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화산천검 7권(24화)
10장 모든 것의 끝(2)
“나는 바로 모옥에서 나와 매영을 통해 혈천을 조사하기 시작했지. 삼백 년 전에 전 강호와 전쟁을 했던 만큼 한 번 무너졌다고 다 사라져 버리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혈천회는 이곳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지. 평범한, 그저 이 근처에서 잘나갈 뿐인 상단으로 말이야. 하지만 한 번 무너졌던 것이 타격이 컸던 것인지 내 예상만큼 그렇게 강하지는 않더구나. 그렇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세력이야 키우면 되는 거니까. 게다가 이곳은 산간벽지에 있는 만큼 병력을 모으고 세력을 키우기에는 화산파보다 좋았지. 나는 정체를 숨기고 혈천의 회주를 쓰러뜨리고 회주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곤 이름을 혈천회로 바꾸고 지금과 같이 만들었지. 그리고 혈천회의 회주에게만 허락된 금지에서 비밀문서를 보았지. 화산파의 금지에 삼백 년 전 혈천회의 삼마병과 많은 비급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장문인이 터벅터벅 나에게 걸어왔다.
“나는 그것을 매영을 통해 가지고 와 혈천회에 뿌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혈천회도 커졌지. 칠사도도 사실 내가 만든 것이다. 화산파의 선검수가 더 올라가려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혈천회의 인물들도 비급을 얻은 후로 나태해진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더 올라가려 하지 않기에 그동안 생각했던 선검수 위의 단계를 만드는 것을 이곳에 먼저 시험차 적용해 본 것이지. 역시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많은 고수가 서로 싸우고 죽여서 마지막 일곱 명이 남았지. 그리고 그 일곱 명이 다시 겨뤄 지금의 칠사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러던 중 나는 여인이 두 명이나 있는 것에 큰 흥미를 느꼈지. 그리고 신상을 조사해 보던 중에 사사도 초령이 사실 고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움찔!
사사도 초령이라는 말에 몸이 먼저 반응해 버렸다.
“그리고 예전에 화산파의 장로 중 한 명이 후기지수였을 때 양녀로 삼았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그리고 이때 하나를 더 떠올렸다. ‘나머지 문파를 현재의 화산파만큼 끌어내리고 화산파가 다시 올라가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턱!
장문인이 나와 삼장 거리에서 마주 보고 섰다.
“화산파에는 비밀리에 도움을 주면서 나머지 문파와는 싸움만을 한다. 그렇게 되면 계획은 더 완벽해지지. 나는 곧바로 사사도에게 접근해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나의 계획에 끌어들였다.”
나에게 자하검을 주고 일부러 놓아주곤 하였던 사사도 초령.
사부가 아버지라는 것 외에 나를 도와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중 문제가 생겼지. 화산파는 많은 무공이 실전되었다. 혈천회의 호법이나 칠사도가 가진 강한 무공을 상대할 무공이 없다는 것이 바로 문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혈천회의 무공을 화산파에 뿌릴 수는 없는 법, 나는 친우에게 무공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였지. 너에게도 그가 접근을 했을 것이다. 공천패, 그자가 나의 친우다.”
“…….”
놀라지는 않았다.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던 공천패, 나에게 그저 도움만을 주던 그.
무언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비밀리에 화산파에 풀어 나는 화산파를 강하게 만들었지. 화산파의 갑작스런 성장의 배경에는 다 나와 공천패의 노력이 있었다.”
“…….”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천패에게 의도적으로 혈천회의 정보를 흘렸지.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공동파에서 파문되었다고는 하나 공천패도 한때는 구파의 제자, 곧바로 막기 위한 대비에 착수했다. 그리고 구파의 시초부터 있었다는 무공들의 전수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 하지만 화산파에는 그런 무공이 없었어. 왜일까? 삼백 년 전에 실전된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결국 삼백 년 전에 실전된 것이었지. 그렇지만 나는 한 가지 확신이 있었다. 시초부터 있었다는 무공을 한 명에게만 전수할 리가 있는가? 아니, 전수했다고 하더라도 진전을 이은 자가 갑작스레 죽었을 때를 대비한 안배가 없었겠는가? 나는 계속해서 조사를 하였고, 매화검로가 바로 그 안배라는 것을 알아냈다. 매화는 화산파의 상징, 그런데 그런 무공이 삼백 년 전 이후로 갑작스레 생겨난 것이 수상해서 파고들었더니 알 수 있었던 것이지. 그래서 나는 매화검로를 직전제자에게만 전수하는 무공이 아닌, 속가제자도 배울 수 있고, 수준이 된다면 보평제자에게까지 가르칠 수 있도록 지시를 내렸지. 매화검로의 진실한 형을 깨울 화산파의 제자를 찾기 위하여.”
