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71화 (171/175)

# 171

화산천검 7권(21화)

9장 황신과의 결전(2)

‘도착이다.’

황신이 남겨 놓은 흔적을 따라 걸어와 도착한 이곳.

산 아래에서 보았던, 산꼭대기에 있는 그 장원이었다.

‘사람이 없어.’

산꼭대기에 장원이 있는 것도 이상한데 건물 안에선 생기가 느껴지질 않았다.

사기와 마기가 뒤섞여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곳이 마지막 결전 장소다.’

어차피 불길한 분위기든 뭐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이곳이 황신과의 악연을 끊어 낼 나의 마지막 결전 장소라는 것뿐이다.

“후우∼ 들어가자.”

긴장감에 크게 심호흡을 하며 장원의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려는 순간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냐!”

번쩍! 턱!

적인 줄 알고 바로 번개와도 같은 빠르기로 자하십육검 일 검을 펼쳐 냈건만 막혀 버렸다.

그것도 병장기에 막힌 것도 아니고 그저 손가락 하나에.

“네 실력으로는 한 명이 한계다. 나머지 하나는 내가 막아 주도록 하마.”

이럴 만한 실력자는 별로 없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자라면 구파의 장문인들과 사부를 제외하고는 단 하나.

공천패.

상단전을 열 때 도움을 주고 자하십육검을 깨닫게 해 준 절대자였다.

“이곳에 어떻게 계신 겁니까?”

“기다리고 있었다. 이 순간이 오기를.”

동문서답을 하는 공천패.

하지만 내가 상상도 못 할 만큼 도업을 쌓은 사람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건 그렇고 한 명이 한계라니요? 안에 황신을 제외하고도 적이 있다는 소립니까?”

“벽력마장의 진전을 이은 자가 있다.”

“설마 나머지 하나의 호법이 그자입니까?”

공천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함정이라니…….’

그래도 마지막 적수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의 호법을 불러들여 같이 나를 상대할 생각을 했다니.

“회 내에선 드물게 진실로 무림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벽력마장의 진전을 이은 자가 이곳에 있는 것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이유가 아니다.”

불가의 타심통이라도 이룬 것인지 공천패가 마음을 읽어 내고 말했다.

“그렇다면?”

놀랄 일은 아니기에 그저 공천패의 말에 궁금증을 느꼈다.

공천패가 나의 말에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바로 옆의 공간에서 바람이 휘몰아치며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

소싯적에 미남이었을 듯한 청수한 인상에 가슴까지 늘어뜨린 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인과 나와 사부가 신세를 졌던, 익숙하다고 할 수 있는 얼굴.

죽림현사 모청수와 성의였다.

“오랜만입니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공천패는 나의 실력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자.

그것보다는 죽림현사와 성의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성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니 두 분 모두 어두운 안색에 굳은 얼굴이었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어째서 이곳에 계신 겁니까?”

모청수는 학식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무림인이 아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성의도 의술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무림인이 아니다.

어째서 이런 위험한 곳에 계신 것일까?

“예전에 네가 심하게 다쳤을 때 우리와 관련된 일이라고, 이 친구에게 직접 너를 치료하도록 부탁한 일이 있었다. 기억하느냐?”

“예, 기억납니다.”

종남파와의 합동훈련에서 마살문의 정예들에게 벽력탄을 맞고 쓰러졌던 때.

그때 죽림현사와 성의가 자신들과 관련된 일이라고 나에 대한 추궁을 그만두라고 하였고, 장문인께서 윤허하셨다.

“갑자기 그 일은 왜……?”

“이분이 말하지 않았더냐. 벽력마장의 진전을 이은 자가 이곳에 있다고.”

모청수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내가 다쳤던 것은 벽력탄. 벽력마장의 필생의 역작으로 유명한 폭탄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자는 황신을 제외하면 벽력마장의 진전을 이은 자. 설마……?’

“우리의 옛날 친우지. 우연히 한 무림인의 비급을 이었다고 하더니, 우리보고 같이 한 문파에 들지 않겠냐고 하더구나. 나는 더 학식을 쌓고 싶다고, 이 친구는 아직 의술에 대해 공부할 것이 많다고 거절하자 씨근덕거리며 사라지더니 얼마 후에 내 책상 위에 폭탄과 함께 편지를 놓았더구나.”

모청수가 마지막 말에 목이 메는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러자 성의가 나서며 대신 말해 주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지. ‘나와 같이 가지 않은 대가로 네 딸을 데려가지.’라고 말이네.”

모청수가 결국 고개를 돌렸다.

‘딸을 납치했다고?’

분명 친우라고 했다.

그런데 무공을 익힌 후로 문파에 들지 않는다고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하였다고?

왜? 어째서?

“간혹 어떤 무공은 사람의 심성을 마(魔)에 물들게 하는 경우가 있다. 심성이 착하였더라고 해도 그런 무공을 익히면, 보통 사람이라면 그 누가 되었든지 간에 성격이 바뀐다. 벽력마장은 무림공적으로 지목되어 평생을 무림과 싸웠던 인물. 그의 무공에 그의 원한이 섞여 들어가 그런 무공이 탄생되고, 우연히 이들의 친우가 그 무공을 익혀서 그렇게 된 것이다.”

역시나 공천패가 내 마음을 읽고 대답해 주었다.

진정이 되었는지 모청수가 평소의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자네와 수업을 하고 면담을 하였을 때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는가 물어보았지 않았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랬던 것 같았다.

