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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13화 (13/275)

제13화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관직에서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 황실을 도왔지만 때 없는 역모에 휩쓸려 모두 죽임을 당했고 일가친척이 모두 멸절(滅絶)당했다고 했다. 그야말로 분골쇄신 하다 역으로 당한 것이다.

그러는 와중 하나밖에 없던 외아들 양조광을 업고 그의 어머니가 있는 힘껏 도주하여 간신히 살아남은 것이다. 그녀가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 내 도착한 곳은 송악의 집 앞이었고 쓰러진 그 두 모자를 거둔 것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하여 양조광은 더 이상 과거를 볼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송운은 그 일을 다시 떠올리면서 씁쓸한 고소(苦笑)가 입가에 걸렸다.

‘아버지라면 충분히 거두고도 남으셨을 분이지.’

그럼에도 글을 놓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는 양조광을 보면 대단하다는 말뿐이 나오질 않았다.

안타까운 사실이었으나 어찌하랴?

이미 지난 일, 돌이킬 수도 없을뿐더러 아픔을 굳이 캐묻고 싶지도 않았기에 모른 척한 것이다.

이내 송운은 고개를 휙휙 젓고 양조광의 옆으로 다가갔다.

‘지금은 원시에 집중하자.’

그렇게 둘은 걸어가는 내내 종종 책의 내용을 묻고 답하기도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두런두런 나누었다.

하나 그것도 만 하루가 지나자 점점 줄어들었다. 생각보다 학문만을 공부해온 양조광의 체력은 약했다.

‘역시 일반적인 학사들의 체력은 한없이 적구나.’

한참을 조용히 걸었을까?

어느새 땅거미가 자욱하게 지고 있었다.

“오늘은 다음 마을에서 머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미 해가 많이 기운 듯합니다.”

그에 송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산속에서는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일반인들에겐 매우 위험한 곳이 된다.

굶주린 야생동물들이 득실거리는 것도 물론 있겠으나 그것보다 더 큰 위험은 따로 있었다. 자칫하다간 재수가 없으면 산적들의 눈에 띄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뺏기고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아니 오히려 빈털터리 정도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목숨까지 앗아가는 경우도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오르막길만 지나가면 마을이 하나 나올…….”

하나, 좋지 않은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다고 하였던가?

지금이 딱 그 순간이었다.

“여어, 이것 보게. 귀여운 꼬마 학사 나리들 아니신가? 거기 좀 서보시지. 낄낄.”

휘이익-

휘파람을 불며 불량한 자세로 걸어오는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은 ‘나 산적이오.’를 온몸으로 뽐내며 송운의 일행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귀찮게 되었군.’

되도록 마주치지 않고 싶었던 이들 중 하나였다.

무림에서 가장 귀찮은 이들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산적이었다.

이유 없이 잘 가던 길에 갑자기 나타나 시비를 걸고 모든 걸 앗아가는 이놈들은, 적은 수면 서넛부터 스무 명이 넘어가는 규모까지 꽤나 다양했다.

문제는 이들이 무공까지 익힌 녀석들이라면 일반인 들은 정말 반항해볼 틈도 없이 당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지나가던 행인들이오. 더 이상 부딪힘 없이 조용히 물러간다면 우리도 관아에까지 고하진 않겠소. 그러니 이만 물러가시오.”

양조광은 역시나 학사답게 조용조용 말로 타일러 볼 생각으로 내뱉은 말인 듯했으나, 그런 말로 통할 자들이라면 애초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크, 크하하하! 삼놈아. 지금 저 학사 나부랭이가 감히 우리에게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글쎄 말입니다. 학사 나부랭이들 주제에 감히 호위도 없이 이 시간에 산을 타는 걸 보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듯합니다요. 낄낄.”

그들의 기세는 점점 드세어지기만 할 뿐, 전혀 물러날 기색은 보이질 않았다.

‘결국 무력을 사용해야 하는 것인가…….’

이번 행은 다른 것도 아닌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다.

