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64화 (164/175)

# 164

화산천검 7권(14화)

6장 총공격 명령(2)

푹!

“큭!”

팔뚝에 꽂힌 세침.

재빨리 뽑아서 땅바닥에 떨구었다.

‘기습? 위다!’

푸푸푸푹!

뒤로 몸을 빼자 내가 있던 자리에 무수히 많은 세침과 단도가 꽂혔다.

판단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꼬치가 되었을 것이다.

식은땀이 흘렀다.

‘잘 안 보여.’

사술의 영향인지 원래부터 어두웠던 천장 부분이 절벽에서 아래를 보는 것만큼이나 어두워 보였다.

‘게다가 기척도 없어.’

역시나 함정이었다.

기척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감으로만 찾아야 되는 상황이었다.

‘칫! 그냥 건물을 무너뜨릴 걸 그랬나?’

장문인들의 회의실이기에 갈등하다 파괴하지 않은 것인데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어디냐?’

쉭! 쉭! 쉬쉬쉭!

계속해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분명히 사각을 찾으려 움직이는 적의 소리일 것이다.

소리로 찾으려 했지만 그것조차 불가능이었다.

소리가 여러 방향에서 난 까닭이었다.

‘이쪽에서 들리면 저쪽에서도 동시에 들리고, 저쪽에서 들리면 또 이쪽에서도 들리고. 골치 아프군.’

피가 마르는 시간들.

그때 무언가가 생각났다.

‘잠깐, 이곳에 한 명만 있을까? 여러 명이서 동시에 움직이는 거라면?’

가능성은 있었다.

이렇게 가만히 시간만 보내느니 시도해 보는 것이 낫다.

쉭! 후우웅∼! 털썩!

‘역시!’

소리가 남과 동시에 검풍을 날리자 천장에서 무언가가 나의 앞으로 떨어졌다.

꿈틀거리며 일어나려는 검은 물체.

암습을 하려던 놈이었다.

스걱! 후우우웅! 푸푸푸푹!

머리를 날리고 재빨리 몸을 돌리며 소매로 날아온 암기를 끌어당기고, 날아온 쪽으로 던졌다.

그러자 벽에 암기가 박히는 소리와 함께 위쪽에서 강한 살기가 느껴졌다.

우우웅∼!

어두운 칠흑의 도기를 두른 단도로 나를 노리는 두 명의 살수.

‘도기와 강기가 파괴력이 강하다곤 하지만 그만큼 내공을 많이 소모하지. 기(技)가 달린다면 기(氣)를 낭비할 뿐이야.’

스스슥!

매화작보를 극성으로 펼치자 한 놈의 단도는 어깨를 스치고, 나머지 한 놈의 단도는 등을 스쳐 지나갔다.

스걱! 푸욱! 촤아악!

한 놈의 머리를 날리고 검을 역수로 쥐고 뒤로 찔렀다 빼냈다.

‘세 명째.’

이곳에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천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숨어 있는 것이니 다섯 명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것은 많아야 두 명.’

이젠 여유롭게 상대해도 될 것 같았다.

“방심하면 곤란하지.”

‘……!’

귀에 대고 말하는, 뒤쪽에 서 있는 누군가.

쐐애액!

“큭!”

재빨리 몸을 앞으로 빼며 굴러 공격을 피해 냈지만 간담이 서늘했다.

“역시 말하지 말 걸 그랬나? 빗나가 버렸군.”

‘이자, 천극혈(天隙穴)을 찌르려 했어.’

천극혈은 일명 천객혈(天客穴), 달리 이근혈(耳根穴)이라고도 부른다.

귀 뒤의 아래쪽 들어간 부분의 혈.

뇌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찔리면 바로 죽게 되어 버리는 사혈(死穴)이다.

한마디로 일격필살로 죽이려 했다는 뜻.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놀라서 경직되어 버렸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누구지?’

“아니, 어차피 내가 죽일 필요는 없으니 간단히 인사를 한 걸로 쳐야겠군.”

홀로 중얼중얼거리는 남자.

검을 중단으로 세우고 경계하며 말했다.

