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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20화 (20/275)

제20화

“설마 이 녀석……. 산왕이라 불리던 그놈인가?”

그가 조용히 읊조리자 송악이 먼저 물었다.

“산왕 이라니?”

“예, 송 의숙부님. 아마도 제 생각이 맞는다면 대별산에서 산짐승들의 왕 노릇을 하고 있다는 그놈이 맞을 겁니다.”

“허허……. 이것 참. 난데없는 일이로구나.”

그리 다들 멍해져 있을 때 즈음, 말을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유가량이었다.

“이것, 어찌할 셈이야?”

“글쎄, 덤비기에 때려눕히긴 했지만 딱히 어찌해야 할지…….”

“그럼 이거 나한테 팔래? 값은 서운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쳐줄게.”

유가량의 말에 송운이 송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나 송악 본인이 잡아 온 것도 아니고, 비싸게 쳐준다는데 싫을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저걸 가져간다고 해도 어찌 처분한단 말인가?

“크흠……. 운이 네가 잡아 온 것이니 알아서 하거라.”

송악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더 이상 지체할 필요는 없었다.

‘안 그래도 어찌 처분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잘되었구나. 집안에 도움도 좀 되겠지.’

거기까지 빠르게 계산을 마친 송운이 입을 뗐다.

“뭐 어차피 내가 가져간다고 해서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리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아 그리고 웅담 말인데…….”

송운이 조금 머뭇거리자 유가량이 크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 물론 웅담값까지 제대로 쳐주어야지. 가죽보다 더 값이 나가는 녀석이니까.”

그런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송운이 마음을 놓았다.

물론 웅담은 가져가서 먹는다면 만년설삼과 함께 큰 효용을 보일 터지만, 공자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고 하셨다.

자신은 만년설삼만으로도 충분했다. 거기다 값을 후하게 쳐준다고 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던가?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송운이 허락하기 무섭게, 유가량이 일꾼들을 불러내 집안으로 옮기라 명하였다.

“어디 가서 뒤통수 맞았다는 소린 안 들을 만큼 충분히 쳐줄게.”

“고마워. 가량아. 그렇지 않아도 어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해 있었는데. 하하.”

“고맙긴.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걸?”

그렇게 난데없던 아침의 곰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 * *

그렇게 한차례 소동 아닌 소동이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오는 길에도 집안에서 준비한 마차를 타고 오긴 했으나, 돌아가는 길은 송운이 구해온(?) 곰 덕분에 후에 소식을 들은 유호길이 치례(致禮)를 한다며 더 좋은 마차를 구해주었다. 더불어 겸사겸사 호위무사들까지 더 붙여준 것이다.

“허허, 내 간만에 자네와 얼굴도 보고 이리 이야길 나눌 수 있어 매우 즐거웠네.”

유호길은 송악의 두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 나야말로 오랜만에 식구들과 바깥 구경도 하고 자네 얼굴도 보고 돌아가니 더할 나위 없이 즐겁기 그지없었다네. 그나저나 이런 큰 것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

하나 이내 유호길이 손을 휙휙 내젓는다.

“아닐세. 아닐세. 자네가 여기 와서 내게 해준 것만 하겠는가? 그런 걱정일랑 접어두게 이 친구야. 오히려 나는 약소해 보일까 걱정이란 말이야.”

그렇게 두 아버지간의 대화가 오갈 때, 송운과 유가량도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유가량이 먼저 손을 내밀자 송운도 그의 손을 굳건히 맞잡았다.

“다음에 또 보도록 하자.”

또 다른 인연의 시작이었다.

第十章. 영약 달이기

갔던 길을 거슬러 다시 돌아온 집.

저 멀리서부터, 집이 보이는 순간 가족들 모두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역시 집은 편안하기에 집인 것이다.

그리고 집 대문 앞에는 미리 기별을 넣어서인지,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나와 있었다.

“주인 어르신, 오셨습니까?”

“그래. 내 없는 동안 고생했네. 고총관, 별다른 일은 없었는가?”

“예, 평소처럼 무난히 돌아갔습니다.”

“다행이구만. 오늘 하루는 푹 쉬시게.”

돌아온 일상은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없었다.

‘뭐 딱히 뭔가 바뀌길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다만 다들 오랜 여행으로 가족들 모두 심신(心身)이 지쳐 보이는 듯했다.

송운 역시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하루쯤 쉬고 싶었으나, 영약은 채취한 후 복용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 효과가 더 좋았다.

아무래도 살던 거처를 잃어버렸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여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재료는 필요 없었다.

오로지 만년설삼!

한데, 그런 송운에게 가장 큰 관건에 부딪혔다.

‘……이걸 어찌 복용시키지?’

바로 복용 문제였다.

만년설삼을 제대로 복용하려면 무언가 방법이 필요했다. 무림인이라면 그냥 운기조식을 통하여 복용하면 그만이었으나, 가족들은 운기조식이 없었다.

그나마 나은 건 송후와 송하였다.

자신과 함께 그간 해온 운기 조식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부모님은 달랐다.

무언가 방도가 필요했다.

송운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반인이 가장 손쉽게 영약을 복용하는 방도가 무에 있을까…….’

송운의 왼손이 그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꽤나 깊은 고뇌에 빠진 것이리라.

잘못해서 복용을 달리했다간 기껏 구해온 영약만 공으로 날리는 꼴이 될 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조금 더 확실한 방도가 필요하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던 송운은 그때 섬광처럼 무언가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바로 책이었다.

