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쐐애액-!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 그가 휘두른 대도(大刀)는 허공을 날카롭게 가르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하나 이를 허용할 송운이 아니었다.
송운은 도가 날아드는 방향과 힘을 그대로 유지시킨 채, 자신의 몸을 빠르게 꺾어 피했다.
어마어마한 힘이 실려 날아온 도는 목표물을 잃은 채 그대로 나무에 처박혔고, 송운은 도를 잡고 있던 그의 오른쪽 손목을 허리를 반쯤 비틀면서 가볍게 발로 내려찍었다.
‘이, 이럴 수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을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
분명 힘이 다 빠져, 더 이상 싸우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한데 어찌 이런 움직임을 보인단 말인가?
손에서 도를 놓친 그는 허망한 눈빛으로 서둘러 육중한 몸을 피했으나 그의 발악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퍼억-!
송운이 사용하던 내공 운용을 중지하고 새롭게 끌어올린 선천지기를 한곳에 집중해 날린 한방이 도를 놓치면서 쉽게 열린 그의 명치를 뚫어버릴 듯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 한 방은 가히 엄청난 파괴력을 불러왔다.
“커허억…… 쿨럭……!”
장패기는 그 충격으로 피를 토하고 내장이 모두 뒤틀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땅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송운은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도망가려는 주변 잔당들을 향해 하나 둘 처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퍽퍽-!
기세를 잃은 적은 무너뜨리기도 쉬운 법.
게다가 선천지기를 이용해 힘을 폭발적으로 늘려버린 그의 앞에 더 이상 적수는 없는 듯해 보였다.
“끄으윽…….”
그의 발길질에서 몸부림치던 마지막 한 놈이 쓰러지자, 주변은 온통 초토화가 되어있었다.
땅은 싸운 흔적이 역력한 듯 여기저기 패여 있었고, 송운이 휘두른 몸짓에 휘몰아치던 바람으로 인해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져 땅바닥을 가득 적시고 있었다.
“더 이상 덤빌 자는 없는 것인가?”
조용히 읊조린 그의 말 한마디는 그 누구의 반항도 더 이상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살벌한 살기가 느껴진다.
주변이 초토화가 되었음에도, 송운의 음성에는 단 하나의 흔들림도 없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단 일각 만에 벌어진 일이란 것이다.
자신들의 두목마저 나가떨어진 지가 오래이건만, 그 누가 감히 나선단 말인가? 자고로 이런 놈들의 특징은 머리를 치면 더 이상 기어오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송운은 그 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했다.
그제야 멀찍이 떨어져만 있던 양조광의 곁으로 송운이 다가갔다.
“이제 다 끝났어. 가는 길에 관아에 들려 언질하면 알아서 처리할 거야.”
어안이 벙벙했으나 양조광은 그저 고개만 묵묵히 끄덕였다. 얼핏 소문으로만 들었던 송운의 무공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이다. 그 와중에 목숨을 취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그저 기절한 것뿐.
* * *
그렇게 산적들과 조우한 이후로 더 이상 장애물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정주로 가는 길 중 유일한 산길이었으니, 더 이상 마주칠 일이 없는 건 당연했다.
본디 이 길은 사람들도 제법 많이 다니며, 무인들도 많이 왕래하는 길인지라 위험하지 않다고 여기어 선택한 길이었다. 지름길이기도 하면서 위험하지 않은 길.
최상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산적들의 씨가 거의 말라 출몰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였으니. 하여 딱히 큰 위험이 감지되지 않아 호위무사를 따로 붙이지 않은 채 출발한 여정이었다.
한데 하필이면 그런 곳에서 산적을 만났으니…….
‘지지리 운도 없지. 그래도 간만에 몸을 풀었으니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송운은 그저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
만약 자신이 무공을 익힌 이가 아니었다면 정말 재수 없게 목숨을 내주어야 했을 것이다.
“운 공자님. 드디어 정주인 듯합니다.”
그때, 양조광의 말대로 저 멀리 성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주는 하남성의 성도인 만큼 그 위용이 대단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사람들과 그 속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 그 옆에는 재주를 넘는 광대패들과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 등등으로 온 도시가 둘러싸여 어마어마한 인파였다.
발 딛고 서 있을 틈조차 찾기 어려울 지경.
양조광이 서둘러 객잔을 찾아 나섰다.
“우선 머물 곳부터 찾는 것이 좋을 법합니다.”
“그게 좋겠다.”
한참을 돌았을까?
밝았던 하늘이 어느덧 해를 감추고 어둠을 드러내고 있었다.
송운과 양조광은 매우 허탈함에 빠졌다.
아무래도 원시가 치러지는 것이 내일이라 그런지 주 객잔들은 이미 방들이 모두 빠지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마지막 남은 방입니다요.”
그나마 마지막으로 돌아 겨우 남은 방 하나는 매우 낡고 허름했다. 침상은 삐걱거리고 그나마 작게 나 있는 창문마저도 바람이 휑하니 들어올 것만 같았다. 이마저도 급하게 내놓은 것인지 방금 치운 티가 팍팍 날 정도였다.
아니 사실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길바닥에서도 자는 게 다반사였던 전생에 비해 이 정도면 상전이다. 다만, 마음에 계속 걸린 것이 있다면 가격에 송운이 기겁을 한 것이다.
“이 작은 방 하나가 은자 두 냥이란 말이오?”
“예, 그렇습죠. 그나마도 저희 객잔은 조금 싸게 내놓은 것이지요. 헤헤.”
갸름하고 뾰족한 얼굴에 쥐꼬리 같은 수염을 기른 사내는 어깨를 연신 굽실거리며 말했다.