“누구냐?”

“첫만남을 가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또 만났군. 아까 전의 것은 두 번째 만남에 반가움을 느껴서 애교를 부렸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군.”

‘오사도! 장로님들이 당하신 이유가 있었군.’

곤륜과 개방의 장로들이 당했다고 하는데 괜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웬만한 고수들은 기습을 눈치채지도 못할 것이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것처럼.

“그렇게 인상 쓸 필요 없어. 내가 널 죽이려 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윤회하는 인생, 죽어도 다시 태어날 텐데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나?”

“그렇다면 내가 지금 널 죽여도 할 말은 없겠군.”

“그래, 할 수만 있다면 죽여 달라고. 나는 지옥이 어떤 것인지, 윤회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고 싶으니까.”

“미쳤군.”

아무리 윤회를 믿는다 하여도 이건 정도를 넘어섰다.

저 눈의 광기.

호기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쳤다.

“이 세상에 정상인 사람은 없어. 모두가 한 군데씩 망가져 있지. 네놈도 미쳤지 않아?”

“아니.”

단호히 말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아니, 그것보다도 네놈이 미쳤다는 증거는 있어. 사람을 죽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지? 그것이 미쳤다는 증거다.”

“네놈들을 죽이는 데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너희 무림맹의 사람들을 죽이는 줄 아나? 우리도 각자의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기에 이쪽에 가담한 거야. 그에 비해 네놈들은 어떠한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피해도 입지 않았으면서 그저 헛된 공명심으로, 그저 네놈들이 정한 무림공적이라는 이유로 우리 쪽 사람들을 죽이지. 그러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웃기는군. 그래서 네놈들은 평생토록 음지의 사람들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맞는 말임에도 왠지 인정하기 싫은 느낌.

‘어차피 말이 필요 없는 적이다.’

나와는 이미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적.

저자의 말을 듣고 동요할 필요는 없었다.

“…….”

쐐애액∼ 캉!

“들을 필요도 없다는 건가? 아예 무시하고 있다는 소리군. 좋아, 좋아. 죽어서도 그런 태도로 나올 수 있는지 보자고.”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가는데 태도를 어떻게 알 거지? 헛소리도 작작해라.”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네놈은 그저 죽으면 된다.”

부웅! 스르륵!

검을 휘둘러 놈의 몸을 갈랐지만 잔상이었다.

놈의 잔상이 흐릿해지며 땅속으로 푹 꺼졌다.

‘아무것도 안 느껴져. 이곳에선 내가 불리해.’

이곳은 사술이 펼쳐진 진의 안.

나에게선 힘을 빼앗고 적들에게는 힘을 주는 공간이었다.

기감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기에 놈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나가자.’

뒤로 몸을 빼자 순식간에 내가 들어왔던 문이 눈앞에 보였다.

후웅∼ 콰앙!

기를 강하게 불어넣고 검을 휘두르자 폭음과 함께 파편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팟! 쿵!

‘문이……!’

문은 부서졌지만 또 하나의 문이 존재했다.

이 건물을 뒤덮은 진의 장막.

들어올 수는 있지만 나갈 수는 없도록 설계된 것 같았다.

“놀랐나? 이 진은 들어오기는 쉬워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지. 이 진을 펼친 놈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간 지 오래니까 너는 절대 나가지 못해. 나야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상관없지만 말이야.”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무당의 육합전성(六合傳聲)이라도 펼친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내가 오사도의 기습을 눈치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기감이 무용지물이 되었으니 그저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럴 수는 없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드디어 사부를 만났고, 드디어 이 악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끝을 보지 못하고, 또다시 사부와 이별하라고?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

콰아앙!

바로 앞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공간이 흔들리고 녹아내리듯 흘러내렸다.

“젠장! 하필 이런 때에!”

오사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쾅! 쾅! 쾅! 콰아앙!

연이은 굉음.

마지막 커다란 굉음을 끝으로 눈앞에 갑작스레 한 사람이 나타났다.

“기습을 감행한 것도 모자라 이런 사술까지 펼치다니! 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건물의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강인한 인상에 우락부락한 몸.