“사실 이제는 친우라고 할 수 없는 그자가 그렇게 사라지고 난 이후로 나는 내 딸을 찾아올 수 있는 무림인을 찾고 있었네. 그리고 성의는 무림인을 많이 만나니까 이 친구에게 내 딸을 찾아 줄 무림인을 찾으라고 말했었지. 성의는 자격이 있다 싶으면 나에게 언제나 전언을 남겼기에 자네에게 그렇게 물었던 것이네.”

몰랐던 것들이, 의문스러웠던 것들이 결전의 날이 되자 하나하나 풀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찾았습니까?”

“찾았지만 많지 않았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두절되었지. 그것으로 알 수 있었네, 친우였던 자가 든 문파는 우리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대문파라고.”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네.”

“그래서 결국 이분을 만나게 된 것이고.”

모청수와 성의가 공천패에게 시선을 돌렸다.

공천패는 무심하게 말했다.

“어차피 모두 나와 관련 있는 일. 어지럽혀진 인연은 모두 정리를 해야지.”

‘……?’

나와 관련 있는 일?

공천패의 말은 갈수록 묘연해졌다.

“기다리는 자가 있으니 이만 들어가는 것이 좋다 생각하는데, 준비는 다 된 건가?”

“얼마든지요.”

몸이 경직되지 않도록 적당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문을 열고 장원의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바깥에서 느꼈던 것과 같이 무척이나 휑하고 불길했다.

하지만 기죽지 않고 천천히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장원의 수련장으로 보이는 듯한 곳이 눈에 띄었다.

잘 깔린 청성바닥.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세 남녀.

“왔군.”

“결국 이곳까지 왔구나.”

창마 황신과 벽력마장의 진전을 이은 호법, 그리고…….

‘어? 저 여자는?’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억이 있었다.

“양홍재(陽泓才)! 내 딸을 내놓아라!”

모청수가 노호성을 터뜨렸다.

모청수의 말로 보아 저 어디선가 본 듯한 여인이 모청수의 딸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본 친우인데 인사도 건네지 않는 건가? 인심도 야박하군.”

양홍재라 불린 혈천회의 호법이 옆에 서 있는 여인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얼굴에서부터 목을 따라 천천히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손.

모청수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 손 치워라!”

“닳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서 그러는가?”

양홍재가 비릿하게 웃었다.

“네놈!”

참지 못했는지 모청수가 앞으로 달려 나가려 했지만 공천패가 막아섰다.

“어째서 막으시는 겁니까!”

“나서 봤자 개죽음일 뿐이다. 도발하려는 것임을 모르는 것인가?”

모청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 생각났다!’

수줍은 듯 내리깔고 있는 봉목과 긴 눈썹.

그리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붉은, 앵두 같은 입술.

가히 절세미인이라 칭할 만한 외모.

육사도 혁련월과 싸우기 전 나를 유인했던 세 남녀 중 홍일점이었던 여인이다.

그리고…….

‘왠지 생각날 듯 말 듯, 그곳 말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 예상외의 곳에서 그녀를 보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무림맹?’

내가 무림맹으로 돌아와 장문인들과 얘기하고 난 후 나를 끌고 갔던 매영.

그 매영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아니,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저 분위기가 비슷한 것뿐일 것이다.

‘음?’

눈을 자세히 보자 이상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수줍은 듯 눈을 내리깔고 있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흐리멍덩한 눈동자.

강시와도 같은, 이지가 없는 눈동자였다.

“파문된 말코 놈 주제에 방해를 하는구나.”

“이 아이와 저자에게 시끄럽겠군. 방해되지 않도록 해 주겠다.”

말하더니 공천패가 손을 휘저었다.

“무……슨…….”

그러자 공천패, 모청수와 성의, 그리고 양홍재의 모습이 천천히 흐려졌다.

양홍재의 마지막 목소리만이 메아리치듯 울렸다.

“시끄러운 자들은 정리가 되었군.”

무심한 목소리.

공천패가 행한 것에 놀랄 만도 하건만 황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아니, 신경 쓰질 않는 건가?’

나만을 쳐다보는 눈동자.

나와 마찬가지로 황신도 마지막 싸움을 기대했던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눈에서 조그마한 열망이 보였다.

‘그래, 좋아.’

그 눈을 보자니 호승심이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아직 복수심을 누르지는 못했다.

사부에게 해를 가한 죄는 절대 잊지 못한다.

‘쓰러뜨려 주마.’

위이이잉∼!

벌떼가 움직이는 것만 같은 소리와 함께 황신의 등에 꽂혀 있던 일곱 자루 창이 점점 떠오르더니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나도 검을 뽑았다.

전력을 다할 것이니만큼 이번엔 청운검과 자하검, 두 자루를 모두 뽑았다.

“덤벼라.”

황신의 말을 기점으로 전투를 시작했다.

자하십육검 이 검.

우우웅∼! 카카캉!

여러 가지가 혼합된 만큼 막아 내기가 어렵지만, 도리어 비슷한 실력의 상대는 막아 내기가 쉬운 공격.

그렇기에 염력으로 보조함으로써 약점을 없앴지만 황신에겐 통하지 않았다.

황신도 가지고 있는 염력.

염력과 염력이 맞부딪쳐 상쇄되고 황신의 뒤에서 둥글게 돌고 있던 일곱 자루 창 중 세 자루가 이 검의 검로를 막아섰다.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군. 그저 잡기로 채웠을 뿐이야.”

황신이 감상평을 말했다.

동시에 남아 있던 네 자루 창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 검이 통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자하십육검 오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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