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이후 다시 송운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매일 새벽 일찍 잠에서 깨 무공을 연마하고,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양조광과 학문을 공부한 뒤, 또다시 복습을 하며 보법을 함께 수련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무공 연마. 저녁을 먹은 후에는 잠들기 전까지 천의경을 읽기를 반복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혹여나 가족들이 사라졌을까 걱정부터 하던 송운은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반복했을까?
이젠 그 일상들이 몸에 밸 만큼 익숙해져 더는 가족들이 사라질까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삶을 돌려준 하늘에게 감사했다.
‘가족과 함께라면 그 어떤 고난이고 못 버텨낼까.’
그리 생각하며 송운은 늘 식사하는 곳으로 향했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데 가는 길 내내 송운은 뭔가 집안이 너무 고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따라 집안이 조용하다.
평소라면 시녀들의 재잘거림과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로 제법 시끌벅적할 시간인데,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혹,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송운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찌 되었건, 온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 시간에 늦는 건 부모님께 예가 아닐 테니.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가족들도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있는 건 식탁 위에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쌓여 있는 음식들뿐이었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냐?’
누군가 침입하였다고 하기엔, 방 안은 너무도 평온했다.
그가 당황해하고 있을 무렵, 뒤에서 여러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혹여 침입자인가 싶어 잔뜩 긴장해 있던 송운의 귓가에 송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하야!”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그의 검디검은 동공(瞳孔) 속에 가족들의 모습이 비쳤다.
어딘지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갈 듯 말 듯 해 보이는 아버지와 화사하게 웃고 계시는 어머니. 그리고 장난기 가득한 송하와 그 옆에 서 있는 송후까지.
모두 송운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라는 말은 입 안으로 삼켜야 했다.
“오늘이 네 생일이잖니. 아가.”
예령이 자신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생일?
생일이라니.
……아!
송운은 그제야 기억이 나는 듯했다.
그랬다.
오늘은 자신의 생일이다.
챙겨본 지 하도 오래되어 까마득히 잊고 있었을 뿐.
집을 나오고 난 후, 생일이라는 걸 챙겨본 적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챙길 시간도 여유도 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집을 나온 떠돌이 주제에 무슨 생일을 챙기냐며, 주변 이들이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여 그렇게 생일을 챙기지 않고 살아 온 지 어언 오십 년이 넘으니, 오늘이 자신의 생일인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생일 축하해 오빠!”
“생일 축하드립니다. 형님.”
연달아 동생들의 생일 축하와 송악도 입을 열었다.
“크흠. 벌써 날짜가 그리되었더구나. 생일 축하한다.”
그러곤 잘 갈린 먹과 벼루. 좋은 털을 썼는지 한눈에 봐도 윤기가 좔좔 흐르고 있는 붓을 건네주었다.
“학문에 도움이 될까 하여, 주는 것이니 잘 쓰도록 하거라.”
“호호. 전부 네 아버지가 장에 나가 직접 구해온 것이란다. 필히 좋은 물건들일 게야.”
그렇게 말하며 예령이 웃자, 이내 송악은 손을 내저으며 기겁했다.
“무, 무슨 소리요. 부인? 그건 내가 아니라…….”
“이이가, 또 발뺌을 하시렵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하세요. 오늘은 운이의 생일이질 않습니까?”
“꺄르륵.”
온 가족과 함께 맞는 생일.
대체 얼마 만이던가?
송운은 울컥하는 마음이 일었다.
참아보려 하였으나, 끝끝내 차오른 눈물 한 방울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좋은 날 이게 무슨 추태인 것이냐. 운아.’
그리 속으로 자신을 달래 보았으나, 한 번 터진 눈물은 봇물 터지듯 멈출 줄을 모른 채 흘러내렸다.
하나, 이건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다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대한 기쁨과 환희의 눈물이었다.
“오빠 울어?”
“아, 아니다. 그냥 이건…….”
“울지 마 오빠. 흐윽.”
자신의 눈물을 가장 먼저 발견한 송하가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어머, 운아 왜 우는 거니? 선물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이야?”
“아닙니다. 어머니. 하하…….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너무 감사해서……. 울지 말거라 하야.”
송운은 같이 울기 시작한 송하를 달래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흘리는 눈물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송악이 사내가 되어 함부로 눈물을 흘린다며 뭐라 나무랐으나, 그것마저 좋았다.
‘정말 최고의 생일이구나. 이런 게 바로 가족의 품인가.’
그간 잊고 살아왔던 그것들이 하나둘씩 모여 송운의 뚫려있던 마음을 조금씩 채워가고 있었다.
가족은 이런 것이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하는 것.
함께하면 기쁨은 배가되고 슬픔은 반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라.
함께 있을 땐,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잃어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
하나 그때는 이미 너무 늦는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바로 송운이 아니던가?
‘더 이상 그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으리라. 이번 생에는 절대 잃지 않을 것이야.’
* * *
가족들과의 행복한 생일을 보낸 그는 방으로 돌아와 책상 한편에 고이 모셔진 천의경을 펼쳐 들었다.