공동파의 장문인인 천강복마 소평군이었다.

“크윽! 창룡음(蒼龍音)인가?”

“네놈 같은 놈들에게는 상극인 무공의 소유자, 천적이 바로 나다. 순리를 거스른 자들을 만들어 내고 평화로운 시대를 어지럽힌 죗값을 치르거라.”

“헛소리는 작작하라고. 평화로운 것은 드러난 곳일 뿐, 드러나지 않은 곳은 정말로 평화로웠을까?”

“그 입 다물어라!”

콰앙!

솥뚜껑만 한 커다란 손에 어리는 혼원(混元)의 기운.

공동파의 사마를 제압한다는 무공인 혼원벽력장(混元霹靂掌)이었다.

“처음부터 강하게 나오는군. 그래 봤자 이곳은 진의 안, 나의 공간이다. 네놈들에게만 불리할 뿐이야.”

스스슥!

또다시 땅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는 사필마 번냉비.

천강복마 소평군이 인상을 찌푸렸다.

“진의 안에서는 기감이 무용…….”

퍼어엉!

“커억!”

말을 끝내기도 전에 펼친 혼원의 기운이 담긴 격공장.

격공장의 기운이 터진 곳에서 오사도가 피를 토해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그래 봤자 사마외도의 잡기일 뿐. 이 정도 수준의 진은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에 진을 해체한 건가? 과연 대단하군. 역시 구파의 장문인이야.”

사필마 번냉비가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이만 승천할 시간이다. 내생에는 선인으로 태어나기를 빌어 주마.”

“같잖은 소리 작작하라고 했을 텐데?”

후우웅∼ 콰앙!

엄청난 실력.

단 두 수만에 오사도가 꺾였다.

물론 상극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이 한몫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단한 실력이었다.

‘역시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끝없는 무의 길.

역시 아직도 갈 길이 한참이나 남았었다.

“조심해라!”

나를 향해 갑작스레 고함치는 천강복마.

스스슥!

“헙!”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번냉비.

정통으로 직격당한 것인지 손바닥 모양의 흉터가 가슴에 나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네놈이라도 끌고 가도록 하겠다!”

음산한 목소리.

생명의 위협에 오한이 일 듯 닭살이 돋고 온몸이 긴장으로 경직되었다.

우우웅∼! 푸욱!

“제……기랄!”

하지만 나도 넋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루시수 망영과의 싸움 이후로 깨달은 상단전의 중요성.

한 달 반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훈련했기에 지금은 수족을 다루듯 자유롭게 염력을 발출할 수 있었다.

나의 바로 옆에 있던 천강복마.

염력으로 번냉비의 몸을 멈추자 순식간에 심장을 꿰뚫었다.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은 아이다. 우리들 같은 폐물이 그들의 삶을 빼앗아서는 안 되는 법이다.”

번냉비의 심장이 터짐과 동시에 그의 얼굴이 점점 변해 갔다.

삼십 대 중년의 모습에서 환갑이 넘은 노인의 모습으로.

오사도 사필마 번냉비는 주안술을 이용해 청년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 나가자꾸나.”

조금도 더 있고 싶지 않다는 듯 재빨리 바깥으로 나가는 천강복마.

아직 진이 파괴된 것이 아니기에 어찌 될지 몰라 쪼르르 뒤따라 나갔다.

“더 이상 네가 할 일은 없으니 먼저 다른 쪽으로 가 있거라. 이곳을 정리하고 나도 뒤따라갈 터이니.”

가슴팍에서 부적을 꺼내곤 뜻 모를 말을 중얼중얼거리는 천강복마.

도술을 쓸 것인가 보다.

‘사부는 저쪽이군.’

천강복마의 말대로 이쪽에선 내가 할 일이 없었다.

사부를 따라 완벽히 화산파 도문의 도인이 된 것이 아니기에 힘으로 파괴하는 것 외엔 이 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진을 나온 것이 분명하다고 증명하려는 듯 더욱 확실히 느껴지는 기감.

넓게 퍼진 기의 그물에 사부가 걸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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