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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19화 (19/275)

제19화

송운의 손이 점점 감각을 잃어갈 때 즈음, 서서히 만년설삼의 자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만년설삼이 맞아. 찾았다!’

송운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정말 말 그대로 ‘심 봤다!’ 였다.

생각보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

하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것만 있으면, 가족들의 건강은 물론이요, 자신의 선천지기도 한층 올라갈 것이다.

송운은 신난 마음으로 미리 들고 온 네모난 천을 꺼내 감쌌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자신의 품 안으로 넣었다.

이젠 더 이상 대별산에서 볼일은 없을 것이다.

* * *

송운은 그렇게 만년설삼을 품에 안은 채 하산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그때, 어디선가 무언가 울부짖는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크허어엉-!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송운을 붉은 눈빛으로 내리깔아보고 있는 거대한 곰이었다.

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콧김을 내뿜는 듯한 거센 숨소리와 온몸을 둘러싼 빳빳한 붉은 빛이 도는 털에 금방이라도 할퀴고 물며 달려들 것만 같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거기에 가히 열두 척은 넘어 보이는 거대한 몸집까지!

살기를 그득 머금고 있는 듯해 보이는 그 모습은 충분히 사람에게 위협을 가할 만했다. 아니 일반인이 보았다면 이미 놀라 까무러치고도 남을 법한 기세에 송운도 잠시 주춤한다.

작금은 겨울이다.

하니 당연히 산짐승들도 대다수가 동면(冬眠)에 취해있어야 했다. 그중 동면의 가장 대명사는 곰이 아니던가?

‘동면에 들어가야 할 녀석이 어찌 아직……?’

하나 송운은 생각을 끝마칠 새도 없이 곰의 앞발질에 몸을 성급히 피해야 했다.

우지끈-

녀석의 커다란 앞발의 공격을 받은 나무는 무참히도 꺾어 넘어졌다. 이유 따위는 알 시간도 없이 공격을 가한 그 거대한 곰은 이내 쉴 새 없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마냥.

그에 재빠르게 몸을 공중으로 날린 송운은 우선 방어하는 데만 치중했다.

‘어찌한다. 저 녀석을 잡아야 하나? 결코 쉽게 물러갈 것 같지는 않은데…….’

왠지 어딘가 모르게 광기를 내 비추는 녀석은 이성을 잃고 그 거대한 몸뚱이를 연신 날려댔다.

곰은 짐승 중에서도 흉포하고 강력한 힘을 가지기로 유명하다. 하여 무림에서도 내로라하는 일류고수도 쉽게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여 웬만한 고수들조차도 그 조우를 꺼리는 녀석이다. 그런 걸로도 모자라 이 곰은 그런 동족 중에서도 유독 난폭하고 날렵해 보였다.

그 때문일까?

요리조리 피하고 있는 송운을 따라잡을 것만 같았다. 그 거대한 몸집과 달리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는 추위에 몸이 굳어버린 그에겐 제법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빠르다.’

곰이라면 전생에도 제법 잡아봤지만, 지금까지 상대해온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이 녀석은 송운이 잠시 쉴 틈조차 주질 않는다.

만약 자신이 꾸준히 무공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피하긴커녕 이미 저 육중한 앞발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새하얀 눈 위를 새빨갛게 물들였을 터다.

그러곤 이 야산에 아무도 모르게 매장당했으리라.

송운도 더 이상 가볍게 대할 상대는 아님을 깨닫고 제대로 자세를 잡았다.

‘만만하게 볼 놈은 아닌 듯하고, 그렇다면…….’

정면 돌파.

눈앞에 나타난 먹잇감을 죽이고 나서야 물러날 것 같은 흉흉한 기세다. 그렇다면 정면 돌파만이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다.

당금의 자신은 강해졌다.

물론 천하십대고수만큼 강하진 못하지만, 저 정도의 곰과는 충분히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존재했다.

무기는 따로 필요치 않았다.

단 한 방.

정확한 위치에 자신의 내력을 둘러싼 발을 내리꽂는다면 내장이 뒤틀리는 충격과 함께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 채 목숨을 내어 주리라.

쿵-!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송운은 이내 녀석의 틈을 노리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송운이 약 올리듯 피해내자, 녀석이 이번엔 뒷발로 바닥을 쿵하니 내려찍는다.

그 충격으로 인해 나뭇가지 위에 얹혀있던 눈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이미 송운은 추위로 인해 몸이 많이 굳어버린 상태. 아무리 무공을 익혀 강해졌다곤 하나, 저렇게 큰 녀석을 계속해서 봐주며 상대했다가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될 수는 없지.’

빠르게 계산을 마친 송운이 곰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늘로 높이 뛰어오른 송운을 잡아보려 곰이 손을 높게 뻗으며 조금 웅크렸던 몸을 또다시 크게 펼치며 움직였다.

크어엉-!

그 순간 발을 헛디딘 송운이 옆으로 넘어지면서, 그 틈을 타 곰이 빠르게 뛰어가 들이박았다.

쿠웅-!

하나 그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송운이 빠르게 옆으로 굴러 내렸기 때문이다.

“흐읍……!”

숨을 급하게 들이마신 송운은 놀란 심장을 부여잡고 곧바로 자세를 바로 한다.

‘크흡. 자칫하면 밟혀 죽을 뻔했구나.’

그러는 도중 서서히 그 곰은 나무들이 빽빽한 곳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그 녀석은 아는지 모르는지 이내 송운의 앞으로 달려든다.

