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본격적으로 읽어볼까?’
자리를 잡은 송운은 사 온 책들을 하나하나 정독해나가기 시작했다. 영약 편부터 시작한 책 읽기는 이윽고 의서를 모두 읽어내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모두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의서라고 해서 그저 재미없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생각보다 흥미롭구나.’
어째서 전생에는 그리 책을 멀리하려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이 재밌는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니. 참으로 아둔하기 그지없었구나.’
송운은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때 당시만큼은 아버지가 그렇게 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가 시키는 공부가 달갑게 느껴졌을 리 없었다. 하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학문을 익히다 보니 책을 읽는 것 또한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앉아서 다른 사람의 지식을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크나큰 행운이다.
자신이 겪어 보지 못한, 또한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앉아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것을 기점으로 다른 많은 의서를 긁어모으기 시작했고, 남는 시간을 활용해 하나하나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의술을 배울 생각은 아니었으나 한번 시작된 흥미는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복잡해 보였으나, 그것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게 의술의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지.’
라는 조금은 웃긴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의서 읽기는 송운의 또 다른 취미가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을까?
의서를 공부하면서도 천의경 또한 손에서 놓지 않고 읽던 도중 송운이 신비스러운 점을 하나 발견한 것이다.
본디 천의선천기공의 시작은 임맥(任脈)의 시작인 중극혈(中極穴)에서부터 돌아 인후(咽喉)로 갔다가 독맥(督脈)의 시작인 풍부혈(風府穴)로 이어진다. 그것이 곧바로 뇌로 향했다가 정수리를 통해 나와 이마와 콧마루를 통과하여 인중을 지나 은교혈(齦交穴)에서 끝이 난다. 그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다.
이로써 소주천이 한 번 완성된다.
한데 의서에서도 기경팔맥(奇經八脈)을 기반으로 두고 임독맥은 서로 상통(相通)한다. 그중 독맥은 수족삼양경(手足三陽經)과 교차하여 양경(陽經)의 경기(經氣)는 모두 독맥의 대추혈(大椎穴)에 모이며, 임맥도 마찬가지로 삼음경(三陰經)과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며 족삼음경(足三陰經)은 모두 임맥의 관원혈(關元穴)과 중극혈에 모인다.
흔히 무림세가에서 임독양맥을 뚫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두들기며 서서히 뚫어주면 기가 훨씬 원활하게 돌아가면서 심법을 운용함에 있어 속도를 높여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자신이 익힌 천의선천기공은 단지 속도를 높여주는 것이 아닌 그곳을 통하여 돌고 돌아 선천지기를 끌어올려 주는 것이다.
하니 송운이 놀랄 수밖에.
그 놀랍도록 비슷한 모습에 송운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닮았다.’
의술의 혈맥이동과 천의선천기공의 혈이 서로 일맥상통(一脈相通)했다.
이것이 뜻함은 무엇인가?
의술은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아픈 이를 낫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천의선천기공은 심법이긴 하였으나, 무공으로 쓰이지 않더라도 선천지기를 얻고 그로 인해 생명력과 건강을 얻는 것이다.
결국 의술이건 무공이건 끝에 가서는 모두 같다는 것 아니겠는가?
‘하, 의술도 무공도 학문도 결국은 다 배움과 함께 깨달음이 아니겠는가? 모든 만물은 일맥상통하니, 이것이 바로 만류귀종이 아니겠는가!’
거기까지 깨달은 송운은 심장부근에서 흘러나온 새하얀 빛이 자신의 전신을 감싸고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눈이 스르륵 감기며 앞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느껴졌다.
무의식의 세계로 인도된 것이다.
스르륵-
그러곤 한참 동안 송운의 주위를 빙빙 맴돌기만 하던 그 빛은 곧 화한 느낌과 함께 그의 전신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줄기 남은 빛까지 모조리 그의 몸에 흡수되었다.
팟-!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감겼던 송운의 눈이 팟하고 떠졌다.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대오각성(大悟覺醒)이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송운은 무언가 생긴 자신의 몸의 변화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천의선천기공이 단숨에 삼성까지 올라선 것이다. 천의선천기공에 대해 막 익혔을 때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무언가 더 포근하면서도 빠르게 자신의 몸속을 회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는 마치 무언가 트이듯 조금씩 있던 두통마저 사라지는가 싶더니, 맑게 개며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개안(開眼)이라도 한 듯한 느낌에 송운은 상쾌함마저 느껴졌다.
이에 놀라운 마음을 내리누르며 잠시 생각한다.
‘단지 삼성에 이르기만 했거늘 이 정도의 효과라니……!’
왠지 그것만으로 끝이 아닐 것 같은 마음에 송운은 천천히 천의선천기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또 다른 변화가 인다.
소주천을 한 번 크게 그리기 시작한 것이 어째서인지 선천지기를 더욱 빠르게 모아주기 시작한 것이다.
‘소, 속도가 더 빨라졌어?’
