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화산천검 7권(18화)
7장 진격! 진격!(4)
“크아아아!”
허정 노사가 갑작스레 빨라진 혈마강시의 움직임에 한 차례 허점을 드러냈다.
그러자 나머지 강시들이 크게 울음을 터뜨리며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허정 노사에게 달려드는 이백 기의 강시.
‘위험하다.’
두 혈마강시를 쓰러뜨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하기만 하던 허정 노사.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이렇게 큰 화가 되어 돌아왔다.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크게 노한 듯한 음성.
허정 노사가 이형환위의 수법으로 뒤로 몸을 빼더니 두 손을 교차하였다.
“나왔구나, 십단금(十緞錦).”
“십단금? 그것이 무엇입니까?”
“십단금, 저것이 바로 사도 팔세(八勢) 중 두 곳을 홀로 무너뜨렸다고 하는 허정 노사의 무공이다.”
정도에 구파가 있듯 사도에는 팔세가 있다.
반백 년 전에 있던 정사대전에 의해 사라지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정도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할 만큼 엄청난 문파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정사대전에서 최선봉에 섰던 무인이 허정 노사.
그 당시에 펼쳤던 무적의 초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촤아악∼!
뻗어 나가는 비단폭과 같은 경력.
단 한 수에 앞을 막아섰던 삼십여 기의 강시가 반 토막이 났다.
그중에는 두 혈마강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초식.
게다가 초식이 이어질수록 위력 또한 증폭되었다.
촤아아아아악!
마지막 열 번째 초식이 끝나자 허정 노사 주위에 서 있는 자는 없었다.
고루시수 망영조차 십단금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지 오래였다.
내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무거운 정적.
하지만 곧이어 엄청난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역시 허정 노사님이시다!”
“이길 수 있어!”
“가자! 쓰러뜨리자!”
일기토는 끝이다.
혈천회에서 다시 한 번 신청한다고 하여도 허정 노사가 있는 이상 절대 이길 수 없다.
“가자! 진격이다!”
8장 마진천, 우승빈, 사부, 그리고 이사도와 사사도(1)
스걱! 촤아악! 푸우욱! 뻐억! 퍼엉!
‘너무 깊게 들어왔나?’
사방은 기본이요, 팔방이 적이었다.
일기토가 끝나고 부딪친 두 무리.
처음엔 백중지세였지만, 당연히 무림맹이 곧바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사천참사와 무림맹 본단 기습 사건이 있긴 했지만 허정 노사의 압도적인 실력에 무림맹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기 때문이다.
‘너무 흥분했어.’
나는 최선봉에 있었다.
허정 노사의 실력에 전율이 일어 몸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나의 목숨을 위협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챙! 카가각! 파팡! 따앙!
아무리 쓰러뜨려도 계속해서 밀려드는 혈천회의 무인들.
처음엔 공세였지만 결국 지금은 수세로까지 몰렸다.
‘너무 얕봤어.’
사실 이렇게 깊이 들어와도 언제든지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싸움이 바로 마지막 결전.
무시해도 될 만큼의 약한 실력자는 이곳에 존재치 않았다.
후웅∼! 사르르!
눈앞으로 새하얀 검신이 빠르게 지나가고 잘린 앞머리가 공중에 휘날렸다.
‘위험했다.’
등으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재빨리 철판교의 수법으로 허리를 꺾지 않았다면 아마 허정 노사의 십단금에 맞은 강시처럼 몸이 반 토막 났을 것이다.
뻐억! 파라라락!
신류퇴 승추로 검을 날렸던 자의 턱을 부수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공중은 곤륜의 운룡대팔식과 같은 신법이 없는 이상 운신이 어렵다.
기회를 노리고 나를 죽이려 땅에서 검기 다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못 막으면 죽는다.’
자하십육검 육 검.
콰콰콰콰쾅!
나에게 날아온 검기 다발과 맞부딪친 자하의 경기.
다행히 모두 막아 내고도 여력이 남아 내 주변 삼 장 정도를 무인지경(無人之境)으로 만들었다.
“청우야!”
“사부?”
멀리서 나의 자하십육검을 본 것인지 사부의 목소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들렸다.
‘저쪽이다!’
하지만 사부에게 있는 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이 정도쯤 되면 주춤주춤 물러설 만도 하건만 혈천회의 무인들은 굴하지 않고 나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계속해서 몰려왔다.
‘자하의 전인이니만큼 어떻게든 꼭 죽이겠다는 건가?’
나에 대한 소문은 이미 혈천회 내에서 많이 퍼졌을 것이다.
그들의 계획을 많이 방해한 만큼 눈엣가시일 터.
수뇌부가 아닌 이런 일반 무인들조차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양 달려들고 있었다.
뻐억! 우당탕!
강렬한 소리와 함께 내 옆에 서 있던 무인이 뭔가에 들이받힌 듯 갑작스레 넘어졌다.
“사부!”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나타난 사부.
“너무 깊게 들어왔다. 어서 빠져나가자꾸나!”
호흡이 거칠어지지는 않았지만 이곳저곳 얕은 상처가 있었다.
내가 무리하게 깊이 들어온 까닭에 사부가 고생을 한 것이다.
‘…….’
앞장서서 피의 길을 뚫는 사부.
어제 하늘의 검이 되겠다는 꿈을 얘기했는데 벌써부터 이런 실수를 한 것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휘익∼ 채앵!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몸을 돌려 가슴을 찌르려 하는 봉을 막아 냈다.
