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화산천검 7권(13화)
5장 불타는 무림맹(4)
끄덕!
“이번 적들은 그래도 말이 통해서 좋네.”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이 아닌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고갯짓으로 답을 해 주었다.
‘정말로 존명을 걸었다는 거지?’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이들을 모두 쓸어버린다면 저들의 정보단체와 살수가 모두 쓰러진다는 소리!
‘그동안 무척이나 골치 아팠는데 이 기회에 모두 쓸어버리자.’
개방보다도 정보수집에 능한 흑풍.
뛰어난 은신술로 많은 무림맹의 무인들을 속이고 쓰러뜨린 흑영.
이들이 없어진다면 총공격 때 무림맹의 승률이 더 높아지리라.
스스슥! 채채채챙!
땅속으로 사라지는 듯한 모습과 동시에 갑작스레 나의 앞에 나타나는 흑영.
머리, 하복부, 양어깨를 노리고 찔러 오는 공격을 몸을 빙그르르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러 막아 냈다.
따당! 피피핏!
연이어 틈 사이로 날아오는 암기들.
검으로 쳐 내고 매화작보로 피해 냈다만, 살짝살짝 스쳐 지나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큭! 독인가?’
상처를 타고 파고 들어오는 이물질.
근육을 경직시키는 종류의 독이었다.
선단과 남궁세가에서 남궁수련이 먹인 약 때문에 독에 대한 내성이 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의 효과는 있다.
‘빨리 끝내야겠다.’
파팍! 뻐억! 콰앙! 푸욱!
무릎으로 발차기를 쳐 내고 금나수로 손을 잡은 후 팔꿈치로 얼굴을 치고 살짝 몸을 띄웠다가 다리를 내리찍고 검을 찔렀다.
순식간에 흑영 중 세 명이 죽었다.
휘르르르∼!
이어서 날아오는 암기를 향해 손을 휘둘러 사천참사 때의 사부의 기술을 흉내 내어 암기를 소매 춤으로 끌어당긴 후 날아온 자리로 발출했다.
푸푸푸푸푸푹! 스걱!
암기를 날려 대던 여섯 흑풍의 사혈에 그대로 암기가 박히고, 이어서 자하십육검 일 검을 펼쳐 남은 하나의 흑영의 목을 날려 버렸다.
“후우∼ 후우∼”
눈을 깜빡이는 시간보다 빠르게 많은 동작을 행하다 보니까 조금 숨이 찼다.
하지만 내상을 입은 것도 아니기에 순식간에 호흡을 정돈하고 흑영과 흑풍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6장 총공격 명령(1)
스걱! 푸우욱! 촤악!
‘큭! 끝이 없어!’
흑풍과 흑영을 전멸시키려 무림맹 내부를 질풍과도 같이 휩쓸고 다닌 지 반 시진.
흑풍과 흑영의 무리만 벌써 일곱을 전멸시켰고, 커다란 기운의 충돌지도 네 곳이나 정리하였다.
반 시진 내에 해낸 것치고는 대단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에 달해 있었다.
사부는 어찌 된지 모르겠지만, 흑풍과 흑영이 나를 구석으로 몰고 포위하여 차륜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싸우다가는 내 체력이 먼저 고갈돼. 한 방에 끝을 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자하십육검 육 검, 아니면 십사 검이나 십육 검을 펼치면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계속해서 달려드는 흑풍과 흑영으로 인해 초식을 펼칠 시간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한 번에 죽이지 못하면, 뒤로 빠져서 쉬었다가 회복되면 다시 달려들기에 더 힘이 들었다.
스걱! 빡!
‘윽!’
방심한 순간 양쪽에서 비수가 날아들었다. 한쪽은 막았지만 다른 한쪽은 막지 못했다.
앞섶이 갈라지며 피가 솟구치고 그 틈에 등이 격타당했다.
‘이래서 인해전술과 진이 무섭다는 거구나.’
고수도 사람이다.
그들도 피로를 느끼고 힘을 낼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흑풍과 흑영 하나하나는 내게 일초지적도 되지 않는 상대이건만 이렇게 진을 펼쳐서 달려드니 밀리는 것은 나였다.
‘진을 파훼할 수만 있다면 차륜전이라 해도 상대할 수 있는데.’
소수의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인 듯 압박이 무척이나 심했다.
팔을 들어 올리는 데도 기운을 써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압박만 사라진다면 한 번에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찾아낸 약점은 하나.’
바로 이 진은 바깥에서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언제 이곳에 올지도 모르고.’
상당히 외진 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기에 누가 언제 올지도 몰랐다.
결국 내가 헤쳐 나가야 한다는 뜻.
‘어디 한 군데 심하게 다치는 건 어쩔 수 없겠네.’
강행돌파를 하면 심하게 다치는 것은 당연한 일.
가능하면 상처 없이 싸움을 끝내려 했는데, 이렇게 계속 버티는 것이 강행돌파를 하는 것보다 상처가 심할 것 같았다.
‘간다!’
타다닥! 턱! 스걱!
극성으로 펼친 매화작보로 한순간 모든 공격을 피해 내고 바로 앞에 있는 무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며 검을 휘둘러 목을 벰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무인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냈다.
스거거걱! 파팡! 챙! 푹!
엄청난 속도의 진격.
진의 거의 끝 부분에 와서 검이 막히고 허벅지에 비수가 꽂혔다.
‘큭!’
연이어 날아오는 암기의 비와 사방에서 찔러 오는 비수.
자하십육검 오 검.
태태태탱! 찌이익!
다행히 모두 막아 내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하지만 마지막에 하나 놓친 것이 있었는지 옆구리의 옷이 찢어지고 비수가 꽂혔다.
쑤욱! 탱그랑!