웬만하면 좋게 가고 싶었거늘, 역시나 이놈들은 도와주는 법이 없다.

늘 그래왔다.

과거에도 그랬다.

게다가 정파에 속해 협객 행을 한 것은 딱히 아니나, 그 역시나 선량한 사람들을 건드리는 놈들을 가만두는 건 무인으로서 두고 볼 수 있는 일이 아닐 터.

하여 자신이 직접 손봐 준 산적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정도다.

“순순히 가진 것 다 내놓고 가거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두목으로 보이는 듯한 놈이 당당하게 말했다.

송운이 그 말을 듣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놈의 산적 대사는 어딜 가나 변하질 않는구나.’

“그래, 너희들도 쉽게 물러가긴 싫다 이것이지? 조광아 뒤로 멀찍이 물러나 있어. 최대한 멀리.”

말을 마친 송운이 몸을 풀기 시작하자, 그걸 본 산적들이 크게 웃어 젖혔다. 하기야 그들 눈에서 본다면 곱게 학사 옷을 빼입은 놈이 무기 하나 없이, 자신들을 보며 몸을 푸는 것이 여간 웃긴 모습이 아닐 터다.

“크하하하! 네놈 설마, 그런 가녀린 몸으로 우리에게 덤비려는 것은 아니…….”

하지만 그의 말은 끝맺음을 할 수 없었다.

다짜고짜 송운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하압!”

퍽-!

크게 웃고 있던 그는 옆구리를 빠르게 파고든 송운의 발에 맞으면서 멀리 날아갔다.

“크윽, 저, 저놈이! 뭐하고 있는 게냐 다들 치지 않고!”

걷어차인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신음을 흘리며 그는 자신의 무리에 소리쳤고 그 소리를 시작으로 싸움이 시작됐다.

“들었느냐? 다들 쳐라!”

“으아아!”

송운은 요리조리 쏙쏙 피해 가며 그들을 유린했다.

그의 몸놀림은 마치 바람과도 같아 하늘을 나는 듯 붕 날았다가도 빠르게 내려앉았다.

거대한 태풍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부웅-

“운 공자님!”

속수무책으로 발만 동동 굴리며 멀리 떨어져 있던 양조광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시 송운이 숨을 고르는 사이 옆쪽에서 날아온 도끼에 송운의 어깨가 스칠 뻔한 것이다.

“하아, 하아…….”

간신히 피한 송운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숨을 가다듬었다.

‘역시나 질풍각은 내공 소모가 크구나.’

적은 대략 스무 명 정도.

얼핏 재보니 두목을 비롯해 세 명 정도는 일류고수급 정도 되는 듯해 보인다.

자신은 맨몸인 데 반해, 저놈들은 스무 명 정도 되는 놈들이 일제히 종류별로 무기를 날려대니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벅찼다. 예전의 그 무위는 제법 되찾았으나, 내공은 아직 턱없이 부족했으니 마음대로 때려눕히고 싶어도 내공이 딸리는 것이다.

전생의 내공이 일 갑자(一甲子) 정도였다면, 지금 모인 내공은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 겉으론 멀쩡해 보였으나, 슬슬 모아뒀던 내공이 거의 다 소모되어 가고 있었다.

지난번 애송이 한 명과 싸울 때와는 전혀 판세가 달랐다. 단 한 명의 철없는 애송이라면 손쉽게 이길 수 있을 테지만, 나름 산전수전을 겪으며 살아온 산적 무리다.

당연히 내공이 딸릴 수밖에.

‘어찌한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는 결국 이쪽이 불리해질 터. 사면초가(四面楚歌)로다.’

그렇게 생각하던 그의 머릿속에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천의선천기공!’

왜 자신이 그걸 까먹고 있었는지.

천의선천기공을 알고 난 이후로 일 년 넘게 꾸준히 모아왔던 선천지기는 그 양이 결코 적지 않았다. 게다가 그 양은 일반 내공에 비해 같은 양이라도 열 배의 효율을 낼 수 있지 않은가?

