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69화 (169/175)

# 169

화산천검 7권(19화)

8장 마진천, 우승빈, 사부, 그리고 이사도와 사사도(2)

저벅! 화르르르!

‘……!’

건물의 안에 발을 디디자 불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양쪽 벽에서 횃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안쪽을 향해 횃불들이 하나하나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둡기는 하지만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였다.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는 없어. 함정은 아니군.’

청력을 키웠는데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함정이 있는 것 같지는 않기에 천천히 길을 따라 계단을 타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화악∼! 치이이익! 부글부글! 퍼엉! 크아아악! 으어어!

한 폭의 지옥도가 그곳에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팔열지옥(八熱地獄).

몽둥이로 얻어맞고 살이 찢겨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가도 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나 똑같은 고통을 되풀이해야 하는 등활지옥, 검정색 오랏줄로 꽁꽁 온몸이 감겨서 살이 갈기갈기 찢기는 흑승지옥, 인간의 신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느껴야 하는 중합지옥, 고통에 못 이겨 짐승처럼 울부짖지 않을 수 없는 규환지옥, 규환지옥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의 강도가 한층 더 심한 대규환지옥, 불길에 몸이 휩싸여 살이 타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초열지옥, 초열지옥에 비해서 한층 더 뜨겁고 고통스런 대초열지옥, 한순간도 멈춤 없이 갖가지 고통을 겪어야 하는 무간지옥.

평범한 정신으로는 보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릴 것만 같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이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크어어어! 우으으!

가만히 서 있는데 지옥 불에 고통받던 한 자가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붙잡았다.

치이익!

죄수의 몸에 붙어 있는,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이 내 옷에 옮겨 붙었다.

“으하하하!”

내가 고통받게 될 것에 기쁘다는 듯이 웃는 죄수.

조용히 검을 뽑아 그의 몸을 베었다.

“환술에 걸릴 만큼 나약하지 않다. 장난은 그만치시지, 사사도 초령.”

그 말에 팔열지옥의 모습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아래층과는 대조되게도 무척이나 밝은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두 남녀가 눈에 담겼다.

“인사일 뿐인데 너무 과민반응하고 있다고?”

“빌어먹을 노인네는 어디에 있느냐?”

이사도 사신철부 악벽과 사사도 요희 초령.

마지막 남은 두 칠사도가 이곳에 있었다.

‘내가 끊어 버려야 할 인연들.’

사부와 악연이 있는 이사도, 이상하게도 나에게 도움을 주던 사사도.

적으로서 끊어 버려야 할 인연들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구해야 할 인연은 어디 있는 거지?’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뭔가 찾을 것이 있나 보지? 후훗.”

초령이 섭선으로 얼굴을 가리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마지막 웃음이 거슬려 검을 뽑아 들고 기수식을 취했다.

“너무 성급하잖아. 네가 찾는 것이 이것이라면 나한테 감사해야 할 텐데?”

“헙!”

스르르 악벽과 초령의 바로 뒤의 공간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이내 쇠사슬에 묶여 고개를 숙이고 있는 두 남자가 보였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오사도에 의해 납치된 두 신룡, 마진천과 북초이였다.

“어때, 고맙지 않아? 내가 찾아 줬잖아?”

마진천의 고개를 들어 올리고 느릿느릿 쓰다듬는 초령.

그 모습에 순간 발끈했다.

“그 손 내려놓지 못해!”

“빌어먹을 노인네의 제자, 건방지구나. 우리는 이 두 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큭!”

내 말에 앞으로 나서서 말하는 악벽.

맞는 말이었다.

납치된 두 신룡,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두 사도.

두 신룡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저들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별짓 하진 않았어. 내버려 두면 위험하기에 그저 상처를 치료해 주고 이렇게 묶어 놨을 뿐이야.”

“똑바로 말해!”

치료를 해 주었다면 마진천이 일어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천형이라고 불리는 구음절맥.

그 고통을 이겨 내고 살아남은 마진천인데, 치료를 해 주었다면 약 한 달가량이 지난 지금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이런 쪽에선 예리하단 말이야? 조금 장난을 치긴 했지. 치료를 해 준 것은 맞지만 정신을 잃고 있을 때 금제를 가했어.”

초령이 이번에는 북초이의 고개를 들어 올리고 얼굴의 상처를 따라 섭선을 움직였다.

빠드득!

“무슨 금제인지 불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부(小斧)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콰앙!

머리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 소부.

그 여파에 오른쪽 볼이 살짝 찢겨졌다.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이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는 악벽.

정말로 분노한 듯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나도 그에 조금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머리는 이사도 악벽의 말대로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하고 있었지만 입이 저절로 소리치고 있었다.

“사부에게 두 번이나 진 폐물 주제에 말이 많구나.”

“뭣이라!”

눈이 찢어질 듯 벌어진 악벽.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인질을 두지 않고서는 나를 이길 수도 없는 것이냐? 그렇게 겁이 많아서야 어떻게 칠사도 중 이사도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군. 게다가 나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는 자가 어떻게 내 사부를 이기려 하는 것이냐? 대체 그 머릿속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군.”

계속되는 매도에 악벽의 성질이 결국 터졌다.

“이 빌어먹을 놈이!”

쾅! 쾅! 콰아앙!

운가장 때와 마찬가지로 진이 펼쳐져 있는 것인지 악벽의 소부에 건물의 바닥이 터져 나갔는데도 순식간에 복구가 되었다.

