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화산천검 7권(4화)
2장 어째서 이곳에?(2)
“화산파요. 비키시오.”
“화산파? 아, 실례했습니다.”
무진 사부가 화산파 도포를 보이며 말하자 나의 앞을 막아섰던 무인이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물러났다.
“어서 가자꾸나.”
다시 경공을 펼치고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관가도 있다.’
사천당가의 무인들뿐만 아니라 이번엔 관가의 인물들까지 존재했다.
“화약 냄새가 나는구나. 화약은 관가에서 엄격히 관리하는 물건이거늘…….”
“관리한다고 구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뇌물이라면 사족도 못 쓰는 인간들이 수두룩한 조정이니.”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니 심각하구나.”
건물 하나가 폭파되어 무너져 있었다.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와 기름 냄새, 그리고 하늘을 덮칠 듯한 화마와 까맣게 탄 건물의 잔해.
보통 무림인끼리의 싸움은 관가에서 제재를 하지 않는데, 폭탄에 의한 사태이기 때문에 관가가 사천당가의 무인들과 함께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타닥!
폭파된 건물의 앞,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착지하자 사건에 대해 토론하고 있던 무인들이 고개를 돌렸다.
“독살성?”
오랜만에 보는 얼굴.
사천당가 안에서도 독하기로 유명하다는 독살성이 이곳에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화산파. 네놈들이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 얘기는 들었다만, 이건 우리가 덮어 두기엔 너무나 큰 사건이구나.”
보자마자 핀잔을 들었다.
역시나 저 성격에 환대를 받기란 무리였나 보다.
“사천당가의 독살성이시오? 얘기는 많이 들었소이다. 이 아이에게 무공을 사사한 화산파의 무진 진인이라고 하오.”
사부가 먼저 예의를 차리셨다.
“사천당가의 독살성이라고 한다. 이놈에게 무공을 사사했다면 그쪽도 알 만하겠군.”
예의를 갖추지 않는 독살성.
살짝 울컥한 마음에 뭐라 하려는데 사부가 손을 들어 나를 가로막았다.
“찾고 있는 사람이 있소. 안에 아이들이 있었을 터인데 그 아이들은 어디 있는 것이오?”
시비를 걸 작정이었는지 사부의 예의 있는 말투에 독살성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쪽에 있다. 많이 다쳤기에 일단 내가 응급처치를 하긴 했다만, 조금 위험한 상황이지.”
“의원은 불렀소?”
“평범한 의원은 치료를 못 할 정도의 상처다. 당가의 직속의원을 불렀으니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럼 먼저 가 보겠소.”
사부의 말에 휘휘 손을 내젓고 아직까지도 화마에 둘러싸인 건물 가까이 몸을 움직이는 독살성.
“성격이 나쁘기로 유명하신 분이니 기분 나빠하실 필요는 없어요, 사부.”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아이들이 심하게 상처를 입었다고 하였으니 어서 가 보자꾸나.”
눈에 띄게 굳어 있는 사부의 표정.
심하게 다쳤다는 신룡들.
나 또한 그 사실을 상기하고 굳은 표정으로 당만형이 알려 준 자리로 달려갔다.
관가의 것이라 사료되는 임시로 세워진, 급하게 세워진 듯해서 조금은 부실해 보이는 막사.
문을 젖히고 들어가자 비릿한 피 내음이 코를 찔렀다.
‘어, 어떻게…….’
당만형이 지나가는 말로 말할 만한 상처가 아니었다.
남문기는 오른팔이 없었다.
게다가 배합한 약초를 단전 어림에 발라 둔 것이, 단전을 꿰뚫린 것 같았다.
오른팔의 상실과 단전의 파괴.
무인으로서의 생명이 다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명도.
명도는 왼팔과 등이었다.
다행히 단전은 다치지 않아 무인으로서 계속 살아갈 순 있었다.
하지만 왼팔의 상실과 등가죽이 다 벗겨져 버린 상처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연화.
