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항상 마냥 여린 아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지금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내 동생이로구나.’
송운은 그와 동시에 곧바로 훈련에 돌입했다.
그가 가장 먼저 시킨 것은 다름 아닌 기본 동작들이었다. 몸을 단련하기 전의 필수 과정이었다.
더군다나 송후도 태어나서 한 번도 힘쓰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몸이다.
결국, 일 년 전 자신과 다를 바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하니 바로 무리한 체력 훈련에 들어간다면 그동안 쓰지 않았던 근육들이 죄다 놀라 다음날엔 상당히 무리가 갈 것이 뻔했다.
그것은 익히 자신이 겪어보질 않았던가?
하여 기본 동작들을 끝내고 나서야 송후에게 본격적으로 체력을 길러줄 수 있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모든 무공의 기초에는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법.
하여 시작한 훈련은 버거울 법도 하건만, 힘들어 하면서도 군말 한번 없이 제법 잘 따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은 투정을 부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어린아이가 아니던가?
그런 송후가 마냥 기특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생각보다 잘하는구나. 우리 후야, 대단한데?”
송운의 칭찬에 송후가 멈칫하더니 배시시 웃는다.
그리고 이내 다시 훈련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의 입가에는 저절로 훈훈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이런 게 바로 동생들을 둔 형, 오빠의 마음인가?’
그리고 열심히 자신이 시킨 대로 하고 있는 송후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송후가 쉽게 배울 만한 무공이 뭐가 있을까.’
지난 오십오 년의 세월 동안 무림에 몸담았던 그는 상당히 많은 무공들을 보고 들었다. 물론 보고 듣는다고 해서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었으나, 기본적으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퍼져있는 무공들 위주로 생각해 보았다.
가장 손쉽고 빠르게 익힐 수 있는 무공일수록 좋았다. 보법(步法)이야 자신이 익힌 질풍보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무공은 달랐다.
아무래도 어린아이들의 싸움인데 발을 이용하는 것보다야 주먹이 좋지 않겠는가?
게다가 제대로 배우려거든 시간이 제법 소모될 터다.
하여 되도록 질풍각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딱히 이렇다 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질풍각을 조금 간소화하여 알려주어야 하나…….’
내심 포기를 해가던 그 순간, 불현듯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무공이 떠올랐다.
‘삼극권(三極拳)!’
이는 권법(拳法)계에서 가장 유명한 팔극권(八極拳)을 토대로 만들어진 무공으로, 무재(武才)가 딱히 없더라도 어느 정도 뒷받침할 체력과 운동신경만 있다면 빠르고 손쉽게 배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즉, 팔극권의 축소판 정도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래, 그게 좋겠구나.’
송운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어렸다.
* * *
“자 이제 너에게 걷는 법을 알려주마.”
벌써부터 온몸이 땀으로 젖은 송후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걷는 법이라니?
무공에 대해 무지(無知)한 송후에게 그 말은 마치 걸음마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하나 어찌 보면 무공을 배우려면 가장 기초적인 것 중 하나가 보법이기도 하니 그 말도 맞는 말이기는 했다.
“걷는 법이요?”
“그래. 걷는 법. 하나 여태껏 네가 걸었던 그런 걸음걸이가 아닌 조금은 독특한 것이 될 게다.”
송운이 말을 마친 채 호흡을 길게 내뱉은 후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의 시작은 단순히 걷는 것과 똑같아 보였지만, 이내 그의 몸은 가벼워 보이는 발걸음과 함께 왼손은 뒤로 한 채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그의 발놀림은 천천히 불다가도 거세고 빠른 바람과도 같았다.
“와아!”
이를 본 송후의 입에는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단순한 보법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린 송후의 눈에는 그것마저 형이 대단해 보였으리라.
“저도 형님처럼 이리될 수 있는 건가요?”
송후는 신기하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물론이지. 이제부터 내가 너에게 이 보법을 알려주마. 우선 처음 내딛는 왼발은 최대한 가볍게 들어야 한다. 그다음 어깨와 허리를 일(一)자로 세우고 왼손은 뒤로, 몸의 무게중심은…….”
송운은 최대한 송후가 알아듣기 쉽도록 천천히 간편하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역시나 머리가 좋은 송후는 빠르게 알아들었고, 엉성하나마 금세 따라오기 시작했다.
‘역시 머리가 좋으니, 알아듣고 배우는 속도가 빠르구나.’
그는 흡족한 마음으로 앞에서 열심히 보법을 연습하는 송후를 쳐다보았다.
일평생 누군가에게 가르친다는 걸 해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조금 모자란 면도 많을 터다. 한데 그런 자신의 말을 듣고 금방 잘 따르는 송후는 그의 눈엔 마냥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보법의 기초가 안정되어 가자 송운이 말했다.
“보법은 그만하면 되었다. 첫날이기도 하고 앞으로는 내가 가르쳐준 대로 걸으려 노력하면 더 빠르게 배울 수 있을 게야. 머리로 외우는 것보다야, 일상생활에서 몸에 익으면 생각보다 쉬울 테니 말이다.”
“그럼 이제 무엇을 또 익히나요?”