매화검로가 화산파에서 초급 무공이라고 소문이 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찾아냈다. 네가 선천적으로 상단전의 정이 깨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는 너를 실력을 숨기고 있던 무진, 그의 제자로 하였다.”
“제가 사부의 제자가 된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그렇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너는 매화검로의 진정한 형, 자하십육검을 점점 깨달아 갔지. 하지만 결국 벽에 막힐 것을 예상했다. 자하십육검은 실전적이고 잔인한 검로, 무수한 실전과 극한의 상황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 나이 대에 그런 실전을 겪는 자는 손에 꼽을 정도지. 결국 나는 분노를 삭이고 예전에는 있었다고 하던 종남파와의 합동훈련을 개최했다.”
합동훈련이 갑작스레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였다.
“물론 혈천회와의 전쟁에서 그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 장로로 위장한 흑풍들의 입김이 컸지. 그리고 나는 합동훈련이 시작하자마자 혈천회의 회주로서 혈천회의 호법, 창마 황신에게 적당히 휘저어 놓으라고 명했다.”
합동훈련 때에 혈천회의 호법이 나온 이유도 지금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네게 있을 벽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지. 너는 동기가 없었다. 갑작스레 강해져야 할, 살기를 품어야 할 동기가 말이다. 그래서 철검파에 혈천회의 인물들을 집어넣고 소검파를 흔들어 화산파에 지원을 오도록 유도하고, 너와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장일과 유혁, 그리고 결정적으로 네 사부를 보냈지. 물론 무진이 실력을 숨기고 있는 만큼 강한 자를 혈천회에서 뽑아 기습을 시켜야 했어. 너와 한 번 싸운 전적이 있는 황신이 알맞았지. 그래서 황신에게 창마대를 이끌고 기습을 시켰다. 황신이 조금 다치기는 했지만 장일과 유혁 덕분에 무진을 완벽히 제압할 수 있었지. 그때부터였다, 완벽한 대계의 시작은.”
“…….”
떨림이 어깨를 타고 손을 따라 검으로 이어졌다.
“너는 내 의도대로 잘 성장해 주었지. 철검파를 무너뜨리고 우가장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육사도를 쓰러뜨렸지. 그리고 우연히 내 야망을 눈치채고, 나를 직접 막는 대신 나의 대계를 막으려 구파의 인물들을 키우고 있는 공천패가 얼마 후에 남궁세가를 지나갈 것을 알고 천랑대와 일사도를 남궁세가로 보냈다. 너는 천랑대를 막아서고 일사도도 막아섰다가 내 예상대로 공천패에게 도움을 받아 완벽한 자하십육검을 깨우쳤지. 그리고 시기가 잘 맞물려 조금씩 예전의 영광을 되찾아 가던 화산파에서 무림맹이 발동되고, 내가 혈천회에서 약한 자들을 뽑아 보내 싸운 만큼 모든 싸움에서 승승장구하였지. 게다가 네 사부인 무진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만큼 깨달음도 깊어져 이사도와의 싸움에서 가볍게 승리하여 양지에서도, 음지에서도 화산파의 명예는 더욱더 높아져만 갔다. 이제는 예전과 비슷한 성세를 이루었다고 호사가들이 말할 정도가 되었지. 그리고 결정적일 때 네가 등장했다. 절정기를 이루던 시기에 네가 나타나 운가장에서 칠사도를 쓰러뜨리고, 혈마강시가 된 일사도를 이기고 창마 황신과 겨루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제는 남존 무당과 북숭 소림을 누르고 화산파의 명성이 구주천하에 퍼졌지. 모두가 내 예상대로였다. 화산파는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승승장구하여 명성을 드높이고, 나머지 문파는 혈천회와의 싸움이 끝나면 한동안 봉문을 해야 할 만큼 커다란 손해를 입혔지. 이것으로 내 대계가 완성된 것이다! 내 야망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장문인이 기쁘다는 듯 전율에 몸을 떨었다.
