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52화 (152/175)

# 152

화산천검 7권(2화)

1장 드디어……(2)

찌리릿! 우뚝!

생각을 끝냄과 동시에 순간 전기가 뇌를 타고 척추로 흐르고,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강제로 진입하게 된 모든 기의 흐름이 보이는 상승의 영역.

그 사이에서 상단전을 타고 나의 정신력을 뛰어넘은 강력한 염이 금환봉을 내 심장 바로 앞에서 멈춰 세웠다.

‘……공명? 마진천!’

황신과 싸웠을 때와 마찬가지인 상황.

“공명? 귀찮은 방해꾼이 나섰군. 어디냐?!”

분노로 머리가 새하얘졌을지언정 상황 판단만큼은 빠르다.

노강호로서의 수많은 경험에 의한 노련함이었다.

“정말로 매번 아슬아슬한 상황에 빠지는군. 내가 없었다면 열 번도 더 죽었을 거다, 청우.”

역시나 목소리의 주인은 마진천이었다.

“창마 황신에 이어 이번에는 고루시수 망영인가? 한 단체의 호법이라는 작자들이 왜 이렇게 바깥나들이를 좋아하는지 모르겠군.”

“나를 알고 있다면…… 그래, 네놈이 바로 종남의 반룡이로구나.”

“그쪽에서 내가 정말 유명인인가 보군? 하나같이 다들 나를 알고 있게.”

장난스럽게 대꾸하며 마진천이 나에게 다가섰다.

이어서 마진천이 나를 우악스럽게 잡아 일으켰다.

“내 몸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창마 황신처럼 네놈의 수족 하나 정도는 날려 줬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군.”

“클클클, 보아하니 양가 노인네가 만든 함정에 당했나 보구나. 그래도 그 함정에서 그 정도 상처라면 멀쩡한 거다. 회가 예의 주시한 이유가 있는 후기지수였군.”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금은 냉정을 되찾은 듯 고루시수 망영이 특유의 음산한 웃음소리를 냈다.

“사실 무리한다면 내상을 크게 입을 수 있긴 해도 네놈은 죽일 수 있어. 입조심해.”

“클클클, 무서워서 어쩌나? 하지만 네놈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놈처럼 동료가 다쳤을 테지? 네놈들은 명문정파라는 허울에 둘러싸인 놈들이니 분명 나를 죽이느니 그놈들을 살리고자 하겠지. 결국 네놈은 나를 죽일 수 없어.”

“……과연 그럴까?”

푸슛!

“큭!”

가슴 언저리를 훑고 지나간 푸른 검광.

“미안하지만 나는 달라. 난 마음만 먹으면 널 죽일 수 있어, 이렇게.”

“동료들이 죽어도 상관이 없는가 보군. 클클클, 제대로 배웠어.”

금빛 서기도 조금씩 사라져 간다.

폭주도 점점 끝나 가는 상황.

고루시수 망영의 목소리는 예상에서 빗나간 전개 때문에 허탈함에 빠진 군사들의 그런 심정이 담겨 있었다.

“적의 수뇌부를 잡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동료들을 살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감정적으로 봤을 때는 후자겠지만 대국을 봤을 때는 전자지. 이런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대국을 봐야 되는 법이다. 다른 후기지수가 이곳으로 왔다면 모를까 내가 왔기 때문에 네놈은 죽는 거다, 고루시수.”

“클클클, 잡소리가 길구나. 죽일 수 있다면 죽여 봐라. 어차피 회로 돌아가도 양가 놈에게 죽을 것이 분명한데, 무림인의 운명대로 전장에서 죽는 것이 낫겠지.”

“원대로 해 주지.”

목을 향해 횡으로 움직이는 마진천의 검.

한 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 냉정한 검이 고루시수의 목을 날려 버릴 것이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엇!”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분명히 딱 목을 베어 버릴 만큼의 거리에서 휘두른 검이 뒤로 살짝 밀리듯 움직이더니 사선으로 그어져 고루시수 망영의 얼굴을 베어 버렸다.

