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화산천검 7권(23화)
10장 모든 것의 끝(1)
뚜둑! 뚜두둑!
뼈가 더 이상 힘을 주면 부서질 것 같다고 소리 질렀다.
황신의 여섯 자루 묵창과 내 청운검이 맞대어져 있었다.
청운검은 앞으로 나아가려 했으나 여섯 자루 묵창은 무너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성벽이라도 되는 양 내 앞을 가로막는 벽이 되어 있었다.
“그때와 똑같군. 상쇄되었으니 다시 한 번 겨뤄야 하나?”
심검의 깨달음을 정리했지만 황신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십육 검은 황신의 초식에 정확히 막상막하로 겨루다 상쇄되어 버린 것이다.
“…….”
말없이 계속해서 손에 힘을 주며 밀어붙이려 했다.
“헛수고다. 네놈도 힘이 빠졌고, 나도 힘이 빠졌으니 이것은 근력의 싸움. 힘으로는 내가 너보다 앞선다.”
둘 모두 기를 모두 짜내어 마지막 초식을 전개했다.
단전에는 한 줌의 진기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
이제부터는 근력의 싸움이라고 황신은 말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이겼어.”
푸욱!
황신의 왼쪽 가슴을 뚫고 묵창 사이로 삐져나온 자색 노을을 닮은 검신.
황신이 입술 사이로 주르륵 피를 흘리며 말했다.
“공중으로 던졌던 그 검인가? 방심했군. 걸리적거리기에 놓아 버린 줄 알았다.”
황신의 가슴을 꿰뚫은 검은 자하검이었다.
황신의 말대로다.
나는 십육 검을 전개하기 직전, 십오 검을 전개한 자하검을 공중으로 던졌다.
하지만 나는 걸리적거리기에 놓아 버린 것이 아니다.
사부와의 수련으로 나는 왼손을 오른손과 같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쌍검술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른손으로 초식을 전개하는데 왼손이 거슬릴 리가 없다.
전부 내 마지막을 위한 안배였다.
황신의 추혼칠마창이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십육 검과 황신의 초식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상쇄될 것을 대비한 안배.
이렇게 마지막에 대치하고 있을 때 염력을 이용해 자하검을 움직여 황신의 가슴을 꿰뚫은 것이다.
“추혼칠마창을 모두 내 공격을 막는 데 사용한 것이 네 패착이다.”
“그렇군. 확실히 네 전진을 막는 데 모두 쓸 필요는 없지.”
황신은 내 자하검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초식을 펼쳤기에 모든 창이 황신의 앞에 있었고 내가 달려들어서 순간적으로 모든 창을 내 공격을 막는 데에 사용한 것 때문에 등으로 날아오는 검을 막지 못한 것이다.
“결정적일 때마다 내 방심이 화를 불렀군.”
비슷한 실력의 상대에게는 절대 방심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가슴을 베였을 때에도 황신은 방심 때문에 나를 쓰러뜨리지 못했고, 지금도 방심 때문에 공격을 막지 못했다.
결국 지금의 승패는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네가 이겼다. 드디어 이 질긴 악연도 끝이군.”
심장을 꿰뚫리고도 정신력만으로 지금까지 버텼다.
끝까지 황신은 무심한 말투로 말하곤 숨을 멈추었다.
“끝이다…….”
비틀! 털썩!
모든 것을 끝냈다는 생각에 온몸에서 힘이 쫙 빠졌다.
비틀비틀 뒤로 물러나다가 땅에 주저앉았다.
“후우∼”
대자로 뻗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라?”
맑고 푸른 하늘을 기대했건만 무언가에 가린 것인지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살짝 눈을 비비자 공천패의 얼굴이 보였다.
“읏샤! 동시에 이겼네요.”
배시시 웃으며 공천패가 내민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벽력마장의 후예는 쓰러진 지 오래다. 네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쳇! 역시나.”
살짝 기대했는데 역시나 그럴 리가 없었다.
“어! 그건 그렇고 상처가…….”
공천패의 얼굴은 이곳저곳이 그을려 있었고, 특히나 내게 내민 오른쪽 손의 손등은 예리한 무언가에 베인 듯한 상처가 있었다.
피가 묻어 있고 아직 마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갓 생긴 상처였다.
“나도 사람이다.”
공천패가 무심히 말했다.
그 말에 살짝 웃음이 나올 뻔했다.
맞는 말이지만, 현재의 나와는 수준이 다른 실력이기에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았는데, 공천패가 그렇게 말하니 웃음이 나온 것이다.
공천패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모청수와 성의를 보았다.
양홍재는 단전이 꿰뚫린 상태로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모청수가 눈물을 흘리며 딸을 안고 있었다.
“이지를 잃게 만들었던 금제는 모두 풀어 놓았다. 하루 정도만 푹 쉬면 아마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공천패가 모청수의 딸의 현재 상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모두 끝이 난 거네요?”
무림맹과 혈천회의 싸움은 허정 노사도 있고 구파의 장문인들도 있는 만큼 절대 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황신의 악연, 사부와 이사도의 악연, 사사도와의 인연, 모청수와 성의의 일사도와의 악연이 모두 정리가 되었다.
모든 싸움은 끝.
이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예?”
“일단 운기를 하여라. 의문은 나중이다.”
공천패가 내 명문혈에 장심을 대고 기를 불어넣었다.
자연의 것과 같은 순정한 기.
하지만 양이 너무 많아 받아들이기도 벅찼다.
그렇기에 일단 의문은 뒤로하고 운기를 하는 데 집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공천패의 도움으로 바닥이 났던 기가 모두 채워졌다.
힘들만도 하건만 공천패는 안색 하나 달리하지 않고 나에게 말했다.
