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이얍!”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날라 오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바로 송하의 기습 아닌 기습이었다.
송하의 발차기는 배운 지 얼마 안 된 어린아이의 그것이라고 하기엔 이젠 빠르기가 제법이었다. 하나 그건 단지 송하의 입장에서 일 뿐, 송운의 눈에는 너무도 뻔히 보였다.
‘허허, 거참. 언제든 공격해도 좋다고 허락하였더니,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구나.’
하지만 싫진 않다.
오히려 그런 송하의 모습이 귀엽기도, 대견하기도 한 송운은 더욱 열심히 피해주었다. 그러면 약이 바짝 오른 송하는 또다시 그의 틈을 노리며 달려든다. 아직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송후와 송하가 자신이 방심한 사이 동시에 달려들 때엔 생각 외로 긴장감이 들기도 한다. 간혹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달려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속도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송하는 날쌘 다람쥐와도 같았다.
피해버린 자신 덕에 땅바닥을 그대로 구르다 나무에 머리를 처박은 송하가 눈물을 찔끔 흘리자, 그 모습에 웃음보가 터진 송운을 송하가 째려보며 말했다.
“오빠 너무해! 후 오빠는 가끔 맞아주기도 하는데…….”
그 귀엽고 작은 입술을 삐죽이며 투정 부리는 송하의 모습은 또다시 송운을 웃음 짓게 한다.
‘아마 후는 맞아주는 게 아니라 정말 맞은 것 같은데……. 허허, 내가 너무 가혹하게 대했나?’
그래도 좋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송운에겐 행복이고, 즐거움이었다.
“하하, 오늘은 이만 하고 들어갈까? 벌써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구나.”
그러자 금세 송하의 표정이 밝아진다.
땀을 빼고 난 후 먹는 밥은 꿀맛이니까.
그날 밤.
홀로 방에 누운 송운은 여러 가지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차피 아버지에게 무공을 익히는 것도 허락되었겠다, 천의경의 기연도 얻었겠다. 하니 무공 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늘어버린 것이다.
‘어찌하면 더 강해질 수 있을까.’
예전에는 한 성에서 이름을 날리는 절정고수에 그쳤으나, 작금의 자신은 더 강해져야만 한다.
무림에 고수는 널리고 널렸지 않은가?
굳이 천하십대고수(天下十大高手)를 제외하더라도, 은거 고수들은 수없이 많았고 지금도 실력 있는 고수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자신이 보고 느낀 세상은 그랬다.
‘만약 누군가 마음먹고 내 가족을 위협하려 한다면…….’
지킬 수 없다.
냉철해 보일 순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하여 그렇다 보니 이것만으로는 가족을 지키기엔 너무도 턱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기연을 얻은 당금, 필히 전생보다 더 강해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어있다.
더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리라.
‘지금처럼 동생들과 함께하는 수련법도, 천의선천기공도 효과가 좋긴 하나……. 뭔가 아직 부족한 면이 없잖아 있다. 더 빠르게, 더 강해져야 한다.’
* * *
다음날 가족들에게 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송악의 외출이었다.
“내일부터 한동안 잠시 자리를 비울 것 같구려.”
“이번엔 어디로 말입니까?”
“대별산이오. 유호길(柳浩吉). 그 친구의 부탁 때문이라오. 부인도 알지 않소?”
“아, 유 대인 말씀입니까? 호호. 오래간만에 찾으셨나 보군요.”
그 말을 듣고 있던 송운의 두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대별산 이라고?’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송운이 외쳤다.
“아버지, 저도 함께 가도 될까요? 호위도 필요하시지 않겠습니까?”
갑작스러운 송운의 발언에 잠시 놀란 듯해 보였으나, 이에 예령이 한마디 거들었다.
“호호. 그럼 이렇게 된 것, 온 가족이 함께 갈까요? 가족여행 한 번 갈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흠,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하야도 제법 컸으니……. 어차피 지인도 볼 겸 이것저것 볼일 처리할 겸 하여 가는 것이니, 별반 문제는 없을 듯하구려.”
그렇게 해서, 어쩌다 보니 처음 송운의 생각과는 달리 가족여행이 되어버렸다.
사실 송운의 속마음은 따로 존재했다.
아버지를 먼 곳으로 홀로 보내는 것에 마음 놓이지 않은 것도 있었으나, 문득 생각난 한 가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는데, 송악이 대별산이란 이름을 꺼내자 전생에 들었던 소문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 것이다.
전생에서 천하십대고수까지는 아니었으나, 중원 전체에 이름을 떨치던 고수 한 놈이 있었다. 한데 그놈이 바로 그 대별산에서 만년설삼의 기연을 얻어 그로 인해 엄청난 내력을 뒷받침 삼아 고수의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아마 그놈이 악명 높은 사파인이었지.’
단순히 무공 실력이 좋아서라기보다 그 만년설삼으로 얻어낸 내력으로 온갖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지르고 다녔던 녀석이다. 본디 남의 것을 빼앗는 건 해서도 안 되며 양심에 찔릴 법도 했으나, 그런 녀석의 것이라면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
‘선인이라면 모를까.’
오히려 세상에 악을 저지를 녀석을 미리 차단하는 격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아니겠느냔 생각이었다.
그걸 달이면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자신까지 먹을 양으로 충분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송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만년설삼쯤 되는 영약은 먹기만 해도 건강에 아주 좋은 데다가, 더불어 선천지기도 늘어난다.