“덤벼라.”

“오냐! 내 오늘 네놈의 뼈를 갈아 마시지 않으면 내 성을 갈겠다.”

검을 까딱이자 악벽이 크게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쾅! 따다다당! 따다다당!

‘정면으로는 맞부딪칠 수가 없군.’

첫 일격은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하지만 이내 크게 밀리는 것 같아 검신을 비틀어 공격을 흘려 냈다.

그렇게 계속해서 공격을 흘려 내자 악벽이 분기탱천하여 말했다.

“싸울 생각이 있는 것이냐! 네놈이 그러고도 사내자식이냐!”

하지만 악벽의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 끼어들 생각도, 마진천과 북초이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도 없는 모양인가 보군.’

초령은 눈살을 찌푸리고 나와 악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실력이 더 뛰어나진 만큼 끼어드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마진천과 북초이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다르다.

언제 생각이 바뀔지 모르니 빨리 승부를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세로 시작한 것이 조금 걸려.’

거대한 도끼를 든 만큼 악벽은 공격일변도다.

시작부터 공세로 시작하여서 그런지, 기세를 타서 내가 공세로 전환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콰앙!

바로 앞에서 터져 나가는 나무판자.

그 사이로 실핏줄이 돋아난 악벽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죽어라!”

드드드드!

엄청난 진동을 보이는 오른쪽의 거대한 도끼.

‘헙!’

도끼가 버텨 내지 못하고 실금이 갈 정도로 엄청난 진기가 집중되어 있었다.

‘큭!’

내상을 입을 것을 각오하고 진기를 끌어 올렸다.

펼쳐 낼 초식은 자하십육검 삼 검.

하지만 조금 늦은 만큼 완벽히 펼쳐 낼 시간이 없었다.

콰앙!

그 때, 바로 옆의 벽이 터져 나가며 한 인영이 들이닥쳤다.

쐐애액!

이사도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 주먹에 악벽이 몸을 빙글 돌리며 진기를 집중한 도끼를 휘둘렀다.

쿠우우우웅!

폭음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할 듯 계속해서 진동했다.

“사부!”

“드디어 왔구나, 늙은이.”

자하의 기운을 두른 권으로 악벽의 도끼와 맞부딪친 자는 무진 사부였다.

“이제는 내 제자에게까지 손을 대려 하느냐? 내 오늘 반드시 너의 목숨을 취할 것이니라.”

“그건 내가 할 소리다, 늙은이.”

이내 다시 격돌하는 사부와 악벽.

쿠우웅! 쿵! 쿵! 쿠우우웅!

사부의 자하의 기운을 담은 권은 악벽의 대부(大斧)에 밀리지 않았다.

도리어 조금 더 강한 듯 부딪치면 악벽이 뒤로 밀려났다.

‘진기의 고갈이 없으니 강기까지 두르신 건가?’

자하의 기운 사이로 살짝살짝 빛나는 강기(|氣).

자하의 기운과 강기가 둘러싸고 있는 사부의 주먹은 신병이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악벽의 도끼는 심하게 진기를 집중하였기에 실금이 갔던 상황.

천천히, 조금씩이지만 금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악벽이 불리한 싸움이었다.

“……?”

사부와 악벽의 싸움에서 고개를 돌리고 초령을 돌아봤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발을 들어 올렸지만 내딛지 못하고 움찔움찔거리더니 이내 다시 제자리로 발을 돌려놓고 한숨을 쉬는 초령.

애틋한 표정이었다.

‘뭐지?’

왠지 모를 이상한 느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이내 궁금증은 접었다.

우르르릉!

또다시 무너질 듯 흔들리는 건물.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악벽의 얼굴에 사부가 일 권을 날렸다.

퍼석!

악벽의 머리가 터져 나가고 뇌수와 피가 뒤섞인 이상한 혼합물이 주변으로 퍼졌다.

“후우∼ 후우∼”

어깨에서 피를 철철 흘리시며 격한 숨을 내쉬는 사부.

이기긴 했다만 칠사도 중 두 번째로 강한 이사도이니만큼 많이 힘이 드셨나 보다.

“남은 것은 너 하나다, 초령.”

위협하듯 말했다.

‘흔들려라.’

아무리 이사도를 이겼다고 한들 지금 인질을 잡고 있는 것은 초령이다.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

하지만 지금 초령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혼자 남았다고 위협까지 한다면 흔들릴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 틈에 마진천과 북초이를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

움찔!

역시나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초령이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은 사사도라고 느낄 수 없을 만한, 그저 평범한 여인과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흔들리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혈천회의 칠사도.

쓰러뜨려야 할 적이니까.

하지만 발을 내디딤과 동시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사부의 말 때문이었다.

“초령? 령이냐?”

당황스럽다는 듯한 표정,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말투.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이름을 부르는 데 느껴지는 친근함이었다.

“무진 사부?”

영문 모를 행동에 사부를 불렀다.

하지만 사부는 그저 초령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칠사도 초령은 사부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계속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정말로 령이더냐? 대답해 보거라.”

“후우∼”

사부의 다그침에 초령이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돌려 사부를 직시하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아버지.”

초령의 말에 순간 세상이 멈춘 듯하였다.

‘……아버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초령이 사부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것 때문에 머리가 백짓장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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