠 수 없었다.

퍼벅-!

“커허억!”

정확히 명치에 송운의 일격을 맞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기 때문이다.

“쯧. 무공을 배우면 뭐하겠소? 그 무공마저 악심(惡心)에 물들어 제대로 사용할 줄을 모르는 것을.”

순식간에 성인 장정을 여럿 쓰러뜨린 송운은 이윽고 방 안 구석에 처박혀 나가지도 그렇다고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여대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여대길을 충분히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오, 오, 오지 말거라! 이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리 막 대하는 것이냐! 과, 관군을 부를 것이야!”

하나 그런 어쭙잖은 협박에 무서워할 송운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뒷골목에서 이름을 떨치는 흑도방주도 한 무관을 이끌고 있는 관주마저 한방에 나가떨어진 시점에 송운이 무서울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물며, 그가 무언가 더 하려 한다 해도 가만히 앉아 당해줄 생각 따윈 없다.

‘딱, 아버지가 말해준 그대로군. 겁은 많고 본인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권력을 내세워 겁을 주는 부류가 아닌가. 후우.’

송운은 속으로 한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그 현령이라는 자요?”

“그, 그래 내가 바로……!”

그제야 자신이 누군지 알아들은 것이라 생각한 현령은 다시 기고만장해지려 하였으나, 그는 오산이다.

퍽-

여대길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한 방 먹인 송운의 주먹은 그의 뱃살이 출렁거리며 다시 튕겨 나왔다.

“꾸에엑!”

고통에 몸부림치며 배를 부여잡은 그의 귓가를 향해 송운이 말했다.

“아까 당신들이 그랬지 않소?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흔적만 없으면 된다고. 말은 사람의 입을 타고 전해지는 것이니, 그 입만 없애면 흔적이 사라질 테지. 그렇다면 어찌할까? 아……. 역시 살인멸구(殺人滅口)가 가장 좋은 방법이려나?”

살인멸구라는 말을 들은 여대길은 고통이 엄습해오는 배를 부여잡고서도 정신이 번뜩 들었는지 고개를 연신 내저었다.

살인멸구.

그야말로 모두 죽이겠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하나, 차라리 아프면 아팠지 지금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죽기에는 높은 관료들에게 빌빌 기며 살아온 세월이 너무도 아까웠다.

여대길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쓰러진 자들 모두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지, 죽지는 않은 듯했다.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이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그 말인즉, 자신도 죽일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 아직 주, 죽지는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조금만 더 버틴다면 저들이 다시 일어나 기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다. 거기까지 생각이 든 그는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으, 으흐흐. 과연 너 같은 조무래기가 사람을 죽이고도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송운은 아까보다 더 세게 주먹 한 방을 날렸다.

빠각-

“끄르륵…….”

연이은 강타에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 아픔을 이겨내지 못했는지, 입안에서 허여멀건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쯔쯧. 멍청한 건지……. 설령 흔적이 남더라도, 우리 집안이 어딘지 잊은 것입니까? 네놈들이 그리 두려워하던 송씨 집안이란 말입니다. 그딴 증거 조작쯤은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이 말이에요. 우리 아버지께서 황실과 연줄이 닿아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건드리려던 것 아닙니까?”

거의 반 죽어가는 여대길을 바라보며 송운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원래 권력을 이용해 사람을 함부로 다루는 자들을 참 싫어하지요. 한데 댁들 같은 인간들에겐 그다지 양심에 찔리질 않아요.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하여 댁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권력 맛 좀 보게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만.”

여대길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정신이 번쩍 들 만한 그 말이 귀에 속속히 박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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