“연화…… 야?”
“비키거라.”
관통된 듯 가슴을 압박한 붕대 사이로 피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분명히 독살성이 응급처치를 했다고 하였는데?’
게다가 얼굴도 다친 것인지 이마에서부터 왼쪽 얼굴까지를 붕대로 가리고 있었다.
얼어붙은 나를 뒤로하고 연화에게 가까이 가서 주저앉으신 무진 사부.
잠시 깊이 숨을 내쉬고는 이내 손을 들어 연화의 상처 부위에 대고 눈을 감으셨다.
우우웅∼!
하얗고 따스한 기운을 내뿜는 무진 사부의 손.
기운이 발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피는 멎었다.
“다행히 멎었구나.”
피곤함이 묻어나는 말투.
무진 사부의 안색이 창백한 것으로 보아, 치료하는 데 많은 힘이 들으신 듯했다.
“사부가 보시기에 괜찮은 것 같나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죽지는 않을까?
아니, 살아나더라도 무인으로서의 삶이 끝나지는 않을까?
불안과 걱정이 머릿속에서 혼란을 일으켰다.
“응급처치가 잘되어 있고 기운이 계속해서 몸속을 움직이는 것이, 다행히 죽거나 무인으로서의 삶이 끝날 것 같지는 않구나. 하지만 그래도 일 년 가까이는 요상해야 할 심한 상처다. 연화는 이 정도다만 다른 아이들은 심각하구나.”
무진 사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엔 명도의 옆에 자리 잡으셨다.
사부의 손이 왼손의 어깨 부분에 닿자 명도가 눈을 떴다.
검은 겁화의 눈.
엄청난 살기와 함께 명도의 오른손이 한편에 놓아져 있던 검을 뽑아 들고 사부의 목을 노렸다.
“위험……!”
엄청난 속도의 발검.
그 위험성에 경호성을 내뱉었다.
턱!
하지만 사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예전 공천패와 갈천악이 남궁세가에서 만났을 때와 같은 상황.
병기는 베어 버리지 못하고 그저 손가락에 닿았을 뿐이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받아들이거라.”
사부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곤 검을 옆으로 툭 쳐 내며 연화 때와 마찬가지로 기운을 내뿜으셨다.
명도의 타오르는 검은 눈이 점점 초점을 잃어 가더니,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부가 몸을 일으키곤 남문기에게로 다가가 앉으셨다.
“이 아이는 심각하구나. 어찌하여 새파란 아이들에게 이러한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인지…….”
누군가는 죽거나 크게 다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던 임무.
각오했었다고는 해도 누군가가 다친 것을 보자 마음이 무척이나 아파 왔다.
남문기는 특히나 더한 상태.
무인에게 단전의 파괴는 죽는 것보다도 괴로운 일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투자해 이뤄 낸 무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아의 상실과도 마찬가지인 일이다.
게다가 초풍도객같이 연륜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혈기가 넘칠 때인 이십 대에 무공을 잃었다는 것은 커다란 충격일 것이다.
사부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남문기의 단전에서 손을 떼셨다.
“치료가…… 안 되는 거예요?”
“단전은 나로서도 건드릴 수 없는 신비한 영역이다. 등선에 들어가기 직전이신 선배님들이나 전설로 불리는 노고수들이 아닌 이상에야 단전은 치료하기 불가능하다.”
완벽한 끝.
치료할 방안이 없다는, 무인으로서의 삶의 끝이 선고되었다.
남문기의 오른팔 치료를 끝내자 사부가 몸을 일으키셨다.
힘이 없으신 것인지 비틀비틀 일어서시는 사부.
곁에 다가가 부축해 드리려 했지만 사부가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하였다.
“나는 됐고, 어찌하여 이 아이들이 이렇게 됐는지 살펴보자꾸나.”
막사의 밖으로 나가 독살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잠깐 사이 무척이나 약해졌군. 저놈들에게 무슨 짓을 했나 보지?”