안 그래도 너덜너덜하게 닳아있던 표지가 자신의 손에 매일 밤 고생을 했는지 자신의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 나왔다. 얼마나 그의 손을 탔는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천의경이 읽는 나보다 더 고생인 것 같구나.’
송운이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천의경을 만나고 가족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것을 생각하면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책을 펼치고 다음 장으로 넘기려던 그때, 그의 뇌리에 무언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음? 뭔가 이상한데…….’
아무리 자신이 책을 반복해서 계속 읽었을지언정, 곧이곧대로 외운 부분이 섞여서 기억날 리가 없다. 게다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떠올린 내용이 앞뒤로 얽힌 글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했었다.
그 괴이함에 송운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번만이 아니었다. 그동안은 너무 자연스러워 딱히 의심하지 않고 넘어간 것일 뿐, 이미 수차례 자신은 얽힌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송운의 왼손이 자연스레 관자놀이에 놓였다.
분명 따로 떨어져 있는 문장이거늘 이어서 읽으면 하나로 연결되는 것 같은 부분도 보였다. 별 의문 없이 읽는다면 자신이 책장을 넘겨 다른 문장을 읽은 것이어도 알지 못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설마 책을 잘 못 쓴 건 아닐 테고…….’
아무리 생각해도 묘하다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았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책 표지를 열고 몇 번이나 살펴보았다.
한데, 그 순간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한 장, 그러니까 책의 앞 장과 뒷장의 글자를 한 칸씩 띄어 연결하면 또 다른 문구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송운은 속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스레 읊조렸다.
‘선(先), 행(行), 배(倍), 상(上)…….’
그렇게 합쳐진 것은, 다름 아닌 무공 구결과도 같았다. 아니, 확실했다.
순간 송운의 눈이 커지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건 무공 구결이다!’
소리를 지를 뻔한 걸 간신히 참고서 숨을 가다듬은 후,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무공 구결이 분명했다.
자신이 처음 무공서를 접했을 때보다 더한 설렘과 흥분이 겹쳐져 느껴졌다.
“하…… 이럴 수가. 단순한 책이 아니었단 말인가?”
탁.
그의 손에 들고 있던 천의경이 책상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송운은 뭔가 손에 힘이 풀리면서도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자신은 지금 생에 다시없을 엄청난 기연(奇緣)을 맞이하고 있는 순간일지도 몰랐다.
‘내게도 이런 기연이 오다니.’
아니 이미 자신이 과거로 돌아온 것 자체가 기연이었다.
한데 무공 구결까지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역시 천의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었어.’
* * *
천의경의 비밀을 알아낸 송운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혹여 내기가 충돌하지 않을까?’
내가기공의 종류는 다양하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정공(正功), 사공(邪功), 마공(魔功) 등이 바로 그러한 종류의 대분류에 속했다. 조금 더 자세히 나눈다면 음양공, 오행공 등에서부터 또다시 분류될 수 있으며 소분류로 나뉜다면 훨씬 더 많은 종류의 내가기공이 존재할 수 있었다.
각 내가기공에 따라 무공의 특성도 많이 달라지는 법인데, 송운이 익힌 질풍심공의 경우는 정공와 사공의 중간에 속하는 편이었다. 무언가 정심하기도 하지만, 거친 편이랄까. 풍(風)을 닮은 질풍심공이기에 완벽히 정(靜)적인 무공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일 터였다.
어찌 됐든, 만약 천의경에 담긴 내공심법이 그러한 질풍심공에 반대되는 특징을 가진 정(靜)의 무공이거나, 내기를 집어삼키는 마공에 속한다면 득(得)이 아닌 독(毒)이 될 확률이 높았다.
자칫 잘못 충돌할 경우, 심각하게는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져들 수도 있었다.
‘기를 보아하니 안정적인 정공에 속하는 것 같긴 한데…….’
무공 구결이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주고는 한다.
특히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는 정공과 마공의 구결은 척 보기만 해도 격심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좋아, 일단 익혀보자.’
무공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질풍심공의 내기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
게다가, 천의경에 적힌 내공심법이 정공이라면 큰 충돌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간단하게 소주천 정도라면…….’
중간에 이상이 느껴질 경우 곧바로 그 자리에서 멈춘다면 위험도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조심스럽게 해보자.’
결심한 송운이, 가부좌를 튼 채 천의경에 적힌 내공심법의 구결을 따라 소주천을 시작했다.
이미 지겹도록, 외울 만큼 보았던 천의경이었기에 굳이 구결을 다시 익히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좋아, 천천히, 천천히.’
몸속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희미하게 움직이는 기운을 느낀 송운의 입가로 따뜻한 미소가 떠올랐다.
생각보다, 제법 편안한 느낌이었다.
* * *
며칠이 더 흘렀다.
그간 송운이 천의경에 적힌 내공심법의 구결로 인해 얻은 효과는 솔직히 말하여, 전무(全無)했다.
‘그냥 운기토납법이었던가?’
딱히 질풍심공과 충돌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호신용 운기토납법에 불과할 확률도 높았다.
내공심법이라기보다는 그냥 몸을 좀 더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병치레로부터 지켜주는, 말 그대로 건강심법이랄까?
나름대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