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화산천검 7권(15화)
6장 총공격 명령(3)
팟!
산발적인 전투는 모두 끝났나 보다.
한 지역에서 정도의 기운과 사도의 기운이 충돌하고 있었다.
‘무림맹이 몰아붙이고 있군. 조금 있으면 끝나겠구나.’
어차피 혈천회 쪽에서도 사기를 떨어뜨릴 예정이었지 무림맹을 궤멸시키려는 목적으로 기습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구파의 장문인이 모두 있는데 이 정도까지 버텨 낸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우와아아∼!
챙! 카캉! 푸확! 스걱!
공중에서 보니 전황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기감으로 알아본 대로 몰아붙이고 있는 무림맹의 무인들.
흑풍과 흑영이 갑작스레 나타나 암살을 시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세라는 것은 무시 못 할 것인지라, 계속해서 그들의 숫자가 줄어들 뿐 암살은 거의 성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타닥! 푸욱! 촤아악!
땅에 착지하며 한 흑풍의 목을 꿰뚫고 수평으로 휘두르자 핏물이 튀었다.
‘마지막 하나.’
마지막 한 명의 목이 날아가고 드디어 싸움은 끝이 났다.
“헉! 헉!”
“후우∼”
“하아∼ 하아∼”
탱그랑! 챙강! 털썩! 털썩!
많이 힘들었는지 대부분의 무인들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병장기를 떨어뜨렸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그것도 대부분이 구파의 무인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다들 몸을 일으켜 각자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치우고, 반쯤 무너져 복구가 불가능해 보이는 건물은 다 같이 힘을 합쳐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몇 추종술과 은신술에 일가견이 있는 무인들은 땅바닥의 검흔과 같은 흔적들을 모두 지우기 시작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시체를 치우고 죽어 간 동료들을 애도했다.
이겼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기습을 방어해 낸 것일 뿐.
게다가 오랜 세월 동안 무림맹이 발동되길 기다렸던 오래된 건물들이 모두 망가졌다.
적들을 쓰러뜨렸다는 것에 기뻐할 것도 없었다.
남는 것이 없는 싸움.
모두 하나같이 힘이 없고 넋이 나간 듯한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가끔씩 구파의 사람들을 향해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옆에서 툭툭 치며 눈치를 주어서 한순간의 일일 뿐이었지만 못 보았을 리가 없다.
이곳에 있는 장문인들의 얼굴이 모두 굳어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불타승은 반장을 하여 죽은 자들을 애도하였고, 불염신니는 염주를 도르륵 굴리며 애도하였다.
‘시기가 좋지 않았어.’
사천참사의 일이 알려지고. 게다가 양동작전으로 펼쳤던 전쟁 또한 무승부로 끝났다.
평소였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하필 안 좋은 일이 생긴 후에 기습을 당한지라 모두들 이제는 무림맹을 미심쩍어하는 것 같을 정도로 사기가 떨어졌다.
“하아∼ 골치 아프군.”
관일공이 관일창으로 땅을 툭툭 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터벅! 터벅! 척!
근심 어린 표정의 장문인들에게 다가가 포권을 취했다.
“무슨 일이더냐?”
천수신검이 귀찮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오랫동안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건물들이 무너졌습니다. 그것에 대해 허탈해하는 무인들이 많습니다.”
무림맹의 위상을 드높였던 고루거각들.
그것들의 잔해를 치우고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에 대해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무인들이 많았다.
“한심하구나.”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공동파의 장문인 천강복마의 목소리.
나에게 말하려 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말하려고 한 듯 귓속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였다.
“겨우 건물 여러 채 무너진 것이 뭐라고 이렇게 죽을상인 것인지 모르겠구나.”
“무림말학 진도문(眞刀門)의 소주(小主) 관훈기(關訓技)가 공동파의 장문인께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근처에 있던 한 유생 같아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말해 보아라.”
“건물이라고는 하지만 무림맹의 본단의 건물입니다. 게다가 이곳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있었던 만큼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겨우 건물 몇 채가 무너진 것이 아니고 무림맹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관훈기의 충격적인 말에 모두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하지만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한 건가?’
“진도문이 안휘에 있는 문파인가?”
“예.”
당당한 말투.
자신의 말에 한 점 부끄러움도 없고, 틀린 것도 없다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피식!
천강복마가 비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무슨 실수라도…….”
“진도문은 이 시간부로 무림맹에서 제명한다.”
“아니! 대체 무슨 말씀을……!”
관훈기가 황급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작스런 제명.
무림맹 전체가 정적에 휩싸였다.
“몇 백 년의 세월을 버텨 온 건물이기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건물 몇 채가 아니라 무림맹 본단의 건물이다? 같잖은 소리를 하고 있군. 대체 누구에게 교육을 받으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할 수가 있는지 궁금하구나.”
군중들 앞에서의 모욕에 관훈기의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붉어졌다.
“그렇다면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아니다.”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 천강복마가 단호히 말했다.