약 칠 주야 정도 머물 것이니, 총 은자 열네 냥.
일반 평민을 기준으로 일 년을 열심히 모아봐야 은자 서른 냥을 볼까 말까한 세상이다. 방 하루 묵는 돈치고는 너무도 비쌌다.
‘허, 거참. 아무리 살기 어려운 때라고는 하나 어찌 그리 비싸게 받는다는 말이냐. 말이 평등하게 시험을 치르라 하는 것이지, 이대로는 결국 돈 있는 자들만 시험을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참으로 불공평한 세상이다.
애초에 평민들은 대다수 학문을 가르치고 싶어도 매 학기마다 들어가는 돈부터 부담스러워 학당에는 보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던 송운은 그냥 야외에서 잘까란 생각까지 미쳤으나, 차마 양조광이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야 전생에 이미 수없이 많은 잠을 하늘을 이불 삼아 땅을 침상 삼아 사는 삶에 익숙해졌을지 모르지만, 학사로서 글만 읽고 살아온 양조광에게는 너무도 각박한 일이다.
“그것으로 주시게.”
이내 못마땅한 말투로 품에서 꺼낸 은자 두 냥을 내밀었다. 그걸 낚아채듯 냉큼 받아 들은 점소이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나리.”
송운은 이내 켕기는 마음을 접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내일이 시험이니 오늘은 푹 자두어야겠구나.’
다음 날 아침.
평소와 같이 새벽에 눈을 뜬 송운은 내공심법을 빠지지 않고 돌렸다. 비록 이곳은 보는 눈이 많아 무공 수련은 불가해 보였으나, 이것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조용히 심법을 마칠 즈음이 되자, 양조광이 눈을 떴다.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하하, 그러게. 새벽에 늘 일찍 일어나다 보니 이젠 이게 몸에 배었나 봐.”
송운의 말에 스윽 미소 지으며 양조광도 이내 옷을 갈아입었다.
“약 한 시진 반 뒤면 원시가 시작될 겁니다. 그전에 배를 든든히 채워야 시험도 잘 보는 법이지요.”
양조광의 말에 동의하며 객잔 아래로 내려간 둘을 어제 보았던 그 점소이가 반가이 맞이했다.
“아침은 무엇으로 드릴 깝쇼?”
“소면 두 그릇. 그리고 만두 네 개면 되네.”
“동전 서른 냥입니다요.”
하나 양조광이 이를 말리며 나섰다.
“운 공자님. 시험을 치르러 가는 길이 아닙니까? 배를 든든히 채워야 합니다. 그것 말고 동파육(东坡肉) 한 접시와 생편초두(生煸草頭)하나 가져다주시오.”
양조광의 말에 이내 점소이가 눈을 빛내며 신나서 말했다.
“헤헤, 은자 두 냥입니다요.”
이내 그가 선뜻 내밀었다.
방값이랑 똑같은 음식값이라니?
송운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올 법했으나, 양조광은 군말 없이 은자 두 냥을 건네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따로 챙겨준 노잣돈인 듯했다.
“역시 성도이다 보니 물가가 제법 센 듯합니다.”
그런 송운의 눈빛을 보았는지 양조광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천자(天子)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고 하여 이리 곱절로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야?”
“하하……. 어찌하겠습니까? 이미 세상은 그리 돌아간 지 오래인 것을요.”
처음엔 몰랐다.
그저 그럭저럭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대 공자로 대접받으며 살다가 집을 나와 홀로 살아가다 보니, 자신이 보지 못했던 세상은 너무도 부조리했다. 어쩌면 오래전 돌아가신 증조부께서도 그런 세상이 싫어 관직을 물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살다 가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쪼록, 맛있게 드시지요. 시험만 무사히 잘 보고 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양조광을 보며 송운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기왕 시험 보러 온 것. 든든히 채우고 가자.’
第七章. 원시 합격
시험을 치르러 온 사람들부터 그들을 배웅하러 온 사람들까지, 북적거리는 원시 장(場).
어제도 많다고 생각했으나, 그 많던 인원이 죄다 이곳으로 몰린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역시나 사람이 많구나.’
“네가 우리 집안 장손 아니냐. 꼭 붙어서 와야 한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이제 막 지학에 들어선 듯해 보이는 소년부터.
“꼭 이번엔 붙으셔야 합니다.”
“걱정 마시게. 부인. 이번엔 내 꼭 붙어 오리다!”
이미 나이가 꽤나 차, 처자식까지 있는 자들까지.
각양각색의 다양한 모습이 보였다.
그때, 시험관으로 보이는 듯한 이가 나와 큰소리로 말을 했다.
“자자 모두들 시험장 안으로 드시오! 곧 원시 시험이 시작될 것이오. 시험을 치르는 본인 이외에는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소.”
시험관의 말에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에 송운 또한 비장한 모습으로 시험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잘 보고 오십시오. 운 공자님.”
“다녀올게.”
양조광과 떨어져 나온 송운은 눈앞의 광경에 놀랐다. 꽤나 넓게 펼쳐진 시험장은 많은 이들이 앉아도 충분할 만큼 컸기 때문이다.
‘역시 성도에서 치르는 시험답게 몹시 크구나.’
들어선 사람들이 차례대로 줄을 서기 시작한다.
이는 부정을 행하지 않을까 하여, 신체검사를 하기 때문이다. 혹여 돈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몰래 건넨다든가 무언가 미리 적어와 본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이렇게 통과한 시험장 안에는 시험 일정이 모두 끝마쳐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