송후는 자신의 형을 똘망똘망 쳐다보았다.
힘들어서 나가떨어질 만도 하건만,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간다는 것에 대해 몹시 즐거워 보였다.
“힘들지 않느냐?”
“헤헤. 힘들긴 하지만…… 형님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건 너무 즐거운걸요.”
송후는 자신이 내뱉고도 쑥스러웠는지 이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송운이 그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하하. 녀석. 조금 쉬었다 하자. 아직 동이 트려면 시간이 꽤 남았으니 말이다.”
“예, 형님!”
그렇게 얼마간을 쉬었을까?
송운이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제 배울 것은 삼극권이라는 권법이다. 내가 하는 자세를 잘 보면서 듣거라.”
송운은 우선 기수식을 취했다.
“첫 번째로 타기(打技)다. 팔꿈치를 자신의 외완부(外腕部) 쪽으로 비틀면서 우(右)에서 좌(左)측으로 아래로부터 찔러 올리듯 치면 된다.”
그가 차례대로 몸은 자세를 취하며 입으로는 설명해 나가자 송후도 곧바로 그의 옆에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자세는 웃음이 나올 만큼 엉성했으나, 제법 잘 따라 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 무공을 익혔다곤 하나, 그래봤자 어린애들끼리의 싸움일 뿐. 게다가 배운 지도 얼마 안 됐을 테니…….’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싸움을 잘하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기세(氣勢)가 중요할 터.
“후야, 싸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세다. 기세가 없으면 배운 무공도 모두 다 부질없는 게다.”
송후는 숨이 차 헉헉대고 있으면서도 형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귀여운 녀석.’
그렇게 자세를 가르친 지 일각이 조금 더 되게 흘렀을까?
지친 기세가 역력한 송후를 보며 그만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때마침 동이 터오고 있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자.”
“예, 형님.”
* * *
그렇게 두 형제간의 새벽 연마가 끝이 났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송운과 송후는 빠르게 목욕을 한 후 나란히 아침밥을 먹으러 향했다.
더 늦으면, 아침 시간을 어겼다고 송악이 화를 낼 것이 분명하리라.
서둘러 도착한 밥상 앞에는 아직 잠이 조금 덜 깬 듯 눈을 비비고 있는 송하와 여전히 책을 읽고 계시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예령의 모습이 보인다.
“어서들 오렴, 오늘은 운이와 후야가 같이 왔구나.”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밥을 막 뜨고 있던 예령이 말을 걸었다.
예령은 늘 아침밥은 자신이 챙겨줘야 하는 거라며, 따로 밥을 하는 시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밥을 한다. 음식 솜씨 또한 뛰어났기에 송운은 그런 어머니의 밥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맛있었다. 새벽 일찍부터 몸을 움직여 땀을 뺀 후라 그 맛은 더 할 것이다.
게다가 그 자리가 늘 가족들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오늘도 역시 맛있겠는데?’
맛깔스럽게 차려진 밥상 위를 보니 군침이 한가득 돌았다.
그렇게 막 한술 뜨려던 송운에게 송악이 한마디 건넸다.
“운아, 후야와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고?”
조금 의아한 표정의 송악에게 송운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예, 아버지. 아무래도 사내아이가 맞고 다니는 것보다야 스스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여 내린 판단입니다. 어른들이 나서기엔 너무 어린아이들의 단순한 싸움이 아닙니까? 누구나 한 번쯤은 자라면서 겪는 성장 과정이죠.”
“음……. 그 말도 맞는 말이긴 하다만은…….”
송운은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눈치채고선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걱정 마시고 제게 맡겨주세요 아버지. 결코 후야가 운동 때문에 학문을 게을리할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잠자코 듣고만 있던 예령이 한마디 거두었다.
“가가. 후야가 맞고 들어왔지 않습니까? 그걸 두고만 보고 계실 참이십니까? 아니면 어린아이들의 싸움에 어른이 달려들어 혼이라도 내주실 생각이십니까? 호호. 이 기회에 후야도 건강해지고 좋지 않겠습니까.”
예령의 곱게 접힌 눈이 분명 웃고 있었으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느껴지는 은은한 살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에 더 이상 송악은 말을 잇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지 않은가. 이미 송운에게 맡기기로 약조한 것을…….
“흠흠, 아니, 내 말은 말이오. 부인. 자신의 몸뿐이 아니라 운이가 동생까지 챙긴다고 하니 기특해서 한 말이라오. 형제지간의 정이 매우 보기 좋구려. 허허. 내 어찌 뭐라 한다고 생각하시오? 후야, 꼭 널 때린 놈을 두 배 아니 세 배로 혼내주고 오거라.”
그리고 이내 먹던 밥으로 시선을 옮겼다.
송악의 말을 들은 후 그제야 예령 주변에서 폴폴 날리던 살기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송운은 자신 또한 속으로 괜히 움찔한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어찌, 무공도 배우지 않으신 어머니에게 이리도 강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인지……. 역시 어머니는 대단한 존재인 것인가?’
하나 그러면서도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 은은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항상 어머니에게 힘을 못 쓰는 아버지가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 모습 역시 가정이 화목하니 있을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