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네놈은 우선 첫째로, 존장(尊長)에 대한 예의부터 배워야 한다. 자고로 사람이란 위아래를 가릴 줄 알아야 하거늘.”
“예, 예. 그러겠습니다.”
“둘째로, 어린아이들의 싸움에 끼지 마라. 아이들은 서로 다투고 싸우면서 그렇게 배우고 자라는 것이다. 한데 어찌 그보다 더 큰 어른이 그걸 감싸고 끼어든단 말이냐?”
장철주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저기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께 정식으로 사과드려라. 그렇게 한다면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고 곱게 돌려보내 주마.”
“저, 정말이십니까?”
“더 맞고 싶은 것이냐?”
송운의 말에 그는 흠칫했다.
더 맞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장철주는 성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사죄드리겠습니다!”
그는 멍하게 바라보고 서 있던 예령과 송악의 앞으로 가 넙죽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우를 끼치는 범례(範例)를 저질렀습니다. 제, 제발 용서해 주십쇼. 어르신!”
엉겁결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두들겨 맞을 대로 맞아 사죄를 바라는 이에게 무슨 말을 더 할까.
그제야 송운이 냉정하던 눈빛을 사그라트렸다.
“이만 가보아라.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거든 그땐 이걸로 끝내지 않을 터다.”
“가, 감사합니다!”
그는 송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동생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
참으로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오빠!”
“형님!”
그 둘이 돌아가자마자 어느새 와있던 송후와 송하가 송운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어이쿠, 이 녀석들.”
두 동생 모두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걱정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에 이어 예령과 송악이 다가왔다.
가장 먼저 물은 말은 다친 곳은 없느냐였다.
“운아,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니?”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작은 생채기도 없었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 것인지, 예령이 재차 물었다. 그런 모습에 송운의 얼굴은 오로지 작은 미소만이 걸려있었다.
“예,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몸을 단련한다더니, 정말 강해졌구나.”
예령이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처음엔 그녀도 달려드는 장철주의 모습을 보고 놀라 말리려 했으나, 그럴 틈새도 없이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전혀 밀리긴커녕 압도하는 아들의 모습에 놀랐다.
그러면서도 큰아들이 든든해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든든하구나. 그 작던 아이가 어느덧 이리 컸어.’
그녀의 눈에는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옆에 소나무처럼 뻣뻣하게 서 있던 송악도 이내 한마디 이었다.
“몸을 건강히 한다더니 정말 강해졌구나. 하나, 자고로 학문을 배운 자가 함부로 사람을 해하려 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야. 알겠느냐?”
비록 쓴말을 달기는 했으나, 그의 무공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 큰오빠 최고야!”
송하의 맑은 한 마디에 가족들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해 여름 생긴 그 강렬한 사건은 또다시 가족끼리의 정을 두텁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第六章. 정주(鄭州)로
그 일이 있고 다음 날 송악은 송운을 따로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아마도 아들의 모습에 많이 놀랐음이리라.
“내 어제는 너무 놀라 말을 하지 않았으나, 네가 배우고 있는 것이 혹여 무공이란 것이더냐?”
“예, 아버지.”
“으음……. 그냥 단순한 호신용 정도로나 생각해왔거늘, 그쪽은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범상치 않더구나. 그런 것은 대체 어찌 안 것이냐? 우리 집안은 그런 무공과는 거리가 멀거늘.”
송악의 말에 송운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전생에서 배웠고, 모든 기억을 가지고 회귀했다. 라고 말하면 당연히 믿지 못하실 터…….’
그렇게 말한다 한들, 거짓말을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라며 펄펄 뛰실 게 뻔했다. 직접 겪은 자신조차도 믿는 데 한참을 걸리질 않았던가? 하물며, 당사자도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해준다고 해서 믿을 리는 거의 만무했다.
고민 끝에 송운은 결정을 내렸다.
“실은……. 제가 어릴 적 하루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적이 있지 않습니까?”
송악은 잠시 생각하더니, 기억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열 살 즈음 밖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려 다음날 간신히 돌아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산속에서 잠시 발을 헛디딘 것이지요. 굴러떨어지고 한참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웬 동굴이 하나가 나오더군요. 당장은 나갈 곳도 없고 우선은 동굴 안에 먹을 것이라도 있을까 하여 들어갔었습니다. 한데 그 안에 웬 버려진 허름한 책이 버려져 있어 동굴을 벗어나면서 들고나왔죠. 어릴 땐 그게 무엇인지 잘 몰라 그저 보관만 하고 있다가 나이가 좀 더 들고 보니 그것이 무공서지 뭡니까?”
“음…… 그랬구나.”
“예, 그래서 건강 삼아 운동할 겸 시작한 것이 그리된 것입니다.”
제법 설득력 있는 말에 송악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알았다며 송운을 물렸다.
송운은 속으로 약간 찔리는 감이 없잖아 있었으나, 어찌 되었건 반은 사실이었다.
‘정말 동굴에서 얻은 건 맞으니까.’
그 후로 송악은 더 이상 송운에게 무공을 익히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선 더 이상 간섭하지 않겠다는 묵언의 승낙(承諾)이었다.