본디 천의선천기공도 다른 심법들과 별반 없이 속도는 같았다. 한데, 지금 돌려본 바에 의하면 훨씬 빨라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천의선천기공의 최대 약점인 초반에 적게 쌓이는 선천지기를 빠르게 모아줄 것이다. 그리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선천지기를 이용한 무공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터.
만년설삼에 이은 기연이 연이어 이어지니, 이로써 송운이 초고수가 되기 위한 발판이 튼튼히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는 셈이었다.
여기다 아직 복용하지 않은 만년설삼까지 더해진다면 효과는 극에 달할 터다. 이미 무위는 거의 전생에 올랐던 만큼이나 회복이 된 상태였다. 이 정도라면 능히 한 성 내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라고 볼 수 있음이다.
‘내 나이 올해로 열여섯이 아니던가. 이 나이에 벌써 성 내에서 손꼽히는 고수라니! 허…….’
이 정도면 전생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임은 분명했다.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었다.
송운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선 영약 편을 들췄다. 그러곤 빠르게 복용하는 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 * *
송운은 자신의 변화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전보다 배로 이해 능력이 올라갈 뿐만 아니라 두세 번 정독만으로 모조리 외워버려졌기 때문이다.
‘확실해. 천의선천기공이 삼성에 이른 후부터 느껴지는 변화다. 그뿐만 아니라 오성(悟性)을 모두 끌어 올려주었구나!’
이미 무공의 성장으로 인해, 꽤나 발달하였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은 모두 한층 더 웃돌고 있었다.
그중 가장 발달한 것이 습득력과 이해력이었다.
송운은 이를 이용해 수십 가지의 영약에 관련된 책들을 독파해나갔고 현 내에 꽤나 유명한 의원들을 찾아가 직접 다른 영약들을 달이는 방법을 보고 배웠다.
시간이 제법 걸리긴 하였으나, 섣불리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면 소문이 날 것이고 그것은 곧 화를 불러올 터.
‘역시 내가 직접 보고 배워 달이는 수밖엔 없겠구나.’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처음엔 거부하던 의원들이 그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해가며 찾아오자 결국 그의 성의에 질려 하며 그에게 달이는 법을 보여주며 알려준 것이다. 비록 다른 만년설삼은 아니었으나, 설삼의 영약들은 달이는 방도가 엇비슷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보는 것과 직접 달이는 것을 수십여 차례 해나갔을까?
‘해, 해냈다!’
마침내 만년설삼 달이는 법을 체득한 송운은 보름이 조금 더 넘는 시간을 공들여 가족들이 모두 먹을 만큼의 양을 달여 내는 데 성공했다. 잘 달여진 영약은 약간은 투명하기도 한 갈색빛이 은은히 감돌았다.
‘색깔이 참으로 곱기도 하구나.’
이미 사전에 많은 예행(豫行)과 지식을 익혔으나, 단 하나의 실수라도 있는 날에는 그 영약이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하나, 간절한 송운의 마음에 하늘이 감복이라도 한 것일까?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완벽히 달여 낸 것이다.
그렇게 약 달포에 걸쳐 공들인 아주 귀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송운은 잠도 거의 자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심지어는 무공 수련과 책을 읽는 것도 모두 그 옆에서 했으니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옆에서 계속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잘 달여진 영약을 보고 나서야 송운은 기지개를 쭉 켜며 마음이 놓였다.
‘좋아, 이제 마시기만 하면 되겠어.’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 모인 송운은 가족들을 향해 말했다.
“제가 이번에 약방에서 구해온 약입니다.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감기도 예방해준다고 하여 특별히 준비한 것이니 한 방울도 남기지 마시고 모두 드세요.”
송운의 말에 가족들은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모두 별다른 말 없이 들이켰다.
꿀꺽 꿀꺽-
탁.
“으으, 써어.”
아직은 쓴 것을 거의 맛보지 못한 막내 송하만이 참지 못하고 쓰다며 표정을 찡그렸으나, 뱉지 않고 끝까지 입을 오물오물하며 삼켜낸다.
영약을 복용한 지 조금 지났을까?
송후와 송하의 몸 내부에 무언가 활기차게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느끼지 못할 테지만 두 분의 몸 안에서도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선천지기가 상승하면서 생명력과 건강함만이 올라가는 반면, 송하와 송후는 내력까지 올려줄 것이다.
“어, 어어?”
“……?”
두 동생의 반응에 송운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제대로 흡수되어 가는구나. 어차피 운기조식을 하지 못하시는 부모님과 똑같은 방법으로 영약을 들이켰으니, 따로 운기조식도 필요하지 않을 테지.’
송운이 슬쩍 살펴본 결과 역시나 송후와 송하의 몸 안으로 스며든 영약이 둘의 내력을 상승시키고 있었다. 더불어 부모님의 몸에도 별다른 부작용 없이 안착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
송운은 자신의 몸 내부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힘찬 기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원래 있었던 내력들과 별다른 부딪힘 없이 조화를 이루며 몸에 안착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