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화산천검 7권(6화)
3장 납치(1)
순간 세상이 멈추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착각이, 환상이 아니다.
절대로 잘못 본 것일 리가 없다.
이 느낌이, 이 눈이, 이 기운이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자하.
화산파 천 년의 비기.
그저 색이 자색이었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나의 자하십육검과 같은 느낌이 드는 일 수였다.
비슷한 것이 아닌 같은 느낌이 드는.
“사부가 어떻게 그걸……!”
자하십육검은 사부에게 보여 준 적이 없다.
내가 사부에게 보여 주었던 것은 자하십육검으로서의 형을 얻기 전의 형태인 매화검로.
사부가 이것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놀랐더냐? 그래서 내가 이것을 보여 준 것이다. 너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와 화산파, 그리고 근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이 자하를 제외하고는 없겠지. 나는 그중 자하에 대한 얘기를 하려던 것이다.”
“…….”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나에게 사부는 계속해서 말을 이으셨다.
“사실 내가 익힌 심법 또한 자하심법이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알지 못했던 공능과 수많은 비밀들이 나타나는 보고와도 같은 심법이지. 그렇기에 예전 내가 너에게 자하심법 말고 다른 심법을 익히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것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라고 일깨우듯 사부의 오른손이 자하의 기운을 담아 계속해서 움직이며 습격자들을 쓰러뜨렸다.
“너의 매화검로에 영향을 받았던 탓일까? 솔직히 오랜 기간 동안 너의 매화검로가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분명히 나의 것이 아니라는 감이 머릿속을 울리는데도 마음속에서는 이거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지. 결국 할 수 없이 너의 움직임을 따라 매화검로를 펼쳐 보았다. 역시나 머릿속 상단전의 예감대로 무언가가 나를 덮어 버린 듯 답답함과 불쾌함만이 느껴졌지. 그러나 한 번 검무를 펼쳤는데도 마음속엔 너의 매화검로만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검무를 펼쳤고 또다시 답답함과 불쾌함만을 느꼈지. 결국 포기하려는 순간 너의 비정상적인 무공들이 떠오르더구나. 본래의 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을 탄생시켰던 너의 무공들. 장천수와 매화검로. 그러자 강하게 한 생각이 떠오르더구나. 나는 본래 검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검이 베고 찌르기 위해 탄생되었기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지. 결국 답은 나와 있었던 것이다. 너의 매화검로를 몸으로 펼치라는 것이었지.”
“하지만 매화검로는 검법. 권법으로는 펼칠 수가 없을 텐데요?”
“예전에 말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 것이더냐? 태극권을 검으로 펼쳤었고,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장으로 펼쳤었는데 말이다.”
“아!”
그랬다.
종남파와의 합동훈련 바로 직전 사부는 나에게 또 하나의 경지를 알려 주었었다.
무공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엄청난 깨달음.
만류귀종의 일부분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그것을 토대로 너의 매화검로를 권과 장으로 표현해 보았지. 그러자 마음속에서 많은 것이 허물어지고, 많은 것이 세워지더구나.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밤이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또다시 밤이었지. 그것도 하루가 아니라 이틀이 지난 후의 밤이더구나. 그렇게 나는 지금의 이것, 자하를 깨달은 것이란다.”
형을 버리라는 것.
공천패의 말을 따라 내가 매화검로로서의 형을 버리고 새로운 검법, 자하십육검을 깨달았다면, 사부는 매화검로의 형을 버리고 박투로 매화검로를 새롭게 탄생시켰던 것이다.
“화산파의 그 어떤 문헌에도 이런 무공은 없더구나. 단지 도문에서 구전으로나마 자하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뿐이지. 내가 생각하기에 그 자하가 이것과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네, 삼백 년 전 혈천과의 싸움에서 잃어버린 비기. 절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매화검로의 시험을 통과한 자만이 얻을 수 있게 만든 것, 그것이 저의 자하십육검이에요.”
“자하십육검, 절전된 본산의 비기란 말이구나. 우리 두 사제(師弟)에게 복이 있어 사문의 무공을 깨달은 것이로구나.”
자하에 대한 것을 나에게서 알아내신 사부.
사부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자하의 기운을 바라보셨다.
‘자하십육검. 분명히 공천패는 절전된 화산의 비기가 자하십육검이라고 했어.’
자하의 십육검이다, 검.
하지만 사부는 아니었다.
검이 아니라 권과 장, 몸을 쓰는 박투로서의 자하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아무리 사부가 만류귀종이라는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해도,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구파의 비기같이 무공으로서 완벽에 이르렀다면, 그것을 바꾸는 것은 결국 아류의 탄생에 지나지 않는다.
본래의 것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부의 것은 달랐다.
사부의 것은 나의 자하십육검과 비슷한 것이 아니라 완벽히 같은, 아니 별개지만 모방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무공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설마 정말로 사부는 하나의 무공을 탄생시켰단 말인가? 그것도 화산파 천 년의 비기와 같은 무공을?’
정말로 그렇다면 나는 엄청난 사부를 모시고 있다는 소리다.
무신 허정 도인과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무를 가지고 계신 사부를.
“너에게 이것을 보여 준 이유는, 네게 무에 대해서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서 이것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겠지요.”
무공의 변화.
사부의 주변에서 이것을 경험한 사람은 나 외에는 없었을 터이니 알고 싶으셨을 것이다.