애초에 무공을 천시하는 사람도 아니었을뿐더러, 무공이라는 것이 아주 쓸모없는 것은 아니란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리라.
다만 이제 막 다시 학문에 흥미를 붙인 아이가 다른 것에만 또 치중할까 근심하여 제지했던 것일 뿐.
한데, 이미 원시를 치를 정도로 학문에서의 성적도 거두고 있으니 더 이상 하지 말라 할 이유는 없었다.
의외의 것은 송후의 반응이었다.
그날이 지난 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늘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송후는 새벽에 빠지지 않고 송운이 수련하는 곳으로 따라 나왔다.
하여 송운은 그에게 말했다.
“더 이상 무공수련하는 것이 힘들다면 배우지 않아도 된다.”
하나 송후는 생각 외로 단호했다.
“아닙니다. 형님. 기왕 시작한 무공, 저도 형님처럼 멋진 사내가 되고 싶습니다.”
그날의 송운의 모습은 학사의 집안에서만 자라왔던 송후에겐 제법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송운 자신이야 드넓은 중원에서 무인으로 평생을 살면서, 붓만이 아닌 힘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송후의 세상은 집과 학관이 전부였을 터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몰랐다. 하기야 수 대째 내려오는 학사 집안에서, 무공을 보는 건 쉽지 않았을 터.
더구나 무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무공이라는 것에 대해 뜬구름처럼 알고 있는 정도일 뿐.
그 위력이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하지 못한다.
한데 그런 무공을 자신의 형이 익히고 있다.
게다가 그걸로 놈들을 신나게 두들겨 패 혼쭐을 내주지 않았던가? 하여 자신의 힘으로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크게 다가온 것일까?
송후는 강하게 끝까지 배우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네 생각만큼 무공의 깊이는 얕지 않다. 괜찮겠느냐?”
“예, 형님! 걱정 마세요. 형님의 수련에는 방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 겁니다.”
말하는 내내 반짝이는 눈망울은 매우 맑았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함께 해보자.”
그렇게 해서 정식으로 시작된 새벽 수련은 두 형제의 정식 일과가 되었다.
더 이상 만류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더 놀라운 일은 따로 있었다.
“오빠, 나도 그거 끼워 줘.”
오후의 햇살을 즐기며 책을 읽고 있던 송운의 머리 위로 송하의 얼굴이 비쳤다.
그거라니?
그때까지 그는 알 수 없는 송하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꼬마 아가씨가 말하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왜, 지난번 오빠가 보여준 것!”
송하는 자신의 발동작을 어설프게 따라 하며 열심히 입으로 설명했다. 아무래도 그날 자신이 보여준 몸동작을 보고 어설프게나마 따라 한 것 같았다. 한번 보고 따라 한 것 치곤 꽤나 좋은 자세였다.
‘무공을 말하는 건가?’
생각을 채 끝내기도 전에 송하가 말을 이었다.
“후야 오빠랑 큰오빠가 새벽마다 연습하는 거. 그거 나도 끼워 주면 안 돼?”
송하는 동그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 말에 확신이 들었다.
‘맞구나.’
“무공을 말이냐?”
송운은 의외의 말에 놀랐다.
“응응. 그거. 나도 할래!”
“하지만 하야. 아버지께서 허락을…….”
“이미 받았어!”
순간 송운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버지께 허락을 받았다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송하의 모습에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거짓말은 절대 못 하는 송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운은 속으로 깊은 고심에 빠졌다.
실제로 여인의 몸으로 무공을 익히는 자들은 생각보다 적지 않다.
그 예로, 구파일방(九派一幇) 중 아미파(峨嵋派)는 아예 여인들만으로 이루어진 파였다. 호신용 정도로 배우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 또한 쉬운 것은 아니다. 자신이 겪은 무림은 여인이라고 해서 봐주는 그런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만약 어쭙잖은 실력으로 무림으로 뛰어든다고 할 수도 있을 터. 그리되면 정말 위험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나, 역으로 말하자면 여인이 자신의 몸 하나 지킬 줄 안다는 건 무림에만 나가지 않으면 안전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송운은 어떡해야 할지 고민이 앞섰다.
‘그래, 언제까지나 내가 지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닐 테지…….’
그랬다.
언젠간 송하도 나이가 차면 지아비를 맞고 가정을 꾸려 나갈 것이다.
또한 자신도 분명 그리하게 될 터.
그리 생각이 들자 송운의 입안에 씁쓸한 무언가가 감돌았다.
‘그래, 어차피 아무리 내가 뛰어나도 가족 모두를 나 혼자 지키려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럴 바에야 송하도 배우게 한다면 득이 되면 득이지 독이 되진 않을 테지.’
게다가 송후까지 무공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송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것까지 생각한다면 더없이 좋은 방법일 수도 있는 셈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송운은 결국 그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작한 수련이었다.
한데 생각보다 송하의 무공을 빨아들이는 속도가 꽤나 좋았다.
아니, 오히려 사내아이인 송후보다 더 빠르게 나아갔다. 그 증거로 어느 순간부터는 송후의 진도보다 송하가 더 앞서나가고 있었다.
“오빠, 이건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스스로 생각했을 때 조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 싶으면 곧바로 쪼르르 달려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