“건물은 건물일 뿐이다. 부서지면 다시 지으면 된다. 불탔으면 다시 복구하면 된다. 그저 그것뿐이다. 이 건물들 모두 그저 그 정도일 뿐이다.”
천강복마가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르다. 죽으면 그 시대에는 다시 태어나서는 안 되고, 죽은 사람은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을 애도하지는 못할망정 그런 같잖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 정말로 한심할 따름이구나. 게다가 네놈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흔들리고 있다. 강호에 발을 담근 지 채 오 년도 되지 않은 햇병아리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그렇게 당당한 것이냐? 조용히 입 다물고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이나 하면 될 것을.”
관훈기가 입술을 깨물었다.
뭐라 반박은 하고 싶은데 할 말은 없다는 듯한 모습.
천강복마는 그런 관훈기를 보고 냉소하곤 이쪽으로 다가왔다.
“맹주, 차라리 이것으로 잘되었지 않소? 어차피 한 달 정도 후에 총공격을 할 예정이었으니 조금 앞당깁시다.”
“……좋소이다. 피는 피를 부르는 법, 복수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불쌍한 영혼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으니.”
“한 번 정했으면 다시는 후회해서는 안 되는 법. 마음만 약해질 뿐이니 그런 소리 말고 앞일만 생각하시오.”
불타승이 씁쓸하게 웃었다.
‘자, 이것으로 정해졌다.’
혈천회와의 마지막 전투, 총공격 명령이었다.
7장 진격! 진격!(1)
‘여기구나.’
반 달가량 걸려 도착한 전장.
이곳이 바로 마지막 싸움이 일어날 전장이었다.
“걱정되느냐?”
깨어 있기에는 늦은 밤.
사부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예. 마지막이라 생각되니 긴장도 되고 걱정도 되고…… 아무튼 조금 복잡해요.”
그렇기에 지금 이런 늦은 밤에 밤하늘이나 보며 누워 있는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마음을 편히 가져라.”
“몇 년을 이어 왔던 싸움이에요. 절대 선연이라고 할 수 없는, 혈천회와의 악연의 사슬이 끊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을 편히 가질 수가 없어요.”
“그래, 너로서는 그렇겠구나.”
사부도 내 옆에 털썩 주저앉으셨다.
“별이 많구나.”
“예.”
넓은 하늘 아래 흘러가는 은하수와 자신을 뽐내는 별자리들.
보고 있자니 나란 존재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청우야.”
사부가 묵직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요?”
“생각해 보니 사부가 되어서 지금까지 너에게 뭔가를 가르치기만 했을 뿐이구나. 너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보이는 대로가 다인데 뭐가 아는 것이 없어요? 사부에게 뭐 숨기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나의 사부, 나의 아버지 같으신 분.
사부에게 숨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숨기더라도 나중에는 분명히 말을 해 드렸다.
“네 꿈이 무엇이냐?”
“꿈이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래, 내 꿈은 뭐지?’
지금까지 바쁘게, 생각할 새도 없이 살아왔다.
화산파에 들어와서는 계속해서 수련만 하였고, 하산을 한 후로는 싸움만 해 왔다.
내가 무를 배우는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싸움을 계속하는 것일까?
……과연 나의 꿈은 무엇일까?
‘생각났다.’
은하수 줄기를 따라 천천히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하늘의 검이 되고 싶습니다.”
“하늘의 검[天劍]이라?”
“네. 슬픔이 없도록, 분쟁이 없도록, 이런 전쟁이 없도록 악한 자들을 징벌하고 평안한 강호가 되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래, 하지만 악한 자들이라고 그들만의 사정이 없을 것 같으냐? 그들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을 터인데, 징벌만을 할 생각이더냐?”
“물은 쏟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벌인 죄는 절대 지워지지 않고 삶의 끝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따라오는 법이지요. 저는 수양이 부족해 남들을 선도하고 좋은 길로 이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죄와 함께 그들의 목숨을 끊을 뿐.”
나는 지금까지 피의 길을 걸어왔다.
가는 길마다 누군가는 슬픔에 빠졌고, 누군가는 분노하였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자들의 목숨을 취하였다.
이미 나는 누군가를 이끌고, 선도할 수 없는 자로 변했다.
그런 자들을 보면 살의가 들끓어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하늘의 검이 되려 한다.
하늘은 공평하다.
죄를 지은 자들에게는 그들에게 어떠한 상황이 있든 없든 불문하고 그저 징벌만을 내리고, 선업을 쌓은 자들에게는 복을 내린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미 선(善)의 길을 걸을 수가 없는, 많은 자들의 목숨을 취해 온 나다.
나는 가식적인 행동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공평하게 죄를 지은 자들을 징벌할 것이다.
“너는 이 사부와는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없겠구나.”
사부는 무수한 도업을 쌓은 도사.
원래대로라면, 이 악연이 없었더라면 바깥 생활조차 하지 않고 화산에서 수양을 쌓아 등선을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수양이 깊은 사부이기에 나와는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
사부가 선이라면 나는 악.
사부와 내가 떨어진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그 몇 년 동안의 길이 다르기에 평생을 걸어갈 길도 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