“자, 그럼 보여 주고 싶었던 것도 다 보여 주었고, 늦었으니 빨리 가도록 하자꾸나.”
이미 사부의 자하에 의해 모두 쓰러져 버린 습격자들.
방해하는 사람은 없기에 빠른 속도로 달려가 마진천의 조가 있던 곳에 도착했다.
“이곳도 마찬가지군요.”
건물이 폭탄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싸움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밖에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곳 역시 관가의 사람들과 사천당가의 무인들이 건물 잔해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은 들어갈 수 없소. 다른 쪽으로 피해서 가시오.”
저쪽에서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말을 하는 당가의 무인.
사부가 화산파라고 말하자 역시나 실례했다고 하며 물러섰다.
‘어떤 상황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쓰여 있는 책이 당가에 있기라도 한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건물에 가깝게 다가갔다.
그러자 역시나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는 당가와 관가의 인물들이 보였고, 사부가 잠시 나를 기다리게 한 후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셨다.
잠시 후, 사부가 대화를 끝내시고 자리로 돌아오셨다.
“이곳에선 죽은 사람들 외에 산 사람을 발견하지는 못하였다는구나. 그리고 죽은 사람들의 신상 중에 신룡들은 없었다.”
역시나 이곳엔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간 거지?’
몸을 빼는 데에는 선수인 우승빈, 나에게 왔었던 마진천, 그리고 북초이.
대체 어디에 몸을 숨겼고, 마진천은 사형들을 데리고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미 이곳에서 몸을 빼 버린 건가?’
우승빈의 재능과 실력이라면 가능성이 높기는 하였다.
그때, 갑작스레 한 무인이 헐레벌떡 나타나 당가의 인물들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얘기가 끝났을 때, 당가의 무인들이 사부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부가 다가가자 당가의 무인들이 사부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기 시작했고, 얘기가 끝나자 사부가 조금은 굳은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뭐라고 한 거예요?”
“나머지 아이들을 모두 찾았다고 하더구나. 독살성이 있던 쪽으로 방금 다섯 명의 젊은 남자가 도착했다고 한다.”
“다행히 모두들 나타났군요. 그런데 어째서……?”
사부의 굳은 표정.
뭔가 있을 것이다.
역시나 사부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셨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들 심하게 다쳤다고 하더구나.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놔둔다면 죽어 버릴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은 자도 있다고 하였다.”
“음…….”
처음부터 죽거나 크게 다칠 것을 각오한 임무.
독살성에게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모두가 다쳤다고 하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서 가 보자꾸나. 내가 응급치료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터이니.”
“대신 사부도 피곤해지잖아요?”
자연에서 기를 끌어 쓰는 사부임에도 불구하고 셋을 치료한 후 피로해 보였다.
자연의 기를 끌어 쓰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부가 피로를 느끼셨던 것이고.
그런데 이번에는 다섯이다.
사부가 쓰러지실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보고 그냥 구경만 하라는 뜻이더냐?”
“그건 아니지만…….”
그저 걱정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크게 무리를 할 것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다. 어서 가 보자꾸나.”
또다시 길을 달려 도착한 신룡들이 쓰러져 있는 곳.
이번에도 화산파임을 보여 주고 신룡들이 쓰러져 있는 임시 막사로 들어갔다.
“음?”
진맥을 하고 있는 의원.
집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사부와 나를 신경 쓰지도 않는 의원을 대신하여 그를 보호하고 있는 당가의 무인들이 우리를 경계하듯 움직였다.
“화산파, 검룡 청우요.”
이곳에서는 같은 신룡이라고 하는 것이 편했다.
이야기하자 당가의 무인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를 위하여 자리를 비켜 주었다.
“…….”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한 완벽한 무시.
하지만 저런 행동이야말로 지금 상황에선 정말로 필요한 행동이었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그것도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는데 누군가가 들어왔다고 신경을 쓴다면 그것은 지금 이들을 치료할 자격조차 없는 의사라는 얘기로 직결되니까.
“…….”
사부도 아무런 말없이 조용히 치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진천…….’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커다란 충격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세상이 흔들거렸다.
피투성이인 몸.
팔이 잘리거나 단전이 꿰뚫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친 모든 신룡들 중에서 가장 위험한 상태였다.
“쿨럭! 쿨럭!”
의식을 잃은 상태인 것이 분명한데도 계속해서 각혈을 하는 마진천.
연화처럼 가슴의 중앙을 꿰뚫려 장기가 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폐.
배가 강한 타격을 입은 듯 퍼렇게 멍이 들었고, 그 타격으로 인해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려 버린 것이다.
지금 바로 죽는다 하여도 별반 이상하지 않을 상황.
우리 중에선 가장 강하다 생각한 마진천이, 우리 중 다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마진천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장 심한 상처를 입어 버렸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단전이 파괴된 남문기가 가장 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렇지만 곧바로 죽을 만큼 위독한 상황이란 것에서는 마진천이 한 수 위였다.
‘이런 것에서도 앞서 가지 말란 말이다…….’
그렇다고 우승빈과 북초이가 심한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승빈은 살수로서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오른쪽 다리는 계속해서 경련이 일어나는 듯 꿈틀꿈틀 미약하게 움직이는 것에 반해 왼쪽 다리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힘줄이 잘린 것.
한쪽 다리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북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