“클클클, 약해진 것이 맞긴 하구나. 혈강시 정도를 눈치채지 못하다니.”

마진천의 흔들림과 동시에 깨어져 버린 공명.

공명이 깨어진 것에 대해 반응할 시간도 없이 고루시수 망영의 금환봉이 마지막으로 환하게 금빛 서기를 일으키며 일직선으로 나의 심장을 향했다.

“금환봉을 이렇게 만든 너만큼은 내가 죽이고 가도록 하마!”

마지막 노림수.

시간을 끈 것은 마진천만이 아니었다.

사천당가의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분명한 마진천의 행동에 장단을 맞춰 준 것은 고루시수 망영이 마진천을 방심시키고 지금의 이 순간을 만들어 내려 했기 때문이었다.

공명 때문인지 아직은 남아 있는 상승의 영역의 잔재.

흘러가는 기의 흐름을 파고들어 오는 금환봉이 느릿느릿하게 보였다.

‘써야 한다.’

심검을 쓰지 않는다면 분명히 죽는다.

더 이상의 기적은 없다.

지금은 누군가가 도와줄 수 없는 상황.

방금 전과 같은 기적은 한 번이 다다.

‘심검.’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검이 느껴졌다.

진정한 검이란 무엇인가?

아직까지 알 수가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알 수 있는 것은 있다.

마음속의 검과 손안의 검.

차이가 있다면 있겠지만 없다고 한다면 없는 것.

검은 베기 위한 살상의 병기.

신검이든 무엇이든, 그저 조금 잘 들고 조금 안 든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국 심검 또한 나에게 있어서는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하나의 병기일 뿐.

손안의 검과 마음속의 검의 경계가 모호해져 갔다.

천천히, 합쳐지듯 두 검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이 혼합되어 갔다.

검이 바로 나의 손이며, 내가 바로 검이다.

신검합일(身劍合一).

기운이 나의 몸을 타고 움직이는 것 마냥 검 속으로 파고들었다.

차가운 검신이 나의 몸이 된 것 마냥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두근! 두근!

이어서 마음속의 검이 맥동했다.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맥동하고, 마음속의 검이 가슴을 뚫고 나올 듯 거세게 진동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흐릿했던 검의 형상이 이내 환한 빛과 함께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보인다.

닳고 닳아 이가 나가고 녹이 슬었으나, 모든 것을 잘라 버릴 듯이 풍겨 나오는 서늘한 예기와 지독한 살기만큼은 그 어떤 것과도 비견될 수 없는 검이.

부러질 듯 부러지지 않을 듯 위태로운 경계 속을 걷는 고검(古劍).

움직여 휘둘러지고 베는 것으로 자신을 단단하게 연마하는 찬란한 신검(神劍).

마음을 쉴 곳을 찾지 못하고 고독하게 빛을 뿜어내는, 칼집 없이 존재하는 고검(孤劍).

이것이 내가 벼리고 벼린, 지금까지 키워 온 나만의 검.

이제는 완벽히 모든 것을 베어 버릴 수 있다는 듯,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난도질당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나만의 검, 심검.

다른 검객들의 것과는 다른, 오로지 나의 깨달음만으로 만들어 낸 단 한 자루의 검이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너무도 빨리 뛰어 이제는 심장이 아파 올 정도다.

하지만 그에 맞춰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용솟음쳤다.

상승의 공간, 나의 지배하에 있는 공간.

설명은 길었지만 그사이에 금환봉은 거의 움직이지도 않은 상황이다.

‘막고, 쓰러뜨린다.’

막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심검을 쓰기 전과 후에는 엄청난 수준의 차이가 존재했다.

아직 내가 심검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하였기에 이런 판단의 오차가 생긴 것이다.

‘간다.’

후발선착, 상승의 영역과 상승의 초식.

공간과 시간을 무시하고 기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심검.

스걱!

나의 검에 대한 깨달음은 검이란 어떤 것을 베어 버리는 살상의 병기라는 것.

그 깨달음이 완벽히 녹아들어 가 이루어진 나의 심검은 닿는 모든 것을 베어 버리는 마의 병기였다.

