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그렇게 송운도 내력이 상승하면서 무공도 확연히 올라갔다.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난다면…….’
전생의 무위는 완벽하게 되찾는 것이었다.
* * *
온 가족이 함께 대별산 여행을 다녀온 후, 영약까지 복용하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꽤나 흘러갔다. 모든 것이 얼어 붙어있던 차디찬 겨울을 벗어나, 만물이 잠에서 깨는 봄이 오고 있었다.
계곡에서는 깨진 얼음들 틈 사이로 물고기들이 활기차게 헤엄치며 따스한 햇볕에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있던 나무가 새싹의 고개를 살며시 내민다. 그리고 겨우내 적적하던 저잣거리가 사람들의 온기로 들썩인다.
그리고 그런 따뜻한 어느 봄날.
송운은 드디어 전생에 이루었던 경지에 도달했다. 그의 얼굴에도 환한 봄의 빛이 어른거렸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그의 나이 열일곱에 이룬 절정의 경지였다.
第十一章. 새 현령
온 마을에 시끌시끌한 소문이 퍼졌다.
바로 다름 아닌 새 현령의 부임 소식이었다.
가뜩이나 봄이 찾아오면서 북적이던 저잣거리는 그 얘기로 쉴 틈이 없었다.
“이번에 새로운 현령이 들어섰다면서?”
“그렇다고 하는구먼. 쩝, 전 현령께서 참 잘하셨는데……. 이번엔 어떤 분이실지.”
“그러게 말이오. 전 현령께서 참 잘 해주셨는데…….”
그렇게 한창 새 현령 이야기로 바깥이 시끄러울 때, 그 소식에 가장 바쁜 건 역시나 송악이었다.
“흐음, 그리해서 내 이번에 현령을 만나러 다녀와야 할 것 같소.”
“그렇군요. 무슨 일로 부르신 걸까요.”
예령이 조금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으나, 송악은 이내 별일 아니라는 듯 만류했다.
“별일이야 있겠소? 새로 부임해왔으니, 서로 인사나 하자는 것이겠지.”
송악도 그다지 내키진 않았다.
하나 현령이라는 자가 불렀다고 하니, 아무리 유지라 해도 그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하여 어쩔 수 없이 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이다.
이에 더 이상 예령도 뭐라 할 수 없었다.
어쩌겠는가?
사람 사는 일이 그러한 것을…….
“그럼 내 금세 다녀오리다.”
“항시 몸조심하세요. 가가.”
“아버지 몸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빠 다녀와!”
식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송악은 자신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호위무사와 함께 길을 떠났다.
* * *
평여현 바로 옆에 붙어있는 송주촌인지라 가는 길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착한 그곳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보였다.
‘오랜만이로군. 이곳도.’
전 현령이 있을 때도 거의 올 일은 없었기에, 정말 오 년여 만에 온 곳이다.
한데도 변함은 없었다.
‘전 현령이 꽤나 청렴하게 잘 다스리긴 했지.’
송악은 예전 현령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게 관료 중 흔히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하여 송악도 꽤나 마음에 들어 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런 그가 떠나감에 있어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으나, 더 좋은 곳으로 갔다 하니 자신이 잡을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잘되었음에 축하주라도 따라주어야 했다.
하나 급히 발령이 나는 탓에,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난 것이다.
송악은 지난 십 년간 자신의 벗 아닌 벗이 되어주었던 그를 떠올리며 약간의 씁쓸함이 입에 고였다.
‘이번 현령은 어떤 사람일는지…….’
조금의 기대를 품으며 송악이 관아의 앞에 도착했다.
문지기를 맡고 있던 자들이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송 대인 오셨습니까? 들어가시지요.”
문 안으로 들어가니 바로 누군가 송악을 맞이하러 나왔다. 쥐꼬리 같은 수염이 참으로 인상적인 사내였다. 턱이 뾰족하고 코는 부리부리한 약간은 간신배 같은 얼굴이다.
“송 대인 오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던 참입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그는 연신 고개를 굽실거리며 송악을 반가이 맞이했다.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자 꽤나 화려하게 꾸며진 방 하나가 나왔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니, 아마 이번 현령이 새로이 지시했음이 분명하리라.
‘쓸데없는 곳에 돈을 들였군.’
첫인상부터 뭔가 찜찜한 감이 없잖아 있었으나, 이내 사람은 만나봐야 안다고 생각하는 송악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방 안으로 들어서자, 누군가 버선발로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빳빳한 화려하기 그지없는 비단결 옷을 걸치고, 몸에 비곗덩어리를 두른 듯 툭 튀어나온 뱃살. 거기다 이목구비가 살 속에 파묻힌 그 모습은 가히 돼지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저자가 이번에 새로웠다는 현령이로구나. 돈깨나 좋아하게 생겼군. 쯔쯧. 백성들은 굶주리는데 무엇을 먹기에 저리도 살집이 있단 말인가.’
그 모습에 송악은 단숨에 파악하며 혀를 찼다.
여태껏 봐왔던 못된 관료들의 특징을 모조리 가지고 있는 자였다. 송악은 잠시나마 기대했던 자신이 안타까웠다. 아무래도 이번 현령은 백성들을 꽤나 괴롭힐 법해 보인 것이다. 하나 이윽고 고개를 휙휙 저은 송악은 자신을 반가이 맞이하는 그를 향해 인사했다.