단순히 무공 성장용이 아닌 것이다.
당연하지만, 선천지기가 늘어나면 천의선천기공에도 큰 도움이 된다.
본래 선천지기란, 인의적으로 쌓을 수 없는 그야말로 타고난 생명력이다. 한데 천의선천기공은 그러한 생명력을 강제로 키우고, 더욱 강한 힘으로 변환시킨다. 놀랍고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선천지기를 다룬단 점에 있어 천의선천기공의 약점은 명확한 편이기도 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일(一)이라는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적은 선천지기가, 실제 십(十) 정도의 내공 위력을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십의 일반 내력을 쌓는 것이 일의 선천지기를 쌓는 것에 비해 더 쉽다고 할까? 물론, 천의선천기공은 그러한 약점마저 극복하는 놀라운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로, 쌓인 만큼 더 큰 효율을 발휘하는 적립식 내공 이자다.
쌓기는 힘들지만, 선천기가 몸에 축적되는 만큼 한 번에 모을 수 있는 선천지기의 양도 늘어난다. 당장이야 일반 내공을 모으는 것에 비해 효율이 미약하다지만, 시간이 더 흐른다면 단숨에 그 효율은 추월 될 테고, 종반에 이르러서는 말도 안 되는 효력을 갖출 테였다.
가히 신공절학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공심법이 바로 천의선천기공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단점이 되어 지금까지 송운은 제대로 된 선천지기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면도 많았다. 얼마 없는 선천지기를 운용해서 싸우려다 보니, 양을 조절해야 해서 아무래도 움직임에 제한이 생긴 달까?
원시를 치러가던 중 만난 산적들과 싸울 때도 조금 더 마음 놓고 선천지기를 사용했다면 훨씬 더 폭발적이고, 강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을 터였다.
‘만년설삼이 그런 내 약점을 크게 보완해줄 것이야.’
송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오래도록 자연에서 성장하여, 선천지기마저 폭발적으로 증가시켜주는 만년설삼이라면 일부만 달여 먹어도 송운의 천의선천기공의 성장에 넓은 발판이 되어줄 터였다.
게다가 가족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지 않은가.
만년설삼 자체를 통째로 흡수한다면야 기운이 너무 강해 독(毒)이 되겠지만, 나누어 먹는다면 선천지기를 보완해주고 몸 내부의 음양(陰痒)조화를 올바르게 균형 잡아 이끌어 줄 터니, 장수의 비결이자 건강의 묘약이 될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 생각하고 있던 그다.
강해지는 것도 있었으나, 그 무엇보다 건강은 자신이 어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무공이 올라가더라도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르는 가족의 건강까지 다 잡을 수는 없는 법.
무식하게 그놈은 그걸 한입에 털어 넣었겠지만…….
‘어차피 나 혼자 그 많은 내기를 한 번에 소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적당히 나누어 달여 먹는 것이다.
‘거기다 가족여행이라니. 일석삼조로구나!’
그렇게 출발 일자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 *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집은 저희가 잘 맡아 보고 있겠습니다. 오랜만의 여행인 만큼, 편히 쉬다 오셔도 됩니다.”
그들을 배웅한 것은 총관(總管) 고홍당(高弘當).
반 백발에 옷에는 잡힌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한 모습. 조금은 깐깐하게 보일 법한 인상의 소유자인 그는 벌써 이십 년이 넘도록 집안의 일을 총괄해왔다.
또한 그의 가문은 오랜 세월 동안 송씨 집안의 든든한 총관 역할을 톡톡히 해내 왔다. 선뜻 의견을 낸 예령도, 온 가족이 자리를 비우는 결단을 내림에도 막힘이 없었던 송악도 그 이유 또한 여기에 있었다.
“우리 없는 동안 잘 부탁드려요. 고 총관님. 오는 길에 선물 빼놓지 않고 사 올게요.”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건 제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허허.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그럼 저희는 이만…….”
송하와 송후가 먼저 마차에 올라탔고, 그 뒤를 송운과 송악, 예령이 이어서 올라탔다.
생각보다 마차 안은 컸다.
탁-!
히이잉-!
맨 앞에 타고 있던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며 말들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내 마차가 출발한다.
"와아, 출발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본 마차에 송하가 차창 밖으로 머릴 내밀며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아니 어찌 보면 처음은 아니지만…….
설렘이 그득 담긴 목소리였다.
“어허, 하야. 위험하다. 머릴 어서 집어넣거라.”
하나 그건 한두 번쯤 나와 봤던 송후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 맑은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후후. 그러고 보니 우리 하야는 바깥 구경이 처음이겠구나.”
“그러게 말이오. 아이들이 나이가 좀 더 차면, 가끔 이리 가족끼리의 여행도 괜찮겠구려.”
간만의 여행길에 예령과 송악도 조금은 들떴는지, 평소보다 훨씬 즐거워 보였다.
‘오랜만이구나. 이렇게 가족끼리 여행을 하는 것도…….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의 출산일이 급박해져 외가에 가던 때 그때가 마지막이었지.’
그렇게 며칠을 온 가족이 두런두런 얘기하며, 맛있는 것도 먹고 하다 보니 목적지에 당도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도착한 그곳에는 미리, 송악의 지인이 보낸 상단 사람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