맞닿은 금환봉, 고루시수 망영의 가슴까지 어떤 막힘도 없이 한꺼번에 베어 버렸다.

째애앵! 푸화학!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금환봉이 두 토막으로 나뉘어져 떨어져 버리고, 심검에 베인 고루시수 망영의 가슴에서 하늘 끝까지 오를 듯한 피분수가 솟구쳤다.

“심……검, 이로군. 숨긴…… 건가? 클클클, 새파랗게 어린 후배 놈에게 한 방 먹었군. 쿨럭!”

후두둑!

바로 앞에 있던지라 고루시수 망영이 토한 피를 모두 뒤집어써 버렸다.

하지만 도리어 이 비릿한 피 내음이 끝났다는 안도감을 더해 주었다.

“기뻐하지 마라……. 싸움은, 끝나지 않았…… 다. 진정한 절망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클클클.”

“죽어 가는 주제에 무슨 헛소린지 모르겠군. 한 세기를 살아온 주제에 아직도 삶에 미련이 남았다는 소리인가?”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 알 수…… 있겠지.”

땅에 검을 박고 그것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켰다.

‘크윽!’

아직도 완벽하지 않은 것인가?

벼리고 벼린 심검인데도 후유증은 엄청났다.

‘그래도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인가?’

갈천악과 싸웠을 때보다는 나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지금은 그래도 심검을 발현한 직후에 몸을 움직여 다른 사람들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죽은…… 건가?”

땅에 깊게 뿌리를 내린 고목나무처럼 두 토막 난 금환봉을 내뻗은 상태로 우뚝 서 있는 고루시수 망영.

혈천회의 한 호법, 일익(一翼).

내가 펼칠 수 있는 모든 초식을 다 펼치고서야 드디어 쓰러뜨린 것이다.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리는군.’

절망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음산한 말.

대체 무슨 뜻일까?

‘일단 확인 사살은 해야 되겠지.’

강시를 조종하는 시체의 통솔자.

그 자신을 강시로 만드는 대법이나 사술을 안배해 놓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런 종류의 인물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죽은 척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팔로 온 힘을 다해 땅속에 박아 넣은 검을 뽑아 들고, 고루시수 망영의 목 바로 옆에 댔다.

“합!”

기합으로 힘을 넣고 검을 오른쪽으로 뺐다가 힘차게 휘둘렀다.

후웅∼! 깡!

“누구냐!”

곤란하다.

막혀 버린 검.

게다가 바로 앞까지 접근했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온몸을 가리는 검은색의 망토를 뒤집어쓴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

마주친 눈동자에서는 살기와 무정함만이 느껴졌다.

‘살수!’

위험하다.

심검으로 인한 기감의 상실과 몸의 불안정함.

지금 상태로는 삼류무사가 덤벼도 질 것이 당연한데, 위험함을 느낄 만큼 엄청난 살수가 나타나다니.

세침 한 번만 쏘여도 죽을 것이다.

‘크윽.’

방심하고 있었다.

고루시수 망영은 혈천회의 중요인사, 호법.

당연히 누군가는 보호를 하거나 감시를 하고 있었을 텐데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다니.

‘그런데……?’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의문의 살수, 무언가가 마음에 걸리는 듯 움찔움찔 몸을 떨며 나를 무시한 채로 고루시수 망영을 들쳐 메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다행이다.’

나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아니, 신경을 쓰고는 있는데, 움직이면 무언가가 자신을 베어 버릴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었다.

‘저런 모습은 차원이 다른 고수의 살기를 받았을 때나 보일 법한 것인데?’

어떻게 움직여도 자신을 베어 버릴 수 있을 거라는 강렬한 예감.

그 예감에 사로잡히면 움직이지조차, 버둥거리지조차 못한다.

‘일단 천천히 뒤로.’

도망치기에는 딱 알맞은 순간이다.

천천히 뒤로 한 발자국씩 물러나며 살수의 동태를 살폈다.

‘마진천은?’

갑자기 생각났다.

마진천과 두 사형.

마찬가지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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