고통스럽지만 한 번에 옆구리에 꽂힌 비수를 빼냈다.
“이제 반격이다!”
이미 진은 빠져나왔다.
게다가 순식간에 진을 빠져나왔기에 틈이 생겨 초식을 펼칠 시간도 있다.
자하십육검 십사 검.
서거거거걱! 스거거걱! 콰아앙!
상당히 외진 공간에 진을 펼치고 있었던 적.
밀집해 있기에 광범위한 공격을 하는 십사 검의 경력에 반 이상의 적들이 휘말려 쓰러졌다.
“후∼!”
이 상태에서 몰아붙인다면 전멸을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차륜전에 의해 체력의 소모가 많았던 만큼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숨을 고르는 잠시의 시간.
나의 바로 앞에 있던 한 흑풍이 손을 들어 올리고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곤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도망가는 것이…… 윽!”
파캉!
수신호를 했던 흑풍이 달려들었다.
카가각!
‘갑자기 강해지다니…… 선천지기를 사용한 건가?’
나로서도 떨쳐 내기 힘들 정도로 강한 힘으로 짓누르는 흑풍.
그렇게 잠시간 대치하자 녀석의 초점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촤악!
그 틈에 왼손으로 검을 뽑아 목을 날렸다.
선천지기는 생명의 원천.
그것을 사용했기에 초점이 흐릿해졌고, 틈이 생긴 것이다.
“쓰러뜨리긴 했지만…….”
아직도 칠십 명 정도가 남은 흑풍과 흑영.
아니, 나를 잡으러 이곳에 모두 모인 것은 아닐 터이니 최소 백 명 이상의 흑풍과 흑영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모두 이 자리에서 도망쳐 버린 것이다.
“일단은 쉬자.”
무림맹에 습격이 일어난 지 벌써 한 시진 반이나 지났다.
무림맹은 구파의 장로들은 물론이요, 장문인, 게다가 다른 문파의 유명한 무인들까지 모두 모여 있는 만큼 용담호혈이라 할 수 있다.
처음의 어수선함은 갑작스런 기습에 의한 혼란일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정되었다.
그리고 이제 불에 타고 있는 건물은 다섯 채도 남지 않았다.
모두 소화를 끝냈으며,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있던 전투도 거의 다 끝이 났다.
‘하지만 기습을 너무 쉽게 허용했어.’
이곳은 무림맹 본단.
반(反)혈천회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기습을 허용하였고, 게다가 많은 전각군들이 무너지고 많은 무인들이 죽었다.
흑풍과 흑영들이 돌아다녔으니 장로님들과 같은 고위급 인사도 쓰러졌을 가능성이 있다.
‘싸움의 끝이 보이는 이때 이런 습격을 받았으니 사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 당연하겠지?’
마지막 총공격만이 남은 폭풍전야의 대치 상태.
이런 때에 무림맹이 습격받았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마지막 싸움만이 남은 때이니 흑풍과 흑영을 버리는 패로 사용한 거군.’
마지막 싸움에 정보란 필요가 없다.
그저 각자의 전력을 맞부딪쳐 이긴 자가 승자가 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수장이 없어진 흑영, 본거지가 파괴된 흑풍을 무림맹으로 보내, 버리는 패로 사용한 것이다.
게다가 둘 모두 이후엔 쓸모가 없는 것이니 혈천회로서는 거의 피해가 없다.
철저한 혈천회의 이득을 위한 싸움.
‘결국 또 농락당한 거로군.’
이제는 분노보다는 허탈한 한숨만이 나올 지경이었다.
‘괜찮아, 어차피 이 정도로 무너질 일은 없으니.’
천 년의 전통은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한다.
강호에서는 하루 사이에 많은 수의 문파가 일어났다가 스러진다.
그런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을 이겨 내고 백 년을 버티면 명문이란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구파는 천 년이다.
오랜 세월을 그런 강호에서 버텨 낸 것이다.
이 정도 역경은 손쉽게 극복해 낼 수 있으리라.
“이만 움직여야겠군.”
대충 치료는 끝냈다.
혈을 짚고 옷을 찢어 동여매 상처의 지혈을 끝냈고, 조금의 시간이지만 운기조식도 취했다.
아까같이 포위당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다면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자아, 어디로 갈까?”
기감을 넓히자 커다란 기와 기의 충돌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로 갈…… 아니, 잠깐만. 왜 이렇게 조용하지?’
점점 넓어져만 가는 기감.
조금씩 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러 곳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어떤 한 곳에서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곳만이 이 싸움에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공간이 단절되어 홀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술!’
분명하다.
이건 사술이다.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거지?’
가 보면 알겠지.
팟!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곳으로 달려가던 도중 간간이 보이는 싸움에 검풍을 날려 도움을 주었다.
‘찾았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
‘회의장?’
도착한 곳은 내가 장문인들을 만났던 그 회의장이었다.
‘장문인들이 사술에 걸릴 이유가 없을 텐데?’
불타승의 사자후 한 번이면 대부분의 사술은 깨져 버린다.
그리고 오선 중 하나인 무당의 장문인 영선은 상고시대의 선법을 이은 자.
현 시대의 사법 정도는 잡기로 치부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다.
‘아니, 아무도 없었을 가능성도 있지.’
그렇다면 이것은 함정일까?
‘그래도 들어가자.’
어차피 다른 쪽은 내가 도와줄 것도 없다.
이쪽은 나중에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차라리 내가 먼저 파괴하는 것이 나았다.
스르륵∼!
가까이 다가가자 저절로 열리는 문.
‘누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가?’
안에 진입하자 보이는 것은 내가 누차 보았던 장면이었다.
다른 것이라면 장문인들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일까?
핑!
‘음?’
작은 소리.
바람을 가르는 무언가의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