‘이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오른발에 최대한 내력을 모두 모으자.’

생각을 마친 송운은 곧바로 선천지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몸 내부에서 깊숙이 잠자고 있던 선천지기의 맑고 청명한 기운이 담긴 힘이 그의 다리를 감싸고돌기 시작했다.

우우웅-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모든 힘을 한곳에 모은다면 순간적으로 증폭되는 그 힘이 만만치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순간적으로 거대한 돌덩이도 초전박살을 내버릴 만한 힘이었다. 이 한 방이 제대로 먹힌다면 웬만한 생물들은 모두 내장이 뒤틀리며 피를 토하고 심하면 죽음까지 이를 수 있었다.

송운이 생각을 하면서 또다시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자 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정확하게 한 방이다.’

퍼어억-!

쿠웅-

일순간 곰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서 있던 송운이 왼발을 비틀며 허리를 반쯤 돌리면서 온몸에 있는 탄력을 받으며 날린 일격(一擊)이었다.

실상 인간이 맨손으로 곰을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데 송운은 그것을 무기라곤 아무것도 없이 동시에 곰과 맨몸으로 맞부딪혔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곰이 아니라 사람이 튕겨 나가야 한다. 아니 튕겨 나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충격에 기절 정도는 해줘야 정상이다. 하나, 천의선천기공의 내력을 불러 모은 송운의 그 발차기 한방은 순식간에 기세를 역전시켜 버렸다.

“허억, 허억…….”

괴성 한번 질러보지 못한 채 기절하듯 쓰러진 이후 더 이상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곰을 보며 그제야 송운은 숨을 가다듬었다. 그의 발치에는 방금 막 쓰러진 곰 한 마리와 흩어진 눈들만이 조금 전의 치열한 전투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선천지기의 양이 손톱 끝만 한데도 이 정도라니 역시 선천지기로구나.’

한방에 몸에 있던 많은 기운을 내쏟은 송운도 힘이 빠지긴 마찬가지였으나, 쓰러진 것은 곰 측이었다. 분명 제대로 단련시킨다면 상상을 초월할 만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일반 곰보다 배로 큰 녀석이 한 방에 죽었다.

그것만 보아도 효능은 충분히 입증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대체 어쩐 일로 흥분한 채, 이곳을 떠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송운에게는 뜻밖의 횡재였다.

예로부터 곰의 가죽은 최상급으로 쳐주는 데다가 칼질 한 번 닿지 않고 쓰러뜨린 녀석이 아니던가?

아마 돈이 꽤나 나갈 것이다.

그에 문득 기분이 좋아진 송운은 자신이 몰래 나왔다는 것도 잊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거처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뜨고 아침이 와있었다.

밤새 문을 지켰던 녀석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문 앞에 서 있는 송운을 맞이해야 했다.

‘아차, 생각해 보니 애초에 몰래 나온 길이었는데……으음. 어차피 곰도 잡아 왔는데 잠시 산책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잡았다고 하면 되겠지?’

하나 그런 송운의 생각과는 달리 정작 그들이 놀란 이유는 송운이 자신들 몰래 나갔다 온 것이 아니었다.

“고, 고, 곰이다!”

그제야 송운이 그들이 놀란 이유를 알아채고 설명하려 했으나,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 이것 말입니까? 놀라지 마세요. 단순히 산책하러 나갔다가 덤벼들기에 잡은…….”

“단주님! 소단주님! 곰입니다요. 곰!”

조급히 크게 외치는 소리는 이윽고 소단주인 유가량의 귀에도 들어갔고, 문 앞까지 당도한 그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나 그것을 고스란히 들킨다면 상단의 소단주라고 할 수 없었다. 그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채, 곰을 등에 업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향해 물었다.

“운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것이……. 단지 새벽 수련을 하려고 산에 올랐던 것뿐인데, 글쎄 이 녀석이 달려들더라고. 어쩔 수 있겠어? 내가 죽지 않으려면 잡는 수밖에.”

너무도 태연스레 달려들기에 잡은 것뿐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 유가량은 또다시 기겁해야 했다.

‘곰을 잡고도 어찌 이리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유가량도 그가 무공을 익혔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는 통에 들은 것이다. 게다가 자신도 상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림에서 흔히 난다 긴다 하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무공을 배워야 한다고 여겨 익히고 있었다. 하나 맨손으로 곰을 때려잡을 정도의 실력은 아니다.

송운의 무공은 자신이 생각했던 상상 그 이상이다.

세상에, 곰을 때려잡는 소년이라니?

유가량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밖에서 나는 소란에 나온 송악도 당황해 마지않았다.

“……이게 대체 웬 곰이냐, 운아? 어디 다치진 않았느냐?”

“예, 어디 다치진 않았습니다. 그것이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만…….”

여전히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는 송운을 보며 유가량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얼핏 살펴보니 그 크기도 크기거니와 곰을 잡으려면 필히 생기는 흠집 하나 없었다. 게다가 이 정도의 불곰은 대별산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녀석임이 분명했다.

‘이건 최상품이다!’

그는 천생 상인의 자식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상인으로 살아나갈 것이다.

물건의 값어치를 알아보는 눈 하나는 아주 좋은 유가량이다. 일반적인 곰들과는 크기부터가 남다른 걸 보니 보통 값어치가 나가는 녀석이 아니다. 가죽도 가죽이거니와 고기까지도 모두 최상품인 듯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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