그 모습에 한마디 해 주었다.
“미쳤군.”
“……뭐라고 했지?”
“미친 것 아닙니까? 아무리 사문이 좋다고 하여도, 아무리 예전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도 이런 길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는 잘되었으니 상관없다.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아니요! 사문의 영광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을 당신은 잊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없다. 장문인으로서 사문의 영광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치 않아.”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당신의 그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모두가 슬퍼했습니다!”
합동훈련 때에 많은 후기지수들이 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부가 쓰러졌다.
우가장에서는 우승빈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다.
종남파에서는 야명 장로 때문에 천수신검이 하루 정도지만 시름에 잠겼었다.
철검파에서는 장문인의 대계에 휘말려 십팔권사 중 한 명이 죽고 여럿이 쓰러지고, 황보진군이 심한 상처를 입었으며 당가십걸 중 한 명이 죽었다.
남궁세가에선 천랑대와 일사도 때문에 남궁세가 전체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운가장에선 점창파와 해남파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북초이가 사문의 사람들에게 짐이 되었다는 생각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사천참사에서는 신룡들 모두가 죽기 일보 직전에 놓여 있었고, 특히나 남문기는 무인으로서의 생명인 단전까지 잃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방금 전엔 사부가 자신의 손으로 양녀인 사사도 초령을 다치게 하였다.
모두가 장문인의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크게 다쳤다.
그들의 슬픔은 어찌할 생각인가!
그들의 상처 입은 마음은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그들의 마음을 짓밟으며 얻어 낼 만큼 사문의 명예는 무겁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사문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모두의 슬픔을 통해 얻어야 할 만큼 명예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어차피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랐을 뿐.”
장문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역겨운 표정 저리 치우십시오. 당신은 그저 무림을 혼란에 빠뜨린 악, 화산의 명예를 드높인 것이 아니라 나락까지 떨어뜨린 적일 뿐입니다.”
“그래, 좋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화산파가 다시 예전의 성세로 되돌아왔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으니, 나는 아무런 미련도, 부끄러움도, 미안함도 없다.”
“정말로 한 점 미안함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당신에 의해서 슬픔에 빠진 그들에게 단 한 순간도 동정을,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무림은 고래로부터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존재해 왔다. 내가 강하니 그들이 먹혔던 것이다. 그들을 동정할 필요도,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필요도 존재치 않는다. 그들이 약하니 그랬을 뿐이다. 그들이 강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 아니냐!”
마음속 깊은 곳까지 삐뚤어진 자이다.
사문을 위하였고, 결과적으로는 사문의 명예가 구주천하를 진동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칭찬해 줄 만하지만 결과일 뿐이다.
그 과정이 잘못되었다.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다.
결과가 아무리 좋다 한들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장문인은 그 중요한 과정이 잘못되었고, 결국 결과가 좋았다 하지만 모두에게 비판을 받아 마땅했다.
그리고 죄를 지었다.
남은 평생 동안 선행을 하여도 절대 용서받지 못할 만큼 엄청난 죄를.
“당신은 더 이상 장문인이 아니요. 그저 추악한 야망을 가진 노인일 뿐. 지금까지 벌인 모든 악행, 그 죄에 대고 당신의 목숨으로 용서를 비시오.”
“내가 죽는 것은 예정된 일이다. 이미 얼굴도 다른 자로 바꾸고 몸도 변형시켰지.”
쫘악!
장추익이 얼굴을 찢었다.
그러자 본래 장추익의 얼굴이 종이가 찢기듯 찢겨 나가며 추레한 몰골의 노인의 얼굴이 드러나고, 몸이 조금씩 변화하였다.
그 누가 보아도 화산파의 장문인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