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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10화 (10/275)

제10화

서로 울고불고 싸우더라도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다.

‘좋다.’

송운은 그런 가족의 모습에 절로 즐거운 마음이 한가득 일었다. 전생에서 홀로 보낸 긴 시간 동안 잊고 살았던 가족의 품은 공허하던 자신의 마음 한구석을 다시 메워 주고 있었다.

* * *

송후에게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도 벌써 보름이 흘렀다.

이젠 제법 체력도 붙은 데다 자신이 강조했던 기세도 꽤나 드세졌다. 그동안 그가 놀란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송후의 모습이었다.

늘 자신의 앞에서 부끄럼을 많이 타, 마냥 약하다고만 생각했거늘 의외로 약골도 아니었다. 끈기도 제법 있어 시키는 건 곧이곧대로 한다.

더 이상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나약한 동생이 아니었다.

‘좋아. 훌륭하게 따라오고 있구나.’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송운은 더 이상 지체할 필요성이 있을까란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무공을 시작한 건 거의 비슷할 터.

‘그래. 더 시간 끌 것 없다.’

송운은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송후를 바라봤다.

“후야.”

“……?”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은 참으로 귀여웠다.

“오늘이다.”

그 말에 송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오늘이라고만 말했으나 충분히 알아들은 것이리라.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보고 오거라.”

그렇게 나름의 비장함을 마음에 지닌 채 송후가 집을 떠났다.

그날 저녁.

“다녀왔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활기찬 목소리로 정문을 들어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송후였다.

온몸에 먼지를 한가득 뒤집어쓰고서도 마냥 활짝 웃고 있었다.

‘이겼구나.’

송운은 무언가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가르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스스로 해낸 것이다.

“형님, 제가 이겼어요!”

마치 자신을 칭찬해 달라는 듯 밝게 웃으며 빛나는 두 눈동자는 승리로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힘없이 맞고 다닐 바에야, 사내들끼리 제대로 승부를 가리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좋을 터.’

그렇게 송운은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장하구나. 내 동생.”

진심으로 송운이 칭찬해주자, 송후가 괜스레 멋쩍어하며 콧잔등을 긁었다.

두 형제가 해낸 멋진 승리였다.

그렇게 승리를 맛본 지 며칠이 지났을까?

저녁노을이 하늘을 뒤덮어 붉은 기가 깊어질 때쯤 송운의 집 정문을 누군가 세게 두드렸다.

쾅쾅-

“문을 열거라! 이놈, 어서 썩 나오지 못할까!”

저녁 식사를 마치고 편히 쉬고 있던 문지기는 웬 이상한 놈이 다 있냐며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간혹 없잖아 있는 일이기도 하니 평소처럼 곧 지나가겠지란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한 것이다. 괜히 열었다가 집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면 귀찮아지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일이 커져 주인어른의 귀까지 들어간다면 일이 커질 터.

그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대체 이 시간에 누가 저리 행패인 것인지. 술을 먹었으면 곱게 돌아가 잘 것이지. 거참.’

하나 계속해서 그 두들김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자 보다 못한 그가 결국 문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문을 열어 본 풍경은, 보기 좋게 그의 예상을 빗나갔다.

약관(弱冠)을 조금 넘었을까 싶은 청년과 그보다 네다섯 살은 더 어려 보이는 어린 사내아이가 무복을 차려입은 채 서 있질 않은가?

‘누구지?’

그의 그런 의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찌 이리 문을 여는 데 굼뜨단 말이냐? 이 집의 송후에게 볼일이 있어 왔느니라. 나는 같은 학관에 다니고 있는 장철두(張鐵頭)의 형 장철주(張鐵週)다. 볼일이 있어 왔으니 어서 불러오거라!”

그 오만방자함에 넋이 나갔던 문지기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주인어른이 계시는 방으로 향했다.

어찌 됐건 이름까지 불러가며 나오라 하는 걸 보면 알리기는 해야 할 터. 조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그가 생각을 바꿨다.

‘아니야. 일단 주인어른께 말씀드리기보다야 대 공자님께 기별을 넣어야겠다.’

십오 년간 이 집의 문지기로 있으면서 눈치로 살아온 그다. 아무래도 얼마 전 소공자님이 맞았던 원인이 된 자인 듯한데, 사실대로 주인어른께 먼저 보고 했다가는 큰 사달이 날 게 불 보듯 뻔하다.

똑똑-

“대 공자님.”

“누구냐.”

“저……. 밖에 장철두란 자와 그의 형이란 자가 와있습니다. 소공자님을 불러달라고 난리인 통인지라…….”

송운의 미간에 내 천자가 그려졌다.

‘후를? 그렇다면 후와 싸웠던 녀석인 것 같은데.’

어찌 되었건, 부모님보다 자신에게 먼저 온 것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그리 생각이 든 송운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잠시 문지기를 물렀다.

“알았다. 잠시 나가 있거라.”

“예, 대 공자님.”

곧 송운이 문 앞에 당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큰소리를 떵떵 치며 외쳤다.

“저놈이 송후냐?”

“아, 아닙니다. 형님.”

그 모습에 송운은 기가 찼다.

“이 시간에 남의 집에는 무슨 일이오?”

“넌 누구냐? 보아하니 송후란 놈의 형인 게로구나. 어찌 그 녀석이 나오질 않고 사내답지 못하게 형의 뒤에 숨는단 말이냐?”

다짜고짜 들이대는 그의 말에 송운이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허. 장씨라. 장씨 가문이라면 무관의 집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거늘……. 학관에 다니는 녀석이 무공을 배운다더니 그 집 자식이었군.’