사람은 자고로 겉만 보지 말라고 하였다.
이야기를 차차 나눠본 후 판단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후 송악은 예를 취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현령 어른.”
“아이고 송 대인!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얘들아 뭐 하고 있는 게냐? 어서 상을 봐오거라!”
“예, 현령 어르신.”
그의 말 한마디에 밖에 있던 이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송악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상위에는 진귀한 음식들로 그득 쌓이기 시작한다. 그 손놀림이 매우 빨라 마치 귀신과도 같았다.
탁.
마지막으로 나온 음식까지 모두 상위에 차려지고 나니 새 현령이 말한다.
“아시겠지만, 이번에 새로 현령으로 부임한 여대길(呂大佶)이라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자신이 소개하는 내내 그다지 표정이 좋지 못한 송악의 눈치만 살피던 여대길은 속으로 생각했다.
‘딱 보아하니, 고지식해 보이는 것이 영…….’
그것도 평여현 내도 아닌 송주촌이라는 마을로 하야하여 산다고 했다. 그 좋은 황궁 학사 직도 마다하고 내려왔다고 하더니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오는 길 편히 오라며 휘황찬란한 마차를 보내왔으나, 이를 거절하고 걸어온 사람이다.
이미 그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 왜 저런 자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인지. 쳇.’
그도 연유는 잘 모른다.
하나 그러면서도 이리하는 이유는 이 전 현령도 송악에게 잘 보여 승진해서 더 좋은 곳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 정도 뒤를 봐줄 여력이 있다면 그의 뒷배에는 황궁과 연줄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들은 바에 의하면 전 현령은 우직하게 가만히 현을 돌봤다고 하는데 그러고 있으니 시간이 오래 걸렸겠지만, 자신은 이런 시골 현에서 오래 머물 생각 따윈 없었다.
‘그렇고말고.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천자만큼 넓은 땅을 거느릴 순 없으나, 자고로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면 이보다는 더 좋은 곳으로 가야지 않겠는가?’
일찍이 어려서부터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 잘 보이고 싶은 자들에게 아부를 받으며 떵떵거리며 살리라 마음먹은 그다.
평여현도 결코 작은 현은 아니었으나, 그릇에 비하여 그의 포부는 너무도 컸다.
‘아무리 그래도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그간 살아온 삶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도 모두 돈이 아니던가?
게다가 시골에 내려와 딱히 돈 되는 것도 없는 이가 어찌 그리 유지하며 살아왔겠는가?
아마 필히 뒷돈을 받아 챙기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겉으론 청렴한 척, 관대한 척했을 송악을 보니 짜증도 올라왔다.
‘그깟 학사가 뭐라고. 뭐, 그래도 상관없지. 내게 큰 자리를 안겨줄 이가 아니던가? 얼른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뜨면 그만이다. 으흐흐.’
그러는 와중에도 표정이 영 좋지 못한 송악을 보며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쨌건 지금은 자신이 을(乙)의 입장이었다.
‘잘 보이는 것이 우선이다.’
여대길이 그리 속으로 송악의 눈치를 보는 사이 송악은 송악 나름대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구나.’
집에서 자신을 기다릴 가족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애써 불편함을 잊으려 했다. 평소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은 송악이다. 휘황찬란하게 차려진 술상도 달갑지 않았다.
‘차라리, 차를 준비했다면 좋았을 것을…….’
그렇다고 나름대로 성의 있게 준비한 자리를 무작정 박차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닌 이상 말이다.
그러던 차, 상 위로 무언가가 슬며시 건네져 왔다.
“저…… 송 대인. 이것 약소하나마 받아두시지요. 헤헤.”
‘……음?’
무언가 흰 봉투 안에 둘러싸인 것이, 분명 서찰은 아닌 듯했다. 굳이 이렇게 안면을 맞대고 있는 와중에 말을 대신해 글로 할 것이 무에 있단 말인가?
‘돈이로구나.’
거기까지 파악이 끝난 송악은 순간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내민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자신을 잘 봐달라는 뒷돈이 분명했다.
송악은 그 봉투를 성큼 집어 드는가 하더니 이내 그 눈빛이 무섭게 돌변한다.
‘흐흐, 그럼 그렇지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촤르륵 콰앙-!
와장창!
그 순간, 방 안이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이 모든 상황을 파악한 송악이 술상을 모조리 뒤엎어버렸기 때문이다.
“아,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여대길이 놀라 외치던 차, 방문이 열리면서 형형색색의 고운 옷을 차려입은 기생들이 조심스레 들어오던 도중 난리 장판인 방안을 보며 놀라 소릴 질러댔다.
“꺄악!”
“어머낫!”
소릴 지르는 기생들을 보면서도 송악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 부리부리한 눈으로 기생들과 여대길을 노려보았다. 그 기세가 어마어마하여 누구 하나 입을 쉽사리 열지 못했다. 그 기세와 눈빛은 누구도 단순히 시골에 콕 박힌 학사의 눈빛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네 이놈들! 내 일찍이 정치판을 떠난 이유가 이런 더러운 진흙탕이 싫어서 이거늘! 이제는 평여현에까지 온 구더기가 다 끓는구나! 내 이런 더러운 뒷돈을 받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렇게 말을 마친 후 자신이 뒤엎은 술상으로 인해 어질러진 방바닥을 향해 돈 봉투를 집어 던지더니, 문 앞을 막고 있던 기생을 밀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