이번 유호길의 서재를 정리하면서 느낀 거지만 생각보다 책의 종류는 넓고 방대했다. 그동안은 아버지의 서재만 보다 보니, 학문서만 봐왔던 송운이다. 한데 이번에 가서 본 책의 종류는 어마어마했다. 의서부터 시작해 철학서, 동물에 관한 서 등등…….

수만 가지의 서적들이 즐비했다.

분명 그중에 자신이 원하는 영약에 관한 내용도 있을 터다.

‘책을 뒤져보자.’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잡다한 서적들을 떠올린 느낀 송운은 그 자리에서 바로 몸을 이끌고 저잣거리로 나섰다.

* * *

퀴퀴한 곰팡이 냄새를 풍기며, 천장에는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고 서적에는 뽀얀 먼지가 그득한 이곳.

송우촌 저잣거리 가장 끝에 위치한 작고 간판조차 없는 조그마한 서점이었다.

“어서 오쇼.”

약간 각진 얼굴에 쥐꼬리처럼 생긴 수염을 지닌 중후한 장년의 사내가 송운을 맞이했다. 한눈에 봐도 귀찮음이 온몸에 둘러싸인 그는 얼굴에 잔뜩 불만이 쌓여있었다. 그런 그가 곁눈질로 흘끗 보더니 송운이 제법 괜찮은 복장을 하고 있자, 서둘러 기색을 바꾸며 말한다.

“커흠, 무슨 책을 찾으러 오셨습니까요? 공자님.”

“콜록, 콜록.”

그에 대답 대신 쌓인 먼지들로 인해 송운이 마른기침을 하자, 그는 서둘러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헤헤. 겨울이 되니 환기를 자주 못 시킨 탓에, 먼지가 제법 많습지요. 곧 괜찮아질 겁니다. 무슨 책을 둘러보러 오신 겐지……?”

송운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던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 송운이 서점을 쭉 둘러보더니 말한다.

“……잠시 홀로 둘러보겠소.”

“예, 알겠습니다. 천천히 둘러보시지요.”

송운이 이내 책장으로 눈을 돌렸다.

‘생각보다 종류는 많군.’

평여현까지 나가기보다는 우선 동네 책방을 우선으로 돌아보자는 판단 아래 들른 곳이었다. 비록 서점 상태는 말이 아닌 듯해 보였으나, 알맹이는 제법 꽉 차있는 듯해 보였다.

하기야 워낙 책을 읽는 이들이 없는 탓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 마을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송악조차도, 학문 서를 제외하고는 잘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마을에 있는 서점치고는 꽤나 훌륭했다.

‘의외로군. 의서까지 갖추고 있는 걸 보면.’

그때, 그의 눈에 의서가 먼저 띄었다.

개도 쉽게 익히는 의학 입문서

본디 영약의 복용법에 관한 책을 찾으러 왔으나, 제법 독특한 제목의 의서는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결국 송운은 그 책을 뽑아 들었다.

‘허허. 개도 쉽게 익히는 의학 입문서라……. 시간도 많은데 한번 훑어볼까?’

그리하여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정말 제목대로 이해하기 쉽게 나열되어 있었다.

제일 첫 장에는 인체를 그려놓은 그림에 옆에는 하나하나 선을 그어 혈맥(血脈)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뒤로는 그 혈맥들에 관한 내용으로 세세히 풀이되어 있었다.

겉만 봐서는 지난번 유호길의 서고에서 읽어본 다른 의서들과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였으나, 서술된 내용들은 글만 읽을 줄 안다면 충분히 이해하기 쉽게 적혀 있었다.

정말 책 제목 그대로였다.

그렇게 한참을 읽고 있었을까?

“저……. 공자님. 뭔가 찾으시는 책이 없으신지요?”

주인이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책만 읽고 있던 송운에게 말을 건 것이다.

“아, 아니오. 거, 책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서……. 아, 혹시 영약에 관해 다룬 책이 있소?”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니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더 늦는다면 저녁 시간에 늦어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이 뻔하였다. 게다가 서점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었음을 간접적으로 내 비추는 통에 더 있고 싶어도 있고 싶지 않았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성과 없이 집에 돌아가는 건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든 송운은 본래 의도했던 대로 영약에 관한 책을 물었다.

“아아, 그 영약에 관한 것이라면 이 책이 최고입죠.”

그는 서둘러 구석으로 가더니 책 한 권을 찾아왔다.

한참이 걸려 찾아온 그것은 먼지가 꽤나 쌓인 듯해 보였으나, 제법 상태는 양호했다.

언뜻 둘러봤으나 내용도 이만하면 될 터.

그렇게 생각을 마친 송운은 의서에 관심이 갔는지 관련 서를 몇 권 더 집은 채로 물었다.

“흐음, 이 책들 모두 얼마요?”

“은자 한 냥 반입니다.”

책 상태에 비해 제법 큰돈이긴 했으나, 어쨌든 책 자체가 싼 편에 속하는 것은 아니니 그 정도 값어치는 할 터. 송운이 품 안에서 꺼낸 은자를 건네자 주인이 실실 웃으며 허리를 굽실거린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공자님. 다음에 꼭 다시 들러주십쇼.”

그렇게 아부하는 주인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 * *

집으로 돌아온 송운은 저녁을 먹자마자 바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수련을 할 시간이었으나, 아까 사둔 책을 읽어보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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