송운은 재차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장철두란 놈도 형의 기세를 등에 업고 온 것 같은데, 대체 누가 누구보고 뭐라 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대강 들어 보니 무관의 집안 아들이 학사 집안 아들에게 맞고 왔다고 하니, 배알이 뒤집혀 그의 형이 대신 나선 듯해 보였다.

“감히 내 동생을 때려? 두 번 다신 아무 때나 주먹질을 하지 못하게 버릇을 단단히 고쳐줄 테니 오거라. 네놈에겐 관심 없으니, 어서 송후인가 송훈인가 하는 놈을 불러오란 말이다!”

“어찌…….”

그 순간, 송운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노기가 잔뜩 베인 음성이 크게 들려왔다.

* * *

“감히 누가 누구의 버릇을 고친단 말이냐!”

바로 송악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게 온 집안을 울렸다. 학사의 그것이라고 하기엔 그 기세는 마치 범과도 같았다.

“어찌 무관의 자식들이 이리 함부로 주먹질을 하러 다닌단 말인 게요?”

거기에 예령까지 더해지자 분위기는 한없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일이 더 커지겠어.’

부모님들까지 나선다면 결국 우려한 대로 가문싸움으로 번질 것은 뻔하다.

말려야 한다.

결국 송운이 말을 꺼내며 조심스레 앞으로 나섰다.

“허어, 애들 싸움은 애들 끼리 싸워야 하거늘. 어찌 그렇게 유치하게 노는 것이오?”

“크큭, 형제끼리 쌍으로 건방지구나. 형이 그 모양이니 동생도 똑같은 게로군.”

하나, 비아냥거리는 그 말이 거슬렸는지 결국 송악이 활화산 터지듯 터져버렸다. 송후를 때린 것도 모자라 첫째인 송운까지 쌍으로 싸잡아 욕하는 걸 보고 있을 그가 아니었다.

“이놈! 여기가 감히 어디인 줄 알고 함부로 세 치 혀를 놀리는 게냐! 그래, 이놈들 장씨 무관 집안 녀석들이로구나. 무언가 배움에 있어서 그 근본은 늘 올곧은 마음가짐에 있거늘. 어찌 사람을 지키라 배운 무공으로 사람을 해하고 다니는 것이냐!”

“하, 사람을 해하고 다녀? 크큭. 거 노인 어르신. 주변에서 대인이라 불러주며 좀 높여주니 댁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우리 아버지가 누군 진 알고 그리하는 것이오? 그렇게 멀쩡한 목 잘못 간수하면 어찌 되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 순간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서, 송운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막 약관을 넘겨 무림에 나가 기껏해야 한 일 년이나 되었을 법한 모습이다.

학사의 집안이니 우습게 보고 덤볐을 테지만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봤자 애송이지. 그런 주제에 어딜 감히 대 선배 앞에서 폼을 잡아?’

그리고 송운이 결정적으로 화가 난 건 딱 하나였다.

자신을 건드리는 것까진 괜찮다.

하나, 가족들까지 건드리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날 비웃는 것이냐?”

무시당한 것이라 생각된 그는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나 있던 참에, 마른 장작에 불을 지핀 듯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송운에게 덤벼들었다.

“내 오늘 네놈 형제들을 모두 때려 눕혀, 이 집안을 풍비박산 내어 놓을 것이다!”

“오거라, 누가 위인지 제대로 보여주마.”

송운의 입가에 비웃는 듯한 미소가 걸렸다.

“이이, 으아아아!”

그 말에 탄력을 받은 것인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으나, 송운은 그가 곁으로 달려올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장철주가 움직이는 순간 그의 눈이 맹수의 그것처럼 매섭게 빛났다.

흥분한 상태의 상대는 적을 이길 수 없다.

더군다나 상대는 송운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무인인 그를 이제 겨우 새파란 무림의 조무래기 따위가 이길 수 없었다.

더욱 침착함을 유지한다.

그다음, 순간적으로 정신을 집중해 동선(動線)을 파악한다.

‘들어왔다.’

그는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듯 자신이 짜여놓은 자리로 들어왔고 이에 장철주를 향해 몸을 날렸다.

퍽-!

“커헉.”

지금의 그에겐 자비란 없었다.

오랜만에 대결 아닌 대결을 갖는 그의 움직임은 막을 수도 없었다. 송운은 마치 한 마리의 맹수처럼 날뛴다.

퍽퍽퍽-!

전생에 절정고수로 한 성(省)에서 명성을 떨쳤던 그다. 숱하게 많은 무인이 그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작금은 비록 무공을 다시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한낱 애송이가 그의 발길질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처음에는 맞을 만한 것인지 아니면 오기인지, 끝끝내 이를 악물고 맞고 있던 장철주의 입에서 드디어 항복의 선언이 외쳐졌다.

“컥, 쿨럭! 그, 그만…….”

하나 그의 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더욱더 묵묵히 송운은 그를 향해 발을 날렸다.

퍼억-

“파리가 앵앵대는 건지. 잘 들리지 않는군.”

처음과 다를 바 없는 송운의 얼굴은 여전했다.

냉혹함.

그 자체였다.

“으아아! 잘못, 잘못했습니다. 제발…… 커흑…… 그만……!”

그와 동시에 거짓말처럼 송운의 발길질이 멈추었다. 송운의 발아래 짓뭉개지듯 깔린 장철주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처음의 그 기세등등함은 어디로 팔아먹었는지, 얼굴에는 눈물과 콧물, 그리고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장철주는 마치 어린아이마냥 펑펑 울며 그의 다리를 꼭 잡고 있었다.

송운은 그런 그를 냉정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네놈이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말하는 것이더냐?”

“예, 예. 절대로 두 번 다시는 이런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크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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