“아직 혈천회의 회주가 남아 있다. 그도 이곳에 있다.”
“회주? 그러고 보니…….”
혈천회에 칠사도가 있고 호법이 있으니 당연히 회주도 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보지도 못했고, 나머지 인물들을 상대하는 데에도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네가 마지막으로 끊어야 할 인연이다. 가 보아라.”
“도와주시지 않는 겁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남은 것은 그와 너의 만남뿐. 그 이상은 내가 관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영문 모를 말을 중얼거리곤 공천패가 모청수와 약선에게 다가갔다.
‘결국 아직 마지막 한 번의 싸움이 남았다는 것이로군.’
정리하자면 그렇게 된다.
기도 충만하고 체력도 다 회복되었으니 괜찮을 것이다.
공천패와 약선, 모청수와 그의 딸을 뒤로하고 길을 따라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장원의 심처.
그곳에 엄청나게 넓은, 하나의 장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건물이 있었다.
‘장원 안에 장원이라, 엄청나군.’
아마 이곳이 혈천회의 숨겨진 본타일 것이다.
그 누가 이런 산꼭대기에 혈천회의 본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후∼ 가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이곳까지 왔구나. 오랜 여정이었어.”
‘목소리가…… 익숙해?’
두근! 두근!
심장이 쿵쿵 빠른 속도로 뛰었다.
열이 올라와 머리가 뜨거워지고 눈앞에 허상이 보였다.
“드디어 마지막 대계가 완성되었구나.”
아니, 허상이 아니었다.
저 목소리, 저 얼굴, 저 표정, 그리고 이 뛰고 있는 심장이 헛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공천패가 회주라고 말했던 자.
마지막 적.
혈천회의 회주가 저자였다.
“장문……인?”
“잘 왔다.”
저 멀리 태사의에서 화산파의 장문인, 검선 장추익이 몸을 일으켰다.
“어째서 이곳에?”
“공천패가 말하지 않았더냐? 혈천회의 회주가 이곳에 있다고.”
“혈천회의 회주가 어디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현실을 직시해라. 현실에서 도피하지 마.”
장문인이 진중한 목소리로 무겁게 말했다.
그래, 이건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추한 짓일 뿐이다.
하지만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혈천회의 회주가 장문인이라니…….”
지금까지 많이 위화감을 느끼기는 했다.
정도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도 받았고, 공천패도 조심하라고 경고를 했었다.
하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장문인이, 다섯 신선 중 검의 신선이라고 불리는 화산파의 장문인이 혈천회의 회주라니!
“많이 놀랐느냐? 무리도 아니지. 내가 너라도 그렇게 놀랐을 것 같으니.”
“가짜는 아닙니까?”
“그렇게 보이느냐?”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이것은 사실이었다.
내 감이, 모든 정황이 장문인이 혈천회의 회주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한 겁니까.”
현실을 직시하자 이내 분노가 치솟았다.
이 어이없는 현실에, 장문인의 행동에.
“네게는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 주겠느냐?”
안 들을 이유가 없다.
대체 왜 정도의 지주라고 하는 구파, 그것도 장문인이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꼭 듣고 싶었다.
“우리 화산파는 구파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되었다. 네가 들어올 때만 해도 그러했으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삼백 년 전의 혈천과의 싸움에서 화산파는 모든 문파들 중 가장 선봉에 섰기에 피해가 컸다.
많은 무인이 죽고 그만큼의 많은 무공이 실전되었다.
자하십육검도 그 시기에 실전된 무공이었다.
그렇기에 멸문이 되지는 않았지만 화산파는 구파 중에서 최약체가 되었다.
“삼백 년 전 혈천과의 싸움 전만 해도 본파는 검으로써는 무당파도 누르고 수위에 꼽힐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싸움에 모든 것을 잃었지. 그것도 위험할 것 같다며 싸우지 않으려 하던 다른 문파들을 대신해서 싸우다 말이야.”
점점 분노가 치솟는지 장문인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대체 왜 우리가 가장 약해져야 하는 것이냐! 우리는 도망치던 나머지 구파를 대신해서 그들을 물리쳤다. 그런데 왜! 어째서!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난 후에 돌아오는 것은 무림을 구한 영웅이란 칭호가 아닌, 구파에서 가장 약하다는 최약체의 칭호인 것이냐!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화산파에 들어오고 사부님에게 수련을 받으면서 나는 언제나 울분을 터뜨렸지. 그리고 화산파를 위해서, 이 약해진 화산파의 영광을 내가 다시 되찾기로 결심했다.”
이때까지는 장문인도 그저 사문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야망에 불타는 화산파의 제자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결심은 결실을 맺어 나는 화산파의 장문인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장문인이 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좌절을 겪어야 했다. 무림이 민초들이 상상하는 그런 꿈의 세계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 문파의, 그것도 구파 중 화산파의 대표가 되자 그것은 내가 겪었던,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나를 힘들게 하였다. 가진 힘도 미약한 주제에 다른 구파와 교류하지조차 않던 화산파가 홀로 일어서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이 세상에 독보는 없다.
한 사람이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커다란 단체는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화산파가 그랬다.
삼백 년 전의 일 이후로 다른 구파와 교류를 끊은 화산파는 승냥이 떼에 버려져 있는 순한 양일 뿐이었다.
“결국 나는 시름에 빠졌다. 일도 잡히질 않고 검도 놓은 채로 폐관수련을 한다는 핑계로 모옥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지.”
장문인이 잠시 화를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화산파는 대체 왜 몰락했는가? 혈천 때문에. 다른 문파는 왜 멀쩡한가?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면 다른 문파도 싸움을 겪게 해서 우리와 같이 추락시키면 될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올라가지 못한다면 남을 떨어뜨려 나와 맞추겠다.
장문인은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