‘허허…… 너무 오랜만의 싸움에 흥분을 한 것인가? 어찌 그걸 까먹고 있었는지.’

송운이 생각하며 잠시 서 있자, 산적들의 눈에는 지쳐서 멈춘 것처럼 보였는지 이내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다.

“크흐흐. 그럼 그렇지. 학사 놈이 갑자기 날뛰기에 놀랐으나 그 역시 호신용 정도에 불과했구나! 네놈 돈만 받고 곱게 살려 보내려 했으나, 내 너만큼은 반드시 목숨을 취하여 산채의 입구에 네 놈 모가지를 걸어주마!”

그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하자, 아직 멀쩡한 녀석들이 송운을 에워싸듯 다가왔다. 아무래도 학사 복장을 한 놈에게 이렇게 나가떨어진 것이 산적의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이리라. 그나마도 자신들과 싸운 녀석은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가 아니던가?

그런 모습을 본 송운은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그러곤 자신의 몸 내부 안 깊숙이 잠들어 있던 그것을 끌어 올려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송운의 몸 주변에 알 수 없는 바람이 일었다.

산적들은 달려들다 말고 그 기이한 풍경에 다가오던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만 보았다.

“여태껏 두들겨 맞은 것도 모자라 아직도 반성은 못 하고 이제는 사람을 죽일 생각까지 하고 있구나. 내 너희를 불쌍히 여겨 잠시 손만 봐주려 했건만, 어찌 이리 배은망덕하단 말이냐?”

말을 끝마친 송운이 이내 다시 몸을 날렸다.

생각보다 선천지기의 힘은 대단했다.

그가 모아두었던 내공보다 훨씬 높은 효율이었다.

더욱 몸이 가벼워지면서 충만해진 몸속의 내기가 자신을 감싸고돌았다.

‘이거면 충분하다.’

이내 송운이 그들을 향해 다시 한번 몸을 날렸다.

* * *

송운이 고전한다 느끼고 있을 때, 고전하는 쪽은 송운뿐만이 아니었다.

‘크윽! 이제 막 지학이나 된 어린 애송이 학사 주제에, 무슨 놈의 힘이 이리도 좋아?’

산적 인생 십 년째에 접어드는 장패기(張覇氣)다.

본래 다른 산에서 이름 꽤나 날리던 그들은 정처 없이 떠돌다 날이 추워지면서 워낙 먹고 살기가 어려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이 길을 택해 넘어왔다. 그리고 넘어오기 무섭게 때마침 학사 복장을 한 어린놈들이 눈에 띄기에 앞뒤 잴 것 없이 달려든 것뿐이다.

한데, 그 학사.

그것도 어린 소년이 무공을 익혔으리라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작금의 세상에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무인은 무인이요, 학사는 학사이니 무시할 법도 했다. 학사가 아무리 무예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대다수는 평생을 앉아 글만 읽고 사는 놈들이다.

글 쓰는 것과 말만 잘할 줄 알지 체력은 영 바닥이었으니…….

그러한 판단 아래 먹잇감이라 생각하고 덤볐거늘, 무참히 자신의 부하들이 밟혀 나가기 시작했다.

‘도, 도망갈까?’

처음엔 의기양양하던 놈들도 점차 동료들이 하나둘 나가떨어지니 주춤주춤하기 시작한 것이다. 애당초 그저 그런 놈들끼리 몰려다니는 것뿐이니, 결속력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하나, 쪽팔리게 학사 놈에게 겁을 먹고 도망간다는 것은 산적 두목인 자신에겐 너무도 치욕적인 일이 아닌가?

나름 일류고수의 반열에도 올랐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그다.

그때, 숨을 거칠게 내쉬며 몸을 추스르는 송운의 모습이 장패기의 눈에 들어왔다.

‘크크. 그래. 저놈 처음보다 훨씬 약해졌구나. 그럼 그렇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장패기는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자신의 부하들에게 둘러싸인 송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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