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53화 (153/175)

# 153

화산천검 7권(3화)

1장 드디어……(3)

‘아무도 없어.’

시가지에서 벌어진 엄청난 싸움.

관가조차 관여하지 못할 정도의 싸움인데 평범한 민초들이 어떻게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인가?

이미 소란스러움은 온데간데없고, 적막함만이 바람에 실려 이곳을 맴돌고 있었다.

‘마진천이 있었으니 괜찮겠지.’

나보다도 뛰어난 사람이다.

상황 판단은 눈 깜짝할 사이면 끝내고, 촌각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엄청난 생각을 해내는 천재다.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만 없다면 모를까, 마진천이 같이 사라졌으니 괜찮을 것이다.

‘혈강시가 맘에 걸리긴 하지만…….’

고루시수의 노림수, 혈강시.

함정에 걸렸다는 말.

좋지 않은 몸 상태로 그런 강시와 싸웠다는 것이 맘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믿는 수밖에는 없다.

‘좋아.’

이미 일 장하고도 반이나 물러났는데도 주변을 경계하는 살수.

어떤 은거고수께서 나를 도와주고 있는지는 몰라도 상황은 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천당가로 가자.’

이곳에도 사천당가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이 작전 지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임무가 끝난 뒤를 염려해 많은 고수들을 포진해 놓았을 것이다.

외워 놓았던, 근처에 있는 어떤 사천당가의 지부로 가도 나를 숨겨 줄 여력은 있을 것이다.

‘저자 하나 정도는 막을 수 있겠지.’

일개 지부라도 그 정도 여력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미파, 점창파와 더불어 사천의 패자로 자리 잡고 있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막 결심을 하고 한 줌 남은 진기를 끌어 올리려는 순간, 살수가 움직였다.

입술을 피가 흘러내릴 정도로 꽉 깨물고 나에게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살수.

‘이런!’

죽을 것을 각오하고 나를 막겠다는 소리였다.

차원이 다른 고수가 견제하고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나를 죽이겠다는 각오.

현재로선 나는 막을 힘이 없다.

따앙! 탱그랑! 쐐애액∼!

힘을 내 검을 맞부딪쳤건만 검은 단도와 맞부딪치자마자 이내 땅으로 떨어졌고, 기세를 타고 단도가 재차 심장을 향해 날아왔다.

쿠우웅!

‘……!’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의 강렬한 위압감.

기감은 심검에 의해 사라졌건만 느낄 수 있는 기운.

오른쪽에서부터 이 공간을 짓누를 듯한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고수가 느껴졌다.

‘빠르다.’

엄청난 속도다.

단도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이미 원래 거리의 반은 좁혀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도가 내 심장으로 도달하기도 전에 고수는 이곳에 도래할 것이다.

몸이 난도질당할 것이라는 예감조차 무시하고 달려들었건만, 살수의 독수는 나에게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느꼈는지 살수가 단도의 방향을 바꾸었다.

나의 오른쪽으로 몸을 틀더니 단도를 빠르게 움직여 도막을 만들어 냈다.

미숙함이란 찾아볼 수가 없는 익숙한 동작.

처음의 느낌대로 역시나 이자도 고수였다.

‘하지만 지금 달려오고 있는 고수에게는 미치지 못해.’

기운으로 보자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고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었다.

그 정도로 강한 나의 방수.

‘대체 누구일까?’

암암리에 천하제일인이라 손꼽히는 무당의 태극검사, 허정 도인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왔다!’

콰아아앙!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엄청난 폭음.

몸을 날려 버릴 듯한 바람과 함께 모래 먼지가 솟구쳐 시야를 가려 버렸다.

휘이이잉∼!

황량한 바람 소리.

격돌과 함께 생겨난, 몸을 베어 버릴 듯한 칼바람이 순간 멎어 버렸다.

나의 앞을 가로막고 등을 보이고 선, 나와 키가 비슷한 고수.

모래 먼지는 그의 주변으로는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쿨럭! 쿨럭!”

천천히 모래 먼지의 폭풍이 갈라지고 이내 격돌한 살수가 보였다.

오른쪽 팔이 짓뭉개져 땅에 떨어져 있고, 토해 낸 피가 가슴팍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몸이 망가졌음에도 싸늘한 눈빛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고루시수 망영을 들쳐 멘 상태로 싸늘한 눈빛으로 살기를 내뿜는 살수.

앞의 고수가 살짝 손을 휘두르자 이내 몸을 찌르던 세침과도 같은 살기가 사라졌다.

‘익숙……해?’

몸동작 하나하나가, 이 뒷모습이 무척이나 익숙하다.

게다가 붉은색, 화산파의 도포까지.

두근! 두근!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심검과는 다르다.

심검 때에는 과부하로 인한 여파였다면 지금은 가슴이 눈치를 채고 뛰고 있는 것이다.

‘설……마.’

콰아앙! 쾅! 빠각!

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고수.

팔을 잃었기에 각으로 모든 것을 막아 내려 하는 살수.

하지만 역시나 실력의 차이 때문인지 가슴에 일 권을 맞은 살수가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놓쳤군.”

하지만 그것은 노림수였다.

혼자 힘으로 도망칠 수는 없으니 모든 힘을 빼고 충격을 받아들여 뒤로 날아가 몸을 빼낸 것이다.

그렇지만 고루시수 망영의 시체가 같이 사라졌다는 것, 그것조차 마음속에 파고들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은 이 고수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키는, 화산파 도포를 입었고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익숙한 이 인물.