그리고 보았다.
평지의 끝 부분에 있는 언덕.
그곳에 묵창을 들고 있는 무인들에게 호위를 받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황신!’
정확히 나를 보고 있는 그 눈.
꼭 나를 보고 이리 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에 홀리듯 사부에게서 떨어져 황신에게로 가는 길을 뚫었다.
“무엇을 하는 것이냐!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자 하지 않았더냐!”
뒤에서 사부의 말이 들렸지만, 사부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숙적, 불공대천지수.
저자의 눈빛을 무시하고 뒤돌아서는 것은 내가 용납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길을 뚫고 뚫다 보니까 어느새 몇 발자국 더 움직이면 황신에게 도달할 거리에 도착했다.
그러자 황신이 무심히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어디 가는 것이냐!”
[따라와라.]
황신의 전음이 들렸다.
나를 제 마음대로 이리저리 오라고 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결국 황신의 말에 따랐다.
입술을 깨물고 황신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점점 더 빠르게 이동하는 황신.
창마대도 황신을 따르지 못하고 낙오되기 시작했다.
‘이 기회에 모두 목숨을 취하고 싶지만…….’
현재 황신의 속도는 내가 전력을 다하고 있는 속도보다 조금 앞섰다.
낙오된 창마대를 상대하면서 달릴 여유는 없었다.
‘어디까지 가는 거냐?’
이미 마지막 싸움이 있는 장소에서 한참이나 벗어났다.
‘함정인가?’
생각해 봤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저 성격에 함정을 파고 누군가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조심은 해야지.’
유비무환이다.
아무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더라도 만일이라는 것이 있다.
만일에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경공에 힘을 쏟는 것과는 별개로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도록 손에 기운을 집중했다.
‘정말로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함정에 대비한다고 한 지 벌써 일각이다.
전력을 다해서 달리고 있다 보니 어느새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나고 진기의 소모도 심했다.
함정에 대비한다고 손에 모아 놨던 기운은 다시 단전에 돌려놓은 지 오래였다.
너무 오랫동안 달리기에 염력으로 황신을 붙잡으려는 시도도 했지만 상단전은 나만의 소유물이 아닌 만큼 황신의 염력에 상쇄되었다.
‘나를 멀리 떼어 놓으려는 수작인가?’
하지만 그래 봤자 무림맹 쪽에만 좋을 뿐이다.
내가 많은 공적을 세웠다지만 그래 보았자 후기지수다.
하지만 황신은 혈천회에 단 세 명밖에 없다는, 현재는 두 명밖에는 남지 않은 호법.
혈천회 쪽에 손해가 되면 되었지 이익이 있지는 않았다.
‘앗!’
갑작스레 속도를 더 높이는 황신.
깜짝 놀라 나도 더 속도를 높이려 했지만 황신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젠장!”
평생 하지도 않던 욕이 나왔다.
정말로 나를 그냥 결전의 장소에서 떨어뜨려 놓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인가?
혈천회 쪽에는 손해만 날 뿐인데?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럴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가슴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앞으로 가 보자.’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되돌아가도 전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만 줄 뿐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황신이 사라진 곳으로 가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저벅! 저벅!
진기를 보충할 겸 운기를 하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멀리도 갔군.’
걷기 시작한 지 일각쯤 되었다.
황신이 길에서 이탈한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황신 특유 기운의 흔적이 이 길에 남아 있었다.
‘점점 속도가 줄었어. 목적했던 곳에 가까워졌다는 뜻이겠지.’
흔적과 흔적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이지만 좁아지고 있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속도를 점점 줄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역시나 추측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전각이 보였다.
‘이런 곳도 있나?’
숲 속에 있는 거대한 전각.
아무도 오지 않을 이런 곳에 전각이 있다는 것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전각의 입구에 서 있는 남자 때문에 위화감은 싹 날아가 버렸다.
황신이 전각의 입구에서 나를 보고 서 있었다.
“늦었군.”
“나와의 마지막 결전의 장소를 찾았던 것이겠지? 분명히 목적지가 있을 텐데 내가 서두를 이유가 없잖아?”
“그것도 그렇군.”
황신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질긴 이 악연의 사슬을 끊어 내자, 황신.”
황신이 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다. 너에겐 할 일이 남았을 텐데?”
“무슨 소리지?”
“이 전각 안에 네가 끊어 버리고 다시 되찾아야 할 인연이 있다. 모든 일을 끝내고 나를 찾아라. 흔적을 남겨 둘 테니 알아서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잠깐! 무슨 소리……!”
팟!
순식간에 자리에서 벗어난 황신.
오른쪽에서 그의 기가 느껴졌다.
‘저 산인가?’
이곳이 어딘지 모르기에 이름도 모를 산.
눈에 기운을 집중하자 그 꼭대기에서 불길한 기운이 흐르는 장원이 보였다.
‘바로 갈까?’
사실 황신의 말을 듣지 않고 바로 저 산의 장원으로 가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끊어 버리고 되찾아야 할 인연이 있다는 것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 어차피 거짓말을 할 자도 아니고, 흔적도 남겨 둔다 했으니 언제든 찾아갈 수 있다. 먼저 이 답답함을 풀자.’
저벅! 저벅! 끼익∼!
전각의 문을 열었지만 앞은 보이지 않았다.
창을 열지 않았는지 대낮임에도 안은 깜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