“모두를 위해 움직이다 저렇게 되어 버린 것인데 슬프다는 마음조차 들질 않는 겁니까?”
신룡들에 대해 말을 할 때에 느껴지는 무감정함.
나도 모르는 새에 마음속의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자기가 원해서 이곳으로 왔다가 저렇게 된 것인데 내가 왜 저놈들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거지?”
“모두를 위해서 움직이다 이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이 일을 하면서 아무런 위험도 없을 줄 알았나? 너희들은 유명하고 강하니까 심한 상처는 없을 줄 알았나? 헛소리 작작해라. 이렇게 다칠 각오도 없이 임무를 행하였다면 네놈들이 이렇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내가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니고 비웃어야 할 일이지.”
“윽!”
반박할 수 없게 만드는 말.
각오를 했다.
그것은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이야기도 끝난 것 같은데 잠시 안으로 가 보아도 괜찮겠소?”
“화재가 거의 진압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위험할 텐데?”
“상관없소.”
“뭐, 그렇다면야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 마음대로 하도록.”
당만형이 관심 없다는 듯이 돌아섰다.
한차례 뒤통수를 노려봐 준 후 사부를 따라 화마가 진압된 건물의 잔해에 다가갔다.
뜨거운 열기.
화마가 진압되고 남은 잔해인데도 기를 끌어 올리지 않으면 참지 못할 정도로 뜨거웠다.
“너무 심하게 파손되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조차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구나.”
“예, 모두 무너져 버렸으니…….”
커다랗던 건물이 모두 타 버려 재와 나뭇더미밖에는 남아 버리지 않은 상황.
그저 엄청난 폭탄이 터져 버렸다는 것 외에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없겠구나. 그저 시간이 가는 것을 기다려야겠지.”
“아직 한쪽이 더 있어요. 이곳에서 임무를 행한 것은 세 조. 나머지 한 조의 상황을 보러 가죠.”
마진천이 속한 조.
이런 상황에서는 사부와 얘기를 나누기도 뭐하니 그쪽에 가서 상황을 보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그렇다면 그쪽으로 가 보자꾸나.”
당만형을 기감으로 찾아내고 전음을 날렸다.
[다른 쪽으로 가 보겠습니다.]
[관여치 않으니 마음대로 해라.]
귀찮다는 말투.
이제는 뭐라 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어느 쪽이더냐?”
“따라오세요.”
먼저 몸을 날렸다.
평소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넓게 펼쳐진 기감 사이로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터덕!
자리에 멈춰 서자 사부가 입을 여셨다.
“이제는 이런 것도 느낄 정도로 성장하였나 보구나. 못 본 사이에 많이 성장하였어.”
사부의 칭찬에 조금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네 상처는 심법에 막혀 드러나지 않을 뿐 치료된 것이 아니니 아직 싸우기는 무리다. 조금 기다리거라. 내 너에게 보여 줄 것이 있으니.”
“보여 줄 것이요?”
“너와 관련이 있는 것이니 네가 꼭 보아야 할 것이다.”
“……?”
궁금하였지만 사부의 말대로 일단 참고 기다렸다.
천천히 접근해 오는 위화감.
오른쪽 건물.
와장창!
일 층과 이 층의 창문이 박살 나며 파편과 함께 암기가 날아왔다.
파라락! 휘리릭!
사부가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휘젓자 장포 자락이 부풀어 오르더니 그 사이로 암기가 빨려 들어갔다.
“비황(飛蝗)의 모양이라……. 사천당가의 독문암기인 비황석(飛蝗石)인 것 같구나.”
“사천당가가 저희를 공격할 이유는 없으니 빼돌린 것이로군요.”
“독과 암기의 비밀을 세간에 알리지 않으려 데릴사위를 들이고 있는 당가인데 암기를 빼내다니…… 놀랄 만한 능력이로구나.”
“그러니 전 무림을 상대로 싸움을 건 것이지요.”
적이 바로 앞에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대화.
그만큼 사부를 믿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