‘아까의 주먹. 분명히 장천수였어.’

그것도 화산파 보평제자들에게 전수되는 장천수가 아닌 나만의 장천수.

눈대중으로 흉내를 낸 것이 아닌 나와 같이 진기를 도인한 장천수.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하나다.

나의 아버지, 나의 보호자, 나의 마음속의 안식처.

“사……부.”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크게 힘을 내 움직여 보았다.

마음과는 달리 소리조차 미약한 그 음성.

나의 말을 들은 그 인물이 몸을 돌렸다.

싸우는 도중에 멀리 떨어져 버린 정체불명이었던 고수.

한 줌의 진기만이 남은 상태라 알아볼 수 없는 거리였건만 어떻게 된 일인지 확연히 보였다.

조금의 흰머리와 주름살.

세월의 풍파에 휩쓸리고 불미스런 사건 때문에 약해졌었던 그분.

나의 사부.

“오랜만이구나, 청우야.”

무진이라는 도호의 장로.

무진 사부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 주었다.

2장 어째서 이곳에?(1)

“사부가 어째서 여기에……?”

“사정은 나중에 알려 주마. 해후는 나중에 풀자꾸나. 일단 정리부터 하는 것이 좋겠구나.”

“…….”

“못 들었느냐? 지금까지 상황을 지켜보았다. 보아하니 너 이외의 후기지수들에게도 이런 명령을 내린 것 같은데, 그 아이들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

“알…… 겠어요.”

조금은 어색하다.

나눠야 할 말이 많건만,

상황은 그렇게 놔두지를 않았다.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

사부와의 재회, 해후도 중요하지만 나 이외 신룡들의 상황이 더 중요하다.

“나머지 아이들은 어느 쪽이더냐?”

“저쪽이에요.”

연화와 명도, 그리고 남문기가 갔던 곳.

마진천이 이쪽으로 왔으니, 나머지 한쪽은 이미 정리됐을 것이다.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는 것은 연화가 있는 쪽뿐.

더구나 연화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자 더욱더 걱정되었다.

“손을 잡거라.”

“예.”

한 줌의 진기만이 남은 상태인지라 나 혼자 경공과 신법을 펼칠 수가 없다.

사부가 나를 잡고 달릴 생각이신가 보다.

다가가 손을 잡자 사부가 눈을 감으셨다.

‘……?’

우우웅∼!

시원하고 신묘한 기운.

내 자하의 기운과 충돌하지 않는, 심법으로 정제하기 전의 자연의 기운이었다.

‘어떻게 하신 거지?’

분명히 사부 또한 무림인이시니 심법으로 기운을 정제하여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을 터인데 어떻게 넘겨준 기운이 자연의 기운일 수가 있는 것이지?

“의문은 나중에 풀고, 일단 받아들이는 데에 집중하여라.”

계속해서 몸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기운.

사부의 말대로 일단은 받아들이고 나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자, 가자꾸나.”

내가 적당하다고 생각할 때쯤, 사부도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말하며 나에게서 손을 떼었다.

파악!

‘가볍다.’

자연 그대로의 신비하고도 오묘한 기운.

자하심법으로 정제해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냈을 때와 비교해 보니 많은 차이가 있었다.

가볍게 발을 떼었을 뿐인데 나의 기운으로 움직였을 때와 두 배 정도의 속도의 차이가 있었다.

“기운은 원래 자연 그대로의 것이 가장 좋은 법이다. 도사들이 괜히 자연을 닮으려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 그 자체가 엄청난 힘이 있기에 닮으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기운을 심법으로 정제하는 건지요?”

“너는 처음 심법을 배웠을 때 기운이 바로 네 단전에 자리 잡았더냐? 그리고 자리 잡은 기운이 네 의지에 따라 움직였더냐? 아닐 것이다. 심법으로 정제를 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자연스레 흐르는 기운을 억지로 몸 안에 가두어 놓았으니 그것이 네 의지에 따라 움직이려 하겠느냐? 너의 것으로 만들어 네 의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 심법의 역할이다. 예전에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조금 지나서 잊어 먹었나 보구나.”

조금은 씁쓸한 느낌의 마지막 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침묵 속에서 건물 사이사이를 뛰어다녔다.

‘왠지 어수선해.’

왠지 모를 어수선함.

아니, 불안감으로 인한 민초들의 불안정한 기운.

자연 그대로의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보니 상단전을 극한으로 사용하고 있을 때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불안감이 느껴지는구나. 이쪽도 마찬가지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로구나.”

“누군가가 보이는데요? 사천당가?”

사천당가의 무인들이 보였다.

우리의 임무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사천당가 지부의, 멀리서도 보일 만큼 많은 인원의 무인들이 원 모양으로 사람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심각한 일이 터진 것 같구나. 아이들이 괜찮으면 좋겠는데…….”

무진 사부의 걱정 어린 말씀을 뒤로하고 앞으로 치고 나가 사천당가 무인의 앞에 섰다.

“지금은 들어갈 수 없소. 다른 쪽으로 피해서 가시오.”

강압적인 말투에 어두운 표정.

구파와 같이 예의로 상대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누르는, 조금은 거북한 행동이었다.

‘그래도 효과는 좋은 것 같군.’

사천당가 자체가 무척이나 폐쇄적이고 무서운 소문이 많은 가문인지라 이렇게 나오니 뭐라 말하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들 궁금하기는 하지만 두려운 듯 우물쭈물 앞에 몰려 있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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